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 이모저모

제29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삶을 10년 넘게 소설로 증언해 온 김숨(모닌느) 소설가와 한국 현대 시단을 대표하는 황동규 시인의 수상으로 깊은 감동을 안겼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소설과 깊어질 대로 깊어진 시의 세계가 나란히 조명된 이날 시상식은, 인간의 고통을 넘어 평화와 희망을 추구하는, 교회와 문학의 가치가 어우러진 현장이었다. ◎… 시상식에는 격식보다 진심 어린 말들이 넘쳤다. 가톨릭신문사 사장 최성준(이냐시오) 신부는 직접 수상작을 읽어낸 소회를 인사말에 담았다. “「간단후쿠」는 무겁게 와닿아 읽기를 주저하다가 힘들게 읽어냈다”며 김숨 소설가를 ‘기억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의 작가라고 했다. 황동규 시인에 대해서는 신학생 시절 그의 시에서 받은 감동을 떠올리고, “원숙한 언어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고 말했다. 한국가톨릭문학상 제정 때부터 함께해온 신달자(엘리사벳) 시인은 “29회라는 평범한 숫자가 가슴 뭉클하다”며 소회를 밝혔다. 경과 보고 말미에는 「가문비나무의 노래」 저자 독일의 바이올린 장인 마틴 슐레스케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두 수상자에게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울림이 있는 작품을 계속 써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으로 새로 위촉된 문학평론가 우찬제(프란치스코) 교수는 “구상 선생님, 구중서 선생님, 신달자 선생님께서 과업을 시작하신 그 자리에 심부름하게 돼 영광”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문학은 어둠을 빛으로 인도하는 소명에 동참하고자 하는 예술”이라며 “한국가톨릭문학상이 의미 있는 등대가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심부름하겠다”고 덧붙였다. ◎... 1회부터 후원을 이어온 우리은행에서는 정진완(스타니슬라오) 은행장 대신 참석한 조세형 부행장이 축하의 말을 전했다. 조 부행장은 “한국가톨릭문학상이 문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신앙과 삶을 성찰하게 하고,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전해주는 소중한 상”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이어 “2027년 열릴 세계청년대회가 한국 천주교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의 연대와 평화, 나눔의 가치를 되새기는 뜻깊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 수상 소감에서 김숨 소설가는 “한국가톨릭문학상이 아이처럼 순수하게 기쁘게 받는 첫 상이 되어주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동안 문학상을 몇 차례 받았는데 그때마다 불안, 두려움, 공허함 같은 것이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은 넘쳤지만 기쁨은 너무 왜소했다”는 그는 지난 10년 동안 만나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떠올렸다. 이어 “그분들이 제게 주신 것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시간이었고,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라면서 “할머니들에게 생명의 빚을 졌고, 그 빚을 ‘쓰는 시간’으로 갚겠다”고 전했다. ◎...김숨 소설가와 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신자들과의 따뜻한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2025년 9월부터 매월 본당 글쓰기 모임을 동반해 온 그는 회원들이 선물한 옷을 입고 단상에 올랐다. “평소 옷 선물을 부담스러워하는 편인데, 이번 상은 불안과 공허함을 내려놓고 기쁘게 받을 수 있어 옷도 감사하게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시상식에 참석한 글쓰기 모임의 백진숙(데레사) 씨는 “성모 성월에 장미꽃 같은 옷을 선물하자고 회원들이 마음을 모았다”고 들려줬다. “처음에는 고사하시다가, 평생 귀하고 소중한 때 글쓰기 모임을 기억하며 입겠다고, 또 찢어지면 꿰매 입겠다고 하셔서 모두 행복했다”는 백 씨는 “작가님에게 이번 수상이 한없이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척추협착증으로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고 미완의 작업을 마무리하려 했는데, 수상 소식에 기운을 얻어 새 시 두 편을 완성했다”고 말문을 연 황동규 시인은 화가 조광호(시몬) 신부, 오정희(실비아) 소설가, 신달자·이태수(아킬로) 시인 등을 거론하며 가톨릭과의 오랜 인연을 소개했다. “가톨릭이 품고 있는 ‘두루 비춤’의 정신이 조선 후기 북학·실학파에서 정약용·정약종 형제로 이어지며 한국 가톨릭의 특성이 됐다”고 역설한 그는 “정지용(프란치스코) 시인과 구상(요한 세례자) 시인이 걸어온 그 길을 잇게 되어 큰 영광”이라고 했다. ◎...시상식은 한국 문학계와 교계의 축하가 함께한 가운데 풍성하게 이어졌다. 시상식장 입구에는 대한민국예술원 손진책 회장과 나태주 시인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원로들의 축하 화환이 줄지어 놓였다. 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이철수(스테파노) 사무총장 신부, cpbc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사장 성기헌(바오로) 신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김진택(토마스 아퀴나스) 회장 등 교회 내 인사들도 참석했다. 역대 수상자들도 함께했다. 제3회 수상자 이태수 시인, 제20회 수상자 이인평(아우구스티노) 시인, 제23회 전기문학 부문 수상자 이숭원 문학평론가, 제27회 수상자 김재홍(요한 사도) 시인 등이 함께해 29회 동안 한국가톨릭문학상이 쌓아온 문학적 신뢰와 무게를 새삼 확인시켰다.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10면

[성령 강림 대축일 특집] 지금 나에게 필요한 성령의 은사는?

