[100년의 페이지, 그 안에 담은 이야기] (12) 가톨릭신문 속 그때 그 사람들

가톨릭신문은 창간 99년이라는 오랜 역사 안에서 여러 인물의 발자취도 기록해 왔다. 오늘날 교황과 주교, 사제를 양성하는 대신학교장 등으로 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들도 과거에는 한 명의 사제, 수도자, 신학생으로 가톨릭신문에 등장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이들의 ‘그때 그 시절’을 살펴본다. 레오 14세 교황은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총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다섯 차례 한국을 찾았다. 가톨릭신문은 2002년과 2005년 수도회 한국지부 방문, 2010년 수도회 한국 진출 25주년 기념행사 참석 당시의 소식을 알렸다. 2002년 1월 27일자는 “수도회 총장 로버트 프레보스트 신부가 내한했다”며 “한국지부의 청소년 사목·영성 상담·피정 지도 등의 사도적 활동 현장을 둘러보고 회원·재속회원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고 소개했다. 2010년 10월 10일자도 “총장 로버트 프레보스트 신부를 비롯한 각국 장상들과 회원 250여 명이 참석해 축하 인사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군종교구장 서상범(티토) 주교는 군종 사제로 동티모르에 파견돼 있던 1999년, 여러 차례 현지 상황을 전했다. 당시 서 신부는 베트남전쟁 이후 처음으로 전투 병력이 해외에 파병된 상록수부대의 일원으로 동티모르에 파견됐다. 서 신부는 가톨릭신문을 통해 동티모르 현지의 어려움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독자들의 응답에 서 주교는 1999년 12월 26일자에 실린 편지로 “가톨릭신문사의 적극적인 홍보에 힘입어 동티모르 형제자매들이 성금과 구호품을 받았다”며 “옷·신발·영양제·분유·세탁비누·학용품 등 요긴한 물품들이 도착하고 있어, 우리의 기도와 사랑의 마음에 감격해하고 있다”고 감사를 표했다. 서 주교는 2000년 4월 29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21년 6개월간 해왔던 군 사목을 마무리 지을 때도 인터뷰로 소회를 밝혔다. 2012년 12월 16일자는 “주님께 감사드릴 줄 알 때 어떤 고통 속에서도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서 주교의 말을 인용했다. 이후 서 주교는 2021년 4월 9일 제4대 군종교구장에 착좌해 군 사목으로 돌아왔다. 사제가 되기 전의 모습도 담았다. 가톨릭신문은 1994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수석으로 합격한 민범식(안토니오) 신부의 소감을 실었다. 1994년 1월 16일자는 “권위 있고 엄숙한 신부님보다는 항상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펴주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민 신부의 포부를 전했다. 꿈꿨던 모습의 사제가 된 민 신부는 2025년 2월 18일부로 제20대 서울대교구 대신학교장에 임명됐다. 취임을 앞둔 2025년 3월 16일자 인터뷰에서 민 신부는 “앞으로는 성소자와 양성자 간의 ‘밀접 동반’으로 변화를 꾀하며 사제 양성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발행일 2026-09-06 제3506호 2면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62) 교구 시노드 봇물

“인천교구가 교구 대의원회의를 개막, 2000년대의 새로운 복음화를 모색하기 위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리스도와 함께 희망과 쇄신을 향해 나아갑시다’를 주제로 한 인천교구 대의원회의는 6월 6일 오후 2시 주안 3동성당에서 거행된 개막미사와 총회를 시작으로 2000년 9월 3일 폐막까지 1년 3개월간 교구의 목표와 현실을 점검하고 새복음화, 재복음화, 사회복음화의 기치 아래 2000년대 사목방향을 결정한다.”(가톨릭신문 1999년 6월 13일자 1면) “수원교구가 새로운 세기를 여는 대희년을 맞아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모색해 보는 교구 시노두스(대의원회의)를 개막했다. … 수원교구는 이날 개막미사를 시작으로 오는 2000년 12월 3일까지 교구 공동체의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함께 참여하는 가운데 ‘교회 기초 공동체 활성화’, ‘자율적인 젊은이 신앙생활’ 등 두 의안에 대한 새로운 방향점을 설정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복음화의 길’을 모색하는 시노두스를 개최하게 된다.”(가톨릭신문 1999년 7월 25일자 1면) 2000년대 새로운 복음화 모색, 전국 교구 시노드 잇따라 개막 사회 변화 속 사목적 한계 성찰… 교회 구조·의식적 변화 이끌어 대희년 앞둔 교회의 쇄신 노력 2000년 대희년을 앞둔 한국교회는 새로운 교회로 변화하기 위한 보편교회의 노력에 동참하면서, 새 시대의 도전을 극복하고 참된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쇄신 노력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교구 시노드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1999년은 이러한 교구 시노드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해였습니다. 우선 6월 6일에는 새복음화, 재복음화, 사회복음화를 기치로 2000년대 사목 방향을 결정할 인천교구의 시노드가 개막됐습니다. 이어 7월 17일에는 수원교구가 ‘새로운 복음화의 길 찾기’를 대주제로 시노드 개막미사를 거행했고, 1997년 개막된 대구대교구 시노드가 10월 10일 폐막됐습니다. 그리고 대희년이 시작된 2000년에는 서울대교구가 시노드를 개막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교구 시노드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청주교구는 2008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시노드를 개최했고, 대구대교구는 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제2차 교구 시노드를 개최했습니다. 대전교구도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며 새로운 사목 방향을 모색했습니다. 새 시대의 도전과 자기 성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은 전례 없는 사목적 성찰과 구조적 전환이 일어난 중대한 시기였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구가했던 한국교회는 1990년대에 접어들어 한국 사회가 세속화, 다원화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양적 팽창 이면에 가려져 있던 내적 빈곤과 사목적 한계가 표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교세 성장 둔화, 주일미사 참례율 감소, 냉담 교우의 양산과 성사 생활 참여의 저하, 그리고 기복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신앙 행태 등 복합적인 위기 징후들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과거의 수직적 사목 방식으로는 시대의 요청에 응답할 수 없다는 자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성찰은 보편교회의 흐름과도 정확히 맞물렸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회가 새로운 천년기를 맞아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새로운 복음화를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했습니다. 2000년 대희년이라는 역사적 기점은 교회가 하느님 백성 전체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교구의 미래 비전을 공동으로 식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교구 시노드의 결실과 한계 시노드를 통해 각 교구는 고유한 사목 환경과 여건에 맞춰 자기 쇄신을 위한 방안과 복음화를 위한 다양한 사목 정책을 수립해 나갔습니다. 특히 1990년대 말 집중적으로 열린 교구 시노드들은 다음과 같이 중요한 구조적, 의식적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첫째,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함께’ 논의하고 ‘담대한 경청’을 하는 것이 교회의 본래 운영 방식임을 깊이 체험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성직자 중심의 일방적이고 하향식의 지시와 순명에 익숙했던 신자들은 시노드 여정을 거치며 “하느님 백성의 상처 입은 목소리를 듣는 것”이 곧 성령의 인도를 식별하는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첫 번째의 성과와 깊이 연결되는 것으로서, 평신도들의 위상 제고와 사목 참여 구조의 실질적 확대였습니다. 시노드 과정 자체에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다양한 계층의 평신도 대의원들이 동등한 하느님 백성의 자격으로 한자리에 모여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숙의한 경험은, 한국교회 내에 강렬한 시노달리타스의 체험으로 남았습니다. 셋째, 소공동체 사목의 전면 도입은 모든 교구 시노드에서 공통적으로 평가됐습니다. 시노드에서 강조된 사목 방향 가운데 하나도 소공동체 활성화였습니다. 이전까지 한국교회의 본당 조직은 통제와 관리의 대상, 행정 단위의 성격이 짙었습니다. 그러나 시노드를 기점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친교의 교회론을 바탕으로 본당을 ‘공동체들의 공동체’로 재규정하는 신학적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넷째, 청소년 사목이 교회의 주변부에서 핵심적 사목 의제로 승격됐다는 점입니다. 수원교구는 아예 젊은이를 핵심의제로 삼았고, 인천교구는 청소년·청년 영역을 세분화했으며, 서울대교구는 청소년·청년을 동등한 현재의 교회 구성원으로 보도록 명시적으로 요청했습니다. 시노달리타스의 선제적 체험 교구 시노드들이 해당 교구의 미래 비전을 모색하고 교구를 새로운 면모로 일신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와 한계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특히 풍성한 논의와 결의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이고 구조적이며 제도적인 후속 작업을 통해 성과를 가시화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되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말 집중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교구 시노드의 체험은 외적 팽창과 성장주의 패러다임의 한계에 부딪힌 한국교회가 복음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으로 돌아가 자기 존재의 근거를 신학적으로 재정립하고자 했던 각고의 노력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오늘날 보편교회의 화두인 시노달리타스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200주년 사목회의, 그리고 특히 교구 시노드들을 통해서 선제적으로 체험했던 것입니다.

