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쉼터] 원주교구 정선본당 ‘열린마당’ 현장…“신앙과 정선 아리랑의 만남”

강원도 정선의 가을이 아리랑으로 물들었다. ‘제51회 정선아리랑제’가 열린 10월 1일부터 4일.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의 흥겨움은 원주교구 정선성당 마당으로도 이어졌다. 본당은 정선아리랑제에 발맞춰 처음으로 ‘정선아리랑성당 열린마당: 아리랑, 생명을 품다’를 열고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성당 문을 활짝 열었다. ‘한’의 고개를 넘어 희망으로 나아가는 아리랑과 수난을 지나 부활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 두 길이 만난 정선의 가을을 걸었다. 정선아리랑제가 개막한 1일, 주무대가 설치된 정선군 공설운동장 주변은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창공에는 축제를 알리는 애드벌룬이 떠 있고, 정선아리랑을 주제로 한 공연팀들은 대형 무대에서 구성진 노래와 역동적인 춤사위를 펼쳐 보였다. 정선본당(주임 이동훈 프란치스코 신부)도 때를 맞춰 문을 활짝 열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정선아리랑과 가톨릭 신앙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정선아리랑성당 열린마당 첫날, 최종삼(요셉) 전 본당 사도회장은 성당을 찾은 이들에게 지역사회와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본당의 역사를 들려줬다. 설명은 자연스럽게 본당을 ‘정선아리랑성당’으로 새롭게 각인시키고 있는 ‘골고타 아리랑 십자가의 길’로 이어졌다. 올해 3월 8일 축복식을 갖고 선보인 골고타 아리랑 십자가의 길은 본당과 정선아리랑제를 이어준 특별한 매개이기도 하다. 성당 외벽 세 면을 따라 조성된 14처에는 복음의 토착화를 추구해 온 본당의 고민이 담겼다. 정선아리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여정이 지닌 닮은 점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했다. 축제 기간 성당을 찾은 이들의 눈길이 가장 먼저 머문 곳도 이 14처였다. 평소 음악에 조예가 깊고 전통문화에도 남다른 애정을 지닌 이동훈 신부는 3년 전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뒤, 정선의 상징인 아리랑과 가톨릭 신앙의 만남을 고민해 왔다. 이 신부는 축제 기간 성당을 찾은 이들에게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선아리랑에는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인 한과 눈물이 담겨 있지만, 한으로 끝나지 않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 희망을 찾아갑니다. 십자가의 길도 고통과 수난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부활이라는 희망에 다다릅니다. 골고타 아리랑 십자가의 길 14처 기도를 모두 바친 후 바로 성당 안에 들어가면 제대 뒤에 부활 십자가를 보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설명을 듣고 다시 14처를 바라보니 조금 전과는 달라 보인다. 정선의 굽이진 산길과 아리랑에 서린 한의 정서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신앙의 언어로 새롭게 읽힌다. 본당 아리랑성가대 김정희(마틸다) 대장은 “매월 마지막 주일 교중미사 전 본당 신자들이 골고타 아리랑 십자가의 길을 바치며 신앙의 토착화를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선 토박이인 이용식(토마스) 사도회장에게 올해 정선아리랑제는 더욱 각별하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지변이 있던 몇 해를 빼고 매년 10월경이면 어김없이 열리던 정선아리랑제에는 동네 짐승을 빼고 사람이면 다 모였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본당이 축제에 참여했다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지역과 하나 된다는 의미여서 뿌듯합니다.” 행사 실무를 맡은 신주선(마르첼리노) 본당 총무분과장 역시 “아무리 힘든 시절에도 정선아리랑제 기간만큼은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면서 “올해 본당이 개최한 행사에 참여한 분들은 정선아리랑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성당 마당에서는 아리랑 가락도 울려 퍼졌다. 2일 오후 신자 가족과 소공동체 등이 참여한 ‘골고타 아리랑 경창대회’가 열렸고, 자연과 생명, 평화의 메시지를 노래하는 가수 ‘인디언 수니’의 초청 공연도 이어졌다. 인디언 수니는 무대에 오르기 전 “성당에서 열린 축제 무대에 선다는 것이 가수로서 가슴 따뜻하고 설레는 체험”이라고 말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인 4일, 본당은 교중미사를 창조 시기 폐막미사로 봉헌했다. 오후에는 신자와 지역 주민 모두 골고타 아리랑 십자가의 길을 바치며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생명과 희망을 묵상하고 첫 정선아리랑성당 열린마당을 마무리했다. 정선 사람들의 삶과 함께 흘러온 아리랑, 그리고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따라 걷는 십자가의 길. 서로 다른 듯했던 두 길은 ‘고개 너머의 희망’이라는 한 지점에서 만났다.

