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복음살이] 제주 해군기지 10년… ‘평화의 섬’ 향한 외침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에 자리한 제주 해군기지가 2월 26일 준공 10년을 맞았다. 추진 과정부터 준공까지 해군기지를 둘러싼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계획대로 기지가 들어섰고 현재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해군기지 철수를 요구하며 평화를 말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교구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가 있다. 평화의 섬을 꿈꾸는 이들의 외침을 전한다. “부당한 해군기지가 사라지고, 구럼비와 바다가 본래 있던 그 모습을 되찾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곳에서 죽어가던 생명들이 살아나고, 온 세상 생명들이 평안히 살아갈 날이 오길 기도합니다.” 3월 21일 제주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는 해군기지 철수와 평화를 촉구하는 외침이 이어지고 있었다.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장 김성환 신부(콜베·예수회)를 비롯한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곳에 모여 오전 7시 ‘강정생명평화 백배’, 오전 11시 강정미사천막 생명평화미사, 정오 ‘인간 띠 잇기’ 등의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준공 10년… 다시 제주 해군기지 현장에서는 정부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거부해야 한다는 발언이 주를 이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발발한 전쟁에서 이란이 페르시아만의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중국·일본·프랑스·영국 등에 해군 파병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제주 해군기지를 다시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파병 여부에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 연장 동의안」에 포함된 단서 조항을 근거로 한 청해부대의 파병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청해부대가 파병될 경우 제주 해군기지를 모항(母港)으로 하는 구축함들이 임무에 투입되기 때문에, 제주가 전쟁에 개입될 수 있는 우려가 나온다. 센터와 강정공소,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등을 포함한 제주 시민단체들은 3월 1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트럼프가 전쟁에 한국 등 동맹국을 끌어들이면, 기동함대사령부가 있는 제주 해군기지에서 이란 인근 해상으로 파병 부대가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해군기지의 운용 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군함의 이용 목적이 아니라는 해군 측 주장과 달리, 미 해군 이지스함과 항공모함 등이 여러 차례 기항했으며, 제주 공해에는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한·미·일 연합 훈련 ‘프리덤 엣지’가 정례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이때 제주 해군기지에서 함정이 파견된다. 이는 해군기지를 해상 안전을 위한 탐색구조 훈련에 이용한다는 기존 약속과 달리 다영역 작전 훈련에 활용하는 것으로, 유사시 해군기지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이태호 센터장은 “이번 전쟁이 보여주듯 미국과 군사 분쟁이 발생하면 미국 본토가 아닌 인근 국가의 미군 시설이 공격받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는 이런 위험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공격 훈련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기를 내려놓을 때 군사적 긴장이 해소된다”며 “해군기지에 관심을 갖고 평화를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의 복음, 외침의 원동력 해군기지가 미군의 군사 목적으로 이용될 것이란 전망은 추진 과정에서부터 나왔다. 제주 민군복합항 항만시설 설계지침에 ‘항공모함 필요 수심은 CNFK(주한 미 해군) 요구를 반영해 15.2m로 확보’라는 표현이 담겨 해군기지 건설에 미 해군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2015년에는 로사 프란제티 전 주한미해군사령관이 제주 해군기지로 미군 함정을 보내길 희망한다는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밖에도 해군기지 추진 과정부터 준공까지 부지 선정 절차의 정당성, 환경영향평가, 보전지역 변경, 공사 강행 과정에서의 공권력 투입, 민군복합항 실효성, 행정소송 논란 등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센터와 강정마을은 적극적으로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이어왔고, 준공 이후에도 10년 동안 매일 철수를 요구해 왔다. 그럼에도 해군기지는 완공돼 벌써 10년째 운영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묻자, 주민들은 ‘복음’을 이유로 들었다. 복음이 있기에 순간을 살며 평화를 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교구 서귀복자본당 강정공소 정선녀(잔다르크) 회장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이사 2,4),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와 같이 평화를 말하는 복음이 원동력”이라며 “일상의 투쟁이 무척 힘들지만 그 안에서 봉헌하는 생명평화미사에서 버틸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 이태헌(베드로 다미아노) 씨도 “오직 평화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평화의 섬으로의 회심 “군대가 떠남으로써 파괴된 자연과 평화가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강정마을이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 과정을 지켜보고 공부하는 곳이 되길 희망합니다.” 정선녀 회장은 제주가 ‘평화의 섬’이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해군기지 철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주 모슬포의 ‘알뜨르 비행장’은 해군기지 철수 이후 참고해야 할 사례로 거론된다.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중일전쟁을 위해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건설한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 전투기가 출격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는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아픈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다크투어리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군사 시설이 평화의 장소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태호 센터장은 “해군기지도 폐쇄된다면 알뜨르 비행장처럼 제주가 패권 경쟁에 동원됐던 과거에서 어떻게 평화의 섬으로 회귀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를 구현하려면 교회의 평화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를 위해 센터는 평화 순례, 이냐시오 영신수련 피정, 비폭력 대화 프로그램 등 제주 역사와 문화에 맞춘 다양한 교육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제주 4·3 사건,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제주 제2공항 문제 등과 연계한 교육도 진행하며 보편적인 평화 실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성환 신부는 “성경이 전하는 ‘샬롬’은 개인의 마음만이 아니라 이웃과 다른 국가, 자연과의 평화를 포함하는 통합적 개념”이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는 ‘정당한 전쟁’이 아니라 무기를 내려놓는 ‘정당한 평화’를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공 10년이 지났지만, 센터와 강정마을은 평화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샬롬’의 외침이 다시 울려 퍼져야 할 자리에서, 이들은 오늘도 제주 해군기지를 바라보며 백배를, 미사를 봉헌한다.

발행일 2026-04-05 제3485호 16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2026년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은?