해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이면 대부분의 신자는 본당에서 ‘성령칠은 뽑기’를 한다. 올해는 은사를 ‘뽑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내 신앙생활에 어떤 은사가 더 필요한지 살펴보고 묵상해 보면 어떨까? 성령칠은은 이사야서(11, 2-3)에서 유래한 것으로 성령께서 신자들의 신앙을 성숙시키고 덕을 닦도록 이끄는 일곱 가지 은사다. 교회는 성령칠은을 신자들이 성령의 이끄심에 더 잘 응답하도록 돕는 은총으로 가르쳐왔다. 가톨릭신문은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아 ‘지금 나에게 필요한 성령의 은사’를 찾아보는 테스트를 제작했다. 테스트 문항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령칠은을 구분하며 통찰한 「신학대전」(제I-II부 68문)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물론 이 테스트나 성령칠은 뽑기가 “나는 하나의 은사만 받는다”거나 “어떤 은사가 더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다. 성령칠은은 신앙인의 삶 안에서 함께 작용한다. 다만 지금 내 마음과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오늘 더 간절히 청해야 할 은사가 무엇인지 묵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령의 선물들은 서로를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참사랑 안에서 서로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 슬기 - 하느님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게 하는 은사 슬기는 하느님과 하느님께 속한 것을 올바로 맛보고 판단하게 하는 은사다. 많이 아는 능력이라기보다, 일상의 일들을 인간적 기준이 아니라 하느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눈앞의 이익이나 감정에만 머물지 않고, 무엇이 참으로 선한지 알아보게 한다. 슬기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일상의 선택과 이웃 사랑으로 이어지게 한다. ■ 통달 - 말씀과 진리의 숨은 뜻을 꿰뚫어 보게 하는 은사 통달은 성경 말씀과 신앙의 진리를 마음 깊이 알아듣게 하는 은사다. 성경 말씀과 교리, 전례가 낯설게 느껴질 때, 그 안에 담긴 뜻을 깨닫도록 지성을 비춰 준다. 전례의 표징과 상징 안에 감추어진 영적 의미를 보게 하고, 기도와 묵상 안에서 진리를 더 깊이 받아들이게 한다. 통달은 믿음이 지식에 머물지 않고 삶과 이어지도록 돕는다. ■ 의견 - 선택 앞에서 길을 찾게 하는 은사 의견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분별하게 하는 은사다. 인간적인 계산만으로는 답을 찾기 어려울 때, 성령의 인도 안에서 올바른 길을 알아보게 한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일이나 복잡한 선택 앞에서 양심을 비추어 준다. 의견은 자기 판단에만 기대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행동하도록 돕는다. ■ 지식 -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보게 하는 은사 지식은 세상과 삶의 현실을 하느님의 빛 안에서 바르게 보게 하는 은사다. 피조물을 하느님과 무관한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창조주께 나아가게 하는 선물로 바라보게 한다. 또한 무엇이 영혼에 도움이 되고 해가 되는지 식별하게 하며, 피조물에 매이지 않고 거룩하게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한다. 지식은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게 한다. ■ 굳셈 - 어려움 속에서도 선을 실천하게 하는 은사 굳셈은 신앙생활에서 마주치는 어려움과 두려움을 이기고 선을 실천하게 하는 은사다.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상황이 버겁고 마음이 약해질 때, 주님의 말씀을 다시 실천하게 하는 힘을 준다. 유혹과 장애물 앞에서 물러서지 않게 하고, 고통을 인내하며 감당하도록 돕는다. 굳셈은 큰 결단뿐 아니라 일상의 작은 충실함을 끝까지 이어가게 한다. ■ 효경 - 하느님께 자녀다운 마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은사 효경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공경하고 사랑하게 하는 은사다. 신앙을 의무나 형식으로만 여기지 않고, 자녀다운 신뢰로 하느님께 나아가게 한다. 또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로 바라보게 하여 이웃 사랑으로 이끈다. 효경은 기도가 멀게 느껴질 때 다시 하느님께 마음을 열게 한다. ■ 경외 - 잘못에 무뎌지지 않고 하느님 앞에 서게 하는 은사 경외는 하느님을 무서워하는 공포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자녀다운 두려움이다. 이 은사는 죄와 잘못에 무뎌지지 않도록 마음을 깨우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게 한다. 무질서한 욕망과 집착에서 물러서게 하며, 하느님의 거룩함 앞에 겸손히 서도록 이끈다. 경외는 삶을 하느님께 다시 향하게 하는 은사다.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12면

“양면성 지닌 인공지능…‘공동선’ 위한 새 사목 과제”

인공지능(AI)이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넓히면서, 이 기술이 가져올 가능성과 위험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논의가 교회 안팎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AI는 인간의 지식 활동을 돕고 새로운 소통 방식을 열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주체성과 존엄을 흔들 수 있는 문제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AI를 어떻게 설계하고 사용할 것인지는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인간이 주체성을 잃지 않고 AI를 올바르게 활용하려면, 기술을 만드는 이들과 사용하는 이들 모두가 윤리적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 교회 역시 기술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간 중심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있다. AI 기술의 양면성은 종교계에서 이미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이 급속히 대중화되면서, 유튜브 등 온라인 공간에는 레오 14세 교황의 실제 영상과 AI 제작 영상을 짜깁기해 근거 없는 내용을 교황의 발언인 것처럼 유포하거나, 가톨릭 교리와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퍼뜨리는 국내외 계정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반대로 AI 제작물임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사목과 선교에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 사목자들 가운데는 역대 교황들이 한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구현한 영상 등 신자들이 부담 없이 접할 만한 콘텐츠를 선별해 SNS에 공유하며 호응을 얻은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가톨릭 교리를 묻고 답할 수 있는 가톨릭 자료 기반 AI 서비스도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제60차 홍보 주일 담화에서 AI의 이러한 양면성을 짚으며 기술 자체보다 인간의 선택과 책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이 강력한 도구들을 현명하게 사용하여 인간성과 지식을 증진함으로써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AI가 인류의 공동선을 우선하도록 기업가, 학자, 교육자 등이 협력해야 하며, 특히 개발자와 국가 입법자들이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황청 AI 연구 그룹이 발간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주체성 회복」을 공동 번역한 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 위원장 이성효 주교(리노·마산교구장)와 책을 감수한 수원교구 곽진상(제르마노) 주교도 인터뷰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밝혔다. 주교들은 사용자가 AI를 활용할 때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고, 설계자는 AI 기술의 개발 단계부터 윤리적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의 미래는 결국 이를 다루는 인간의 윤리성에 달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박찬호(필립보) 신부는 5월 7일 열린 학술발표회 ‘인공지능의 도전 앞에 선 인간과 교회’에서 “AI의 윤리적 지위와 관련된 사안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이 고려돼야 하기에, AI의 발전 양상에 따라 지속적으로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박 신부는 “중요한 것은 논의의 중심에 언제나 인간이 윤리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 곧 윤리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AI 활용이 사회 각 분야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확산되면서,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사목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의 가능성을 살리되, 인간의 주체성과 윤리적 책임을 놓치지 않는 접근이 요구된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면