발행일 2026-09-06 제3506호 8면

[세계교회 지성에게 묻다] 애그니스 M. 브라잴 교수 “주변화된 이들 참여가 참된 식별·회심 이끌 것”

세계 그리스도교가 기존의 서구 중심 체계를 탈피하는 흐름 속, 아시아 고유의 역사, 문화, 정체성에 뿌리내린 신학적 성찰이 보편교회 쇄신의 새로운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필리핀의 대표적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 애그니스 M. 브라잴 교수(마닐라 드 라 살 대학교)는 서구 식민 지배의 상처와 독재, 토착 여성들의 삶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맥락의 해방-탈식민 신학관을 구축해 왔다. 세계주교시노드 연구위원 및 교황청 각종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로마 가톨릭의 중심에서 비(非)서구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브라잴 교수는 가난한 이들과 이주민, 폭력 피해자 등 주변화된 이들을 단순한 사목 대상이 아닌 ‘신학의 주체’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구 신학의 수용을 넘어 비(非)백인 교회가 주체적 언어로 신학을 펼쳐가야 한다는 그의 제언은, 양극화와 사회적 분열 속에서 주변부의 눈으로 진실을 분별할 것을 요청받는 한국교회와 가톨릭 언론에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신학의 '주체’ 전환과 시노드 교회의 미래 방향을 브라잴 교수에게 직접 들어봤다. Q. 교수님의 신학은 동남아시아의 고유한 역사·문화와 신앙 경험에 뿌리를 둡니다. 서구 신학에 익숙한 신자들에게 아시아 맥락의 신학이란 어떤 것인가요? 또 어떤 역사적 경험이 교수님의 해방-탈식민 신학관을 형성했는지 들려주세요. A. 필리핀은 식민 지배의 깊은 상처를 겪었고, 정치적 독립 뒤에도 그 영향은 사고와 예배 방식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맥락의 신학이란 정신과 신앙을 함께 탈식민화하는 여정이에요. 식민지 이전의 과거를 낭만화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한때 무시됐지만 오늘날 회복력과 풍요로운 삶의 자원이 되는 아시아 고유의 지혜와 전통, 그 생명을 북돋는 보물을 되찾자는 것이죠. 저의 접근은 불평등한 구조를 비판하고, 식민주의 사고에서 벗어나며, 신학 지식을 탈식민화하려는 해방-탈식민 윤리입니다.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는 루카복음 4장 18절의 예수님 사명과 맞닿아 있어요. 제 신학을 형성한 주요한 상처 중 하나는 토착 여성(무헤르 인디헤나)들의 투쟁입니다. 식민 시대 이전 필리핀 사회는 양성이 비교적 평등했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종교적 권리와 지도력은 여성 종교 지도자 ‘바바일란’에 대한 억압으로 상실됐죠. 그들은 식민 지배에 맞선 원형적 페미니스트였어요. 필리핀의 페미니즘은 서구 수입품이 아니라 이들의 투쟁 안에 자생적으로 뿌리내린 씨앗입니다. 또 하나는 마르코스 독재 경험입니다. 저는 1972년 계엄 통치가 시작됐을 때 학생이었던 ‘데카다 세텐타(70년대 세대)’입니다. 1980년대에는 코코넛 소작농을 조직했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필리핀 주교회의의 시민 불복종 호소문을 학생들이 배포하도록 도왔다는 이유로 대학 캠퍼스 사목자 자리에서 해임되기도 했어요. ‘피플 파워 혁명(1986년 마르코스의 독재 정권을 평화적으로 무너뜨린 민주화 운동)’의 증인이자 참여자로서, 아무리 상황이 암울해도 부활과 해방의 약속 안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Q. 아시아 교회는 오랫동안 유럽과 북미의 신학 언어를 받아들여 왔습니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그리스도인이 소수자인 상황인데, 아시아 교회가 보편교회 신학 쇄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A. 필리핀과 동티모르를 제외하면 대다수 아시아 국가에서 그리스도인은 소수자입니다. 그래서 지역 문화를 형성해 온 타종교들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지키려다 보니, 도리어 유럽적 범주와 문화에 뿌리내린 믿음과 실천에 거리를 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아시아 교회는 더 큰 용기를 내야 합니다. 민족 고유의 언어와 문화로 신학을 연구하고 예배하며, 당당하게 교회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특히 아시아 교회는 오랜 다종교 환경에서 쌓아온 종교 간 대화의 경험, 아시아의 비이원론적 철학들과 만나는 지점에서 보편교회 신학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죠. Q. 교수님은 가난한 이들, 이주민, 여성, 토착민 공동체 등 주변부 사람들을 신학의 주체로 봐야 한다고 강조해 오셨습니다. 이들을 동반자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며, '경청'이 단순한 상징을 넘어 실제 구체적인 변화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A. 주변부에 있는 이들의 상처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찬양(Worship)하고 살아가는 방식에서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를 일깨우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체제의 혜택을 받는 이들과만 이야기하면 놓칠 진실들이 그 안에 있죠. 단순히 그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끼워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사자를 동반자로 맞이하지 않는 경청은 시혜적 연민에 그칠 위험이 있어요. 이들에게 실질적인 권한과 힘을 실어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주변부 출신이나 그동안 목소리가 묻혔던 공동체 구성원을 훈련시켜 서품을 주거나, 이들이 평신도로서 교회의 다양한 기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양성된 평신도가 참여하는 사목평의회도 단순 자문기구가 아니라 공동체의 장기적 계획을 담당하는 의결기구가 돼야 해요. 특히 여성과 평신도에게 신학교육의 문을 넓게 열어야 하고, 신학적으로 훈련받은 이들이 강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필리핀에서 사제 대 신자 비율은 1대 7000에 달하지만, 종신부제를 양성하는 교구는 적고 여성 부제 가능성에 열려 있는 교구는 더 드뭅니다. 교회 안에는 사제보다 더 잘 강론할 수 있는 평신도들이 존재하고 많은 신자가 이를 지지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강론을 서품 직무자에게만 제한하고 있어요. 교회가 저마다의 은사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려면 여성과 평신도가 교회의 의사결정 기구와 사목 현장에 대표로 참여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단계에서 경청이 이뤄질 때 비로소 참된 교회적 식별과 회심이 이루어집니다. Q. 이주민 이슈는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주민을 시혜 대상이 아닌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새롭게 하는 주체로 바라보는 ‘상호문화적 교회’란 어떤 모습일까요? A. 교회는 역사를 돌아보며 이주민의 유입이 교회를 어떻게 풍요롭게 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신학자 제후 핸슬스(Jehu Hanciles)는 저서 「Migration and the Making of Global Christianity(이주와 세계 그리스도교의 형성, 국내 미출판)」에서 이주가 그리스도교 확산과 신학적 발전의 중심축이었다고 밝혔죠. 이주민 당사자들이 본당과 교구 리더십에 참여해야 그들의 문화가 지닌 은사와 지혜도 온전히 나눌 수 있습니다. 단지 여러 문화를 한 곳에 모아놓기만 하는 다문화 모델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상호문화성은 다문화주의가 빠지기 쉬운 고립에 저항하며, 현지인과 다양한 이주민 집단 사이의 대화를 요구합니다. 상호문화적 교회는 문화 간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하는 사목자들이 이끌고, 이주민과 그 자녀들이 리더십 안에서 삶의 지혜를 나눌 때 비로소 성장합니다. Q. 세속화와 불평등, 저출생과 사회적 분열을 겪는 오늘날 한국에서 가톨릭 언론과 교회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며, 어떠한 소명을 지니고 있을까요? A. 한국이 겪는 변화는 세계 자본주의 구조와 연결돼 있습니다. 세계 자본주의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확대해 양극화와 사회적 분열을 부추겼죠. 한국교회는 표면적 문제 아래의 근본 원인을 물어야 합니다. 세속화와 불평등, 저출생과 청년 불안을 밀어붙이는 경제·정치·환경 세력은 누구인가, 교회는 신학과 실천 속에서 대안적인 은총의 구조를 사회에 어떻게 세울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진실이 힘을 잃은 시대에 가톨릭 언론은 신자들이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안목과 힘을 길러줘야 합니다. 또 현실을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야 해요. 허위 정보로 이익을 얻는 세력이 정치인이든 거대 기술 기업이든, 용기와 연민으로써, 그들의 실체를 드러내도록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하는 일은 아무리 작아도 헛되지 않습니다. 성서학자 톰 라이트 주교(성공회)의 말처럼 “머지않아 불에 던져질 위대한 그림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며, 곧 파헤쳐질 정원에 장미를 심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하느님의 새로운 세상의 일부가 될 일을 우리는 성취하고 있는 것”(「마침내 드러난 하느님 나라」 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진실된 연대는 하느님의 새 세계까지 이어지고, 그곳에서 더욱 완성될 거예요. ■ 애그니스 M. 브라잴 교수는 애그니스 M. 브라잴은 필리핀 마닐라 드 라 살 대학교(De La Salle University) 신학·종교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필리핀 가톨릭신학회(DaKaTeo) 창립 멤버이자 전 회장이며, 아시아 여성 가톨릭 신학자 네트워크 ‘아시아 여성의 교회(Ecclesia of Women in Asia)’ 초대 코디네이터를 역임했다. 벨기에 뢰번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브라잴 교수는 저서 「A Theology of Southeast Asia: Liberation-Postcolonial Ethics in the Philippines(동남아시아의 신학: 필리핀의 해방-탈식민 윤리, 국내 미출판)」를 집필했고, 「Cyberchurch: An Ecclesiological Model for a Digital Age(사이버 교회: 디지털 시대의 교회론 모델, 국내 미출판)」와 「Toward an Intercultural Church: Bridge of Solidarity in the Migration Context(상호문화적 교회를 향하여: 이주 맥락에서 연대의 다리 놓기, 국내 미출판)」를 공동 저술했다. 또한 10권의 선집을 공동 편집했으며, 여성신학, 탈식민 신학, 이주신학, 사이버 신학 등을 주제로 8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아울러 다양한 교황청 및 시노드 여정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해 왔다.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 부서와 이주·난민 부서가 주관한 ‘Doing Theology from Existential Peripheries(실존적 주변부에서 신학하기)’ 프로젝트의 아시아 지역 코디네이터로 활동했으며, 필리핀 주교회의의 ‘In-depth Synodal Discussion and Discernment on Key Controversial Issues(주요 쟁점에 관한 심층 시노드적 토론과 식별)’ 과정에서는 여성 부제 식별·작성 그룹의 의장 겸 진행자를 맡았다.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 부서 제2연구그룹 ‘Listening to the Cry of the Poor and the Earth(가난한 이들과 지구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기)’ 위원으로도 참여했으며, 교황청 복음화부 ‘Church of the Sheaves(이삭의 교회)’ 프로젝트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발행일 2026-08-30 제3505호 10면