통계청에 따르면 만 15세 이상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110만 명에 달하며, 여기에 정확한 집계가 어려운 미등록 이주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규모는 15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대중의 시선은 물론, 이주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제도와 행정조차 그들을 단지 ‘값싼 노동력’으로 보는 현실이 문제로 지적된다. 2026년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과,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짚어본다. 유학생 노동자도, 공장 노동자도 불안한 지위 여전 2025년 10월, 대구의 한 공단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베트남 출신 뚜안 씨가 단속을 피해 달아나던 중 추락해 숨졌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유학생이었다. 그해 2월에는 전남 나주의 한 벽돌 공장에서 31세 스리랑카인 노동자가 한국인 동료들에게 지게차에 결박당한 채 끌려다니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안겼다. 최근의 이 두 사건은 서로 양상이 다르지만, 한국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의지할 곳이 없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뚜안 씨 사망사고는 국내에 유학 온 외국인이 등록금을 벌려고 해도 합법적으로 취업할 곳이 극히 제한적임을 알렸고, 정부가 ‘약자 중의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토끼몰이식 단속을 하며 과도한 압박과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다는 비판을 일게 했다. 벽돌 공장 사건은 인권유린을 당하는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와 같은 제도에 발 묶여 인권유린을 당해도 자유롭게 신고하거나 사업장을 떠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는 지난해 7월 24일 일명 벽돌 공장 사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 외에도) 영암군 돼지 축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 출신 청년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행과 괴롭힘 사건,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부당해고 사건 등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이 반인권적 처사, 반노동적 행태에 고통받는 모습에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더 심한 부당대우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인권 침해 사례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25년 4월과 9월, 외국인을 고용한 취약 사업장 196곳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벌인 결과, 폭행·차별적 대우·장시간 노동·휴게 및 휴일 미부여 등 총 846건의 위법 행위를 적발했다.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인식은 사업주의 잦은 임금체불로도 이어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3년 발표한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 실태 및 구제를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피해 비율은 내국인 노동자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이는 3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가로막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 이보람 이주인권팀장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근절대책 토론회’에서 “위원회가 임금체불 피해 경험이 있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외국인 비중이 높은 사업장일수록, 한국어를 잘 못 하는 노동자일수록 체불 문제가 심각하다는 응답이 나왔다”며 “특히 미등록인 경우 체불 경험이 더 높았다”고 전했다. ‘외국인’ 그리고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임금체불 위험에 더 노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하는 교회, 제도 개선 목소리도 높아져 레오 14세 교황은 지난해 9월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맞아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공동체들은 희망의 생생한 증거이며, 이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지닌 존엄성을 인정받는다는 약속이 이뤄지리라는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교회는 인간 존엄성에 기초해 이주민, 이주노동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한다. 이주민과 국민 모두 한 인간으로서 동등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는 2025년 12월 24일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를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봉헌했다. 단속을 피하다 추락사한 뚜안 씨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예수회 사제들은 이 미사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존중받지 못하고 법과 제도 앞에서 늘 불안정한 이들’을 향한다며 유가족과 이주민들을 위로했다. 한국 교회는 매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행사를 지내며, 이주민을 단지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한 형제요 자매’로 바라보는 신앙적 시선을 확산시키고 있다. 전국 교구의 이주사목 유관 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상담실을 운영하며, 임금체불과 사업장 이동, 산재 사고, 강제 출국 등에 관한 법률 상담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몇몇 교구는 본당을 중심으로 한국인 신자와 이주노동자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식사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며 ‘공동체 교회’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장벽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보호받지 못한 채 고립될 수밖에 없다. 사업장 변경을 노동자의 자유가 아닌 허가제로 제한하는 현행 고용허가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는 최소한의 인권 보호조차 보장하지 않는 행정 관행 등은 구조적 개선 없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교회의 바람대로, 이주노동자들이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와 함께, 제도의 근본적인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 ‘같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말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제도 안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터뷰] ‘김포이웃살이’ 담당 김주찬 신부, “도구가 아닌 사람…인간다운 생활 보장해야” ”함께 지내던 한 필리핀 출신 청년이 어느 날 일하다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었어요. 고향의 가족에게 말도 못하고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나중에는 ‘난 괜찮다. 하느님 안에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더군요.“ 김주찬 신부(알베르토·예수회)는 2021년부터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를 담당하며 낯선 땅 한국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해 오고 있다. 김 신부는 “그간 임금체불 피해를 당한 이주노동자 40여 명이 사업자로부터 밀린 임금을 받도록 도왔는데, 그 금액이 3억 원을 웃돈다”고 말했다. 그만큼 임금체불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김 신부는 국내 환경과 제도가 모두 이주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애초에 임금체불 등에 취약한 하도급 업체에서 주로 일하는 데다 각종 불이익을 당해도 고용허가제 때문에 사업장 이동이 쉽지 않고, 퇴사 후 3개월 이내에 이직하지 않으면 미등록 이주민이 돼버린다”고 설명했다. 김 신부는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이 한국에서 어떤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조차 모른다”며 “한국인들도 국내 법률들을 어려워하는데, 이주노동자가 모국어가 아닌 법 내용을 알 턱이 없다”고 했다. 김포이웃살이는 이런 어려움을 고려해 2023년부터 지금까지 총 6개 국어로 번역한 국내 노동법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김 신부는 “외국인들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며 “한국인이 가기를 꺼리는 공장, 제조업 등 일명 3D 업종에 인력이 부족하다며 이주노동자들을 데려와 놓고 정작 인간다운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도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오해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심지어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분 중에도 더러 있다”면서 “외국인이 국내 일자리를 뺏는다면 왜 국가가 정책까지 만들어가며 이주노동자를 받고 있겠냐”고 반문했다. 