[홍보 주일 특집] 이성효·곽진상 주교 “AI 시대…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인간성’ 지켜야”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말과 표정, 판단과 관계까지 흉내 내는 시대, 레오 14세 교황은 제60차 홍보 주일 담화를 통해 “얼굴과 목소리를 지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시대의 과제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주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관한 물음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교황청 AI 연구 그룹이 집필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주체성 회복」이 최근 우리말로 출간됐다. AI가 인간의 자유와 판단, 관계성에 미치는 영향을 짚으며, 기술 발전 속에서도 인간 주체성을 지키는 길을 모색하는 책은 한국교회가 기술을 어떻게 식별하고 사용할 것인지 함께 성찰하도록 돕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책을 번역한 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 위원장 이성효 주교(리노·마산교구장)와 감수를 맡은 수원교구 곽진상(제르마노) 주교는 5월 7일 수원교구 제2대리구청에서 인터뷰를 갖고, AI 시대 인간 주체성 회복의 의미와 교회의 과제를 제언했다. 교회가 AI 시대에 인간의 주체성 회복을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단순히 정보를 처리하거나 효율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자유롭게 선을 선택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하느님과의 친교를 향해 나아가는 인격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성효 주교는 “하느님으로부터 지성과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서로 협력하며 책임 있게 선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과정을 이끌어가는 것이 바로 인간 주체성”이라며 “오로지 기술적 진보만을 추구한 결과 인간 주체성이 위협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곽진상 주교는 AI 기술이 인간의 판단과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짚었다. 알고리즘이 인간의 욕구와 행동을 예측하고 유도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식별하는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곽 주교는 “알고리즘이 설계한 정교한 넛지(유도)와 중독은 우리에게 더 나은 선에 대해 숙고할 능력을 잃게 만든다”고 말했다. 또 “탈숙련화는 인간에게 필요했던 숙달된 능력뿐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에게 봉사하기 위해 행하던 단순하고 반복적인 과업 수행의 기회마저 앗아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현상이 개인의 존엄성과 주체성은 물론 공동체를 파괴하는 일이기에 교회는 주체성 회복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AI 시대에 인간의 취약성도 새롭게 조명된다. 하지만 주교들은 AI와 구별되는 인간 고유의 가치가 취약성을 통해 드러난다고 전했다. 이 주교는 “AI의 관점에서 취약성은 비효율적이라는 측면에서 제외 대상이 되지만 레오 14세 교황님은 인간의 취약성을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 곧 인간 존재의 진리와 은총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인간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연약하기에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며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인간성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주교는 인간 주체성을 회복하는 열쇠가 ‘인격적 만남’에 있다고 강조했다. AI가 방대한 지식을 제공하고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낼 수는 있지만,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책임 있는 관계를 맺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주교와 곽 주교는 한목소리로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강생하셨다는 사실은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 겪는 고통과 기쁨, 관계 속에서 인간 주체성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고 타인을 향해 나아가는 관계성 안에서 주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교회는 AI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주교들은 AI를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을 위한 도구로 식별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곽 주교는 “온전히 AI에 의존하기보다 비판적인 정신을 가지고 AI가 제시한 의견에 대해 선택하는 결정권을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회는 AI 기술이 설계 단계에서부터 윤리적 가치를 포함하도록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며 “최종적 판단과 선택의 주도권은 언제나 인간에게 유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주교는 “교회는 AI 기술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증진해 나가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에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며 “교회 안에서의 AI 활용에 대한 여러 지침을 제공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1면

[성모 성월 특집-세계 성모 발현지를 가다] 벨기에 ‘보랭·바뇌 성지’

1932년 겨울, 유럽은 깊은 어둠 속에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대공황이 덮쳤고, 사회주의 열풍으로 교회를 등진 이들이 넘쳐났다. 바로 그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벨기에의 두 마을에서 성모 발현이 잇따랐다. 브뤼셀 남쪽 나뮈르 주의 보랭(Beauraing)에서 서른세 차례, 독일 국경에 가까운 리에주교구의 바뇌(Banneux)에서 여덟 차례. 하느님의 어머니는 지도에서도 구석의 외진 곳을 택하셨다. 황금 성심의 성모가 머문 자리, 보랭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동정녀이다. 항상 기도하여라.” 프랑스와 국경을 맞댄 마을 보랭(Beauraing)에서 성모 마리아가 다섯 아이에게 거듭 들려주신 말씀이다. 세속 이념이 신앙을 잠식하고, 경제적 궁핍이 가정과 공동체를 짓누르던 그 시절, 성모 마리아께서는 파티마에 이어 다시 한번 기도와 회개의 길로 돌아오라고 초대하셨다. 성모 마리아는 1932년 11월 말부터 1933년 1월 초까지, 드쟝브르 자매인 앙드레(14세)와 질베르트(9세), 브와쟝 남매 페르난드(15세)와 질베르트(13세), 알베르(11세)에게 33차례 발현했다.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1932년 11월 29일, 집으로 돌아오다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 순백색의 긴 옷을 입은 부인이었다. 세 번째 발현 때부터는 학교 정원 산사나무 곁에 황금빛 왕관 차림의 성모가 나타났다. 발현이 거듭되면서 성모는 기도를 당부하고, 경당을 세워 달라는 청과 함께 이곳에 사람들이 순례하러 오기를 바란다는 뜻도 전했다. 