[Hearing the Intellectuals of the Global Church – Prof. Agnes M. Brazal]

This article is released on August 30, 2026, in both print and online formats. As global Christianity sheds its long-standing Western-centred framework, theological reflection rooted in Asia's own history, culture, and identity is emerging as a fresh source of renewal for the universal Church. Prof. Agnes M. Brazal, a leading Filipino lay Catholic theologian at De La Salle University, Manila, has built a liberation-postcolonial theology of Southeast Asia, grounded in the wounds of Western colonial rule, the trauma of dictatorship, and the lived experience of indigenous women. Serving as a research consultant to the Synod of Bishops and as coordinator for various Vatican projects, Brazal has given voice to non-Western women at the heart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and insists that the marginalised — the poor, migrants, victims of violence — must become not mere objects of pastoral care, but subjects of theology in their own right. Her call for churches beyond the West to move past simply receiving Western theology and instead articulate theology in their own voice speaks powerfully to the Korean Church and Catholic media as well, called to discern truth through the eyes of those on the margins amid polarisation and social fragmentation. We spoke with Prof. Brazal about this shift toward theological « subjecthood » and the future direction of a synodal Church. Q. Your theological work is deeply rooted in the Philippine and Southeast Asian context. For readers more familiar with European or North American theology, how would you explain the significance of doing theology from within Asia's own histories, cultures, and faith experiences ? Could you also share what historical experiences have shaped your liberation-postcolonial theological vision ? A. Like many nations in Southeast Asia, the Philippines has experienced the deep wounds of colonisation. Even after gaining political independence, the marks of colonial influence remain in how people think and worship. To do theology within Asia's own context and cultural categories is part of the journey of decolonising both mind and faith. This is not a call to romanticise the pre-colonial past, but rather to recover what is life-giving in our local wisdom and traditions — treasures once dismissed, yet now shining as resources for resilience and flourishing in today's world. My approach is liberation-postcolonial, that is, shaped by a liberationist lens, which is critical of the structures of inequality within and among nations. It is also postcolonial, exposing how colonial patterns still shape our thinking as well as striving to decolonise theological knowledge. I see this as deeply aligned with Jesus' mission in Luke 4:18: to proclaim good news to the poor and to set the oppressed free. Among the historical wounds that shaped my theology were the struggles of the mujer indigena. In the pre-colonial times, women and men in the lowlands were relatively equal. The loss of women's rights and leadership in the religious space is symbolised by the repression of the Babaylans, our pre-colonial religious leaders who are mostly women. They were at the forefront of the resistance against the colonisers and are thus our proto-feminists. Feminism in the Philippine context is not an importation from the Europeans and North Americans, but a seed sown in the struggles of the babaylans, our proto-feminists. A more contemporary historical wound that has shaped my theological vision is the Marcos dictatorship. I belong to the dekada setenta (70s decade) generation, composed of students when the fourteen-year martial rule of Ferdinand Marcos began in 1972. In the 1980s, I got arrested for organising coconut tenant farmers, as well as removed from my position as Campus Minister in a State University for organising the students to distribute the CBCP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the Philippines) call to discern civil disobedience. As a witness and participant in the People Power Revolution, I realised that no matter how bleak the circumstances, there is always hope in the promise of resurrection and liberation. Q. Asian Churches have long received their theological language from Europe and North America. With Christians a minority in most Asian countries, how can Asian local Churches contribute to the renewal of theology in the universal Church ? A. Except for the Philippines and East Timor, Christians are a minority in most Asian countries. Seeking to remain distinct from other religions that have shaped local cultures, Christians often hold on to beliefs and practices rooted in European categories and culture. Yet the churches of Asia are called to a deeper courage — to let theology and worship speak in the language of our own people, and to affirm that these local expressions or articulations belong within the shared voice of the universal Church. An important area, in particular, where Asian local churches can contribute is in the realm of interreligious dialogue, and engagement with Asian non-dualistic philosophies. Q. You have often reflected on people at the margins — the poor, migrants, women, and Indigenous communities. What does it mean to receive them as partners, and what is needed for « listening » to move beyond a mere symbol into real, concrete change ? A. The Church needs to listen to the voices of those at the margins, for in their wounds, they carry wisdom that exposes what is broken in our ways of thinking, worship, and living — truths we would miss if we only spoke among ourselves or with those who benefit from the system. Yet listening alone is not enough. To hear without welcoming them as partners risks falling into patronising pity. What is needed is empowerment: the recognition of their gifts and their rightful place at the table where decisions are made. People from the margins and underrepresented communities who have the vocation and training should be ordained, or as lay people appointed to various bodies at every level of the Church. Pastoral councils composed of lay women and men, inclusive of people from the margins, should be deliberative — not just consultative — bodies in charge of the long-term and strategic planning for the community. The laity, especially women, must be given greater access to theological education, and theologically trained women and lay people from the margins should be preaching. In the Philippines, the rate of priests to faithful is 1:7000, yet very few dioceses are training permanent deacons, much less open to having female deacons. There are theologically qualified laypeople in the church who can preach better than some priests, and a big majority of the faithful are in favour of allowing qualified women to preach, yet the Church insists on restricting preaching at Mass to the ordained ministers. For the Church to genuinely accept the variety of gifts that people bring, women and lay people must be represented in decision-making bodies and pastoral life at every level. It is only when listening happens at every level of the Church that true ecclesial discernment and conversion can take place. Q. Migration is an important issue for the Korean Church today as well. What would an « intercultural Church » look like — one that understands migrants not as objects of charity, but as people who renew the Church's identity and mission ? A. It would help the Church if it looked back in history and saw how past influxes of migrants have enriched the Church. In the book Migration and the Making of Global Christianity, Jehu Hanciles shows that migration was central not only to the spread of Christianity but also to its theological development. Migrants themselves should be included in parish and diocesan leadership, so their voices are heard, and the gifts and wisdom of their cultures can be shared more fully. A multicultural model that simply brings different cultures together under one roof is not enough — communities remain side-by-side, divided by ethnicity and race, without weaving their cultures into a shared Christian life. Interculturality resists the isolation that multiculturalism can foster, and instead calls for dialogue between nationals and migrants, and among migrants themselves. An intercultural church is guided by ministers who think, feel, and act across cultures, and it flourishes when migrants and their children are welcomed into leadership, bringing the wisdom of lives lived in many cultural worlds. Q. Korean society today faces secularisation, inequality, low birth rates, and growing social fragmentation. What questions should Catholic media and the Church be asking, and what is their calling amid all this ? A. Most of the cultural shifts Korea is experiencing are not limited to Korea; they are unfolding worldwide, largely driven by interconnected economic, political, and environmental forces. While global capitalism has alleviated poverty, it has simultaneously widened wealth and income inequality, fuelling polarisation and social fragmentation. The Korean Church must therefore probe beneath surface issues to address root causes: What are the economic, political, and environmental forces that are propelling secularisation, inequality, low birth rates, youth anxiety, and growing social fragmentation ? How can the Church, in its theology and praxis, help build alternative economic-political-ecological structures of grace ? In this age of post-truth, Catholic media must train the faithful to recognise fact-based truth from fabricated lies, and to see reality through the eyes of those pushed to the margins. With courage and compassion, you are called to expose those who profit from disinformation — whether politicians or powerful tech corporations — so that the light of truth may bring guidance and healing to our communities. I would like to end with a quote from the Scripture scholar N.T. Wright's book Surprised by Hope: Rethinking Heaven, the Resurrection, and the Mission of the Church: « You are not restoring a great painting that's shortly going to be thrown on the fire. You are not planting roses in a garden that's about to be dug up for a building site. You are — strange though it may seem, almost as hard to believe as the resurrection itself — accomplishing something that will become in due course part of God's new world. » What we do in Christ and by the Spirit, no matter how small, will not be wasted. It will last all the way into God's new world. In fact, it will be even enhanced there ! ■ About Prof. Agnes M. Brazal Agnes M. Brazal is Professorial Lecturer at the De La Salle University, Manila, a founding member and past President of the Catholic Theological Society of the Philippines (DaKaTeo), and the first Coordinator of the Ecclesia of Women in Asia. She obtained her PhD and MA in Theology at the Katholieke Universiteit Leuven. She is author of A Theology of Southeast-Asia: Liberation-Postcolonial Ethics in the Philippines (2019) and co-author of Cyberchurch: An Ecclesiological Model for a Digital Age (2025) and Toward an Intercultural Church: Bridge of Solidarity in the Migration Context (2015). She is co-editor of ten anthologies, and author of more than 80 original articles, focusing on her various research interests: women in theology, postcolonial, migration, and cyber-theology. She has also continued to take part in various Vatican and synodal journeys. Brazal has been involved in the following synodal processes: as Asian Regional coordinator of the Vatican project on “Doing Theology from Existential Peripheries” (October 2021–2022) organised by the Dicastery for Promoting Integral Human Development and the Migrants and Refugees Section; as Chair and Moderator of the Women Diaconate Discernment and Writing Group for the “In-depth Synodal Discussion and Discernment on Key Controversial Issues” organised by the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the Philippines (2024); as member of Study Group 2 on Listening to the Cry of the Poor and the Earth, Dicastery for Promoting Integral Human Development (2024–2025); and as member of the Church of the Sheaves project by the Dicastery on Evangelization (2025–2028). reported·translated by reporter Bak Juhyeon ogoya@catimes.kr

발행일 2026-08-30 제3505호 10면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61) ‘새로운 양 찾기’, 대규모 선교운동 확산