김 신부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제도와 인식의 점진적인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는 “고의·상습적인 임금체불을 ‘절도죄’로 다루는 정책 제안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법과 제도라는 게 한 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조금씩 개선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 자체가 교회가 중요시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러므로 인간을 국민이 아니라고 해서 인격체가 아니라 도구로만 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회가 지향하는 것은 결국 ‘인간성(humanity)’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강생의 신비도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가를 보여주는 것이죠. 이주노동자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다르지 않습니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11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가난한 이들의 주거문제

집은 인권이다. 인간은 누구나 적절한 주택에서 살 권리가 있다. 2015년 제정된 주거기본법 2조에는 “국민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2018년 9월 현재, 우리나라 국민은 제대로 된 주거권을 보장받고 있는가? 인간의 의식주 문제 중 적어도 집은 가장 가격이 비싸고 문턱이 높은 난제다. 소득불균형이 심해지는 만큼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은 더욱 해결하기 힘들어진다. 오늘날 가난한 이들의 주거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거리에서 누워자고 있는 한 노숙인.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주거빈민의 고통 올 여름 111년 만의 폭염은 특히 주거취약계층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 서울시 동자동, 돈의동 등의 쪽방 주민들은 수은주가 37도까지 올라가도 5㎡(1.5평) 크기 방안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보급품으로 나온 생수를 마시며 가만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망자도 여럿 나왔다. 용산주민센터에 따르면 동자동에서 발생한 변사자 수는 올 여름에만 7명이라고 한다. 특히 거동이 불편하거나 나이가 많으면 폭염에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5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지역거점병원에서 온열질환자 판정을 받고 사망한 48명만 폭염 사망자로 분류했다. 지난해 8명의 6배에 달하는 수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폭염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한여름에서 벗어났지만, 곧 겨울이 찾아온다. 쪽방 주민들로서는 낡은 판자로 동장군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주거빈곤가구 아동 문제도 심각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 7월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하방, 옥탑방을 비롯해 컨테이너박스, 비닐하우스 등 주택이 아닌 형태의 집에서 사는 19세 이하 아동은 전체의 9.7%인 94만4104명에 달한다. 아이들은 낡은 구조물에 다치기도 하고, 감전 위험을 비롯해 곰팡이 등 비위생적 환경에 노출돼 있다. 현행 주거기본법의 최저주거기준도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없다. 최저주거기준에는 면적, 필요한 방의 수, 부엌과 화장실 등이 명시돼 있을 뿐, 아이들에 대한 구체적 조항이 없고 강제력도 없다. 정부는 대책을 내놓기는 했다. 아동이 있는 빈곤가구에 저렴한 공공임대를 우선 공급하고, 소년·소녀가장 등 보호대상 아동에게는 전세임대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의 주거복지이행안을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은 첫 단계이므로 위험 앞에 놓인 아이들을 당장 구하지는 못한다. ■ 가난한 이에 대한 가르침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기본 생존권으로서 의식주에 관한 권리를 지닌다고 분명히 밝힌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모든 인간은 생존, 육신 전체, 생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있으며, 특히 양식, 의복, 주거, 숙식 등에 관한 권리가 있고 의사들의 치료와 그 외 정당한 사회적 봉사 등을 받을 권리가 있다”(11항)고 가르친다. 성경은 루카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노력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어려움에 처한 이에게 조건 없는 자비를 베푸는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면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라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이 가진 자들로부터 무력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날,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복음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 구성원의 많은 이들은 이것이 ‘남의 일’이라 생각한다. ■ 한국의 빈민사목 한국교회에는 전국 교구 중 서울대교구와 부산교구 두 곳에 빈민사목위원회가 있다. 부산교구는 1994년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물만골 공부방’을 만들면서 빈민사목 활동을 본격화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1987년 상계동 철거민과 연대한 것을 계기로 창립됐다. 지난해 30주년을 보내고 올해 40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서울 빈민사목위원회는 이제 ‘선교본당’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금호1가동, 무악동, 봉천3동, 삼양동, 장위1동 등 서울 5곳 빈민지역에 선교본당을 세웠다. 선교본당들은 신자·비신자 구분을 떠나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공소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빈민사목위원회는 특히 쪽방 등에 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주거대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위원장 나승구 신부는 “우리가 당장 이분들에게 좋은 집을 마련해주는 식으로 도울 순 없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다가서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형태를 선택할 수 없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이웃이 돼 주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라고 나 신부는 강조한다. “정부 정책도 장애인이나 노숙자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모든 이가 각자 처한 상황에서 참된 인간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우리가 촛불을 들었던 당시 마음에도 ‘차별과 배제가 없는 세상’을 향한 염원이 바탕에 깔려 있었죠.”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 “가진 자가 더 가지려 한다면 가난한 이웃이 설 곳은 없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지구, 이 땅은 인류 공동의 소유입니다. 어떻게 몇몇 개인들에게 속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공개념이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독점한다면 가난한 이들은 어디에 살며, 어떻게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겠습니까.”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나승구 신부는 가톨릭신자들부터 인식이 변화된다면 주거빈민 문제 해결이 빨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신자들이 시야를 넓혀 가난한 이들을 실질적으로 돌보는 데 지금이라도 앞장서야 한다고 당부한다. “우리가 돌봐야 할 이웃이 신자에 국한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사랑’ 계명을 지키려면 가난한 모든 이들에게 이웃 그 자체가 돼줘야 합니다.” 올해 출범 31년을 맞은 빈민사목위원회는 40년을 바라보며 10년의 주제를 ‘이웃이 되어 준 사람’으로 정했다. 빈민사목은 곧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통해 얻은 영적인 힘으로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중요한 사목이라는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좋은 구조가 이미 교회에 있잖아요. 구역·반을 중심으로 신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말벗이 돼 주는 것만으로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결국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죠. 우리는 그동안 너무 영적인 신앙생활에만 치중해 정작 이웃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요?”