그리고 12월 29일, 팔을 벌려 작별을 고하듯 서신 성모의 가슴에서 황금빛 성심이 처음으로 빛났다. 이후 1월 3일 마지막 발현까지, 성모는 매번 그 황금빛 성심을 드러내 보이셨다. 성지는 소박하고 조용하다. 발현 장소에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된 대리석 성모상이 세워져 있다. 발현 당시의 높이를 반영한 받침대 위에 팔을 벌린 채 서 계신 성모의 가슴에서 황금빛 성심이 햇빛 속에 또렷이 빛난다. 보랭의 성모가 '황금 성심의 성모(Notre-Dame au Cœur d'Or)'로 불리는 까닭이다. 성모상 뒤편에는 화재와 토네이도를 견뎌낸 산사나무가 발현의 증인처럼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모상이 있는 작은 정원 곁에 기념 경당인 ‘봉헌 경당’이 있고, 경당 외벽에는 야외 미사를 위한 제대가 마련돼 있다. 성모 마리아의 청에 의해 건축이 시작된 경당은 보랭 출신 건축가 미셸 클레가 설계하고 현지 돌을 직접 쌓아 1954년 축복됐다. 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요새를 연상시키는 외관 곳곳에 발현 날짜와 횟수를 숫자로 새겨 넣은 특징이 있다. 서쪽의 17개 돌 아치는 경당 짓기를 청하신 12월 17일을, 남쪽의 33개 돌 아치는 33차례 발현을 기념한다. 경당을 마주 보는 위편으로는 나뮈르 지역 건축가 로제 바스탱이 설계한 현대적인 바실리카가 들어서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그는 콘크리트를 즐겨 써 공간의 유동성과 빛의 흐름을 건축에 담아냈다.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건물은 1968년 10월 6일 축성됐고, 2013년 8월 22일 소바실리카(Minor Basilica)로 승격됐다. 나뮈르 교구는 1935년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오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1949년 7월 2일 당시 교구장 앙드레-마리 샤뤼 주교가 보랭 발현의 초자연성을 공식 선언했다. 보랭 발현의 의미는 눈에 띄는 기적보다 회심과 기도에 있다. 성모 마리아는 인류가 계속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죄인들의 회개가 미뤄질 때 닥칠 무거운 결과를 경고하셨다. 동시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도와 보속으로 돌아오라고 초대하셨다. 그래서 보랭은 병을 고치는 치유의 성지이기보다, 영적 회개의 성지로 기억된다. 발현 소식이 전해지자 냉담하던 신자들이 고해소로 향했고, 교회를 등졌던 부모들은 자녀의 손을 잡고 다시 성당 문을 두드렸다. 1933년 한 해에만 순례자가 200만 명을 넘었다.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가 머문 자리, 바뇌 보랭에서의 마지막 발현 열이틀 뒤, 성모께서는 다시 나타나셨다. 산골 마을 바뇌(Banneux)였다. 아르덴고원에 자리한 작고 가난한 이 마을은 가톨릭에 적대적인 분위기가 보랭보다 더 심했던 곳이다. 그러나 바뇌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화(戰禍)를 피한 주민들이 성모님께 감사드리며 봉헌한 마을이기도 하다. ‘바뇌 노트르담’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그 이름의 마을에 성모님께서 다시 찾아오셨다.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까지, 성모 마리아는 당시 11살이었던 마리에트 베코에게 여덟 번 발현하셨다. 마리에트는 일곱 형제의 맏이로,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안의 아이였다. 아버지는 종교에 무관심했고, 가족 중 신앙생활을 하는 이도 없었다. 첫 발현은 1월 15일 저녁, 마리에트가 부엌 창문 너머로 정원에서 빛나는 형상을 본 것에서 시작됐다. 흰옷에 파란 허리띠를 두른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발현이 거듭되면서 성모께서는 당신이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임을 밝히시고, 마리에트를 샘터로 이끌어 그 물이 “모든 민족을 위하여,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려고 마련된 것”이라고 하셨다. 또한 ‘작은 경당’을 원한다고 하시며 기도를 거듭 당부하셨다. 성모의 요청대로 발현 장소인 베코 가족의 집 앞 정원에 경당이 세워졌고, 샘은 그 곁에서 지금도 쉬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다. 바뇌 성지로 들어서는 길은 조용했다. 입구 비석에는 “1933년,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가 여기를 다녀갔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경당과 샘터가 차례로 나타난다. 바뇌는 루르드와 함께 샘물을 중심으로 한 대표적인 성모 발현지다. 화려한 장식도, 웅장한 건물도 없다. 성지 전체가 숲속에 조심스럽게 들어앉은 느낌이다. 바뇌의 분위기는 보랭과도, 루르드와도 다르다. 루르드가 수백만 순례자를 품는 대형 국제 성지라면, 바뇌는 숲과 샘과 침묵으로 이루어진 성지다. 발현 기념 경당은 베코 가족 집 앞 정원, 발현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졌다. 설계는 건축가 마르셀 카롱 등 세 사람이 맡았으며, 1933년 5월 25일 주님 승천 대축일에 마리에트 베코가 직접 머릿돌을 놓았다. 경당 앞에는 마리에트가 성모님과 대화를 나누던 자리를 표시한 구조물이 있고, 발현 날짜들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1933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축복된 이 작은 경당은, 교황청이 인정한 성모 발현 성지 가운데서도 가장 소박하다. 세 개의 아치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몇 사람이 간신히 서 있을 만한 공간이 나온다.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경당이다. 목발을 비롯해, 치유를 체험한 이들이 바친 작은 기념패와 감사 표지들이 눈에 띈다. 작은 공간은 그렇게 수많은 기도와 은총의 기억을 품고 있다. 경당 곁으로는 발현 25주년이던 1958년 조성된 넓은 야외 광장이 펼쳐져 있다. 순례자들은 이 광장을 ‘하늘 아래 펼쳐진 초록 성당’이라 부른다. 정면 계단 위에는 큰 제대가 놓여 있고, 제대 상단에 성모님께서 마지막 발현 때 남기신 말씀 ‘MÈRE DU SAUVEUR MÈRE DE DIEU(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가 새겨져 있다. 샘 앞에는 흰 성모상이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 채 서 있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누군가는 물을 손에 적시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오래 기도한다. 말이 없어도 그 자리에 머무는 것만으로 기도가 되는 곳이다. 경당을 나와 십자가의 길을 따라 숲길을 걸으며 순례단은 함께 기도를 바쳤다. 숲 곳곳에는 각국 신자들이 봉헌한 기념비 등이 있다. 바뇌가 얼마나 많은 나라의 순례자들과 이어져 있는지를 전해준다. 서울대교구 서초3동본당 신자들이 봉헌한 한복 차림의 성모자 상도 볼 수 있다. 바뇌의 성모 발현은 1949년 8월 22일 리에주교구장 케르크흡스 주교의 공식 선언으로 교회의 인준을 받았다. 파티마의 루치아, 루르드의 베르나데트가 수도자의 길을 걸은 것과 달리, 보랭과 바뇌에서 성모 마리아를 마주한 이들은 수도원이 아닌 일상에서 살아갔다. 1932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유럽 벨기에의 두 마을에서 울려 퍼진 말씀은 단순했다. “기도하여라. 회개하여라. 믿어라.” 그 말씀 앞에서 사람들은 잃었던 신앙으로, 떠났던 자리로 돌아왔다. 말씀의 힘은 그 단순함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 순례 정보 보랭: https://sanctuairedebeauraing.be 바뇌 : https://banneux-nd.be ◆ 가톨릭신문투어 순례 문의: 02-2281-9070, 1577-5006 카카오톡 ID: cttour 홈페이지:http://www.cttour.org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0면