“전 신자가 조직적, 체계적으로 전교에 나서 큰 성과를 거둔 본당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인천교구 만수1동본당(주임 김병상 필립보 신부)이 지난 4월부터 본당 사목협의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양 찾기」 운동을 펼쳐 6월 25일 오후 2시 470여 명의 입교 희망자와 인도자, 본당 신자 등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첫 모임을 가졌다. 이날 입교식 행사를 한 예비자들은 모두 42개 반으로 나눠 각 반당 1명의 봉사자가 이끄는 10명 내외의 소공동체로 조직, 영세 때까지의 제반 신앙생활을 안내하게 된다. 특히 내년 1월로 예정된 영세식까지 6개월간의 예비자 교리교육을 기존의 예비자교리 교육 방식이 지닌 단점을 보완하는 소공동체 형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본당 전 신자가 기도운동과 함께 전교 활동의 일환으로 펼친 「새로운 양 찾기」 운동은 본당 단위의 전교 활동의 한 모범적인 예로 평가되고 있다.”(가톨릭신문 1995년 7월 2일자 14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교회는 성장률의 급격한 둔화와 냉담자 증가라는 구조적 위기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천주교회는 민주화 운동과 사회 정의 구현에 적극 참여하며 급속한 교세 확장을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이후 세속화, 물질주의의 확산, 그리고 본당 구조의 대형화 및 중산층화 현상이 맞물리면서 신영세자 수의 증가율이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냉담 교우의 비중과 주일미사 불참률이 치솟았습니다. 인천교구 만수1동본당 선교운동, 적극 참여 속 신영세자·예비신자 대거 배출 대규모 선교운동 전국으로 확산… 한계도 있지만 선교 패러다임 전환 이끌어 둔화된 성장과 치솟는 냉담률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신자 증가 속도의 둔화였습니다. 1980년대 한국교회의 연평균 신자 증가율은 7% 후반대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와서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1996년과 1997년에 이르러서는 각각 약 3.2%에 머물렀습니다. 냉담자와 거주불명자는 전체 신자의 4분의 1에 달했습니다. 이같은 현상의 밑바탕에는 선교 의식과 문화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천주교 신자들은 조용하고 엄숙하며, 개인의 영성 생활을 중시하는 ‘점잖은’ 태도를 미덕으로 삼아왔습니다. 이는 개신교의 적극적 선교 방식과 대비되는 동시에, 비신자들에게 능동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소극성과 폐쇄성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선교의 위기가 대두되면서 천주교회도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복음 선포 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자각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 인천교구 만수1동본당을 시작으로 전국에 폭발적으로 확산된 ‘새로운 양 찾기’ 및 ‘잃은 양 찾기’ 운동이었습니다. 만수1동본당의 혁신적 선교 활동 1994년 하반기, 만수1동본당에서 시작된 혁신적인 선교 운동은 냉담 신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주임 김병상 신부의 사제 은경축을 맞아 물질적 선물 대신 냉담 신자를 다시 공동체로 모셔 오는 영적 예물을 봉헌하자는 제안이 계기가 됐습니다. 만수1동본당은 1994년 12월, 냉담교우들의 회두를 목표로 한 제1차 ‘잃은 양 찾기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체계적 방문과 꾸준한 관심, 편지 보내기 등을 통해 냉담자의 행적을 파악하고 이들을 영성표에 재입적시킴으로써 판공성사 참례율을 65%까지 끌어올리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를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1995년 2월, 비신자를 대상으로 한 제1차 ‘새로운 양 찾기 운동’에 돌입했습니다. 그 결과 1차 운동을 통해 481명의 신영세자를 배출했고, 2차 운동에서는 600여 명이 입교해 단 두 차례의 집중 선교만으로 1000명이 넘는 예비신자를 배출했습니다. 선교운동의 전국적 확산 만수1동본당의 성과는 가톨릭신문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보도되면서 전국으로 확산돼, 20여 개 이상의 본당이 각자의 사목적 여건에 맞추어 이 운동을 도입했습니다. 군포본당의 경우 단 한 차례의 운동으로 1195명의 예비자를 입교시키는 성과를 냈고, 청주교구와 인천교구 등은 교구 차원의 장기 복음화 계획과 연계해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는 대구대교구 이판석(요셉) 신부 등이 주도한 ‘가두선교’ 및 ‘방문선교’ 모델과 결합하면서 더 큰 효과를 냈습니다. 가두선교단이 제작한 안내 책자 「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는 8년간 전국 900여 개 본당과 150여 개 단체에 보급돼 330만 부 이상 발행되는 기록을 세웠고, 330개 본당에서 5만 5000명 이상이 가두선교 연수를 수료하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대규모 선교운동의 성과 ‘새로운 양 찾기’ 운동이 가져온 가장 일차적이고 눈에 띄는 성과는 신영세자 수의 비약적 증가였습니다. 대부분 본당에서 적게는 2~3배, 많게는 5배 이상의 신영세자를 배출했습니다. 이러한 양적 성장은 침체 일로를 걷던 교세 성장률에 일시적 반등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1998년과 1999년의 전체 입교자 수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양적 성과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신자들의 의식 변화였습니다. 외적 신앙 표현을 쑥스러워하던 신자들이 이 운동을 체험하면서 능동적 선교 주체로 거듭났습니다. 선교 활동에 앞서 전개된 기도 운동과 성경 공부는 느슨했던 영성을 재무장시켰고, 이웃에게 교회를 알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영적 쇄신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비판적 평가와 한계 1990년대 말 폭발적인 열기 속에서 추진되었던 대규모 선교운동은 수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열기가 잦아들었고, 이벤트성 선교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제기됐습니다. 가톨릭신문은 1998년 ‘전교의 달’ 기획 특집에서 다음과 같이 그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상당한 인력과 재정이 투여돼야 하는 한시적 운동으로서 선교 의식의 진작을 위한 초기 단계의 선교 전략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으로 삶의 전체를 통해 수행해야 하는 의무인데 이같은 한시적 운동이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두 번째는 대규모 인원이 한꺼번에 영세를 할 경우, 예비자 교리교육이나 영세 후 신앙생활이 충실하게 이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다. 세 번째는 대개 본당들이 생활 수준, 신자 계층 분포 등 모든 면에서 서로 많은 편차를 보이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새로운 양 찾기를 사목 환경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사례 연구가 필요하다.”(가톨릭신문 1998년 10월 18일자 16면) 이처럼 비록 한계와 부작용이 지적되기는 했지만, 한국교회 초유의 이 대규모 선교운동은 ‘찾아 나서는 교회’로의 선교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낸 의미 있는 사목적 시도였으며, 신자들에게 선교 열정을 불어넣은 큰 계기가 됐습니다.

발행일 2026-08-30 제3505호 8면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60) 한국 현대순교자 215명 선정