발행일 2018-09-02 제3110호 20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인공지능과 종교

언제부터인지 이른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AI)이 화두가 됐다. 사람이 가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려 따라 다니는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 이야기가 아니다. “1970년대에 유행했던 액션 영화를 보여줘!”라고 말하면 대형 화면에 영화 제목이 떠오르고 “왼쪽에서 세 번째 보여줘!”라고 하면 해당 영화가 시작되는 편리한 기기를 말하는 것만도 아니다. AI는 세계 최고수준의 바둑기사를 가뿐하게 이긴 ‘알파고’ 등장 이후, 인간의 능력과 존재 의미 자체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초인적 기계를 지칭한다. 심지어 이제는 인간을 능가해 인간의 숭배를 받는 신의 자격까지도 부여받을지 모르는 또 다른 존재를 의미한다. 인공지능과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가상장면. 인공지능 시대에 종교는 인공지능이 제기하는 도전에 대해 이제 막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 또 다른 인류, 인공지능 혹은 로봇 인공지능 로봇은 이제 시민권을 부여받거나 인간을 능가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지난해 10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 로봇 소피아에게 세계 최초로 시민권을 부여했다. 소피아는 홍콩의 로봇 관련 기업 핸슨 로보틱스가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으로, 인간의 62가지 감정을 얼굴 표정으로 나타내고 실시간으로 인간과 대화를 나눈다고 알려졌다. 소피아는 올해 1월 한국을 방문해 한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시부야 미라이라는 이름을 가진 7살 소년이 공식적으로 일본 영토 안에 거주할 수 있는 영주권을 받았다. 사진 찍기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취미라는 미라이는 인공지능 소년이다. 단순한 에피소드와 호기심의 대상에 그칠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에 인격이 부여되고 시민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에 하나의 인격을 부여했다는 점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인공지능에 신의 자리를 부여하기도 했다. 구글 출신의 컴퓨터 엔지니어 앤서니 레반도브스키는 지난해 11월 ‘미래의 길’(Way of the Future)이라는 교회를 설립했다. 이 교회의 성직자이자 최고 경영자를 자처하는 레반도브스키는 “이 교회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탄생한 인공지능을 신으로 받아들여 숭배한다”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에 비해 수십억 배 더 현명한 존재라면 신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인공지능, 재앙 또는 축복 어떤 논란이 이어지든 간에 인공지능의 발달이 미래 인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 석학들 간에도 인공지능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 의견이 모두 존재한다.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공지능에 대한 지극히 회의적인 경고를 한 바 있다. 그는 올해 초 인공지능의 발달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우려하면서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든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대재앙을 빚지 않도록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인공지능의 막강한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로 인한 사회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제3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확산으로 기존의 직업들 대부분이 사라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예견했다.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인공지능의 무한 개발이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그는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해 상당한 정도의 규제가 필요한데, 특히 각종 무기 개발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인공지능은 인류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는 막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인공지능의 개발을 반대하거나 종말론적인 예측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로봇이 내리는 축복 종교계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을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 6월, 종교개혁의 성지이자 마르틴 루터의 고향인 독일 비텐베르크에서는 한 여성이 은행 ATM 기계를 개조해 만든 로봇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터치스크린이 있는 가슴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두 팔, 머리 등으로 만들어진 ‘BlessU-2’(블레스유투)라는 이름의 이 로봇은 사람들에게 짤막한 성경 구절을 읊어주고 축복을 전했다. 엔지니어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알렉산더 비데킨드 클라인이 종교개혁 500주년 전시회에 맞춰 개발한 로봇이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당대에는 신기술이었던 인쇄술의 혁명을 바탕으로 유럽 전역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처럼, 기술의 진보가 미래 교회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로봇이 성직자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전시회 주최 측은 다만 “축복은 무엇인지? 누가 축복을 할 수 있는지? 혹은 하느님은 로봇을 통해서 축복을 내려줄 수 있는지? 등의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 인공지능 시대의 신학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인공지능의 승리로 이어진 2016년 일단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과학자들과 만나 ‘인공지능 시대의 신학’을 주제로 논의했다. 한신대 신학연구소가 마련한 이 토론회에서 인지과학자 이경민 서울대 교수는 알파고가 한국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을 이긴 것을 “인류에 대한 위협이나 도전으로 볼 것이 아니라 경축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무차별적인 인공지능 발달은 우려할 만하지만 결국 실천적 결정들은 인간의 몫이라는 취지에서다. 논평에 나선 전철 한신대 신학대학원 교수는 ‘기술적 지능’에 국한된 인공지능의 능력을 인간의 ‘종합적, 수행적 지능’과 비교하면서 “기술과 자본, 과학문명과 윤리, 과학과 종교에 대한 더욱더 진일보된 신학적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청립 과학원(Pontifical Academy of Sciences)은 같은 해 12월 1일, ‘인공지능의 힘과 한계’를 주제로 국제회의를 열었다. 이 학술회의는 인공지능과 관련된 과학적 성과를 검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성과를 인류 사회와 인간 존엄성의 수호를 위한 노력과 연결시키기 위해 마련한 장이다. 학술회의에서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인공지능이 인류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벨기에 나뮈르 대학교 도미니크 램버트 교수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윤리적, 인류학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램버트 교수는 “도덕적 결정 등 결코 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수 없는 과업들이 존재한다”면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존재의 고유한 위상을 지키고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종교는 인공지능이 제기하는 도전에 대해서 본격적인 고민을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신학은 인공지능이 인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와 함께,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존재의 가치와 존엄성, 고유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발행일 2018-05-13 제3094호 19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복지 사각지대’ 속 독거노인의 삶

독거노인이 ‘고독사’했다는 소식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은, 가난과 외로움을 견디는 독거노인들이 더욱 힘겹게 버텨내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회와 단절된 독거노인들은 무관심 속에서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연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 속에서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봤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65세 이상 1인가구는 127만3169명(2015년 기준)으로, 전체 노인 인구 중 18.6%가 ‘독거노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인복지는 대부분 여가복지가 주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독거노인을 전담하는 시설을 만들 법적 근거도 미약해 아직은 관련 시설을 찾아보기 어렵다. “할머니! 어떻게 지내세요! 불편하신 데는 없어요?” 윤문자 수녀(성남시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센터장)가 집을 방문하자 김(안나・81) 할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관절염, 심장질환 등으로 몸 이곳저곳이 아파 거동이 편하지 않은데도, 버선발로 문을 열고 나와 윤 수녀를 맞이한다. 평소 안나 할머니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때문에 안나 할머니에겐 매주 방문해 안부를 물어주는 성남시독거노인종합센터 직원을 만나는 것이 삶의 기쁨 중 하나다. “좋죠. 너무 좋아요. 이야기도 들어주고 필요한 것도 챙겨주고.” 일주일에 한번 방문하는 센터 직원과 안부를 묻는 전화는 할머니와 사회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생활고를 견디게 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하다. 안나 할머니는 14년 전 남편을 잃고 홀로 생활해왔다. 전 부인이 낳은 자식들을 평생 채소를 팔아 정성껏 키웠지만, 남편이 죽고 나자 연락을 끊었다. 당장 한 끼 먹을 것조차 없는 가난이 안나 할머니 앞에 닥쳤지만,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연금에서도 공과금 등을 빼고 나면 생활비로 쓰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만 남았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면 생활비라도 받을 수 있지만, 부양의무자인 자녀들의 소득과 재산이 있어 그마저도 탈락했다. 일을 하고 싶었지만, 늙고 오랜 노동으로 몸도 성치 않은 할머니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기댈 곳 없을 때 도움의 손길을 뻗어 준 곳이 센터다. 안나 할머니는 센터에서 지원해주는 식료품과 생필품으로 그래도 끼니는 챙길 수 있게 됐다. “혼자 있을 때 아픈 게 제일 걱정되고, 외로운 게 제일 힘들어요.” 손(데레사・88) 할머니는 “혼자 있을 때 아플까봐 가장 불안하다”고 말한다. 체력도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서 아프기까지 하면 혼자서는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화재나 가스사고가 나거나, 하다못해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지기라도 하면 대처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자칫 죽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23일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가 1232명으로, 2011년(693명)과 비교해 5년 새 77.8% 늘어났다고 밝혔다. 무연고 사망자는 유가족이 없거나 유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사망자다. 그러한 무연고 사망자의 절반가량이 60대 이상의 노인이다. 데레사 할머니는 “그래도 센터에서 전화기와 감지센서를 달아줘서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독거노인의 안전을 위해 가스감지기, 행동감지기 등을 무상으로 설치해주고 있다. 