발행일 2026-10-11 제3510호 11면

[가톨릭 쉼터] 글라렛 선교 수도회 수제맥주 공방 ‘홉플로우’

전남광주 나주시 남평읍.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새 푸른 숲길이 펼쳐진다. 많은 이가 고요한 묵상과 기도를 위해 찾는 글라렛 선교 수도회 남평 수도원이 자리한 곳이다. 평화롭고 한적하기만 할 것 같은 수도원 옆에는 의외의 공간이 들어서 있다. 국내 최초의 수도원 맥주 공방 ‘홉플로우’다. 그리고 그곳엔 맥주로 사람과 공간을 잇는 곽민재(율리아) 대표가 있다. 수도원에서 웬 맥주냐고요? 가톨릭과 맥주는 서로 밀접한 역사가 있다.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오래전부터 맥주를 빚어 왔다. 곡물로 만든 맥주는 수도원을 찾은 순례자와 여행객을 맞이하는 환대의 수단이었으며, 사순 시기에는 식사를 절제하는 수도자들의 열량을 보충하는 역할도 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유럽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곽 대표가 이러한 수도원 맥주 문화를 국내에서 시도해 보기로 한 때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다. 대학원에서 도시·지역개발 공부를 마치고 박사과정 유학을 준비하던 때였다. “코로나19로 해외를 나갈 수 없게 됐어요. 진로를 고민하던 무렵, 대학생 시절부터 연을 이어 온 수도원에서 피정객이 끊겨 운영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때 수도원 신부님이 취미로 맥주 키트를 이용해 맥주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모습을 봤어요. 대학생 시절 유럽 배낭여행을 하며 독일에서 수도원 맥주를 접했는데, 그 기억이 떠오르며 ‘이거다!’ 하게 됐죠.” 그때부터 한국맥주교육원에서 양조 교육을 받고, 전국의 브루어리를 탐방하며 사업 모델을 연구했다. 수차례 테스트를 거치는 등 오랜 준비 끝에 3년 전 홉플로우를 창업했다. 홉플로우는 맥주의 주재료인 ‘홉(hop)’과 영어 단어 ‘플로우(flow·흐르다)’를 결합한 말로, 맥주를 통해 재미와 낭만이 흐르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곽 대표의 포부가 담겨 있다. 곽 대표는 맥주 양조 체험과 수도원 투어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도 수도원 방식에서 착안한 맥주는 앞서 출시된 적이 있지만, 수도원과 연계해 누구나 직접 양조를 경험하도록 만든 ‘수도원 맥주 공방’은 홉플로우가 처음이다. 누가 봐도 수도원 맥주 같죠? 홉플로우의 맥주는 벨기에 수도원 양조 전통에서 착안한 ‘벨지안 블론드, 두벨, 화이트, 다크스트롱’ 등으로 구성됐다. 최근에는 국산 사과를 이용해 만든 논알코올 음료 ‘루멘 애플 화이트’도 출시해 보다 많은 사람이 홉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창업에 영감을 준 수도원 피정관장 김인환(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와 함께 시음과 레시피 수정을 수없이 반복한 결과물이다. 맥주의 이름은 라틴어로 빛을 뜻하는 ‘루멘(lumen)’으로 지었다. “빛은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을 의미하면서, 또 누구에게나 희망을 떠올리게 하잖아요. 홉플로우를 찾고, 루멘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빛의 따뜻한 이미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맥주 캔과 병에는 루멘과 함께 글라렛 선교 수도회를 상징하는 불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성령의 불을 세상에 전한다는 수도회의 선교 영성을 담은 문양이다. 루멘의 전용 잔은 성작을 본떠 만들었다. 5℃ 이하의 찬 음료를 담으면 흰 문양이 붉게 물든다. 유럽 수도원 맥주에 착안해 3년 전 창업…전문 교육·연구 끝에 맥주 ‘루멘’ 제작 수제 맥주 애호가·비신자 발걸음 이어져…새로운 문화·지역 성장 구심점 되고파 곽 대표는 누가 보더라도 가톨릭 수도원에서 나온 맥주임을 느낄 수 있도록 제품 곳곳에 수도원의 색깔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가 전하고 싶은 것은 맥주만이 아니다. 맥주를 매개로 신자와 비신자 모두가 가톨릭과 수도원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기를 바란다. “신자뿐만 아니라 신자가 아닌 누구나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이에요. 대놓고 ‘우리 가톨릭이야’라고 하기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도 가톨릭의 한 역사와 문화였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거죠.” 