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복음살이] 혐오의 시대, 교회는 혐오 앞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나

혐오가 놀이가 되어 가고 있다. 역사적 비극은 마케팅 문구가 되고, 죽은 이에 대한 조롱은 온라인에서 광범위하게 소비된다. 특정 지역과 세대, 집단을 향한 비하 표현도 농담처럼 오간다. 그러나 혐오 표현은 단순한 ‘말’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인간을 존엄한 존재가 아닌 조롱의 대상으로 낮추는 행위다. 혐오 표현과 차별에 대한 사회적 대응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는 가운데, 교회는 혐오의 시대에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까. 혐오 표현, ‘놀이’가 되다 5월 스타벅스코리아의 5·18민주화운동 관련 ‘탱크데이’ 마케팅에 이어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5·18 조롱 응원 사태까지, 최근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특정 집단을 조롱하고 사회적 편견을 더 부추기는 표현이 잇따르고 있다. 혐오 표현은 단순한 막말이나 불쾌한 표현과 다르다. 성별·장애·종교·나이·출신 지역·인종·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모욕·비하·멸시하거나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조장하는 표현을 가리킨다. 따라서 혐오 표현인지 판단할 때는 말의 거칠기만이 아니라 누구를 겨냥하고 어떤 차별적 효과를 낳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최근에는 혐오 표현의 방식도 달라졌다.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홍성수(토마스 아퀴나스) 교수는 “과거에는 의도가 명확하고 목적의식을 가지고 혐오 표현을 했지만 요즘에는 유머나 조롱에 가깝게 재미나 놀이를 표방한 방식의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며 “사람들은 문제의식 없이 혐오 표현에 쉽게 동참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SNS와 알고리즘은 이러한 표현의 확산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혐오와 차별 표현은 ‘밈(온라인 패러디 콘텐츠)’이나 ‘짤(인터넷에서 공유되는 짧은 이미지)’의 형태로 가볍게 소비되고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존엄을 훼손할 수 있다. 반복되는 조롱은 특정 사람이나 집단을 희화화된 대상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만들고, 또 다른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신자들은 혐오 표현을 어떻게 바라보나 본지와 서울대교구 굿뉴스팀이 공동 주관한 ‘가톨릭 POLL’ 조사에서도 신자들은 혐오 표현의 확산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월 5~19일 신자 47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25명(90.2%)이 혐오 표현의 확산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신자 10명 중 9명꼴로 혐오 표현 확산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식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는 간극이 있었다. 혐오 표현이 밈이나 유행어, 장난으로 소비되는 문화를 접했을 때 ‘부정적으로 본다’거나 ‘불쾌하여 차단한다’고 답한 비율은 68.8%였다. 반면 ‘불쾌하지만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5.1%, ‘불쾌하여 관련 표현을 신고 등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응답은 9.3%에 그쳤다. 서울대교구 방종우 신부(야고보·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이러한 간극의 원인으로 온라인에서 혐오가 일상화된 점과 ‘내 일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꼽았다. 방 신부는 “온라인과 일상에서 혐오 표현을 짧은 댓글이나 밈의 형태로 접하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혐오에 대한 감수성이 자연스럽게 무뎌졌다”고 설명했다. 또 직접 자신이 받은 공격이 아니거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일이 아니면 한발 물러서서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규제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혐오와 차별로 사회적 문제가 커지면서, 정부는 조롱·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 징벌적 손해배상, 이를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사이트의 폐쇄 등 엄격한 조건 아래 처벌에 입각한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가톨릭 POLL’에서도 온라인 혐오 표현 확산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대응 수준에 관해 ‘법과 제도를 통해 적극 규제해야 한다’는 응답이 34.8%, ‘일정 수준의 제재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45.4%로 나타났다. 두 응답을 합하면 80.2%로, 정부와 사회의 제재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았다. 반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거나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응답도 19.1%였다. 혐오 표현에 대한 대응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국가의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과도한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계심도 적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홍 교수는 “조롱 형태의 혐오 표현은 법적으로 규제하기가 더 까다롭고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며 “차별과 혐오의 양상이 더 다양해졌기 때문에 처벌을 위한 규제보다 먼저 무엇이 차별이고 혐오인지 사회적 기본 규범을 세우고,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혐오 앞에서 교회가 말해야 할 것 법적 규제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치적 견해나 사회 현상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 비판할 권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윤리신학적 관점에서 자유는 책임과 분리될 수 없다. 방 신부는 “자유의 목적은 다른 사람의 존엄을 파괴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을 선택하고 공동선을 이루는 데 있다”며 “표현의 자유와 인간 존엄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닌, 함께 지켜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2023년 스웨덴에서 쿠란이 소각된 사건을 계기로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존엄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교황은 “표현의 자유가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구실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모든 형제들」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특정한 소속과 경계를 넘어 타인을 진정한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방 신부는 오늘날 신앙인에게 필요한 질문은 ‘나는 혐오하지 않는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누군가 혐오 당하고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혐오가 일상화된 시대에 교회가 신앙인에게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로 ‘인간 존엄’을 꼽았다. 방 신부는 “혐오에 대응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타인을 다시 사람으로 보는 일’에서 시작한다”며 “의견이 다르면 논쟁할 수 있고 잘못된 행동은 비판할 수 있지만 그 순간에도 상대가 나와 똑같은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6-08-30 제3505호 12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주식 열풍’,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봐야 할까

어딜 가나 주식 이야기다. 직장 점심시간에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빠지지 않는 화제가 됐다. 주식 투자는 이제 일부 사람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일상 가까이에 자리한 금융 활동이 됐다. 그러나 투자 열풍 속에서 종잣돈이 부족한 청년 세대가 레버리지·인버스 같은 고위험 상품에 의존하거나, 빚을 내 투자에 나서는 사례도 적지 않다. 많은 투자자가 ‘투자’와 ‘투기’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는 셈이다. 문제는 주식 투자 자체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내거나 단기간 고수익만을 좇는 투기적 태도에 있다. 교회는 주식 투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투자에 임해야 할지 살펴본다. 최근 5년간 고위험 가구 증가… 청년 ‘빚투’ 늘었다 주식 투자가 과거보다 보편적인 금융 활동으로 확대됐지만, 빚을 내서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행이 3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국내 고위험 가구는 총 45만9000가구로 2024년 대비 20% 가까이 증가했는데, 연령대별로 보면 특히 2030 청년층 고위험 가구 비중이 2020년 22.6%에서 2025년 34.9%로 크게 늘었다. 한국은행은 이 현상에 대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과 자산 축적도가 낮은 청년층 가구가 주택 구입, 주식 투자 등을 위해 부채 차입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여윳돈이 부족한 이들일수록 단기간 고수익을 기대하며 ‘빚투’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7월 주식시장이 침체하면서 투자심리도 위축됐다지만,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이 증권사로부터 대출받아 투자한 규모를 알 수 있는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7월 13일 기준 여전히 34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1년 전보다 13조 원 이상 증가한 수치다. 