센터는 이 감지기를 통해 등록 독거노인들의 급격한 체온변화나 가스·화재 등의 위험상황을 실시간 감지하고, 신고와 현장방문을 병행해 독거노인들의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 데레사 할머니는 지난해 12월 세례를 받았다. 평생 불교신자로 살아온 할머니가 개종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워서”였다. 데레사 할머니는 “성당에 가기 전에는 집에서만 있어 너무 외로웠다”면서 “인근 할머니들의 소개로 성당에 다니면서 교리도 배우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그래도 외로움을 많이 잊었다”고 말했다. 낮에는 성당에도 나가고 복지관이나 노인정에도 가서 사람들을 만나지만, 새벽과 밤, 폭염으로 외출이 어려울 때면 외로워도 그저 집안에만 있어야 한다. 그래도 데레사 할머니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만큼은 건강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은 찾아오는 이가 없으면 온종일 외로움에 시달려야 한다. 외로움으로 고통과 두려움까지 느끼는 환경은 우울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독거노인의 43.7%가 우울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가 생활하는 노인의 26.2%가, 자녀와 동거하는 노인의 34.9%가 우울증상을 겪는 것에 비하면 홀로 사는 노인들이 우울증을 앓는 비율이 높다. 우울정도 평균도 노인부부 4.6점, 자녀동거노인 5.6점에 비해 독거노인은 6.6점으로 높았다. 우리사회에선 아무런 도움의 손길 없이 고통 속에서 생활하는 독거노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65세 이상 1인가구는 127만3169명(2015년 기준)으로, 전체 노인 인구 중 18.6%가 ‘독거노인’이다. 노인 10명 중 2명이 ‘독거노인’인 셈이다. 게다가 독거노인의 수는 2005년 78만2708명, 2010년 106만6365명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은 올해 독거노인의 수가 151만 명, 전체노인의 21.2%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 급격히 늘어가는 독거노인들의 생활고는 생명문제로까지 이어진다. 2014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독거노인의 15.3%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12.7%가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36%)이었다. 부부거주, 자녀동거 등의 경우보다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이 높지만, 홀로 살고 있는 만큼 자살을 예방하거나 위급 상황 발생 시 대처해 줄 사람이 없다는 점이 큰 문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사회엔 이런 독거노인을 돌보기 위한 전담 복지시설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복지는 대부분 여가복지가 주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독거노인을 전담하는 시설을 만들 법적 근거도 미약해 아직은 관련 시설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노력의 하나로, 최근 경기도 성남시는 독거노인의 고독사 예방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 6월 27일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이 센터는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가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아직 안나 할머니처럼 센터의 도움을 받는 독거노인은 센터의 관할지역인 성남시의 독거노인 2만6000여 명 중 4500여 명에 불과하다. 센터를 통해 행동감지기, 가스감지기 등의 설치와 식료품, 생필품 지원, 생활관리사 파견, 상담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독거노인이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따라서 센터는 지역 내 모든 독거노인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현재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센터는 수도회 재단이 운영하는 만큼 성남지구 본당과 연계해 독거노인을 지원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성남지구 내 본당들이 소공동체, 성빈첸시오아바오로회 등을 통해 본당 내 독거노인의 복지 사각지대를 줄여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윤문자 수녀는 “주변에 지원을 못 받고 있는 독거노인이 계시다는 것을 센터에 알려주시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서 “우리 어르신들을 향한 작은 관심만 있어도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행일 2017-07-30 제3055호 11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우울한 현대인, 웃음으로 치유

현대인은 우울하다. 4명 중 1명이 현대 사회의 각박함과 고도 경쟁 속에서 평생 1번 이상의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우울한 현대인들은 웃음을 잃었다. 웃음이 주는 치유의 힘을 살펴보고, 참된 웃음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 절망을 극복하는 웃음, 풍자와 해학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특히 민초들의 삶과 문화를 설명할 때, 풍자와 해학을 빼놓을 수 없다. 풍자는 불합리한 현실을 다른 것에 빗대어 희화해 드러낸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에서 말뚝이는 양반의 허세와 비리를 거침없이 폭로한다. 관객은 박장대소하면서 마음속 한을 풀어내고, 현실을 견뎌낼 힘을 얻는다. 해학은 현실을 드러낸다는 면에서 풍자와 비슷하지만, 대상에 대한 비판보다는 호감과 연민을 자아내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동반한다. 한 예로, 흥부는 먹을 것을 얻으러 형 놀부 집에 갔다가 주걱으로 뺨을 맞는다. 비참한 상황이지만, 그는 도리어 주걱에 붙은 밥알을 떼어 먹으며 다른 뺨을 내민다. 풍자와 해학은 모두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웃음을 매개로 한다. 상담심리전문가 황미구 원장(비아·헬로스마일 심리상담센터장)은 “우리의 전통 놀이 문화 안에 배어 있는 풍자와 해학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해주었다”고 설명했다. 황 원장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웃음치유 역시 “고통스러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서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긍정심리학’의 입장에서, “자신 안에 공존하는 부정·긍정적 정서 중에서, 긍정적 정서를 이끌어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는 의지적 행위”라고 강조했다. ■ 웃음을 잃어버린 현대인들 복잡다단한 사회 속 현대인들이 겪는 심리적 좌절과 긴장, 스트레스는 풀어내기가 어려워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2001년부터 5년 주기로 ‘전국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를 실시해왔다. 그중 2016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1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우울증은 알코올과 니코틴 관련 질환을 제외하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미소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례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미소 우울증’이란 겉으로는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극도의 우울감을 느끼는 상황을 말한다. 대중적 인기에 민감한 연예인, 고객을 항상 접해야 하는 콜센터 직원이나 세일즈맨, 성과 경쟁에 내몰린 직장인들이 주로 겪는 증상이다. 홍성남 신부(서울대교구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는 현대인들, 특히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도무지 웃을 일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불안, 경기침체, 취업난, 고용불안, 양극화 등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힐링 산업’이 발전한 것도 현대인들의 이러한 정신적 위기를 드러낸다. ■ 웃음은 만병통치? ‘우울한’, 그래서 웃음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웃음치유’다. 웃음치유의 임상학적 효과는 이미 전문적인 검증을 거쳐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윌리엄 플라이 교수는 연구 결과, “웃음은 심장병 예방과 치유에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암 전문 존스 홉킨스 병원의 「정신 건강」 소책자에서는 웃음을 ‘내적 조깅’(internal jogging)이라고 정의한다. 이어 웃음이 순환기를 청소하고, 소화기를 자극하며, 혈액 순환을 돕고, 혈압을 내려주며, 근육 긴장을 완화하고, 엔돌핀 분비를 늘려, 스트레스와 긴장, 근심을 해소해주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미국 UCLA에서 75세까지 웃음과 건강에 대해 연구한 노만 카슨스 교수는 웃음을 통해 자신의 ‘강직성 척수염’을 치유했다. 이후 카슨스 교수는 웃음의 치유 효과를 연구, 「질병의 해부」(Anatomy of an Illness)라는 책도 펴냈다. 이처럼 웃음치유의 임상 효과가 증명되면서 국내에도 많은 유관 기구들이 생겨났고, 일부 대학교는 유머·웃음치유 석사학위 과정까지 개설했다. ■ 예수는 웃었을까? 성경 속에서는 예수가 미소를 지었다거나 폭소를 터뜨렸다는 표현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속성을 지니고 지상에서 사셨던 예수는 분명히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울고, 웃고, 한탄도 했을 것이다. 예수는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루카 6,21)이라며 위로와 격려를 전했다. 심지어 예수는 유다 지도자들에게서 “먹고 마시기만 한다”(루카 5,33)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웃음이 넘치는 잔치와 축제에 너그러웠다. 프랑스의 작가 디디에 드코앵은 성경 구절 하나하나를 뒤져 예수의 웃음을 찾아내고 「예수의 웃음」(Jesus le Dieu qui riait)이라는 책을 썼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복원한 ‘예수의 웃음’이지만, 전후 맥락의 타당성도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다. 실제 성경 속 예수에 관한 일화들을 곱씹어보면 풍자와 해학, 비유와 은유, 역설적인 유머가 풍부한 것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이 누가 위인가를 다툴 때, “으뜸이 꼴찌가 되리라”는 말씀, 빠질 것을 뻔히 알면서 베드로더러 물위를 걸으라고 하신 짓궂음, 간음한 여인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하고 딴청 피우듯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던 모습 등은 웃음을 자아낼 만한 장면들이다. 「웃음의 신학」을 저술한 미국 오블라띠회 리처드 G. 코트 신부는 “하느님의 유머 감각을 재인식하고, 하느님의 속성에 유머 감각을 포함시켜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웃음은 하느님의 선물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교 영성을 바탕으로 웃음치유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웃음치유사 이미숙 수녀(아가다·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는 웃음의 힘에 대한 체험을 담은 책 「그러니까 웃어요」를 통해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에 행복하다”고 전했다. 웃을 일이 있을 때만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 보면 또 다른 웃음과 행복이 온다는 말이다. 인천교구 평신도 단체인 ‘예그리나 행복아카데미’ 부대표 김효철(그레고리오·64·서울 당산동본당)씨는 “나와 하느님의 참된 관계가 웃음 안에서 이루어지고, 서로의 기쁨을 나눔으로써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지기에 웃음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부활의 영광이 우리 신앙의 목적지이기에 웃음과 기쁨은 없고 고통만 강조하는 신앙은 ‘반쪽’ 신앙”이라면서 “기쁨과 웃음의 미덕들이 신앙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남 신부는 그런 맥락에서 “전례를 포함한 신앙생활 전반에서 가톨릭교회는 지나치게 수난과 죽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며 “신앙인들이 좀 더 복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된 웃음은 희망을 간직한 이들에게만 가능하다. 웃음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부활의 영광과 환희를 향한다. ‘복음의 기쁨’을 드러내고 웃음을 생활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좌절하거나 절망에 빠지기 쉬운 시대에, 희망을 키우는 일이다.