[홍보 주일 특집] 신앙생활에 도움 되는 ‘가톨릭 인공지능’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일상 깊숙이 들어오면서 AI를 통해 궁금증을 해결하는 시대가 됐다. 성경, 교리, 기도, 윤리 문제 역시 AI에 묻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답을 조합하는 AI의 답변이 언제나 교회의 가르침에 맞는 것은 아니다. 방대한 온라인 자료 안에는 교회의 가르침과 다르거나 부정확한 자료들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가톨릭교회 문헌과 교리, 성경을 바탕으로 답변하는 AI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있다. ▲마지스테리움 AI(Magisterium AI) ▲가톨릭 AI-신앙 안내서 ▲트루슬리(Truthly) 등 국내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가톨릭 자료 기반 AI가 여럿 있다. 다양한 AI, 내 신앙생활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학술적인 차원에서 가톨릭 자료 기반 AI를 사용하고 싶다면 마지스테리움 AI를 추천할 만하다. 마지스테리움 AI는 성경을 비롯해 교황·교황청의 문헌뿐 아니라 교부 문헌, 신학·철학 문헌 등 3만 건 이상의 문헌을 바탕으로 답변한다.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관련 문헌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료 계정은 주 90회 질문할 수 있고, 프로(PRO) 구독은 월 5500원, 연 4만4000원이다. 마지스테리움 AI가 ‘신학자’라면, 가톨릭 AI-신앙 안내서는 ‘교리교사’ 느낌에 가깝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교회법 등을 바탕으로 한 신앙 문답은 물론이고 매일 독서와 오늘의 성인 등을 바탕으로 신앙에 영감을 주는 교리·강론 자료들을 제공한다. 기도 기록이나 고해성사 준비를 돕는 기능도 있다. 구독료는 월 8100원, 3개월 2만 원, 연 7만2900원이다. 트루슬리는 교리 지식뿐 아니라 신앙 실천에도 도움을 주는 AI다. 신앙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매일의 묵상과 실천 과제, 짧은 강좌 등을 통해 신앙을 일상 안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데 초점을 둔다. 다만 채팅 기능 외에는 한국어가 지원되지 않는다. 일주일 체험 이용이 가능하며 구독료는 월 6600원, 연 4만4000원이다. 이 AI들은 모두 채팅창에서 대화하는 형식으로 간편하게 교리와 문헌을 찾아 주고, 신앙 자료 준비를 돕고, 일상적인 질문에 답하는 등 교리나 신앙에 관한 비교적 정확한 지식을 얻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다만, 영어를 기반으로 검색과 답변을 제공하다 보니 한국교회의 공식 용어와 다르게 표현되는 아쉬움이 있고, 한국교회 고유 지침이나 현황 등을 찾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가톨릭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AI는 신앙생활을 돕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AI를 ‘만능’으로 여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AI가 모든 상황에 정답만을 주는 것도 아니고, 신앙생활이란 교리를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양심 안에서 식별하며, 하느님께 응답하고, 사랑과 용서로 이웃과 관계를 맺는 삶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1면