많은 투자자가 여전히 대출을 받아 투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변동성이 매우 높은 최근 주식시장 상황에서 이는 투자가 아니라 도박에 가까운 행위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온다. 신자들도 주식 투자 중…신앙과 주식 관계에 대해선 “글쎄…” 투자 열풍에 합류한 것은 신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 예로 신자 청년인 A 씨는 아침 출근길 주식 관련 소식을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됐다. A 씨는 “두 달 전만 해도 수익이 50%를 넘고 있었는데, 7월 들어 코스피 지수가 폭락하면서 수익이 크게 줄었다”며 “일부 종목은 오히려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청년 신자인 B 씨는 주식 투자를 하지 않지만, 주변 지인 중 최근 투자를 시작한 사람이 많아 고민이 크다. 모임 때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는 주식이다. B 씨는 “자취를 하고 있어 여유자금이 없다”며 “그렇다고 고위험 상품을 구매하자니, 최근 큰 손해를 본 지인도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본지와 서울대교구 굿뉴스팀이 7월 1일부터 15일까지 신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톨릭 POLL’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484명의 62.8%인 304명이 현재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20대의 투자 비율이 73%로 가장 높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식 투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신앙과 크게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답변(42.1%)이 ‘신앙인으로서 지녀야 할 태도와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답변(28.9%)을 크게 웃돌았다. 또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응답이 16.5%였다. 응답자 다수가 신앙인으로서 주식 투자를 할 때의 태도와 마음가짐의 기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연결 짓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신중한 판단과 공동선 고려해야 교회는 투자 자체를 죄로 여기지는 않는다. 서울대교구 방종우 신부(야고보·가톨릭대학교 교수)는 “교회는 노동의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동시에 개인의 사유재산권과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인정하기도 한다”며 “본래 의미의 주식은 기업의 소유권 일부를 보유하는 것이고 생산 활동에 자본을 제공하는 행위이므로, 교회는 자산을 관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이 행위 자체를 죄악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황청도 바티칸 은행을 통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2022년에는 레버리지와 같은 고위험 상품이나 군수산업, 도박사업 등과 같이 교리에 어긋나는 사업을 하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만든 바 있다. 또 바티칸 은행은 올해 2월 각 기업의 활동을 사회교리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따져 종목을 선정한 ‘가톨릭 가치 기반 주식 지수’ 2종을 출시했다고 발표했다. 이 지수는 빅테크와 금융주를 포함한 중·대형주 50개 종목으로 구성됐다. 이러한 모습은 곧 교회가 주식투자 자체를 건전한 금융 활동 중 하나로 여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신앙인이라면 투자할 때 본인의 선택이 사실상 투기에 가까운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세웠는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과도하게 투자하고 있지 않은지도 살펴야 한다. 사목자들은 투자 자체보다 ‘투자의 목적과 태도’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방 신부는 “노후를 준비하고 가정을 일구기 위해, 가지고 있는 자산을 책임 있게 관리하기 위해 투자하는 것은 정당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노동의 가치가 절하되거나 투자의 결과에 지나치게 매몰된다면 큰 문제”라며 “정당한 투자는 개인과 기업의 공동 성장과 환경, 삶의 질에 대한 책임 있는 선택이 동반될 때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빚투’ 또한 그리스도교적 덕목에 비춰 볼 때 윤리적 문제가 될 수 있다. 방 신부는 “상환 능력을 초과한 대출, 투기 목적의 레버리지 등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자는 가톨릭 윤리의 핵심 덕목 중 하나인 ‘신중함’의 결여라고 볼 수 있다”며 “투자 등으로 인한 빚이 가정 혹은 개인의 생계를 위협할 정도로 커진다면 단순한 투자 판단을 넘어 공동선과 사랑의 질서를 해치게 되므로 지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발행일 2026-07-26 제3501호 12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의사조력자살, 사목적 대응 필요한 때

환자가 신체·정신·사회적 고통을 제거할 목적으로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살하는 ‘의사조력자살’(이하 조력자살)을 둘러싼 사회 여론이 허용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해외 조력자살 단체와 연결된 한국 거주자 사례도 확인되는 가운데, 조력자살은 더 이상 법과 윤리 논쟁에 머물 수 없게 됐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선택지로 떠올리는 이들을 어떻게 발견하고 동반할 것인지가 한국교회 앞의 사목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조력자살로 기울고 있는 한국 사회 국내 여론은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상당히 기울어 있다. 한국리서치가 2025년 5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른바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79%로 나타났다. 2022년 조사에서도 82%가 찬성했고, 2024년 조사에서도 제도 도입 필요성에 84%가 공감하는 등 관련 여론은 꾸준히 높은 수준을 보였다. 스위스 조력자살 단체에도 한국 거주자 회원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위스 조력자살 단체 중 하나인 디그니타스의 한국 거주 회원은 2020년 72명에서 2025년 말 144명으로 늘었다. 회원들은 디그니타스를 통해 조력자살에 관한 상담이나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998년부터 2025년까지 디그니타스를 통해 조력자살한 한국 거주자는 11명에 달한다. 디그니타스가 제공한 통계에서 국적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한국 사회 안에서도 조력자살을 현실의 선택지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음을 드러낸다. 입법 논의도 이미 시작됐다. 22대 국회에서는 2024년 7월 안규백 의원 등 11인이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대만으로는 부족하다 교회는 의사조력자살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밝혀 왔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로 죽음을 생각하는 신자나 가족이 본당을 찾아왔을 때, 교회가 어떻게 듣고 누구에게 연결할 것인지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 “죽어서는 안 된다”는 말만으로는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붙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리건주 보건당국의 「의사조력자살 허용법(Death with Dignity Act) 2025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조력자살을 선택한 이들이 밝힌 이유는 통증에만 집중돼 있지 않다. 반복적으로 많이 제시된 이유는 자율성 상실(89.0%), 삶을 즐겁게 하는 활동에 참여할 능력 저하(89.0%), 존엄성 상실(65.0%) 등이었다. 조력자살 문제는 돌봄과 관계, 의존, 존엄성에 대한 인식과 깊이 연결돼 있다. 실제 국내 사목 현장에서도 이러한 질문은 이미 제기되고 있다. 조력자살을 결심한 신자를 동반했던 한 본당신부는 “옳고 그름은 분명히 알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뚜렷하게 알기 어려웠다”며 “결국 사제 개인으로서는 만나고, 기도하고, 설득하려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며 무력감을 느꼈던 경험을 전했다. 그는 “실제 그 사람이 겪는 고통은 상상하기 어렵고 헤아릴 수 없다”며 “그분이 겪는 고통과 가족들이 지쳐 있는 상황을 보면서, 조력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이 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교회 차원의 동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조력자살 예방 위해 나선 해외교회들 해외교회는 이미 이러한 사목적 대응을 구체화하고 있다. 호주 주교회의는 모든 주에서 ‘자발적 조력사망’이 합법화된 뒤, 이를 고려하는 신자를 동반하는 사제·원목자·사목자를 위한 지침 「그리스도인의 희망으로 증언하고 동반하기(To Witness and to Accompany with Christian Hope)」를 마련했다. 이 문서는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이 교회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이를 고민하는 환자를 교회가 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환자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통증은 조절되고 있는지,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느끼는지, 완화의료의 가능성을 충분히 들었는지 살피도록 안내한다. 성사와 장례 등에 있어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다룬다. 캐나다 주교회의는 본당용 완화의료 교육 자료 「희망의 지평(Horizons of Hope)」을 마련해 생애 말기 돌봄을 본당 공동체의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완화의료, 죽음, 고통, 사별, 영적 동반을 신자들이 함께 배우고 나누도록 해 병자와 가족이 본당 안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돕는다. 