발행일 2017-07-16 제3053호 10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재난재해 상황 속 한국교회는

넘실대는 파도 위에 부서지는 햇빛! 울창한 숲에서 콸콸콸 쏟아지는 폭포수! 여름이 다가오면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휴가지 풍경이다. 하지만 이런 풍경과 함께 여름 한편을 이루는 또 다른 모습은 홍수·태풍·폭염 같은 재난으로 무너진 삶의 터전과 일상이다. 가톨릭교회는 이런 어려움에 맞서 일상이 허물어진 이들이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습으로 이재민과 함께해오고 있다.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본지는 한국교회가 그동안 우리 사회가 겪은 재난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살피고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재난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 재난 대응에 관한 교회 가르침 재난 대응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25항에 드러난다. 「찬미받으소서」는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피해를 가난한 이들이 당한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회칙 25항은 “가난한 이들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거나 자연재해에 대처할 수 있는 자금이나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사회 복지나 사회 보장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라고 밝힌다. 또한 “우리의 형제 자매가 관련된 이 비극에 대한 우리의 부실한 대응은… 우리 이웃에 대한 책임감의 상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라고 비판하며 교회가 재난을 당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함을 강조한다. 아울러 「찬미받으소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기후 변화를 막는 데 국제적으로 연대해야 함을 강조한다. ■ 어려움에 함께해 온 한국교회 1965년 7월 25일자 본지는 수재의연금품을 모으는 광고를 실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가톨릭신문사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로, 가톨릭 언론을 활용해 한국교회가 체계적으로 재난에 대응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81년 9월 초, 태풍 ‘애그니스’가 우리나라를 강타해 126명이 사망하고 1만4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때 인성회(현재 한국 카리타스 전신)는 수해지역 복구와 이재민을 위한 성금 모금을 총괄하며 체계적으로 재난에 대응했다. 당시 인성회 최재선(폴리카르포) 사무국장은 “인성회는 재난이 발생하면 피해 상황을 조사해 각 교구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다. 또 우리나라에서 감당할 수 없는 피해 수준일 경우 국제카리타스에 긴급구호 요청을 보냈다”며 당시 인성회의 역할과 활동을 밝혔다. 또한 한국교회는 2002년 8월, 124명이 죽고 5조 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낸 태풍 ‘루사’ 때도 지역별로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본당, 교구 차원에서 생필품 지원, 피해 가옥·농지 복구에 힘을 보탰다. ■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교회는 이처럼 재난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이재민에게 생필품을 지원하고 복구에 힘을 보태는 등 재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은 재난현장에서의 효율적·전문적·체계적 대응이었다. 정성환 신부(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회장)는 2003년 9월 태풍 ‘매미’ 피해, 2007년 12월 태안 기름유출 사고, 2011년 경기도 동두천 물난리 현장에 신자들이 찾아가 복구에 참여하고 봉사자를 위한 밥차를 운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신부는 “이때 봉사자에게 연락하고 모이는 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며 “재난 대응 체계화 논의가 있었지만 행동으로 아직 옮겨지지 않은 시기”라고 평가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 정부 관계자 등이 한데 몰린 진도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은 혼란과 긴장이 뒤엉킨 공간이었다. 참사 현장을 보고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은 어떤 봉사를 어디서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해 놓은 밥이 산더미 같이 남고 빨래차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이때 현장에 있던 정성환 신부, 최기원 신부(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 회장), 정승욱 신부(당시 진도본당 주임)는 자원봉사자들이 헤매는 모습을 보고 상황이 안정되려면 한국교회가 체계를 갖춰 재난재해에 대응하고 전국적 연결망을 형성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그리고 구체적 방안을 찾아나갔다. 이후 각 교구는 재난재해 대응 담당자를 지정해 연락처를 공유하며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정성환 신부는 당시 진도에서 종교가 자원봉사 체계를 잡고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면서 “종교는 재난 상황에서 재난을 당한 이들을 위로하는 영성·심리지원 체계를 담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사회복지 실무자 연결망 공유 현재 재난재해 대응 연결망 구성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서울카리타스자원봉사센터가 주도하고 있다. 재난 대응 각 교구 담당자는 지난 4월 열린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2017년 교구 사회복지회(국), 복지전국단체 전체 실무자 연수 및 회의’에서 실무자 연락망을 만들어 공유하고 이동밥차, 이동목욕차 등 각 교구가 갖고 있는 재난재해구호 자원을 조사한 총괄표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후 전국 실무자들은 서울 명동에서 추가 모임을 열고 재난이 발생할 경우 발생지역에 상황실을 차리며 각 교구가 보유한 자원을 상황에 따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로 뜻을 모았다. 또 각 교구에서 재난재해 관련 교육이나 훈련을 실시할 경우에도 이를 전국 연결망을 통해 공유하기로 했다. ■ 태풍·홍수·폭염 대비 상황 서울지역 재난 대응을 주로 담당하는 조직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소속 평신도 봉사단체 나눔의 묵상회다. 나눔의 묵상회는 재난이 발생할 경우 카리타스 봉사단을 조직해 재난지역에 출동한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이성순(나눔의 묵상회 담당)씨는 “현재 재난현장에서 식사를 제공할 밥차에 필요한 취사용 기구, 식기 목록과 수량을 파악하고 세척을 하는 등 즉시 사용 가능하도록 재정비해 보관하고 있다. 또 재난이 발생했을 때 봉사인력이 즉시 참여할 수 있는 본당별 비상연락망을 구성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나눔의 묵상회는 2012년 7월 안동교구 공검본당에서 2박3일 동안 밥차 배식 훈련, 수지침·온열치료 등 응급 처치 훈련, 집수리와 같은 복구 훈련을 실시해 현장 활동이 가능하도록 역량강화 훈련을 하고 있다. 광주대교구 재난봉사단은 평소에는 노인이 사는 오래된 집 문턱 낮추기 봉사를 실시하며 봉사단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확인한다. 아울러 상·하반기에 재난 관련 교육을 함으로써 재난이 발생하면 즉시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중이다. 또 폭염에 취약해 여름마다 사망자가 발생하는 쪽방촌 폭염 대책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서울대교구 단중독사목위원회 소속 가톨릭사랑평화의집(소장 김남훈, 02-2277-2632)은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을 발견할 경우 주민센터나 보건소에 연계하는 방법으로 폭염 상황에 대응한다.

발행일 2017-06-11 제3048호 10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잘 쉬고 계십니까?

가톨릭교회는 올바른 여가가 재충전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백화점의 한 의류브랜드 매장 책임자로 일하는 김수영(가타리나·42·가명)씨에겐 이번 징검다리 연휴도 ‘그림의 떡’이다. 유통업이라는 특성상 남들이 쉴 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경기 침체로 매장 직원 수를 줄여, 잠깐이라도 매장을 비울 수가 없다. 김씨는 “연휴를 이용해 어디 놀러간다거나 집에서 편히 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그나마 백화점이 통째로 쉬는 날 하루 쉬는 게 전부”라고 한숨을 쉬었다. 게다가 김씨는 “매장에서 근무하면서 주일미사를 건너뛰는 것은 일상다반사”라고 했다. 김씨가 근무하는 백화점은 한 달에 하루 월요일에 쉰다. ■ 휴식의 의미 한국사회가 사회·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여가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국민들이 휴식과 여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5년 5월 제정된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이다. 이 법은 “여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일과 여가의 균형을 통해 국민들이 여가가 있는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정됐다. 한마디로 국민들에게 쉬라고 권고하는 법이다. 국민들에게 쉴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국가가 국민이 잘 쉴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법은 우리나라가 비로소 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주요 변화로 풀이된다. 휴식은 사전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쉬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삶은 노동과 휴식으로 이뤄진다. 노동은 인간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며, 휴식은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즉 노동과 휴식은 서로 연결돼 있다. 열심히 일을 했으면 또 잘 쉬어야 한다. 잘 쉬어 재충전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 일을 계속하기가 어렵다. 우리 인생에는 휴식이 꼭 필요하며, 중요한 일부분이다. ■ 휴식에 관한 교회 가르침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창세 2,2-3) 휴식의 기원은 창조주 하느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인간 본성 속에 있는 노동과 휴식의 교대는 창조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느님이 직접 원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쉴 것을 당부하신 바 있다. 예수님께서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주일의 성화에 관한 교황 교서 「주님의 날」(Dies Domini)에서 “휴식은 ‘거룩한’ 것”이라면서 “휴식은 인간이 때로는 너무 힘든 속세의 노동 주기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업적이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해 주기 때문”(65항)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교회는 노동으로부터의 휴식을 하나의 권리라고 강조해왔다.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듯이”, 그분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가정, 문화, 사회, 종교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휴식과 여가를 누려야 한다”(「기쁨과 희망」(Gadium et Spes) 67항)는 것이다. 