“한국전쟁 등 격변기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신앙과 양심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한국의 ‘현대 순교자’들의 명단이 작성됐다.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12월 1일 회의를 갖고 사무처가 교구와 수도회, 대한성공회 등의 자료를 모아 마련한 한국 ‘현대 순교자’ 215명의 명단을 영문으로 작성, 로마로 보내기로 했다. 교황청 2000년 대희년위원회 새 순교자 위원회의 요청에 따른 이 명단은 로마에서 전 세계 교회의 명단을 모두 모아 대희년에 맞춰 ‘현대 순교록’으로 작성된다. 이번에 작성된 목록은 성공회 6명 외에 209명이 가톨릭이며 개신교는 포함돼 있지 않다.”(가톨릭신문 1998년 12월 13일자 1면) 제삼천년기와 새로운 순교의 시대 한국교회의 역사는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성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순교의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20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한번 박해와 순교의 시대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하고 참혹한 종교 박해가 자행된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공산주의와 파시즘 등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 그리고 민주화 과정에서의 독재 정권과의 충돌 등은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피로써 신앙을 증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며 발표한 교서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를 통해 “제2천년기 말에 와서 교회는 다시 한번 순교자들의 교회가 되었다”고 천명하며, 전 세계 지역교회가 20세기에 피 흘린 신앙의 증인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명부를 작성하여 영원히 기억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을 통해 103위 순교 성인이 시성됐고,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으로 124위 순교 복자가 시복되는 등 초기 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현양 작업이 괄목할 만한 결실을 봤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근현대 신앙의 증인’들에 대한 조사가 상대적으로 미진하다는 교회사적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는 교황청의 요청에 부응해 1997년부터 20세기 순교록 작성을 위한 공식 조사에 착수했고, 이듬해인 1998년 12월 1일 상임위원회에서 첫 번째 결과물인 한국의 ‘현대 순교자’ 215명의 명단을 확정하고, 12월 4일 이를 교황청에 제출했습니다. 이후 조사가 계속되면서 1999년 8월 25일과 12월 10일 두 차례에 걸쳐 6·25 전쟁 당시 희생자 24명이 추가로 제출됐고, 이에 따라 한국교회가 대희년위원회 새 순교자 위원회에 제출한 ‘현대 순교자’는 모두 239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현대 순교자 시복 추진 이 명단은 주로 6·25전쟁과 제주교난 당시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을 중심으로 하되, 성공회 신자 6명이 포함돼 있었고 개신교 신자들은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1998년 당시 이 명단은 완결된 것은 아니었으며 미처 확인하지 못한 순교자들이 추가되거나, 명단에 포함돼 있던 이들 중 자격 조건에 못 미치는 경우 제외될 수도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명단에 포함된 215명 중 한국인이 162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외국인은 53명이었습니다. 독일 출신이 가장 많아 29명이었고, 프랑스 13명, 아일랜드 6명, 미국 3명, 벨기에 2명 등이었습니다. 평신도가 절반이 넘는 121명이었고, 사제 57명, 남녀 수도자 26명, 주교 3명, 신학생 2명이었습니다. 천주교 소속 209명을 살펴보면 수도회 소속 순교자의 희생이 두드러집니다. 성 베네딕도회가 33명으로 가장 많으며, 파리외방전교회가 12명,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가 8명을 기록했습니다. 수녀들의 경우에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4명,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3명,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와 가르멜 수녀회가 각각 2명, 메리놀 외방 전교회 1명입니다. 특별히 외국인 선교사 53명 중 독일인이 29명으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이유는 덕원과 원산, 함흥 등 북한 지역에 진출하여 활동하던 독일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공산 정권의 집중 표적이 되어 수용소로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이 명단은 크게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첫째는 1901년 제주도에서 발생한 신축교안(제주교난) 당시 희생된 51명의 천주교 신자입니다. 제주교난은 무속 신앙과 지역 토착 세력, 봉세관의 조세 수탈에 반발하는 민중의 불만이 일부 천주교 신자들의 폐단과 얽혀 발생한 대규모 민란으로, 관덕정 등지에서 약 600여 명의 신자가 학살당하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둘째는 6·25전쟁 전후 북한 공산 정권과 남침한 인민군 그리고 좌익 세력에 의해 처형되거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사망한 희생자들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정치적 피해자가 아니라 유물론적 무신론을 표방하는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미 반동 세력’이나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매도되어 죽임을 당한 전형적인 현대 순교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순교자 시복 시성 본격 추진 1998년 현대 순교자 명단 작성은 한국교회 차원의 시복시성 추진과는 구별됩니다. 이는 보편교회가 대희년을 맞아 ‘신앙의 증인’을 기억하고자 하는 기념사업이었고, 한국교회는 이를 계기로 현대 순교자에 대한 교회법적 시복시성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주교회의는 2007년과 2009년 정기총회를 거쳐 근현대 신앙의 증인들에 대한 시복 조사를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관할하여 통합 추진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와 함께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한국 진출 100주년을 두 해 앞둔 2007년, 덕원과 함흥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희생된 소속 수도자들의 시복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1998년의 현대 순교자 명단은 주교회의 통합 추진 과정에서 순교를 입증하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2012년 최종적으로 81명으로 크게 압축됐고, 이듬해 3월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라는 안건명이 승인됐으며, 2015년 8월 사진과 명단이 공개됐습니다. 특히 제주 신축교안 희생자 51명 중에서는 단 1명이 남고 모두 제외됐는데, 이는 신축교안이 복합적 요인이 얽힌 민란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희생자들의 사망 동기를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순교로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주교회의가 통합 추진하는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안건과 성 베네딕도회가 추진하는 ‘신상원 보니파시오 아빠스와 동료 37위’ 안건이 각각 정식 시복 추진되기 시작했고, 현재 한국교회 차원의 심사를 마치고, 교황청의 심사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발행일 2026-08-23 제3504호 12면