토론토대교구도 완화의료 안내 자료를 본당에 배포하고, 완화의료와 호스피스 정보를 찾는 이들을 지역 자원으로 연결하는 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주교회의도 병자와 임종자를 위한 교육 자료와 본당 지도자용 자료를 제공하며, 생애 말기 돌봄을 생명문화 운동의 중요한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미국교회 내에서는 「조력자살에 관한 20가지 질문(20 Answers: End of Life Issues)」 같은 문답식 교육 자료 활용해 안락사와 조력자살, 연명의료 중단, 완화의료, 환자 권리 문제를 신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목적 대응이 필요할까 해외교회 사례는 한국교회가 앞으로 준비해 갈 사목적 응답의 참고가 된다. 조력자살을 고민하는 이가 본당을 찾아왔을 때, 본당 사목자가 참고할 초기 대응 지침, 성사와 장례에 관한 사목 기준, 생애 말기 돌봄 교육, 교구 차원의 상담·연결 창구 등의 마련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환자와 가족이 고통을 말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조력자살에 관한 정보 제공과 생명과 돌봄의 문화 형성도 중요하다. ‘존엄’이라는 말이 생명을 끊는 선택을 미화하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알리고, 신자들이 생애 말기의 생명과 돌봄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꾸준히 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조력자살에 관한 20가지 질문」 번역을 마치고, 하반기 중 출판을 계획하고 있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소장 박은호(그레고리오) 신부는 “조력자살은 통증의 문제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병들었을 때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불안,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 돌봄의 사각지대가 함께 놓여 있다”며 “교회는 돌봄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찾아내고, 본당과 가톨릭 의료기관의 자원을 연결해 의료적으로나 영적으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고통받는 사람이 ‘나는 짐이 아니다’, ‘교회가 나를 버리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6-06-28 제3497호 11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제주 해군기지 10년… ‘평화의 섬’ 향한 외침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에 자리한 제주 해군기지가 2월 26일 준공 10년을 맞았다. 추진 과정부터 준공까지 해군기지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계획대로 기지가 들어섰고 현재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해군기지 철수를 요구하며 평화를 말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교구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가 있다. 평화의 섬을 꿈꾸는 이들의 외침을 전한다. “부당한 해군기지가 사라지고, 구럼비와 바다가 본래 있던 그 모습을 되찾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곳에서 죽어가던 생명들이 살아나고, 온 세상 생명들이 평안히 살아갈 날이 오길 기도합니다.” 3월 21일 제주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는 해군기지 철수와 평화를 촉구하는 외침이 이어지고 있었다.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장 김성환 신부(콜베·예수회)를 비롯한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곳에 모여 오전 7시 ‘강정생명평화 백배’, 오전 11시 강정미사천막 생명평화미사, 정오 ‘인간 띠 잇기’ 등의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준공 10년… 다시 제주 해군기지 현장에서는 정부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거부해야 한다는 발언이 주를 이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발발한 전쟁에서 이란이 페르시아만의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중국·일본·프랑스·영국 등에 해군 파병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제주 해군기지를 다시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파병 여부에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 연장 동의안」에 포함된 단서 조항을 근거로 한 청해부대의 파병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청해부대가 파병될 경우 제주 해군기지를 모항(母港)으로 하는 구축함들이 임무에 투입되기 때문에, 제주가 전쟁에 개입될 수 있는 우려가 나온다. 센터와 강정공소,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등을 포함한 제주 시민단체들은 3월 1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트럼프가 전쟁에 한국 등 동맹국을 끌어들이면, 기동함대사령부가 있는 제주 해군기지에서 이란 인근 해상으로 파병 부대가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해군기지의 운용 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군함의 이용 목적이 아니라는 해군 측 주장과 달리, 미 해군 이지스함과 항공모함 등이 여러 차례 기항했으며, 제주 공해에는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한·미·일 연합 훈련 ‘프리덤 엣지’가 정례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이때 제주 해군기지에서 함정이 파견된다. 이는 해군기지를 해상 안전을 위한 탐색구조 훈련에 이용한다는 기존 약속과 달리 다영역 작전 훈련에 활용하는 것으로, 유사시 해군기지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이태호 센터장은 “이번 전쟁이 보여주듯 미국과 군사 분쟁이 발생하면 미국 본토가 아닌 인근 국가의 미군 시설이 공격받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는 이런 위험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공격 훈련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기를 내려놓을 때 군사적 긴장이 해소된다”며 “해군기지에 관심을 갖고 평화를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의 복음, 외침의 원동력 해군기지가 미군의 군사 목적으로 이용될 것이란 전망은 추진 과정에서부터 나왔다. 제주 민군복합항 항만시설 설계지침에 ‘항공모함 필요 수심은 CNFK(주한 미 해군) 요구를 반영해 15.2m로 확보’라는 표현이 담겨 해군기지 건설에 미 해군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2015년에는 로사 프란제티 전 주한미해군사령관이 제주 해군기지로 미군 함정을 보내길 희망한다는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밖에도 해군기지 추진 과정부터 준공까지 부지 선정 절차의 정당성, 환경영향평가, 보전지역 변경, 공사 강행 과정에서의 공권력 투입, 민군복합항 실효성, 행정소송 논란 등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센터와 강정마을은 적극적으로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이어왔고, 준공 이후에도 10년 동안 매일 철수를 요구해 왔다. 그럼에도 해군기지는 완공돼 벌써 10년째 운영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묻자, 주민들은 ‘복음’을 이유로 들었다. 복음이 있기에 순간을 살며 평화를 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교구 서귀복자본당 강정공소 정선녀(잔다르크) 회장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이사 2,4),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와 같이 평화를 말하는 복음이 원동력”이라며 “일상의 투쟁이 무척 힘들지만 그 안에서 봉헌하는 생명평화미사에서 버틸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 이태헌(베드로 다미아노) 씨도 “오직 평화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평화의 섬으로의 회심 “군대가 떠남으로써 파괴된 자연과 평화가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강정마을이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 과정을 지켜보고 공부하는 곳이 되길 희망합니다.” 정선녀 회장은 제주가 ‘평화의 섬’이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해군기지 철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주 모슬포의 ‘알뜨르 비행장’은 해군기지 철수 이후 참고해야 할 사례로 거론된다.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중일전쟁을 위해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건설한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 전투기가 출격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아픈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다크투어리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군사 시설이 평화의 장소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태호 센터장은 “해군기지도 폐쇄된다면 알뜨르 비행장처럼 제주가 패권 경쟁에 동원됐던 과거에서 어떻게 평화의 섬으로 회귀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를 구현하려면 교회의 평화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를 위해 센터는 평화 순례, 이냐시오 영신수련 피정, 비폭력 대화 프로그램 등 제주 역사와 문화에 맞춘 다양한 교육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제주 4·3 사건,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제주 제2공항 문제 등과 연계한 교육도 진행하며 보편적인 평화 실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성환 신부는 “성경이 전하는 ‘샬롬’은 개인의 마음만이 아니라 이웃과 다른 국가, 자연과의 평화를 포함하는 통합적 개념”이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는 ‘정당한 전쟁’이 아니라 무기를 내려놓는 ‘정당한 평화’를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공 10년이 지났지만, 센터와 강정마을은 평화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샬롬’의 외침이 다시 울려 퍼져야 할 자리에서, 이들은 오늘도 제주 해군기지를 바라보며 백배를, 미사를 봉헌한다.