1926년생 동갑내기 본당들…시련 딛고 ‘100년’ 열매 맺다

100년 전인 1926년 5월 29일.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Florian Demange·한국명 안세화·1875~1938) 주례로 성 유스티노 신학교 소속 부제 11명의 사제서품식이 거행됐다. 한국교회가 아직 넉넉지 않은 사제 수와 어려운 사목 환경 속에서 신앙 공동체의 뿌리를 넓혀 가던 때였다. 서품식 다음 날인 5월 30일, 드망즈 주교는 새 사제 11명을 각 지역으로 파견하는 사제인사를 단행했다. 이 인사를 통해 7개 본당이 새로 세워졌다. 한날 한뜻으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100년의 시간을 지나 오늘의 공동체로 자라났다. 그 가운데 대구대교구 남산본당과 성동본당, 전주교구 부안본당, 마산교구 옥봉동본당은 오늘날까지 신앙의 맥을 이어 오며 5월 나란히 설립 100주년을 맞이한다. 한 세기 전 사제서품과 본당 신설로 시작된 공동체의 여정은 100년의 시간을 지나 오늘, 신앙의 열매로 맺어지고 있다. ■ 기도가 끊이지 않는 공동체 ‘대구대교구 남산본당’ 대구대교구 남산본당(주임 박덕수 스테파노 신부)은 석종관(바오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1926년 5월 30일 설립됐다. 당시 정식 성당이 없어 교구청 내 평신도 교육 공간이던 ‘명도회관’을 개축해 사용했지만, 공동체의 활동은 활발했다. 1928년에는 본당 차원으로는 이례적으로 라틴어 그레고리오 성가와 우리말 성가 수십 곡을 담은 성가집 「공교셩가집」을 발행했다. 신자 수가 늘어나자 본당은 2대 주임 남대영(루도비코) 신부 주도로 1929년 5월 새 성당 건립 준비에 나섰다. 공동체가 합심해 현재 성당 맞은편 자리인 대명동 언덕의 토지를 매입했고, 1936년 가을 새 성당을 착공해 이듬해 10월 10일 봉헌식을 거행했다. 본당 소재지가 대명동으로 옮겨지면서 ‘대명동성당’으로 불렸다. 일제의 압력으로 1945년 3월 11일부터 성당을 집단수용소로 내주는 아픔도 겪었다. 대구대교구가 1952년 4월 2일 여성 고등교육 기회 제공을 위해 효성여자대학을 설립함에 따라 성당과 부지는 대학이 사용하게 됐다. 같은 해 가을 본당은 교구청 부지인 성모당 남쪽 현 위치에 새 성당을 지었고, 1953년 5월 5일 제6대 대구교구장 최덕홍(요한) 주교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했다. 성당이 다시 남산동으로 옮겨지면서 본당 명칭도 현재의 남산본당으로 변경됐다. 남산본당은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본당 출신 사제만 39명에 이른다. 본당 출신 첫 사제는 제2대 마산교구장을 지낸 장병화(요셉) 주교이며, 하느님의 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도 본당 출신이다. 남산본당은 성모당과 인접해 설립 초기부터 오늘까지 기도가 끊이지 않는 공동체로 자리해 왔다. 본당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남산본당 100년사」 편찬을 비롯해 전 신자 성지순례, 100주년 기념 바자와 음악회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5월 30일 오전 10시30분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 신심 운동 매진하며 지역사회 발전 이끌다 ‘전주교구 부안본당’ 전주교구 부안본당(주임 김정훈 스테파노 신부)의 역사는 1903년경 전북 부안군 하서면 등용리 일대에 교우촌이 형성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8년 12월에는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 주례로 등용리공소 경당이 봉헌됐다. 이후 본당 신자들의 요청에 따라 드망즈 주교는 1926년 5월 30일 이기수(야고보)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고,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초대 주임 이기수 신부는 등용리가 외진 곳에 있어 교세 확장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고, 1935년 옛 부안문화원이 있던 자리에 새 성당 터를 마련했다. 이후 성당 이전과 함께 4년제 소학교를 세워 지역사회 문맹 퇴치에 앞장섰고, 교리교육을 통해 교세를 넓혀 갔다. 일제의 탄압으로 1941년 소학교는 강제 폐교됐지만, 당시 성당 자리는 훗날 청우실업학교로 발전해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6·25전쟁 중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본당은 1957년부터 새 성당 건립을 추진했고, 1963년 8월 27일 제4대 전주교구장 한공열(베드로) 주교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본당은 1950년대 후반부터는 농촌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간척사업을 실시해 신자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도록 도왔다. 1980년대 들어 신자들은 신심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한때는 매년 100명 이상의 새 신자가 탄생하기도 했다. 성직자와 수도자도 다수 배출했다.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본당은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 등을 리모델링하고 쉼터를 조성했다. 또 100주년 기도문을 함께 바치며 신자 재교육 특강, 성지순례, 성경쓰기와 성경통독, 묵주기도 봉헌 등 신심을 살찌우는 다양한 영성운동도 전개했다. 본당은 5월 17일 오전 10시30분 교구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 주례로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한다. 김정훈 신부는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놓지 않았던 선배 신앙인들의 기도와 희생이 오늘의 본당 공동체를 세웠다”며 “다가올 100년도 더 따뜻하고 더 열린 공동체, 젊은이와 어린이들이 기쁘게 머물 수 있는 교회, 지역사회 안에서 복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본당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28개 본당의 모본당 ‘대구대교구 성동본당’ 대구대교구 경주 성동본당(주임 김태한 바오로 신부)은 이성인(야고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1926년 5월 30일 설립됐다. 당시에는 ‘경주본당’으로 불렸다. 천년 고도(古都) 경주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공동체로 경주 11개, 포항 17개 본당의 모본당이다. 1983년 9월 1일 성건본당을 분리하면서 본당명을 성동으로 바꿨다. 본당은 1992년 4월 1일 발생한 화재로 1959년부터 사용하던 성당을 잃었다. 이후 1999년 새 성당 공사에 들어가 2001년 1월 28일 제8대 대구대교구장 이문희(바울로) 대주교 주례로 현재의 성당을 봉헌했다. 2026년 3월 현재 2514명의 신자들이 지역 복음화에 헌신하고 있는 본당은 박재수(요한) 신부를 시작으로 그동안 사제 9명, 수도자 30명을 배출했다. 본당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나눔 활동도 꾸준히 이어 왔다. 2023년 1월 부임한 제31대 주임 김태한 신부는 코로나19 이후 감소한 신자들을 다시 교회로 초대해 공동체의 활력을 높이고, 100년을 이어 온 신앙 공동체에 걸맞은 영적 쇄신을 이끌고 있다. 노후화된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한편, 예술적 감각을 담은 십자가상과 성모 마리아상 등을 배치해 신자들과 지역 주민, 경주를 찾는 타 지역 신자들에게도 특별한 감흥을 전하고자 힘쓰고 있다. 본당은 5월 31일 오후 2시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설립 100주년 기념미사를 거행한다. 현재 전국을 순회하고 있는 ‘파티마 국제 순례 성모상’도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성당을 찾는다. 김 신부는 “본당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우리 공동체를 구원의 도구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며 “복음화의 사명을 새롭게 되새기고, 지난 100년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가운데 살아 있는 신앙 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산청 성심원 설립 등 지역사회에 사랑 실천 ‘마산교구 옥봉동본당’ 마산교구 진주 옥봉동본당(주임 이진수 스테파노 신부)의 역사는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1년 4월 8일 대구대목구 설정 이후, 초대 대목구장으로 부임한 드망즈 주교는 미국교회 한 신자의 성금을 받아 진주 읍내 동북쪽, 옥봉동 산 아래 땅 120평을 구입해 공소를 마련했다. 당시 초대 회장을 맡은 이낙종(스테파노) 씨는 전교에 헌신했고, 그의 아들 이상석(가브리엘) 씨도 ‘가톨릭청년회’를 조직해 지역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많은 이의 정성이 모여 1923년 목조건물이 신축됐고, 정수길(요셉)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문산본당 소속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됐다. 설립 당시 본당명은 진주본당이었다. 진주·사천·삼천포·합천·의령·하동·남해 지역을 관할했다. 이후 1967년 제10대 주임으로 박정일(미카엘) 신부, 훗날 마산교구 제3대 교구장이 부임한 뒤 현재의 옥봉동본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오랜 역사만큼 본당이 지역 복음화에 미친 영향은 컸다. 현재 경남 진주 소재 12개 본당의 모본당으로 ‘진주 지역의 어머니 성당’으로 불린다. 또한 해성학원‧해성유치원 등을 운영하며 교육사업을 펼쳤고, 한센인 공동체인 산청 성심원을 설립했다. 노인 요양 시설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사랑의 실천도 이어 왔다. 이진수 신부는 “진주대로의 끝자락, 낙후된 지역에 본당이 자리 잡았기에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앙에 더 부합하는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며 “본당은 지역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말씀 그대로 살고자 노력해 온 공동체”라고 전했다. 본당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친다. 2025년 대림 1주일부터 ‘본당 설립 100주년 기도’를 봉헌해 왔으며, 올해 사순 시기에는 역대 주임신부 특강을 마련했다. ‘열일곱이다’ 음악 피정(4월 19일)에 이어 5월 8일에는 기념 음악회 ‘은총의, 100년 찬미의 노래’와 기념 사진전을 열었다. 100주년 기념미사는 5월 10일 10시30분 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 주례로 봉헌한다.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9면