휴식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데 필수요소다. ■ 올바른 휴식 경제가 발전하면서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휴식과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교회는 휴식과 여가가 “정신의 휴식 또 몸과 마음의 힘찬 건강을 위해 바르게 선용되어야 한다”(「기쁨과 희망」 61항 참조)고 강조한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김민수 신부는 “여가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표현”으로 “올바른 휴식과 여가를 위해서는 여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신부는 올바른 휴식과 여가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우선 ‘여가를 위한 여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여가를 즐기기 위해 주말에 자동차로 야외에 나갔다가 고속도로 정체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여가를 즐기는 것이 또 다른 노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올바른 여가를 위해서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유와 자아의 성장과 발견을 위한 노력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신부는 “여가가 단순히 노동을 멈추고 피로에서 회복하며 재충전하는 것을 넘어 그동안 달려온 길을 돌아보면서 성찰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신부는 올바른 여가문화를 위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꿋꿋이 지켜온 안식일 개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식일은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자기 삶을 들여다보며 그 삶을 하느님께 연결시키는 거룩한 시간이었다. 즉 휴식을 통해 하느님이 마련해주신 질서를 성찰하고 그분의 거룩함을 인식하면서, 상품화되고 왜곡된 여가문화를 비판하고 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그렇다면 어떻게 쉬는 것이 좋을까? 서울성모병원 평생건장증진센터장 김영균 교수는 잘 쉬는 방법으로 여행을 꼽는다. 김 교수는 “건강한 휴식을 갖고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혼자 떠나는 여행이 좋다”면서 “만일 가족 여행을 떠난다면 구성원 모두가 신자라는 전제하에 성지순례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여행뿐 아니라 독서, 영화 감상, 사진 촬영 등 문화생활은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어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적당한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도 육체 및 정신 건강에 좋다”고 추천했다. ■ 이웃과 함께 하는 휴식 신명기 15장엔 일곱 해 마다 빚을 탕감해주고, 가난한 이들에게 넉넉히 내어주고,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이를 놓아주라고 당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휴식을 해방으로 보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됐으며, 해방된 민족에게 휴식은 자신만을 위한 권리가 아니었다. 다른 노동자, 가축 등과 함께 나눠야 하는 대상(탈출 23,12)이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186항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필요와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난과 고생 때문에 쉴 수 없는 형제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바로 가족과 친지를 포함한 이웃들에게 시간을 내 주고, 이들을 보살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휴가가 이웃과 사회에, 그리고 생태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휴식의 권리가 보다 보편적으로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에서 “휴식의 권리는 적어도 일요일을 포함한 정기적 주간 휴식과 장기간의 휴가, 즉 1년에 한 번의 연가 또는 가능하다면 연중 수차례의 단기 휴가를 포함한다”(19항 참조)고 강조했다. 휴식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잊지 않고, 이들의 인간적 존엄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이동화 신부는 “휴식과 여가는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가고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이라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적어도 이때만이라도 더불어 이웃과 사회를 돌아보고, 우주만물과 전체 생태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행일 2017-05-07 제3043호 19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무관심한 사회… ‘외로운 죽음’이 늘고 있다

지난해 6월,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역도 금메달리스트 김병찬(46)씨의 죽음이 보도됐다. 199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던 김씨는 역도계를 떠난 후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생활하다 죽음을 맞았다. 시신은 이웃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올해 3월초 광주 쌍촌동 한 원룸에서는 혼자 살던 81세 할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 열흘 만에 발견됐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상태였다. 지난 8월에는 대전에서 하루 새 홀로 거주하던 어르신 3명이 숨진 채 이웃들에게 목격됐다. 모두 심각하게 부패가 진행된 모습이었다. 가족 친지 사회와 떨어져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맞고, 눈을 감은 뒤에도 오랫동안 시신이 방치되는, 이른바 ‘고독사’라 불리는 무관심 속의 죽음이 늘고 있다. ■ 어르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공개된 보건복지부 자료에서는 무연고 사망자 수가 2015년 경우 1245명으로 밝혀졌다. 지난 2011년 693명 대비 179%가 급증한 수치다. 연도별로 2012년 741명, 2013년 922명, 2014년 1008명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연령별로는 50대 사망자가 368명(29.6%)으로 가장 많았고, 60대 282명(22.7%), 70세 이상 267명(21.4%), 40대 172명(13.8%), 40세 미만 50명(4%) 순으로 나타났다. 성별로 따져 보면 남성이 74.8%(931명)로 여성 18%(220명)를 앞섰다. 40~50대 사망자가 전체 무연고 사망자의 절반임을 알 수 있다. 중년 남성들의 죽음은 은퇴시기에 일터를 잃고 경제적으로 고립되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혼 증가, 경제 악화로 인한 가족의 별거나 해체도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이 같은 통계 수치들은 과거 어르신들에게 집중됐던 무관심 속 죽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핵가족화, 1인 가구 현상이 증가하는 가운데 이제는 어르신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며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시급한 실정이다. ■ 고령화의 그늘, 독거 어르신의 증가 단순히 특정 연령에 국한되거나 한정되지는 않지만,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죽음을 맞는 상황은 여전히 대부분 독거 어르신들에게서 나타난다. 1인 어르신 가구의 증가는 그 주요 요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지난 7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 집계 결과’ 분석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2010년 23.9%보다 3.3% 증가한 27.2% 였다. 특히 유의해서 볼 것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증가한 1인 가구 수 중에서 44%인 43만9000가구가 60대 이상의 어르신이라는 점이다. 혼자 사는 60대 이상 인구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기대 수명의 연장, 독거 어르신들의 증가 등은 이 같은 고령층 1인 가구 비율을 더 높일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소외’는 어르신들이 홀로 죽음을 맞는 가장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다. 독거 어르신의 사회적 교류 실태를 밝힌 ‘노인돌봄기본서비스’ 2007년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가족과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가 17% 정도, 가족과 접촉을 하지 않는 경우가 22% 정도, 친구와 연락과 접촉을 하지 않는 경우가 각각 34%, 이웃과 연락 및 접촉을 하지 않는 사례가 각각 24% 정도, 26% 정도로 나타났다. 아울러 사회적 교류가 전혀 없는 노인도 27% 가량인 것으로 드러난다. 전체 독거 어르신 중 1/4 이상이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고 단절돼 있다는 의미다. ■ 연대성 높이기 교회 내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보건 복지 정책, 일자리 방안 등이 함께 고려돼야 하지만, 무엇보다 연대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본당을 중심으로 소외되고 고립돼 있는 계층들과 연결고리를 만들고 안정된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본당 내 각 조직들이 독거 어르신을 비롯한 1인 가구 가정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면서 지역 사회 내 민간 또는 공공 기관과 네트워크 체제를 형성, 지역 소외계층을 위한 협력을 모색하는 방안이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노인복지담당관 장소영(율리안나) 과장은 “독거 어르신 경우 본당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방문, 어려운 점을 파악하고 이를 본당과 공유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면서도 핵심”이라고 말한다. 정 과장은 “ 특히 우울증을 앓는 어르신들은 자존감도 낮고 삶의 의지도 약한 상황이어서 꾸준한 방문으로 교감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대구대교구 성주본당(주임 이강태 신부)이 ‘은빛 날개’라는 프로그램으로 40명의 어르신들을 돌본 사례는 각 본당들이 눈여겨볼 만하다. 대상은 집에서만 봉성체를 영하는 어르신들이었다. 본당 사회복지위원회가 어르신과 봉사자를 연결했고 성주군 복지관에서는 봉사자 교육을 맡았다. 노인대학 학생들과 레지오 단원, 차량봉사자가 한 조를 이뤄 가구 방문에 나섰다. 지역 내 마켓들과 연계해서 방문 선물도 저렴하게 제공받았다. 노인대학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노래와 이야기를 나눴고 레지오 단원들은 어르신과 함께 기도를 드렸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같이 할 사람 없이 외롭게 지내던 어르신들은 본당 신자들의 방문만으로도 반가워했다. 지역 주민센터와 연계, 독거 어르신이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파악해서 정기적으로 반찬나누기 등을 펼쳤던 서울지역 한 본당도 독거 어르신들에게 지역에 대한 유대감을 만들어 준 좋은 사례로 꼽힌다. “어르신들이 어르신을 돌보는 조직을 만드는 등 본당이 매개체가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하다”고 밝힌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카리타스 복지교육센터 도건창(요한) 소장은 “그에 앞서 먼저 찾아가서 이웃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는 모습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근표 신부(서울대교구 사무처장)는 “무관심 속에서 홀로 맞이하는 죽음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줄여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홍 신부는 “죽음 이후의 천국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부터의 하늘나라를 말씀하셨다”면서 “독거 어르신과 지역의 소외된 이들을 돕는 교회의 노력이 절실한 이유”라고 전했다. ◆ 교회 안에서는 ‘무관심사’ 제언도 ‘고독사’(孤獨死)란 개념은 2001년부터 일본에서 유품 정리 회사를 운영한 요시다 다이치씨가 처음 만들어냈다. 그의 독특한 직업이 방송에 보도된 후 요시다는 「유품 정리인은 보았다」 「유품이 말하는 진실」 등의 책을 통해서 ‘고독사’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아직 학계에서는 용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교회 내에서는 고독사 대신 ‘무관심사’(無關心死)라는 용어로 제언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 고독하게 죽음을 맞는 존재라는 입장에서다. 아울러 고독사 용어의 핵심이 관계단절로 인한 죽음을 얘기한다고 볼 때, 사람들의 무관심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시각을 담고 있다.