발행일 2026-04-05 제3485호 16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2026년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통계청에 따르면 만 15세 이상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110만 명에 달하며, 여기에 정확한 집계가 어려운 미등록 이주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규모는 15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대중의 시선은 물론, 이주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제도와 행정조차 그들을 단지 ‘값싼 노동력’으로 보는 현실이 문제로 지적된다. 2026년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과,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짚어본다. 유학생 노동자도, 공장 노동자도 불안한 지위 여전 2025년 10월, 대구의 한 공단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베트남 출신 뚜안 씨가 단속을 피해 달아나던 중 추락해 숨졌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유학생이었다. 그해 2월에는 전남 나주의 한 벽돌 공장에서 31세 스리랑카인 노동자가 한국인 동료들에게 지게차에 결박당한 채 끌려다니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안겼다. 최근의 이 두 사건은 서로 양상이 다르지만, 한국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의지할 곳이 없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뚜안 씨 사망사고는 국내에 유학 온 외국인이 등록금을 벌려고 해도 합법적으로 취업할 곳이 극히 제한적임을 알렸고, 정부가 ‘약자 중의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토끼몰이식 단속을 하며 과도한 압박과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다는 비판을 일게 했다. 벽돌 공장 사건은 인권유린을 당하는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와 같은 제도에 발 묶여 인권유린을 당해도 자유롭게 신고하거나 사업장을 떠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는 지난해 7월 24일 일명 벽돌 공장 사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 외에도) 영암군 돼지 축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 출신 청년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행과 괴롭힘 사건,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부당해고 사건 등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이 반인권적 처사, 반노동적 행태에 고통받는 모습에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더 심한 부당대우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인권 침해 사례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25년 4월과 9월, 외국인을 고용한 취약 사업장 196곳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벌인 결과, 폭행·차별적 대우·장시간 노동·휴게 및 휴일 미부여 등 총 846건의 위법 행위를 적발했다.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인식은 사업주의 잦은 임금체불로도 이어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3년 발표한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 실태 및 구제를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피해 비율은 내국인 노동자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이는 3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가로막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 이보람 이주인권팀장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근절대책 토론회’에서 “위원회가 임금체불 피해 경험이 있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외국인 비중이 높은 사업장일수록, 한국어를 잘 못 하는 노동자일수록 체불 문제가 심각하다는 응답이 나왔다”며 “특히 미등록인 경우 체불 경험이 더 높았다”고 전했다. ‘외국인’ 그리고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임금체불 위험에 더 노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하는 교회, 제도 개선 목소리도 높아져 레오 14세 교황은 지난해 9월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맞아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공동체들은 희망의 생생한 증거이며, 이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지닌 존엄성을 인정받는다는 약속이 이뤄지리라는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교회는 인간 존엄성에 기초해 이주민, 이주노동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한다. 이주민과 국민 모두 한 인간으로서 동등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는 2025년 12월 24일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를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봉헌했다. 단속을 피하다 추락사한 뚜안 씨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예수회 사제들은 이 미사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존중받지 못하고 법과 제도 앞에서 늘 불안정한 이들’을 향한다며 유가족과 이주민들을 위로했다. 한국 교회는 매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행사를 지내며, 이주민을 단지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한 형제요 자매’로 바라보는 신앙적 시선을 확산시키고 있다. 전국 교구의 이주사목 유관 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상담실을 운영하며, 임금체불과 사업장 이동, 산재 사고, 강제 출국 등에 관한 법률 상담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몇몇 교구는 본당을 중심으로 한국인 신자와 이주노동자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식사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며 ‘공동체 교회’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장벽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보호받지 못한 채 고립될 수밖에 없다. 사업장 변경을 노동자의 자유가 아닌 허가제로 제한하는 현행 고용허가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는 최소한의 인권 보호조차 보장하지 않는 행정 관행 등은 구조적 개선 없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교회의 바람대로, 이주노동자들이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와 함께, 제도의 근본적인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말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제도 안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터뷰] ‘김포이웃살이’ 담당 김주찬 신부, “도구가 아닌 사람…인간다운 생활 보장해야” ”함께 지내던 한 필리핀 출신 청년이 어느 날 일하다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어요. 고향의 가족에게 말도 못하고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나중에는 ‘난 괜찮다. 하느님 안에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더군요.“ 김주찬 신부(알베르토·예수회)는 2021년부터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를 담당하며 낯선 땅 한국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해 오고 있다. 김 신부는 “그간 임금체불 피해를 당한 이주노동자 40여 명이 사업자로부터 밀린 임금을 받도록 도왔는데, 그 금액이 3억 원을 웃돈다”고 말했다. 그만큼 임금체불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김 신부는 국내 환경과 제도가 모두 이주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애초에 임금체불 등에 취약한 하도급 업체에서 주로 일하는 데다 각종 불이익을 당해도 고용허가제 때문에 사업장 이동이 쉽지 않고, 퇴사 후 3개월 이내에 이직하지 않으면 미등록 이주민이 돼버린다”고 설명했다. 김 신부는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이 한국에서 어떤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조차 모른다”며 “한국인들도 국내 법률들을 어려워하는데, 이주노동자가 모국어가 아닌 법 내용을 알 턱이 없다”고 했다. 김포이웃살이는 이런 어려움을 고려해 2023년부터 지금까지 총 6개 국어로 번역한 국내 노동법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김 신부는 “외국인들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며 “한국인이 가기를 꺼리는 공장, 제조업 등 일명 3D 업종에 인력이 부족하다며 이주노동자들을 데려와 놓고 정작 인간다운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도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오해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심지어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분 중에도 더러 있다”면서 “외국인이 국내 일자리를 뺏는다면 왜 국가가 정책까지 만들어가며 이주노동자를 받고 있겠냐”고 반문했다. 김 신부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제도와 인식의 점진적인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는 “고의·상습적인 임금체불을 ‘절도죄’로 다루는 정책 제안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법과 제도라는 게 한 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조금씩 개선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 자체가 교회가 중요시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러므로 인간을 국민이 아니라고 해서 인격체가 아니라 도구로만 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회가 지향하는 것은 결국 ‘인간성(humanity)’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강생의 신비도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가를 보여주는 것이죠. 이주노동자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다르지 않습니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11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가난한 이들의 주거문제