[성모 성월 특집-세계 성모 발현지를 가다] 프랑스 ‘루르드 성지’

피레네산맥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바람이 이는 아침에도, 마사비엘(Massabielle) 동굴 앞에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휠체어를 밀며 온 가족, 목발을 짚은 노인, 어린아이 손을 잡은 어머니. 저마다 다른 언어로 기도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동굴 앞에 다다르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 같은 자리에 손끝으로 바위를 가만히 짚는다. 인구 1만 5천 명의 소도시에 해마다 수백만 명이 모여드는 곳, 프랑스 ‘루르드 성지’다. 18번의 발현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 루르드의 이야기는 1858년 14세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의 증언에서 시작된다. 베르나데트는 그해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마사비엘 동굴에서 모두 18차례 ‘흰옷을 입은 여인’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여인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고, 회개와 보속, 죄인들을 위한 기도의 메시지를 들었다고 전했다. 또 동굴 안 샘에서 물을 마시고 씻으라는 요청도 받았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1858년 3월 25일 찾아왔다. 베르나데트는 그 여인이 자신을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이”라고 밝혔다고 증언했다. 이는 비오 9세 교황이 1854년 선포한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와 맞닿아 있었다. 여러 해에 걸친 조사 끝에 1862년 타르브 교구장 베르트랑-세베르 로랑스 주교는 루르드 발현을 공식 인정했다. 이후 루르드는 세계적인 성모 순례지로 자리 잡았다. 1907년 비오 10세 교황은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보편 교회 전례력에 넣었고, 1933년에는 베르나데트가 성인품에 올랐다. 오늘도 루르드를 찾는 순례자들은 마사비엘 동굴 앞에서 기도하며, 병든 이와 지친 이, 위로를 찾는 이들을 향한 성모님의 초대를 되새긴다. 루르드 성지 전경. 총면적 약 53만m²의 성지는 마사비엘 동굴을 중심으로 성당과 경당, 광장과 샘터, 가브 강 건너편 기도 공간까지 아우르는 복합 순례 공간이다. 이주연 기자동굴에서 강 건너까지 총면적 약 53만m²의 루르드 성지는 마사비엘 동굴을 중심으로 성당과 경당, 광장과 샘터, 가브 강 건너편 기도 공간까지 아우르는 복합 순례 공간이다. 동굴 위 언덕에는 시대를 달리해 세워진 성당들이 층을 이루며 자리한다.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은 1866년 착공된 크립트(Crypt)다. 동굴 바로 위에 자리한 성당으로, 발현 직후 루르드의 첫 공식 성당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다. 베르나데트가 루르드를 영원히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미사에 참여한 자리로 성녀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다. 크립트 위로는 네오고딕 양식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솟아 있고, 아래쪽 전면에는 로마노-비잔틴 양식의 로사리오 대성당이 자리해 광장 전례의 장엄한 배경이 된다. 광장 지하에는 1958년 발현 100주년을 기념해 축성된 성 비오 10세 대성당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지하 공간이지만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국제 미사와 병자 미사,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곳이다. 대성당 오른쪽 언덕에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걷는 십자가의 길이 펼쳐진다. 1912년 조성된 이 길은 총 1500m에 이르며, 자연 지형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따라 이어지는 조용한 개인 묵상의 공간이다. 강변 가까이에는 2008년 조성된 십자가의 길도 있어, 거동이 불편한 순례자도 수난의 신비를 함께 묵상할 수 있다. 베르나데트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 담장 밖 루르드 시내에 베르나데트의 삶이 남아 있다. 볼리(Boly) 방앗간 생가는 그가 태어나 열 살까지 살았던 자리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 방앗간 운영이 어려워지며 가족의 삶은 내리막을 걸었고, 1857년 결국 폐쇄된 옛 감옥을 얻어 살게 됐다. 그곳이 까쇼(Cachot)다. 불과 16㎡의 좁은 방에서도 베르나데트의 가족은 작은 제단을 만들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살았다. 가브 강 위의 퐁비외(Pont-Vieux)는 중세부터 이어져 온 돌다리다. 마지막 발현을 제외한 17차례, 베르나데트가 동굴로 건너가던 통로였다. 시내 아스팔트 바닥 곳곳에 박힌 황동 못은 ‘베르나데트의 길(Chemin de Bernadette)’ 표지다. 그 못을 따라 걸으면 성녀가 동굴로 향하던 길을 그대로 밟게 된다. 병자 행렬, 침수, 기적 그리고 밤의 촛불 루르드의 하루는 성지의 정해진 리듬을 따라 흐른다. 새벽부터 마사비엘 동굴과 성당 곳곳에서 미사가 봉헌되고, 묵주기도와 성체 행렬과 강복, 촛불 행렬이 계속된다. 낮 시간의 핵심은 병자 행렬과 성체강복이다. 휠체어와 이동 침대, 들것에 몸을 의지한 병자들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행렬에 참여한다. 병자와 장애인들이 앞줄에 서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성직자와 수도자, 순례자들이 그 뒤를 따르며 성체 앞에 함께 무릎을 꿇는다. 가장 아프고 약한 이들이 언제나 공동체의 앞자리에 서는, 루르드만의 풍경이다. 의료진을 포함한 수천 명의 봉사자가 병자와 장애인들을 곁에서 돕는다. 루르드가 전하는 또 하나의 희망의 표징이다. 저녁이 되면 동굴 앞에 촛불이 모인다. 성체 행렬과 촛불 묵주기도 행렬은 주님 부활 대축일이 있는 4월부터 11월까지 열리지만, 순례 시즌 내내 동굴 앞 묵주기도는 계속된다. 베르나데트가 처음 발현을 체험한 그 자리에서 성모님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듯, 순례자들도 같은 기도로 성모님 곁에 머문다. 한국 순례단이 찾은 3월에는 행렬 없이 촛불 묵주기도가 봉헌됐다. 대표 한 명이 선창에 참여하면서, 성모송이 한국어로 동굴 앞에 울렸다. 침수(浸水)는 순례의 중심 체험 가운데 하나다. “가서 마시고 그곳에서 씻으라”는 성모 마리아의 말씀에 직접 응답하는 행위로, 동굴 샘물을 채운 욕조에 온몸을 담그는 예식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시설 개선으로 2020년 문을 닫았던 침수장은 2024년 8월 다시 열렸다. 루르드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기적이다. 발현 이래 수많은 환자가 치유됐다고 전해진다. 그간 7000건 이상의 치유 사례가 보고됐지만, 가장 최근인 2025년 인정된 사례를 포함해 공식 기적으로 발표된 것은 72건에 불과하다. 의학적 검증, 과학적 분석, 영적 심사를 거쳐 진정한 기적 여부가 판단된다. 그 엄격함이 역설적으로 루르드의 기적을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루르드와 한국교회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 중앙 제대 왼편 경당 벽면. 라틴어와 한문 사이, 세로로 흘러내리는 옛한글이 새겨져 있다. “셩총을 가득히 닙우신 마리아여 네게 하례ᄒᆞ나이다.” 19세기 조선 천주교의 고어체로 된 한글 성모송 첫 구절이다. 한국 순례자라면 누구나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석판의 봉헌문은 이렇게 전한다. 조선 반도의 선교사들이 바다에서 극심한 위험에 처했다가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구출되었고, 그 은혜를 기억하며 서약을 지켜 이 돌을 세운다고. 연도는 1876년. 리델 주교와 리샤르·블랑 신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루르드 발현이 공식 인정된 지 불과 14년 뒤였다. 박해의 땅 조선을 오가며 목숨을 걸던 선교사들이 풍랑 속에서 성모님의 보호를 받은 뒤 이 성지를 찾아 석판을 봉헌한 것이다. 루르드와 한국교회의 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후에도 루르드의 성모 신심은 루르드 인근 출신이었던 임 가밀로 신부(Camille Bouillon, 1869~1947) 등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 곳곳에 스며들었다.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순례지, 대구대교구 성모당,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루르드 동굴 등 한국 땅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가장 약한 이들이 앞자리에 서는 곳 오늘의 루르드는 발현지를 보존하는 박물관이 아니다. 가장 느리고 가장 약한 이들이 공동체의 맨 앞자리에 자리하는, 살아 있는 순례의 현장이다.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병이 낫지 않아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타르브-루르드교구 전임 교구장 쟈크 페리에 주교는 2008년 루르드 성모 발현 150주년을 기념해 가톨릭신문과 나눈 대담에서 “루르드를 순례하는 사람들은 단지 치유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희망을 품기 위한 힘과 용기를 얻으러 오는 것”이라고 했다. 루르드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회개와 기도 그리고 모든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였다. 그 메시지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168년 전과 같은 간절함으로 동굴에 모인 신자들의 입술에서, 순례자들의 손끝에서 면면히 이어진다. ▶ https://www.lourdes-france.org/ 루르드 성지 공식 사이트 ▶ lourdes.live/ko 루르드 TV 한국어 페이지 ◆ 가톨릭신문투어 순례 문의: 02-2281-9070, 1577-5006 카카오톡 ID: cttour 홈페이지:http://www.cttour.org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10면

[생명 주일 기획]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보호받지 못하는 생명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입법 공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가장 보호받아야 할 태아의 생명과 위기 상황에 놓인 여성들은 모두 법의 보호 밖에 놓여 있다. 교회는 이제 낙태 허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을 넘어, 태아와 임산부를 함께 살릴 수 있는 법과 제도, 문화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는 수정 순간부터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고 가르치며, 낙태를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 분명히 반대한다. 그러나 교회의 목소리는 단순히 “낙태는 안 된다”는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 주교단도 올해 3월 12일 발표한 성명에서 생명 존중의 원칙을 담은 입법을 촉구하는 한편, 낙태를 둘러싼 다양한 제도적 쟁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가장 크게 떠오른 쟁점은 낙태약이다. 정부가 ‘낙태약 도입’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데 이어, 4월 15일 규제합리화회의에서는 박용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낙태약 허용 필요성을 제기했다. 낙태약 허용 문제가 정부 정책 차원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어 우려를 낳는다. 하지만 낙태약은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길 뿐 아니라 부작용에 따른 사망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교회는 낙태 약물의 무분별한 유통을 막고,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관리 체계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생명을 해치는 행위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의료인의 양심을 보호하는 제도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낙태를 단순한 ‘의료 서비스’로 보게 되면, 의료인은 환자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는 논리가 뒤따를 수 있다. 교회는 낙태가 질병을 치료하는 행위가 아니라 생명을 죽이는 행위라는 점에서,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양심에 따라 낙태 시술을 거부할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고 본다. 현재 논의되는 법안들에는 이러한 의료인의 양심적 거부권 보장이 충분히 담기지 않은 실정이다. 실효성 있는 숙려 기간과 상담 제도도 필요하다. 낙태 전 형식적으로 거치는 절차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 놓인 여성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 낙태만을 유일한 ‘선택’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과 양육, 입양, 경제적·심리적 지원 등 다양한 선택지를 알리고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임신과 출산에 대한 남성의 공동 책임을 강화하고 ‘낳아 기를 수 있는 권리’를 확대하는 구조도 필요하다. 양육비 이행 지원을 강화하고 자녀가 있는 가정에 대한 획기적 지원, 돌봄 시설 확충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는 우리 사회 안에 ‘생명의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낙태를 말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과연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미혼모와 위기 임산부를 비난하거나 고립시키는 문화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떠받치고 동행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오석준(레오) 신부는 “우리는 어려움에 처한 임산부들을 비난하기보다 그들이 용기 있게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따뜻한 손을 내미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면서 “신자들이 정부와 국회가 책임 있는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6면