실제로 홉플로우에는 피정 온 신자뿐 아니라 수제 맥주 애호가와 지역 주민 등 다양한 이들이 찾아온다. 곽 대표는 한 일화를 들려줬다. 그가 공방을 비운 어느 날, 수도원을 찾은 한 방문객이 수도원 한편의 무인카페를 둘러본 뒤 ‘나만의 숨어 있는 아지트를 찾은 것 같다. 충분히 환대받은 느낌이 든다’는 글을 남겼다. “공간 자체의 분위기와 풍경이 사람을 환대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공방이, 또 제가 만드는 맥주가 하나의 선교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사람들에게 ‘내가 환영받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장소가 되길 희망해요.” 맥주로 수도원과 지역을 잇다 하지만 수도원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은 그만큼의 책임감과 고민도 안겼다. 혼자만의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가톨릭이나 수도원의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됐어요. 그때 신부님이 ‘민재야, 뭐가 문제니. 수도원이 뒤에 있잖아’라고 해 주신 말씀이 큰 힘이 됐죠.” 곽 대표는 김 신부의 든든한 응원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수도원을 출발해 남평 강변 일대를 달린 뒤 참가자들과 음료와 피자를 나누며 교류하는 ‘수도원 러닝’을 실시했다. 자연 풍경에 건강한 신체 활동과 미식을 결합해 수도원과 나주를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한 시도다. 또 전남관광재단의 ‘2026 관광기업 육성 및 창업 지원사업’에 선정돼 수도원 성당에 미디어 파사드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양조 교육부터 러닝,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일까지 바쁜 나날이지만 곽 대표의 구상은 멈추지 않는다. 맥주를 매개로 수도원과 지역을 잇고, 홉플로우를 사람들이 나주를 찾는 이유로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대전에 성심당이 있다면, 나주에는 홉플로우가 있다는 걸 각인시키고 싶어요. 우리 지역에서도 먹고살고, 배우고, 꿈꾸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발행일 2026-08-23 제3504호 10면

[가톨릭 쉼터] 제주교구 성 다미안회의 소록도 봉사 현장을 가다

한센인 강제 격리와 차별의 역사를 간직한 소록도. 제주교구 성 다미안회는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소록도 일대에서 ‘제37차 소록도 나눔활동’을 열고 한센인들의 삶 곁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1980년 창립한 성 다미안회는, 벨기에의 성 다미안 신부가 하와이 제도 몰로카이섬에서 실천한 사랑을 본받아 한센병 환자들과 연대하고 있다. 소록도의 아픔을 함께하며 편견과 낙인을 지워가는 이들의 나눔 현장에 함께했다. 아픔의 섬에 건넨 손길 고흥반도 끝자락 녹동항에서 1㎞가 채 안 되는 곳에 자리한 소록도는 깨끗한 자연환경과 해안 절경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한센인들이 겪은 차별과 핍박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1916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한센병 환자 격리를 위해 자혜의원을 설치한 뒤 강제수용과 노역, 이동 제한 등 인권침해가 이어졌다. 7월 24일 소록도의 최고기온은 섭씨 35도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마을 곳곳에는 웃으며 일하는 성 다미안회 봉사자들이 가득했다. 봉사자들은 간병, 이미용, 성당과 수녀원 정비, 도배·장판 교체와 방충망 정비, 예초 작업 등으로 나뉘어 국립소록도병원 환자와 주민들을 도왔다. 성 다미안회는 1984년 소록도 나눔활동을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태풍으로 입도하지 못한 해를 제외하고 매년 활동을 이어왔다. 누적 봉사자는 4800여 명. 올해도 150여 명이 참가했다. 동생리 최성운(요한 세례자) 이장은 “냉장고, 실외기, 에어컨 필터처럼 나이 든 주민들이 직접 청소하기 어려운 것들도 해줘서 다들 고마워하고, 덕분에 살기 좋다고 많이들 말한다”고 전했다. 가장 인기 있는 활동은 이미용이다. 머리 손질뿐 아니라 파마와 염색까지 해줘 활동 장소는 늘 주민들로 북적인다. 차례를 기다리던 주민들은 봉사자들과 안부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봉사자들은 병원 밖으로 나오기 힘든 입원 환자들을 위해 병실을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40년 넘게 활동에 참가해 온 여혜숙(에스텔) 씨는 “한센인들과 함께하는 일이 늘 보람차고, 참 감사하다”고 말했다. 