[100년의 페이지, 그 안에 담은 이야기] (11) 가톨릭신문 속 세계청년대회(WYD)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가톨릭신문은 WYD의 탄생과 초기 대회부터 2027 서울 WYD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독자들에게 전해왔다. WYD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5년 제정한 ‘세계 젊은이의 날(World Youth Day)’에서 비롯됐다. 이와 관련해 1984년 9월 9일자는 교황이 1985년을 계기로 젊은이의 역할을 강조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1983년부터 1984년까지 이어진 구원의 특별 희년 동안 젊은이들이 보였던 큰 반향과 국제연합(UN)이 1985년을 ‘국제 젊은이의 해’로 선포한 점을 근거로 꼽았다. 실제로 1985년 4월 21일자는 로마에서 개최된 국제 청소년대회 행사 중 교황이 젊은이들에게 평화의 건설자가 돼 줄 것을 요청했음을 보도했다. 제1차 WYD에 관한 보도도 있었다. 1986년 3월 16일자는 같은 해 3월 23일 열릴 제1차 대회를 앞두고 교황이 각국 주교회의에 WYD 행사를 열 것을 당부한 소식을 조명했다. 기사는 교황청 평신도협의회(현 평신도가정생명부)의 공문을 인용해 “제1차 WYD 주제는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라며 “이는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품고 있는 ‘으뜸가는 첫째 소원’”이라고 전했다. 초기 WYD는 참가자들의 수기로 전달했다. 1991년 폴란드 체스토코바 WYD는 9월 1일자에 오스트리아 빈대학 남현주(모니카) 씨와 최승석(마태오) 씨의 참가기로 “교회는 인류를 위한 기둥이고, 무력보다 기도·희생이 주님 뜻임을 체험했다”고 밝혔다. 1993년 미국 덴버 WYD는 9월 26일자·10월 3일자에서 한은실(프란치스카) 씨의 글로 ‘한 믿음’을 체험한 대회였다고 소개했다. 아시아 최초 WYD였던 1995년 필리핀 마닐라 대회부터는 본지 기자가 현장에 파견돼 소식을 전했다. 1995년 1월 15일·22일·29일자에 걸쳐 마닐라 WYD의 현장 모습, 이모저모, 인터뷰, 사설, 취재기 등을 담았다. 사설은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대회에 직접 참가한 것은 한국교회의 앞날에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대역사”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신앙체험으로 성숙을 도모하면서 언젠가 한국교회가 주관할 WYD 준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평했다. 한국교회의 염원이 이뤄진 현장도 기록했다. 2023년 8월 6일 포르투갈 테주 공원에서 봉헌된 포르투갈 리스본 WYD 파견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한민국 서울을 차기 대회 개최지로 발표했음을 알렸다. 2023년 8월 13일자는 “교황이 ‘꼬레아, 서울’을 호명하자 한국 순례단 전원이 태극기를 흔들며 기쁨의 함성을 쏟아냈다”며 “교황 앞 제대 위에는 대형 태극기를 펼쳐 든 한국 참가단 10여 명이 등장해 환호했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6-08-23 제3504호 2면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59) 양업시스템 개통