발행일 2016-11-27 제3021호 19면

[세상살이 복음살이] 불안한 사회 늘어가는 마음의 병,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올해로 30세가 된 A씨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공무원시험에 도전했지만, 벌써 2번째 낙방을 겪었다. 점점 나이는 먹어가는데 일자리를 찾지 못한 불안감과 우울감에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꺼리게 됐다. A씨의 어머니는 “기도하면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다”면서 A씨를 데리고 유명한 피정이나 기도회를 다니고 있지만 A씨에겐 이마저도 스트레스다. 학생시절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A씨지만, “이제는 뭘 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기도를 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B씨(42)씨는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6년 전 자다가 화재를 당한 것이 트라우마가 됐다. 화재로 B씨의 아이가 유독가스를 마셔 응급한 상황에 빠졌다. 아이는 다행히 잘 회복됐지만, B씨는 밤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다. 특히 최근에 세월호 참사 등 안전하지 못한 사회의 모습이 자주 나와, 불안감이 더 커지면서 밤을 새는 일도 잦아졌다. ■ 사회적 불안감 팽배로 심리·정신적 고통 증가 취업·벌이·노후 등에 찾아오는 경제적 어려움, 극심한 양극화, 계층·세대 간 갈등의 첨예화, 안전에 대한 불안 등 사회적으로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A씨와 같이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35.4%가 사회가 안정적이지 않다고 응답했다. 청소년층은 60%가 사회가 불안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불안 속에 자살, 우울증 등 심리적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5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5년 전인 2010년에 비해 16%가량 증가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도 2012년 상담경향분석보고서를 통해 우울증 등 심리·정신건강에 관한 상담이 2008년 4.3%에서 2012년 12.6%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살의 경우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12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연평균 1만4000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고 있다. 매일 30~40명이 자살로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삭심리상담센터 심리상담사 이기상(요셉)씨는 “사회에서 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으로 ‘내가 노력해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불안감은 신경을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우울증에 빠지게 할 뿐 아니라 심각한 경우 자살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전문상담과 영적 도움 병행돼야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교회는 이렇게 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만큼, 마음의 고통을 받는 이들을 위한 보금자리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신앙 활동은 우울증을 예방하고 심리·정신적 고통에서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보고가 많다. 하지만 신앙이 심리·정신적 어려움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기도나 신앙행위만으로 심리·정신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심리적 위기상황의 탈출구로 ‘신앙행위’에만 의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리적인 치료와 상담에 종교적 도움을 병행할 때, 심리·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대전가톨릭대학교 영성부장을 맡고 있는 김인호 신부는 “기도의 힘은 분명하지만, ‘기도만 하는 것’으로 도피하는 것은 신앙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고 적절한 치유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면서 “우울증이나 심리·정신적인 증세를 치료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 그리고 종교적 도움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회는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상담센터를 운영해 심리·영성적 도움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삭심리상담카페와 같이 카페형 상담소나 수원 인계동본당 상담분과와 같이 본당 차원의 상담소도 설치돼 교회가 운영하는 상담시설이 더욱 신자들 가까이에 자리해가는 추세다. 인계동본당 주임 최인각 신부는 “심리적으로 고통받아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은 기도하고 싶어도 온전한 기도를 하기 어렵다”면서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영적인 밝음을 얻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상담분과를 통해 돕고 있다”고 말했다. ■ ‘회복탄력성’ 키워주는 교회로 교회가 사회적 불안 속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상담센터 설치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교회 공동체가 심리적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길러줄 수 있다고 말한다. 회복탄력성은 크고 작은 역경과 시련, 실패 등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마음의 힘을 말한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고난으로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도 오히려 이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교회가 회복탄력성을 길러주는 가장 좋은 예는 ‘긍정성’이다. 긍정성은 회복탄력성의 여러 요소 중에서도 다른 요인들을 끌어올리는 힘이라고 말할 정도로 핵심적인 요소다. 미사 중 강론이나, 피정, 성경공부 등에서 인간 존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하느님의 자비, 구원의 희망을 배우고 체득하는 것은 긍정성을 키워줄 수 있다. 지난해 안기민 신부(춘천교구·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가 수원가톨릭대학교 신학생을 대상으로 회복탄력성을 조사한 결과 ‘긍정성’ 평균이 우리나라 성인 평균보다 높게 나왔다. 이 연구만으로 가톨릭신자 전체의 긍정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국내외 여러 논문 데이터에서도 신자들의 긍정성이 높고, 내적인 종교성향이 강할수록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안기민 신부는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존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구원을 희망하는 교회의 가르침이 신자들의 긍정성을 높이지 않았나 생각한다”면서 “사제나 교리교사들이 죄, 죄책감, 고통 등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하느님께 대한 희망 등 긍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한다면 긍정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복탄력성의 요소 중 대인관계능력을 신장시키는 것도 교회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다. 전문가들은 교회 공동체가 소외된 이웃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활동은 소통, 공감능력 등의 대인관계능력을 끌어올려 회복탄력성을 강화시키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부 해외 연구에서 가톨릭신자들이 회복탄력성 부문 중 소통·공감능력이 타종교인에 비해 떨어진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해 한국교회에서도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교회정신을 바탕으로 소외된 이웃을 만나고 선행을 하는 봉사는 봉사자 스스로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해 긍정성과 행복감도 증진시킨다. 김인호 신부는 “예를 들어 개신교회에 가면 환영하는 분위기인데 가톨릭교회에서는 좀 건조한 느낌이 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교회가 대형화 됨에 따라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를 치유할 수 있는 공동체성이 약화된 측면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회가 소외된 이웃에게 펼치는 봉사활동은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말씀, 찬양, 공동체, 인간관계 등 신앙의 여러 부분이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준다”면서 “교회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회복탄력성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발행일 2016-08-21 제3008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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