집은 인권이다. 인간은 누구나 적절한 주택에서 살 권리가 있다. 2015년 제정된 주거기본법 2조에는 “국민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2018년 9월 현재, 우리나라 국민은 제대로 된 주거권을 보장받고 있는가? 인간의 의식주 문제 중 적어도 집은 가장 가격이 비싸고 문턱이 높은 난제다. 소득불균형이 심해지는 만큼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은 더욱 해결하기 힘들어진다. 오늘날 가난한 이들의 주거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거리에서 누워자고 있는 한 노숙인.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주거빈민의 고통 올 여름 111년 만의 폭염은 특히 주거취약계층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 서울시 동자동, 돈의동 등의 쪽방 주민들은 수은주가 37도까지 올라가도 5㎡(1.5평) 크기 방안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보급품으로 나온 생수를 마시며 가만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망자도 여럿 나왔다. 용산주민센터에 따르면 동자동에서 발생한 변사자 수는 올 여름에만 7명이라고 한다. 특히 거동이 불편하거나 나이가 많으면 폭염에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5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지역거점병원에서 온열질환자 판정을 받고 사망한 48명만 폭염 사망자로 분류했다. 지난해 8명의 6배에 달하는 수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폭염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한여름에서 벗어났지만, 곧 겨울이 찾아온다. 쪽방 주민들로서는 낡은 판자로 동장군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주거빈곤가구 아동 문제도 심각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 7월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하방, 옥탑방을 비롯해 컨테이너박스, 비닐하우스 등 주택이 아닌 형태의 집에서 사는 19세 이하 아동은 전체의 9.7%인 94만4104명에 달한다. 아이들은 낡은 구조물에 다치기도 하고, 감전 위험을 비롯해 곰팡이 등 비위생적 환경에 노출돼 있다. 현행 주거기본법의 최저주거기준도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없다. 최저주거기준에는 면적, 필요한 방의 수, 부엌과 화장실 등이 명시돼 있을 뿐, 아이들에 대한 구체적 조항이 없고 강제력도 없다. 정부는 대책을 내놓기는 했다. 아동이 있는 빈곤가구에 저렴한 공공임대를 우선 공급하고, 소년·소녀가장 등 보호대상 아동에게는 전세임대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의 주거복지이행안을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은 첫 단계이므로 위험 앞에 놓인 아이들을 당장 구하지는 못한다. ■ 가난한 이에 대한 가르침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기본 생존권으로서 의식주에 관한 권리를 지닌다고 분명히 밝힌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모든 인간은 생존, 육신 전체, 생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있으며, 특히 양식, 의복, 주거, 숙식 등에 관한 권리가 있고 의사들의 치료와 그 외 정당한 사회적 봉사 등을 받을 권리가 있다”(11항)고 가르친다. 성경은 루카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노력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어려움에 처한 이에게 조건 없는 자비를 베푸는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면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라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이 가진 자들로부터 무력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날,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복음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 구성원의 많은 이들은 이것이 ‘남의 일’이라 생각한다. ■ 한국의 빈민사목 한국교회에는 전국 교구 중 서울대교구와 부산교구 두 곳에 빈민사목위원회가 있다. 부산교구는 1994년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물만골 공부방’을 만들면서 빈민사목 활동을 본격화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1987년 상계동 철거민과 연대한 것을 계기로 창립됐다. 지난해 30주년을 보내고 올해 40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서울 빈민사목위원회는 이제 ‘선교본당’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금호1가동, 무악동, 봉천3동, 삼양동, 장위1동 등 서울 5곳 빈민지역에 선교본당을 세웠다. 선교본당들은 신자·비신자 구분을 떠나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공소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빈민사목위원회는 특히 쪽방 등에 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주거대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위원장 나승구 신부는 “우리가 당장 이분들에게 좋은 집을 마련해주는 식으로 도울 순 없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다가서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형태를 선택할 수 없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이웃이 돼 주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라고 나 신부는 강조한다. “정부 정책도 장애인이나 노숙자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모든 이가 각자 처한 상황에서 참된 인간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우리가 촛불을 들었던 당시 마음에도 ‘차별과 배제가 없는 세상’을 향한 염원이 바탕에 깔려 있었죠.”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 “가진 자가 더 가지려 한다면 가난한 이웃이 설 곳은 없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지구, 이 땅은 인류 공동의 소유입니다. 어떻게 몇몇 개인들에게 속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공개념이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독점한다면 가난한 이들은 어디에 살며, 어떻게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겠습니까.”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나승구 신부는 가톨릭신자들부터 인식이 변화된다면 주거빈민 문제 해결이 빨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신자들이 시야를 넓혀 가난한 이들을 실질적으로 돌보는 데 지금이라도 앞장서야 한다고 당부한다. “우리가 돌봐야 할 이웃이 신자에 국한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사랑’ 계명을 지키려면 가난한 모든 이들에게 이웃 그 자체가 돼줘야 합니다.” 올해 출범 31년을 맞은 빈민사목위원회는 40년을 바라보며 10년의 주제를 ‘이웃이 되어 준 사람’으로 정했다. 빈민사목은 곧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통해 얻은 영적인 힘으로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중요한 사목이라는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좋은 구조가 이미 교회에 있잖아요. 구역·반을 중심으로 신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말벗이 돼 주는 것만으로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결국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죠. 우리는 그동안 너무 영적인 신앙생활에만 치중해 정작 이웃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요?”

발행일 2018-09-02 제3110호 20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인공지능과 종교

언제부터인지 이른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AI)이 화두가 됐다. 사람이 가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려 따라 다니는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 이야기가 아니다. “1970년대에 유행했던 액션 영화를 보여줘!”라고 말하면 대형 화면에 영화 제목이 떠오르고 “왼쪽에서 세 번째 보여줘!”라고 하면 해당 영화가 시작되는 편리한 기기를 말하는 것만도 아니다. AI는 세계 최고수준의 바둑기사를 가뿐하게 이긴 ‘알파고’ 등장 이후, 인간의 능력과 존재 의미 자체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초인적 기계를 지칭한다. 심지어 이제는 인간을 능가해 인간의 숭배를 받는 신의 자격까지도 부여받을지 모르는 또 다른 존재를 의미한다. 인공지능과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가상장면. 인공지능 시대에 종교는 인공지능이 제기하는 도전에 대해 이제 막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 또 다른 인류, 인공지능 혹은 로봇 인공지능 로봇은 이제 시민권을 부여받거나 인간을 능가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지난해 10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 로봇 소피아에게 세계 최초로 시민권을 부여했다. 소피아는 홍콩의 로봇 관련 기업 핸슨 로보틱스가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으로, 인간의 62가지 감정을 얼굴 표정으로 나타내고 실시간으로 인간과 대화를 나눈다고 알려졌다. 소피아는 올해 1월 한국을 방문해 한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시부야 미라이라는 이름을 가진 7살 소년이 공식적으로 일본 영토 안에 거주할 수 있는 영주권을 받았다. 사진 찍기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취미라는 미라이는 인공지능 소년이다. 단순한 에피소드와 호기심의 대상에 그칠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에 인격이 부여되고 시민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에 하나의 인격을 부여했다는 점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인공지능에 신의 자리를 부여하기도 했다. 구글 출신의 컴퓨터 엔지니어 앤서니 레반도브스키는 지난해 11월 ‘미래의 길’(Way of the Future)이라는 교회를 설립했다. 이 교회의 성직자이자 최고 경영자를 자처하는 레반도브스키는 “이 교회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탄생한 인공지능을 신으로 받아들여 숭배한다”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에 비해 수십억 배 더 현명한 존재라면 신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인공지능, 재앙 또는 축복 어떤 논란이 이어지든 간에 인공지능의 발달이 미래 인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 석학들 간에도 인공지능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 의견이 모두 존재한다.