“서울대교구가 교회 역사상 최초로 교구 전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한 종합정보시스템 ‘양업시스템’을 개통, 교회 정보화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서울대교구는 … 9월 20일 오전 11시30분 ‘천주교 서울대교구 종합정보시스템’ 개통식을 가졌다. 양업시스템은 서울대교구 교구청과 산하 각 본당, 기관을 네트워크로 연결한 종합정보시스템으로 1년여의 개발 기간을 거쳐 이날 정식 개통했다. 이번 종합정보시스템 개통은 정보 사회에 대한 교회의 적극적 대응으로 그동안 다소 뒤처진 감이 있던 한국교회 전체의 전산화, 정보화 사업 추진이 가속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네트워크의 구축에서부터 그룹웨어, 교구 및 본당 행정 프로그램, 인터넷 홈페이지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개발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 타교구 및 전체 한국교회 정보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가톨릭신문 1998년 9월 27일자 1면)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정보사회로 진입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특히 1994년 정보화 정책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고 1996년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가 이뤄진 것이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이에 앞서 PC통신이 1980년대 후반부터 대중화되었는데, 1997년 이후 초고속 인터넷 보급으로 빠르게 인터넷 중심으로 전환되었습니다. 1990년대 말, 이미 정보사회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한국 사회 안에서 교회는 정보화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양업시스템’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양업’ 시스템의 명칭은 두 번째 사제이자, 전국을 누비며 복음을 전했던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종합전산화 구상인 ‘모세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한국교회의 정보화는 1998년 전 세계 가톨릭 최초의 단일 교구 행정망인 ‘양업시스템’ 개통, 2008년 전국 단위의 ‘통합 양업시스템’ 구축을 거쳐, 2026년 현재 인공지능(AI) 기반의 ‘성 가롤로 아쿠티스 프로젝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정보화 시대에 맞춰 행정·사목·선교 네트워크 구축 1998년 서울대교구 개통 이어 통합 시스템에 전국 교구 참여 한국교회 유기적 연결 체계로 독창적 ‘디지털 복음화‘ 이끌어 사목 행정 전산화의 모태, 모세 프로젝트 한국 천주교 사목 행정 전산화의 체계적인 출발점은 1995년 4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발표한 종합전산화 사업 ‘모세 프로젝트’입니다. 당시 정보화 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주교회의 사무처 특별기구인 ‘가톨릭 사목행정 발전위원회’와 ‘한국가톨릭전산원’ 등이 공동으로 이 청사진을 수립했습니다. 모세 프로젝트는 단순한 사무 전산화를 넘어 교회의 복음화 사명을 IT 기술을 통해 확장하려는 3단계 중장기 발전 전략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단계는 전국을 하나로 잇는 종합행정망 및 표준 행정서비스의 완성, 2단계는 전국 신자 및 사목 정보 DB 구축과 사목·선교 정보 서비스 운용, 그리고 3단계는 멀티미디어 서비스 제공 및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인적, 물적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사실상 무산됐고, 교회 정보화는 멀어진 듯했습니다. 전산화, 정보화의 초기 투자비가 엄청났지만 눈에 띄는 사목적 성과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 프로젝트는 한국교회 최초로 행정 관리, 사목 활동, 선교 사업의 표준화를 도모하고 체계적인 교회 정보화를 시도한 첫 사례였고, 이후 ‘양업시스템’을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양업시스템의 출범 수년 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던 교회 정보화가 획기적인 진전을 이룬 것은 1998년 서울대교구의 양업시스템 개발이었습니다. 1997년 당시 서울대교구 사무처장이었던 염수정(안드레아) 신부를 중심으로 ‘사목행정 발전위원회’가 조직되었고, 옛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의 기술 및 자금 후원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실로 1998년 9월 20일, 서울대교구는 교구청과 전체 본당 및 산하 기관을 단일 네트워크로 연결한 종합정보시스템인 ‘양업시스템’을 세계 가톨릭 최초로 정식 개통했습니다. 양업시스템의 도입은 교회 행정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종이 교적 및 필기식 장부에 의존하던 신자 관리가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로 전환되었고, 교무금 자동이체, 전자문서 유통 등 각종 행정 처리가 온라인으로 가능해졌습니다. 나아가 서울대교구는 선교의 지평을 넓히고자 가톨릭 포털 ‘인터넷 굿뉴스’를 함께 개통하여, 인터넷을 통한 미사 중계와 신앙 정보 제공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로써 서울대교구는 한국교회 정보화 사업에 획기적인 선례를 남겼으며, 그 기술력과 경험은 다른 교구의 정보화 추진에도 절대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이후 각 교구에 양업시스템이 속속 도입되었고, 이는 전국 모든 교구의 행정 전산화 발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사목 행정 표준화 완성과 통합 양업시스템 구축 1998년 이후 교구별로 독립적인 전산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데이터의 중복이나 처리 기준의 상이함 등의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 ‘사목행정표준화위원회’를 구성, 사목 행정 문서와 회계 원칙 등의 통일 작업이 추진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양업시스템이 개발되었으며, 마침내 2008년 9월 전국 대다수 교구가 참여하는 ‘통합 양업시스템’이 정식으로 가동되었습니다. 가톨릭신문은 2008년 10월 5일자 통합 양업시스템 개통 해설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전했습니다. “개통식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한국교회 종합정보화 시스템 ‘통합 양업시스템’은 전산 체계상의 통합 뿐 아니라 사목 행정 체제의 일관성을 성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각 교구가 독자적으로 그물을 쳐 물고기를 낚아 왔다면 이제는 13척으로 이뤄진 대선단이 서로 협력해 그물을 치는 형국인 셈이다.”(가톨릭신문 2008년 10월 5일자 19면) 정보화는 사목을 지향한다 한국교회는 세계 가톨릭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이고 선도적인 사목 행정 전산화 모델을 구축해 왔습니다.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시작된 교회 정보화 사업은 단순한 본당 업무 자동화를 넘어, 전국 교구를 하나의 유기적인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거대한 디지털 복음화 네트워크로 발전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올해 5월 인공지능(AI) 시대에 맞춰 교구 정보 시스템 전반을 사목 중심으로 재정비하는 ‘성 가롤로 아쿠티스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이는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정보화를 통해 보유한 본당양업, 교구양업, 그룹웨어, 굿뉴스, 하상앱 등 다양한 정보 자산의 활용을 사목에 집중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6개월간의 컨설팅 후 3~5년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할 계획입니다.

발행일 2026-08-16 제3503호 8면

[100년의 페이지, 그 안에 담은 이야기] (10) 10호, 1000호, 3000호…지면에 남은 이야기

가톨릭신문이 7월 19일 3500호를 발행했다. 지난 99년간 가톨릭신문은 100호, 500호, 1000호 등 기념비적인 호수(號數)마다 ▲소식보도 ▲보조일치 ▲조국성화의 창간 사시(社是)와 이념을 성찰하며, 미디어 사도직의 사명을 되새겨 왔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주간지인 가톨릭신문은 이미 제5000호를 넘어섰어야 한다. 그러나 제73호(1933년 4월 1일자)를 끝으로 휴간한 뒤 16년 만에 제74호(1949년 4월 1일자)로 복간하면서 발행이 오랫동안 중단됐다. 창간 초기에는 월간과 월 2회 발행을 거쳤으며, 제210호(1960년 1월 3일자)에 이르러서야 주간지로 전환된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의 휴간과 한국전쟁 등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맞이한 제100호(1951년 12월 1일자)는 ‘본보가 100호에 이르기까지’ 제목의 기사로 그 의미를 전했다. 기사는 “전국 5개 교구장 회의의 결의에 따라 교회 출판물을 서울에서만 발행하기로 한 결정에 눈물을 머금고 휴간하던 당시의 심정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며 “창간 때부터 함께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이 하늘에서 제100호를 함께 기뻐하고, 앞으로 제1000호, 제1만 호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전구해 주시길 청한다”고 밝혔다. 제500호(1965년 12월 25일자)는 신문사의 연혁을 정리하고, 창간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6년 만에 발행 부수가 2600여 부를 기록했음을 알렸다. 기사는 “체제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 ‘천주교회보’가 우수했다”며 “저 멀리 하와이에 있는 교포들에게까지 읽힌다”고 실었다. 제1000호(1976년 3월 7일자)는 특집 좌담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한국교회의 쇄신 움직임과 가톨릭신문의 수난사를 함께 담았다. 공의회 이후 10년을 돌아본 기사는 “교회의 토착화는 복음화의 관건이고, 대화를 바탕으로 조화롭게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쇄신을 개혁으로 혼동하지 말고, 사랑으로 일치된 초기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고(故) 윤광선(비오) 전 편집국장의 기고로 회고한 기사는 제1000호에 다다르기까지 있었던 어려움을 사명감 하나만으로 극복했음을 조명했다. 창간 69주년에 이어 맞이한 제2000호(1996년 4월 28일자)는 창간 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을 요청했다. 기사는 “제2000호는 한국 가톨릭 언론의 맥을 오랜 기간 이어온 언론사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며 “한국교회의 눈과 귀, 입과 손의 역할을 새롭게 다짐하는 것이야말로 교회 정론을 선도하고 펼쳐가는 가톨릭신문의 절체절명의 사명”이라고 다짐했다. 기념비적인 제3000호(2016년 6월 26일자)도 그간 발행한 지면으로 한국교회의 근현대사를 바라보며, “이 땅에 그리스도의 정의와 평화를 알리는 미디어 사도직을 수행해 왔다”고 짚었다.

발행일 2026-08-02 제3502호 2면

[세계교회 지성에게 묻다] 메리 힐리 박사 “성경은 살아 있는 말씀…하느님 음성 듣는 기쁨 누리길”