국립소록도병원 주민자치회는 성 다미안회의 활동에 감사를 전하고자 2021년 옛 소록도 공회당에 기념비를 세웠다. 성 다미안회의 활동에는 늘 기도가 함께한다. 봉사자들은 매일 아침 미사를 봉헌하고 삼종기도도 빼놓지 않는다. 단순한 봉사를 넘어 피정에 참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소록도를 찾는다. 성 다미안회 강승표(마르코) 회장은 “활동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의지를 실천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활동의 중심은 신자들이지만 제주도 내 비신자들도 봉사자로 참여한다. 함께 땀 흘리고 미사에 참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신앙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마친 뒤 세례를 받는 경우도 있다. 봉사가 이웃을 돕는 일을 넘어 봉사자 자신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낙인을 지우기 위해 소록도에는 현재 3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고, 주거 환경과 경제적 여건도 넉넉하지 않다. 2007년 관련 법률이 제정되고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지만, 생활 속 불편과 사회적 차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주민 대다수는 고령층,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빈곤이 일상화돼 있다. 수입도 자활근로 사업으로 벌 수 있는 평균 45만 원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낙인이다. 유전병이 아닌 제3종 법정 전염병인 한센병은 약으로 치료 가능하며, 전염력도 약하다. 그럼에도 과거 ‘하늘이 내린 벌’이라 불린 인식이 남아있고, 차별이란 병은 한센인 2세에게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의 사례와 같이 한센인 2세를 대상으로 한 피해 보상도 필요하단 의견이 나온다. 일본은 2019년 「한센병 전 환자 가족에 대한 보상금 지급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가족관계에 따라 1인당 130만~180만 엔(한화 약 1390만~1930만 원)을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국립소록도병원 원생자치회 강호열(아우구스티노) 사무장은 “우리 2세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왕따당하고, 이유 없이 맞으며 온갖 차별과 혐오에 시달렸다”며 “여건이 되는 대로 청와대에 방문해 처우 개선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 다미안회의 활동은 이러한 편견을 덜어내는 데에도 힘을 보탠다. 생활의 불편을 덜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한센인들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치유’인 셈이다. 제주교구 사회사목국장 이건용(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는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한센인들의 병을 치유하실 뿐만 아니라, 다시 공동체의 생활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셨다”(마르 1,40-45 참조)며 “봉사자들이 활동을 계기로 한센인이 한 사람의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토대를 형성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활동에 참가한 다미안회 봉사자들도 인식 개선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이상보(안토니오·제주교구 광양본당) 씨는 “사회적 노력으로 소아마비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가 사라진 것처럼, 한센병에 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홍보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김석우(미카엘·제주교구 새서귀포본당) 씨는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관심과 따뜻한 손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6-08-02 제3502호 11면

[가톨릭 쉼터] 자립준비청년들의 앙상블 ‘M.O.A.’