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공지능에 대한 지극히 회의적인 경고를 한 바 있다. 그는 올해 초 인공지능의 발달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우려하면서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든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대재앙을 빚지 않도록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인공지능의 막강한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로 인한 사회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제3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확산으로 기존의 직업들 대부분이 사라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예견했다.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인공지능의 무한 개발이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그는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해 상당한 정도의 규제가 필요한데, 특히 각종 무기 개발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인공지능은 인류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는 막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인공지능의 개발을 반대하거나 종말론적인 예측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로봇이 내리는 축복 종교계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을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6월, 종교개혁의 성지이자 마르틴 루터의 고향인 독일 비텐베르크에서는 한 여성이 은행 ATM 기계를 개조해 만든 로봇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터치스크린이 있는 가슴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두 팔, 머리 등으로 만들어진 ‘BlessU-2’(블레스유투)라는 이름의 이 로봇은 사람들에게 짤막한 성경 구절을 읊어주고 축복을 전했다. 엔지니어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알렉산더 비데킨드 클라인이 종교개혁 500주년 전시회에 맞춰 개발한 로봇이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당대에는 신기술이었던 인쇄술의 혁명을 바탕으로 유럽 전역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처럼, 기술의 진보가 미래 교회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로봇이 성직자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전시회 주최 측은 다만 “축복은 무엇인지? 누가 축복을 할 수 있는지? 혹은 하느님은 로봇을 통해서 축복을 내려줄 수 있는지? 등의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 인공지능 시대의 신학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인공지능의 승리로 이어진 2016년 일단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과학자들과 만나 ‘인공지능 시대의 신학’을 주제로 논의했다. 한신대 신학연구소가 마련한 이 토론회에서 인지과학자 이경민 서울대 교수는 알파고가 한국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을 이긴 것을 “인류에 대한 위협이나 도전으로 볼 것이 아니라 경축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무차별적인 인공지능 발달은 우려할 만하지만 결국 실천적 결정들은 인간의 몫이라는 취지에서다. 논평에 나선 전철 한신대 신학대학원 교수는 ‘기술적 지능’에 국한된 인공지능의 능력을 인간의 ‘종합적, 수행적 지능’과 비교하면서 “기술과 자본, 과학문명과 윤리, 과학과 종교에 대한 더욱더 진일보된 신학적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청립 과학원(Pontifical Academy of Sciences)은 같은 해 12월 1일, ‘인공지능의 힘과 한계’를 주제로 국제회의를 열었다. 이 학술회의는 인공지능과 관련된 과학적 성과를 검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성과를 인류 사회와 인간 존엄성의 수호를 위한 노력과 연결시키기 위해 마련한 장이다. 학술회의에서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인공지능이 인류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벨기에 나뮈르 대학교 도미니크 램버트 교수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윤리적, 인류학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램버트 교수는 “도덕적 결정 등 결코 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수 없는 과업들이 존재한다”면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존재의 고유한 위상을 지키고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종교는 인공지능이 제기하는 도전에 대해서 본격적인 고민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신학은 인공지능이 인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와 함께,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존재의 가치와 존엄성, 고유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발행일 2018-05-13 제3094호 19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복지 사각지대’ 속 독거노인의 삶

독거노인이 ‘고독사’했다는 소식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은, 가난과 외로움을 견디는 독거노인들이 더욱 힘겹게 버텨내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회와 단절된 독거노인들은 무관심 속에서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연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 속에서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봤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65세 이상 1인가구는 127만3169명(2015년 기준)으로, 전체 노인 인구 중 18.6%가 ‘독거노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인복지는 대부분 여가복지가 주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독거노인을 전담하는 시설을 만들 법적 근거도 미약해 아직은 관련 시설을 찾아보기 어렵다. “할머니! 어떻게 지내세요! 불편하신 데는 없어요?” 윤문자 수녀(성남시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센터장)가 집을 방문하자 김(안나・81) 할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관절염, 심장질환 등으로 몸 이곳저곳이 아파 거동이 편하지 않은데도, 버선발로 문을 열고 나와 윤 수녀를 맞이한다. 평소 안나 할머니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때문에 안나 할머니에겐 매주 방문해 안부를 물어주는 성남시독거노인종합센터 직원을 만나는 것이 삶의 기쁨 중 하나다. “좋죠. 너무 좋아요. 이야기도 들어주고 필요한 것도 챙겨주고.” 일주일에 한번 방문하는 센터 직원과 안부를 묻는 전화는 할머니와 사회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생활고를 견디게 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하다. 안나 할머니는 14년 전 남편을 잃고 홀로 생활해왔다. 전 부인이 낳은 자식들을 평생 채소를 팔아 정성껏 키웠지만, 남편이 죽고 나자 연락을 끊었다. 당장 한 끼 먹을 것조차 없는 가난이 안나 할머니 앞에 닥쳤지만,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연금에서도 공과금 등을 빼고 나면 생활비로 쓰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만 남았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면 생활비라도 받을 수 있지만, 부양의무자인 자녀들의 소득과 재산이 있어 그마저도 탈락했다. 일을 하고 싶었지만, 늙고 오랜 노동으로 몸도 성치 않은 할머니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기댈 곳 없을 때 도움의 손길을 뻗어 준 곳이 센터다. 안나 할머니는 센터에서 지원해주는 식료품과 생필품으로 그래도 끼니는 챙길 수 있게 됐다. “혼자 있을 때 아픈 게 제일 걱정되고, 외로운 게 제일 힘들어요.” 손(데레사・88) 할머니는 “혼자 있을 때 아플까봐 가장 불안하다”고 말한다. 체력도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서 아프기까지 하면 혼자서는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화재나 가스사고가 나거나, 하다못해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지기라도 하면 대처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자칫 죽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23일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가 1232명으로, 2011년(693명)과 비교해 5년 새 77.8% 늘어났다고 밝혔다. 무연고 사망자는 유가족이 없거나 유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사망자다. 그러한 무연고 사망자의 절반가량이 60대 이상의 노인이다. 데레사 할머니는 “그래도 센터에서 전화기와 감지센서를 달아줘서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독거노인의 안전을 위해 가스감지기, 행동감지기 등을 무상으로 설치해주고 있다. 센터는 이 감지기를 통해 등록 독거노인들의 급격한 체온변화나 가스·화재 등의 위험상황을 실시간 감지하고, 신고와 현장방문을 병행해 독거노인들의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 데레사 할머니는 지난해 12월 세례를 받았다. 평생 불교신자로 살아온 할머니가 개종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워서”였다. 데레사 할머니는 “성당에 가기 전에는 집에서만 있어 너무 외로웠다”면서 “인근 할머니들의 소개로 성당에 다니면서 교리도 배우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그래도 외로움을 많이 잊었다”고 말했다. 낮에는 성당에도 나가고 복지관이나 노인정에도 가서 사람들을 만나지만, 새벽과 밤, 폭염으로 외출이 어려울 때면 외로워도 그저 집안에만 있어야 한다. 그래도 데레사 할머니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만큼은 건강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은 찾아오는 이가 없으면 온종일 외로움에 시달려야 한다. 외로움으로 고통과 두려움까지 느끼는 환경은 우울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독거노인의 43.7%가 우울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가 생활하는 노인의 26.2%가, 자녀와 동거하는 노인의 34.9%가 우울증상을 겪는 것에 비하면 홀로 사는 노인들이 우울증을 앓는 비율이 높다. 우울정도 평균도 노인부부 4.6점, 자녀동거노인 5.6점에 비해 독거노인은 6.6점으로 높았다. 우리사회에선 아무런 도움의 손길 없이 고통 속에서 생활하는 독거노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65세 이상 1인가구는 127만3169명(2015년 기준)으로, 전체 노인 인구 중 18.6%가 ‘독거노인’이다. 