레오 14세 교황 선출 1주년…분열의 시대에 평화 외치다

5월 8일은 레오 14세 교황 선출 1주년이다. 교황은 지난 1년 동안 전쟁과 분열의 시대에 평화를 호소하고, 성 아우구스티노 영성에 뿌리를 둔 일치와 친교의 교회를 강조해 왔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인공지능(AI) 시대의 인간 존엄, 그리스도인 일치와 사제직 쇄신에 관한 문헌도 잇따라 발표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을 이어 가는 동시에 자신의 사목 방향을 구체화했다. “일치된 교회”, 첫해를 관통한 사목 기조 레오 14세 교황의 첫해는 교회를 ‘일치와 친교의 표징’으로 세우려는 노력으로 시작됐다. 즉위 미사에서 교황은 “우리의 첫 번째 큰 바람이 일치된 교회가 되는 것이기를 원한다”며 “이는 곧 일치와 친교의 표징이 되는 교회, 화해하는 세상을 위한 누룩이 되는 교회”라고 밝혔다. 디지털 공간에 대한 관심도 이 흐름 안에 있다. 교황은 2025년 7월 29일 디지털 선교사들에게 “분열과 양극화의 논리,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논리를 허물 수 있는 친교의 주역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신앙의 본질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책임 또한 강조해 왔다. 전임 교황의 노선을 계승하면서도, 신앙이 사회적 실천의 근거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교황은 2025년 10월 9일 즉위 후 첫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 Te)를 발표했다. 권고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발표한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의 흐름을 이어받아,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교회의 사명을 다시 환기했다. 권고에서 교황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강조하며,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나약함과 육신을 취하심으로써 가난을 택하셨기에 우리는 신학적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우선적 선택을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쟁의 시대에 던진 평화의 호소 교황의 평화 메시지 또한 첫해 선명하게 드러난 주제 중 하나다. 교황은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무기를 내려놓으며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를 향하여’ 주제 제59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평화는 폭력에 저항하고 폭력을 이긴다”며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 곧 열린 마음과 복음적 겸손에서 비롯되는 평화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호소했다. 평화를 위한 호소는 최근 중동 정세를 둘러싼 발언에서도 이어졌다. 교황은 4월 23일 아프리카 순방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이란 사태와 관련해 “목자로서 저는 전쟁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교황의 이란 사태 관련 입장을 비판했지만, 교황은 직접적인 논쟁에 나서지 않고 “앞으로도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계속 낼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인공지능(AI) 시대, 인간 존엄을 지키는 교회 교황은 AI와 디지털 기술의 확산을 교회가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보았다. 다만 기술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거나 지배하지 않도록 신앙과 윤리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년 12월 5일 교황청에서 열린 ‘가톨릭 연구대학 전략동맹’ 주최 학술회의에서 교황은 “인간은 창조 세계 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기술이 만들어 낸 콘텐츠의 수동적 소비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26년 2월 19일 로마교구 성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인공지능으로 강론을 준비하려는 유혹을 물리치라”고 당부했다. 이는 성직자의 사목적 식별과 말씀 묵상이 기술적 편의로 대체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교황은 AI 시대에도 사목의 핵심은 인간적 만남, 기도, 식별, 공동체적 책임에 있음을 일깨웠다. 문헌으로 제시한 교육·일치·사제직의 과제 교황은 첫해 발표한 교서들을 통해 교회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방향을 구체화했다. 2025년 10월 28일 발표한 교황 교서 「희망의 새로운 지도 그리기(Disegnare Nuove Mappe Di Speranza)」에서 교황은 가톨릭 교육의 과제를 ▲젊은이들의 내적인 삶 ▲인간적인 디지털 문화 ▲타인에게 비폭력적이며 평화를 세우는 언어 등으로 제시했다. 니케아공의회 개최와 니케아신경 제정 1700주년을 맞아 2025년 11월 23일 발표한 교서 「신앙의 일치 안에서(In Unitate Fidei)」는 그리스도인 일치를 지향하는 교회의 의지를 드러냈다. 2025년 12월 22일 공개된 교황 교서 「미래를 탄생시키는 충실성(Una fedeltà che genera futuro)」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과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 반포 6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교황은 교서에서 사제와 평신도의 공동 책임성을 요청하면서, “사제들에게 업무적으로 큰 압박이 가해지고 많은 요구가 쏟아지는 때 평신도의 은사를 알아보고 그들과 협력하면서 지지와 자유, 위안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해외 사목방문, 일치와 평화의 현장으로 교황은 교회 일치의 상징적 장소와 분쟁·가난의 현장을 찾아, 문헌과 담화로 강조해 온 일치와 평화를 구체적 행동으로 드러냈다. 첫 해외 사목방문은 2025년 11월 27일부터 12월 2일까지 튀르키예와 레바논에서 이뤄졌다. 니케아공의회 개최 1700주년을 기념해 튀르키예를 찾은 교황은 동방정교회 수장 콘스탄티노플의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 등을 만나고, 이즈니크에서 열린 그리스도교 일치 기도회에도 참석했다. 이어 레바논에서는 그리스도인 일치와 종교 간 만남 행사에 참석했고, 2020년 베이루트 항만 폭발 현장을 찾아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교황은 올해 4월 13일부터 23일까지 아프리카 알제리, 카메룬, 앙골라, 적도기니 등 4개국을 사목방문했다. 교황은 분쟁과 갈등,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 지역에서 평화와 일치를 호소했고, 병원과 복지시설, 교도소를 찾아 위로를 전했다.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로마 총원에서 봉사하는 케빈 드프린치오 신부는 교황의 향후 행보에 대해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일치와 친교 증진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교황님은 앞으로도 만남과 대화를 촉구하고, 차이를 극복하며 양극화를 뚫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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