서로 다른 현악기의 울림이 조화를 이뤘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마치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듯 전개되는 멜로디 속에 청년 연주자들은 서로 눈빛을 마주치며 장난스레 웃는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음악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피워내는 음악 공동체, 자립준비청년 앙상블 M.O.A.(Miracle of Art, 이하 모아)를 만났다. 음악을 사랑하는 청년들 모아는 2024년 3월, 아동양육시설 꿈나무마을에서 퇴소하고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모여 시작됐다. 어릴 적부터 해온 악기 연주를 계속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7명의 모아 단원들에게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전지훈(하상바오로·22) 씨는 음악이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는 많은 생각을 해야 하지만, 음악은 그런 생각 없이도 함께할 수 있다”면서 “오랜 시간 못 만난다 해도 늘 그 자리에 있어 줄 것 같은 친구”라고 했다. 이선빈(마태오·23) 씨도 “음악은 없으면 허전한, 같이 사는 존재 같다”고 했다. 무얼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존재. 시설에서 자라 지금은 홀로서고 있는 이들에게 음악은 ‘가족’ 그 자체였다. 그 가족에는 누구보다 하느님이 계셨다. 단원들의 음악의 시작에는 성가가 있었다. 꿈나무마을 시절 미사 반주 봉사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원들은 “우리는 성가 전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단원들에게 어린 시절, 음악은 성가였고, 기도였고, 그 자체로 기쁨이었다. 모아 대표를 맡고 있는 나동화(아우구스티노·23) 씨는 “신앙 안에서 시작한 음악이었고, 덕분에 신앙생활이 즐거울 수 있었다”면서 “지금도 음악은 신앙을 키워나가는 힘”이라고 말했다. 윤선형(라자로·26) 씨도 “성가를 연주할 때가 많다”며 “청년들이 모여 기도하면서 음악을 하다보면 연주 안에서 거룩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전했다. 나눔의 선순환을 이끌다 자립을 위해 공부하고, 일하는 것. 다른 청년들에 비해 홀로서기에 더 많은 시간과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원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연주 활동을 준비하면서도, 주말마다 꿈나무마을을 찾아 악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동생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양로원이나 복지시설을 찾아 공연도 연다. 처음부터 봉사를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도, 거창한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우연히 찾아온 봉사 기회를 자연스럽게 이어 나간 것이 꾸준한 봉사로 이어졌다. 나동화 씨는 “(봉사를 하게 된 건) 다 주님께서 하신 일인 것 같다”면서 “저희도 많은 것을 받아왔으니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고 말했다. 모아를 돕는 많은 손길도 있었다. 공연을 본 교수 등 전문 음악인들이 먼저 연락해 단원들에게 개인 지도를 해주고, 정기연주회 협연도 했다. 자립준비청년 몇 명이 모여 시작한 작은 모임은 도와주고, 또 도움받는 구심점이 됐다. 그렇게 벌써 60여 회 무대에 오르며 모아는 성장하고 있다. 이선빈 씨는 “그동안 받은 도움으로 또 우리가 봉사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악기를 배운 이 친구들도 저희처럼 또 다른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위로와 희망을 노래하다 “저희 연주를 통해 위로와 희망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원들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반드시 전하는 말이다. 그 마음이 전해져서였을까. 모아의 공연 후에는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많다. 비단 관객만이 아니다. 자신들을 위해 치는 박수갈채 속에 모아 단원들 역시 위로를 얻고, 희망을 발견한다. 전지훈 씨는 “박수를 치는 모습, 감정의 표현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고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 위로와 희망은 다른 모든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노래기도 하다. 