노인 10명 중 2명이 ‘독거노인’인 셈이다. 게다가 독거노인의 수는 2005년 78만2708명, 2010년 106만6365명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은 올해 독거노인의 수가 151만 명, 전체노인의 21.2%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 급격히 늘어가는 독거노인들의 생활고는 생명문제로까지 이어진다. 2014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독거노인의 15.3%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12.7%가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36%)이었다. 부부거주, 자녀동거 등의 경우보다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이 높지만, 홀로 살고 있는 만큼 자살을 예방하거나 위급 상황 발생 시 대처해 줄 사람이 없다는 점이 큰 문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사회엔 이런 독거노인을 돌보기 위한 전담 복지시설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복지는 대부분 여가복지가 주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독거노인을 전담하는 시설을 만들 법적 근거도 미약해 아직은 관련 시설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노력의 하나로, 최근 경기도 성남시는 독거노인의 고독사 예방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 6월 27일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이 센터는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가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아직 안나 할머니처럼 센터의 도움을 받는 독거노인은 센터의 관할지역인 성남시의 독거노인 2만6000여 명 중 4500여 명에 불과하다. 센터를 통해 행동감지기, 가스감지기 등의 설치와 식료품, 생필품 지원, 생활관리사 파견, 상담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독거노인이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따라서 센터는 지역 내 모든 독거노인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현재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센터는 수도회 재단이 운영하는 만큼 성남지구 본당과 연계해 독거노인을 지원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성남지구 내 본당들이 소공동체, 성빈첸시오아바오로회 등을 통해 본당 내 독거노인의 복지 사각지대를 줄여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윤문자 수녀는 “주변에 지원을 못 받고 있는 독거노인이 계시다는 것을 센터에 알려주시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서 “우리 어르신들을 향한 작은 관심만 있어도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행일 2017-07-30 제3055호 11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우울한 현대인, 웃음으로 치유

현대인은 우울하다. 4명 중 1명이 현대 사회의 각박함과 고도 경쟁 속에서 평생 1번 이상의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우울한 현대인들은 웃음을 잃었다. 웃음이 주는 치유의 힘을 살펴보고, 참된 웃음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 절망을 극복하는 웃음, 풍자와 해학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특히 민초들의 삶과 문화를 설명할 때, 풍자와 해학을 빼놓을 수 없다. 풍자는 불합리한 현실을 다른 것에 빗대어 희화해 드러낸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에서 말뚝이는 양반의 허세와 비리를 거침없이 폭로한다. 관객은 박장대소하면서 마음속 한을 풀어내고, 현실을 견뎌낼 힘을 얻는다. 해학은 현실을 드러낸다는 면에서 풍자와 비슷하지만, 대상에 대한 비판보다는 호감과 연민을 자아내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동반한다. 한 예로, 흥부는 먹을 것을 얻으러 형 놀부 집에 갔다가 주걱으로 뺨을 맞는다. 비참한 상황이지만, 그는 도리어 주걱에 붙은 밥알을 떼어 먹으며 다른 뺨을 내민다. 풍자와 해학은 모두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웃음을 매개로 한다. 상담심리전문가 황미구 원장(비아·헬로스마일 심리상담센터장)은 “우리의 전통 놀이 문화 안에 배어 있는 풍자와 해학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해주었다”고 설명했다. 황 원장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웃음치유 역시 “고통스러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서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긍정심리학’의 입장에서, “자신 안에 공존하는 부정·긍정적 정서 중에서, 긍정적 정서를 이끌어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는 의지적 행위”라고 강조했다. ■ 웃음을 잃어버린 현대인들 복잡다단한 사회 속 현대인들이 겪는 심리적 좌절과 긴장, 스트레스는 풀어내기가 어려워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2001년부터 5년 주기로 ‘전국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를 실시해왔다. 그중 2016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1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우울증은 알코올과 니코틴 관련 질환을 제외하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미소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례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미소 우울증’이란 겉으로는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극도의 우울감을 느끼는 상황을 말한다. 대중적 인기에 민감한 연예인, 고객을 항상 접해야 하는 콜센터 직원이나 세일즈맨, 성과 경쟁에 내몰린 직장인들이 주로 겪는 증상이다. 홍성남 신부(서울대교구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는 현대인들, 특히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도무지 웃을 일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불안, 경기침체, 취업난, 고용불안, 양극화 등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힐링 산업’이 발전한 것도 현대인들의 이러한 정신적 위기를 드러낸다. ■ 웃음은 만병통치? ‘우울한’, 그래서 웃음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웃음치유’다. 웃음치유의 임상학적 효과는 이미 전문적인 검증을 거쳐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윌리엄 플라이 교수는 연구 결과, “웃음은 심장병 예방과 치유에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암 전문 존스 홉킨스 병원의 「정신 건강」 소책자에서는 웃음을 ‘내적 조깅’(internal jogging)이라고 정의한다. 이어 웃음이 순환기를 청소하고, 소화기를 자극하며, 혈액 순환을 돕고, 혈압을 내려주며, 근육 긴장을 완화하고, 엔돌핀 분비를 늘려, 스트레스와 긴장, 근심을 해소해주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미국 UCLA에서 75세까지 웃음과 건강에 대해 연구한 노만 카슨스 교수는 웃음을 통해 자신의 ‘강직성 척수염’을 치유했다. 이후 카슨스 교수는 웃음의 치유 효과를 연구, 「질병의 해부」(Anatomy of an Illness)라는 책도 펴냈다. 이처럼 웃음치유의 임상 효과가 증명되면서 국내에도 많은 유관 기구들이 생겨났고, 일부 대학교는 유머·웃음치유 석사학위 과정까지 개설했다. ■ 예수는 웃었을까? 성경 속에서는 예수가 미소를 지었다거나 폭소를 터뜨렸다는 표현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속성을 지니고 지상에서 사셨던 예수는 분명히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울고, 웃고, 한탄도 했을 것이다. 예수는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루카 6,21)이라며 위로와 격려를 전했다. 심지어 예수는 유다 지도자들에게서 “먹고 마시기만 한다”(루카 5,33)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웃음이 넘치는 잔치와 축제에 너그러웠다. 프랑스의 작가 디디에 드코앵은 성경 구절 하나하나를 뒤져 예수의 웃음을 찾아내고 「예수의 웃음」(Jesus le Dieu qui riait)이라는 책을 썼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복원한 ‘예수의 웃음’이지만, 전후 맥락의 타당성도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다. 실제 성경 속 예수에 관한 일화들을 곱씹어보면 풍자와 해학, 비유와 은유, 역설적인 유머가 풍부한 것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이 누가 위인가를 다툴 때, “으뜸이 꼴찌가 되리라”는 말씀, 빠질 것을 뻔히 알면서 베드로더러 물위를 걸으라고 하신 짓궂음, 간음한 여인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하고 딴청 피우듯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던 모습 등은 웃음을 자아낼 만한 장면들이다. 「웃음의 신학」을 저술한 미국 오블라띠회 리처드 G. 코트 신부는 “하느님의 유머 감각을 재인식하고, 하느님의 속성에 유머 감각을 포함시켜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웃음은 하느님의 선물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교 영성을 바탕으로 웃음치유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웃음치유사 이미숙 수녀(아가다·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는 웃음의 힘에 대한 체험을 담은 책 「그러니까 웃어요」를 통해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에 행복하다”고 전했다. 웃을 일이 있을 때만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 보면 또 다른 웃음과 행복이 온다는 말이다. 인천교구 평신도 단체인 ‘예그리나 행복아카데미’ 부대표 김효철(그레고리오·64·서울 당산동본당)씨는 “나와 하느님의 참된 관계가 웃음 안에서 이루어지고, 서로의 기쁨을 나눔으로써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지기에 웃음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부활의 영광이 우리 신앙의 목적지이기에 웃음과 기쁨은 없고 고통만 강조하는 신앙은 ‘반쪽’ 신앙”이라면서 “기쁨과 웃음의 미덕들이 신앙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남 신부는 그런 맥락에서 “전례를 포함한 신앙생활 전반에서 가톨릭교회는 지나치게 수난과 죽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며 “신앙인들이 좀 더 복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된 웃음은 희망을 간직한 이들에게만 가능하다. 웃음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부활의 영광과 환희를 향한다. ‘복음의 기쁨’을 드러내고 웃음을 생활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좌절하거나 절망에 빠지기 쉬운 시대에, 희망을 키우는 일이다.