성경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전하는 살아 있는 말씀’으로 읽고 연구해 온 성서학자 메리 힐리 박사. 미국 세이크리드하트대신학교 성경학 교수이자 교회 학위 과정 신학대학원장인 그는 「가톨릭 성경 주석(the Catholic Commentary on Sacred Scripture)」 시리즈 책임 편집자이자 「마르코 복음서」, 「히브리서」, 「창세기」 주석 저자로,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경신성사부 위원, 국제 가톨릭 성령쇄신봉사회 신앙교리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성경과 전례, 성령의 은사를 통해 교회가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는지를 전해 왔다. 사적 서원(私的誓願, votum privatum)으로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고 평신도로 살아가는 그는, 최근 3년 동안 위탁 양육해 온 카일을 입양하며 말씀과 사랑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응답이 되는지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가톨릭신문 창간 100주년 기획 ‘세계교회 지성에게 묻다’를 통해 힐리 박사는 성경과 치유, 여성과 평신도의 역할, 그리스도인의 화합과 일치,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와 가톨릭 미디어의 사명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Q. 성서학 연구 성과를 신자들의 성경 읽기와 신앙생활에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많은 가톨릭 신자는 성경을 읽으면서, 그 말씀이 하느님께서 지금 자신에게 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성경은 오늘날과는 먼 시대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쓰였기 때문에, 본문을 본래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그것이 오늘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필요합니다. 현대 성서학의 뛰어난 성과를 바탕으로 하되 일반 독자도 이해하기 쉽게 제시하는 것, 그래서 신자들이 성경을 사랑하고 말씀을 일상에 적용하며 그 안에 담긴 생명을 주는 힘을 체험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저와 동료들이 「가톨릭 성경 주석」 시리즈를 펴낸 목적이었어요. 본당과 교구 차원에서도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나누는 문화를 길러야 합니다.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기쁨에 눈뜨는 일이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읽기 쉬운 성경 번역본과 주석, 영상 강좌,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읽는 방법을 안내하는 자료 등이 필요할 거예요. 이상적으로는 모든 본당에 소공동체 성경 공부 모임이 마련돼, 신자들이 끊임없이 말씀을 만나며 영적 자양분과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카푸친 작은형제회 신학자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추기경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우리가 신자로서 사목과 선교에서 진정 열매를 맺고자 한다면, 계획을 세운 뒤 그것을 장식할 만한 성경 구절을 찾는 게 아니라, 성경에서 시작해 그 안에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요. Q. 저서 「치유: 하느님 자비의 선물을 세상에 전하다(Healing: Bringing the Gift of God’s Mercy to the World, 국내 미출판)」에서 치유를 단순한 기적 체험이 아니라 하느님 자비와 복음 선포의 문제로 제시하셨는데요. 치유는 예수님께서 지상에 머무시며 행하시던 복음 선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모든 시대에 걸친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놀라울 만큼 많은 치유와 기적을 행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루르드 같은 성지에서, 때로는 성인들의 전구와 유해를 통해, 또 가장 일상적으로는 평범한 신자들의 믿음과 기도를 통해서 말이죠. 치유는 가시적으로 구현된 복음이에요.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살아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죄와 그 모든 결과를 이기셨고, 우리에게 생명의 충만함을 주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 주니까요. 복음 속 예수님은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치유를 청하라고 가르치시죠. 즉각적 치유가 언제나 주어지는 건 아니지만, 저는 주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우리를 치유하기를 갈망하신다고 확신합니다. 치유를 위한 모든 기도는 고통받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연민을 체험할 기회입니다. Q. 2014년 교황청 성서위원회 첫 여성 위원에 이어, 2025년 1월에는 경신성사부 위원으로 임명됐습니다. 성경 연구와 전례라는 중요한 영역에서, 여성이자 평신도로서 교회에 어떤 고유한 관점과 역할을 더할 수 있을까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성과 남성은 각각 고유한 은사와 특유의 천재성을 품고 있어요. 여성들은 사물을 더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고, 인간 개개인의 독보적인 가치에 주목하며, 언제나 사랑이 가장 우선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둡니다. 제가 「창세기」 주석을 쓸 때도 남성 학자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간 이야기 속 요소들, 이를테면 등장인물의 영적 성장이나 소외된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자애로운 모습에 주의가 끌리곤 했어요. 교회가 여성들에게 신학과 성서학에서 더 높은 학위를 받을 기회를 많이 제공해, 신자들을 가르치고 양성하는 역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현재 경신성사부의 주요 과제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교서 「나는 간절히 바랐다」에서 요청하신 대로, 모든 신자가 전례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고 그 거행에 더욱 온전히 참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나아가 신자들이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힘으로 삶이 변화되는 것을 체험하도록 필요한 지침과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죠. 제 역할도 이러한 노력에 힘을 보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in persona Christi)’ 전례를 거행하는 직무 사제가 아니라,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평신도의 입장과 시각에서 전례를 바라봅니다. 저를 비롯한 경신성사부의 평신도 위원들은 전례에 관한 논의가 신자들의 실제 삶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도울 수 있어요. 신자들이 본당 주일미사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전례에서 받은 은총을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 가는지에 주목하는 것이죠. 경신성사부가 이처럼 상호 보완적인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진전입니다. Q. 일부 신학교에서는 여성이 강의나 연구를 맡고 있지만, 사제 양성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성의 은사는 사제 양성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여성들이 양성 과정에 참여하면, 직관과 세심한 시선으로 신학생의 인간적·영적 성숙에 깊이 있는 통찰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남성 양성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정서적·관계적 어려움의 징후를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도 있죠. 사제는 정통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거행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존중과 사랑, 연민을 품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람이기에, 이러한 문제들을 양성 과정에서 짚고 넘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직자를, 비판을 초월한 존재, 인간적인 약점조차 없는 존재로 여기는 사고방식도 내려놓아야 해요.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정체성에 뿌리를 내리고, 여성과 남성 모두와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정체성이 없다면 삶의 온갖 압박 속에서 중독이나 미디어 과의존에 빠지거나, 타인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등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어려움에 대응할 위험이 있어요. 이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학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죠. Q.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 주관 ‘국제 오순절-가톨릭 대화’에 2013년부터 12년간 가톨릭 대표 위원으로 참여해 오셨습니다. 서로 다른 전통이 지닌 은사를 식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복음화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다른 교파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성령과 그 은사에 열린 오순절 교인들의 태도, 성경을 깊이 사랑하는 침례교인들의 자세,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증언하려는 복음주의 교인들의 열정이 그 예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쓰셨듯, 에큐메니즘은 ‘단지 다른 이들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얻는 것만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 안에 심어 놓으신 것을 거두어들이는 일이며, 이는 우리를 위한 선물이기도’(246항) 하니까요. 2033년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2000주년을 기념합니다. 그리스도인끼리도 화합하지 못한다면, 비신자들에게 우리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절이라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어요.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려면, 우선 서로 더 가까워지고 협력할 길을 찾는 일이 필요합니다. Q. 2027 서울 WYD를 준비하는 한국교회와 청년들, 그리고 창간 100주년을 앞둔 가톨릭신문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서울 WYD는 한국교회에 특별한 은총의 순간이 될 거예요. 한국 청년들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세계교회라는 신앙 공동체에 속한 기쁨을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이가 예수님을 세상 그 어느 보배보다도 “값진 진주”(마태 13,46)로 깨닫고,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는 여정에 기쁘게 나서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도 서울 WYD를 교회 안팎의 모든 이에게 복음을 새롭게 선포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해요. 청년들은 에너지와 창의성, 열정만으로도 훌륭한 복음 선포자가 될 수 있죠. 청년들이 직접 대회를 준비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더 많은 이가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가톨릭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선하고 참되며 아름다운 것으로 향하게 하고, 신앙의 빛으로 시대의 징표를 해석하도록 돕는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한국교회의 순교자들이 세계 모든 신자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가톨릭신문의 모든 구성원과 한국교회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빛을 따라갈 용기를 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성령 안에서 살아 있게 하시어, 한국과 그 너머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도록 보살피시기를. ■ 메리 힐리 박사는 1964년 뉴욕에서 태어나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한 메리 힐리 박사는 가톨릭계 노터데임대학을 졸업한 뒤 스튜번빌 프란치스코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성경에 대한 깊은 애정을 키웠다. 졸업 후 가톨릭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뒤, 워싱턴 D.C.대교구 승인을 받은 가톨릭 에큐메니컬 평신도 은사 공동체 ‘하느님의 어머니 공동체(Mother of God Community)’에 합류했다. 이후 철학과 신학을 더 깊이 공부한 뒤 2000년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느님의 어머니 공동체에서 8년 동안 코디네이터(coordinator) 역할을 마친 후 힐리 박사는 미시간주 세이크리드하트대신학교(Sacred Heart Major Seminary)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현재 성경학 교수이자 교회 학위 과정 신학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국제 가톨릭 성령쇄신봉사회 신앙교리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경신성사부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발행일 2026-07-26 제3501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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