발행일 2017-07-16 제3053호 10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재난재해 상황 속 한국교회는

넘실대는 파도 위에 부서지는 햇빛! 울창한 숲에서 콸콸콸 쏟아지는 폭포수! 여름이 다가오면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휴가지 풍경이다. 하지만 이런 풍경과 함께 여름 한편을 이루는 또 다른 모습은 홍수·태풍·폭염 같은 재난으로 무너진 삶의 터전과 일상이다. 가톨릭교회는 이런 어려움에 맞서 일상이 허물어진 이들이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습으로 이재민과 함께해오고 있다.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본지는 한국교회가 그동안 우리 사회가 겪은 재난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살피고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재난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 재난 대응에 관한 교회 가르침 재난 대응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25항에 드러난다. 「찬미받으소서」는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피해를 가난한 이들이 당한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회칙 25항은 “가난한 이들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거나 자연재해에 대처할 수 있는 자금이나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사회 복지나 사회 보장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라고 밝힌다. 또한 “우리의 형제 자매가 관련된 이 비극에 대한 우리의 부실한 대응은… 우리 이웃에 대한 책임감의 상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라고 비판하며 교회가 재난을 당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함을 강조한다. 아울러 「찬미받으소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기후 변화를 막는 데 국제적으로 연대해야 함을 강조한다. ■ 어려움에 함께해 온 한국교회 1965년 7월 25일자 본지는 수재의연금품을 모으는 광고를 실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가톨릭신문사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로, 가톨릭 언론을 활용해 한국교회가 체계적으로 재난에 대응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81년 9월 초, 태풍 ‘애그니스’가 우리나라를 강타해 126명이 사망하고 1만4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때 인성회(현재 한국 카리타스 전신)는 수해지역 복구와 이재민을 위한 성금 모금을 총괄하며 체계적으로 재난에 대응했다. 당시 인성회 최재선(폴리카르포) 사무국장은 “인성회는 재난이 발생하면 피해 상황을 조사해 각 교구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감당할 수 없는 피해 수준일 경우 국제카리타스에 긴급구호 요청을 보냈다”며 당시 인성회의 역할과 활동을 밝혔다. 또한 한국교회는 2002년 8월, 124명이 죽고 5조 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낸 태풍 ‘루사’ 때도 지역별로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본당, 교구 차원에서 생필품 지원, 피해 가옥·농지 복구에 힘을 보탰다. ■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교회는 이처럼 재난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이재민에게 생필품을 지원하고 복구에 힘을 보태는 등 재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은 재난현장에서의 효율적·전문적·체계적 대응이었다. 정성환 신부(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회장)는 2003년 9월 태풍 ‘매미’ 피해, 2007년 12월 태안 기름유출 사고, 2011년 경기도 동두천 물난리 현장에 신자들이 찾아가 복구에 참여하고 봉사자를 위한 밥차를 운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신부는 “이때 봉사자에게 연락하고 모이는 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며 “재난 대응 체계화 논의가 있었지만 행동으로 아직 옮겨지지 않은 시기”라고 평가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 정부 관계자 등이 한데 몰린 진도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은 혼란과 긴장이 뒤엉킨 공간이었다. 참사 현장을 보고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은 어떤 봉사를 어디서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해 놓은 밥이 산더미 같이 남고 빨래차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이때 현장에 있던 정성환 신부, 최기원 신부(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 회장), 정승욱 신부(당시 진도본당 주임)는 자원봉사자들이 헤매는 모습을 보고 상황이 안정되려면 한국교회가 체계를 갖춰 재난재해에 대응하고 전국적 연결망을 형성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그리고 구체적 방안을 찾아나갔다. 이후 각 교구는 재난재해 대응 담당자를 지정해 연락처를 공유하며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정성환 신부는 당시 진도에서 종교가 자원봉사 체계를 잡고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면서 “종교는 재난 상황에서 재난을 당한 이들을 위로하는 영성·심리지원 체계를 담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사회복지 실무자 연결망 공유 현재 재난재해 대응 연결망 구성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서울카리타스자원봉사센터가 주도하고 있다. 재난 대응 각 교구 담당자는 지난 4월 열린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2017년 교구 사회복지회(국), 복지전국단체 전체 실무자 연수 및 회의’에서 실무자 연락망을 만들어 공유하고 이동밥차, 이동목욕차 등 각 교구가 갖고 있는 재난재해구호 자원을 조사한 총괄표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후 전국 실무자들은 서울 명동에서 추가 모임을 열고 재난이 발생할 경우 발생지역에 상황실을 차리며 각 교구가 보유한 자원을 상황에 따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로 뜻을 모았다. 또 각 교구에서 재난재해 관련 교육이나 훈련을 실시할 경우에도 이를 전국 연결망을 통해 공유하기로 했다. ■ 태풍·홍수·폭염 대비 상황 서울지역 재난 대응을 주로 담당하는 조직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소속 평신도 봉사단체 나눔의 묵상회다. 나눔의 묵상회는 재난이 발생할 경우 카리타스 봉사단을 조직해 재난지역에 출동한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이성순(나눔의 묵상회 담당)씨는 “현재 재난현장에서 식사를 제공할 밥차에 필요한 취사용 기구, 식기 목록과 수량을 파악하고 세척을 하는 등 즉시 사용 가능하도록 재정비해 보관하고 있다. 또 재난이 발생했을 때 봉사인력이 즉시 참여할 수 있는 본당별 비상연락망을 구성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나눔의 묵상회는 2012년 7월 안동교구 공검본당에서 2박3일 동안 밥차 배식 훈련, 수지침·온열치료 등 응급 처치 훈련, 집수리와 같은 복구 훈련을 실시해 현장 활동이 가능하도록 역량강화 훈련을 하고 있다. 광주대교구 재난봉사단은 평소에는 노인이 사는 오래된 집 문턱 낮추기 봉사를 실시하며 봉사단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확인한다. 아울러 상·하반기에 재난 관련 교육을 함으로써 재난이 발생하면 즉시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중이다. 또 폭염에 취약해 여름마다 사망자가 발생하는 쪽방촌 폭염 대책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서울대교구 단중독사목위원회 소속 가톨릭사랑평화의집(소장 김남훈, 02-2277-2632)은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을 발견할 경우 주민센터나 보건소에 연계하는 방법으로 폭염 상황에 대응한다.

발행일 2017-06-11 제3048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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