최근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경제적 지원은 늘었지만, 여전히 청년들은 자립이 아닌 고립을 경험한다. 그들이 겪는 정서적 어려움은 금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윤선형 씨는 “실력이 부족해 공연 전에는 ‘틀리지 말자’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공연에 감동하는 관객을 보며) 제 부족함을 친구들이 채워줬다는 걸 알게 됐다”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공동체가 있다면 내가 부족하더라도 잘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모아는 자립준비청년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기대며 부족함을 채워주는 과정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앙상블’로 보여준다. 모아는 그렇게 자립을 노래한다. 나동화 씨는 “더 많은 자립준비청년이 음악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모아가 원동력이 돼서 선순환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그렇게 되도록 저희는 부르심에 ‘예!’ 하고 달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발행일 2026-07-19 제3500호 11면

[가톨릭 쉼터] 50년간 헌책과 사람 품어 온 ‘글벗서점’

어떤 공간은 문을 여는 순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지하 1층에 자리한 헌책방 ‘글벗서점’도 그렇다. 네 번이나 보금자리를 옮긴 이 책방이 성산동에 새 둥지를 튼 지도 어느덧 1년 6개월.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전날 내린 비로 오래된 종이 냄새가 더욱 짙어졌고, 스피커에서는 1980년대 가곡이 흘러나왔다. 빼곡하게 꽂힌 헌책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채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글벗서점입니다.” 책들 사이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이는 김현숙(클라라)·기광서(스테파노) 부부. 50년 가까이 헌책방을 운영해 온 이들에게 책방은 생업의 공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사랑방이었다. 헌책과 함께 키운 네 아이 부부가 처음 헌책방 문을 연 것은 1979년이다. 홍익대학교 앞에서 ‘온고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따뜻할 온(溫), 옛 고(古), 집 당(堂). 따뜻한 집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었다. 남편 기 씨가 군 복무를 마친 뒤 김 씨와 결혼하면서 시작한 책방은 네 아이를 키운 삶의 터전이 됐다. 당시 온고당은 직원만 3명이 있을 정도로 지역에서는 이름난 서점이었다. 오랫동안 이 일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홍대 앞 온고당’은 헌책방이라기보다 동네를 대표하는 서점으로 기억된다. 이후 부부는 직원에게 온고당을 맡기고, 서대문구 창천동으로 옮겨 ‘글벗서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발했다. 그것도 어느덧 2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글벗서점은 참고서와 문제집, 그림책이 주력 상품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저렴한 가격에 참고서를 구입하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북적였다. 이미 누군가 연필로 문제를 풀어 놓은 참고서였지만, 아이들에게는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배움의 공간이 됐다. 생업의 공간이자 아이들의 공부방이었던 셈이다. “아이들은 새책방 딸이고 싶어 했죠.” 김 씨는 웃으며 오래된 일화를 들려줬다. 어느 날 헌책방을 부끄러워하던 큰딸을 교보문고에 데려가 새 책 한 권을 사 주고, 다시 책방으로 돌아와 책꽂이에 꽂았다고 한다. 김 씨는 딸에게 “이제 이 책도 헌책이 된 거야”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딸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헌책방만의 길을 찾다 글벗서점의 하루는 오전 11시에 시작된다. 쉬는 날 없이 부부는 매일 책방으로 출근한다. 50년 가까이 함께 책방을 꾸려 온 덕분에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역할을 안다. 책방 문을 열기 전 기 씨는 가정집이나 출판사 등을 돌며 헌책을 수집한다. 하지만 아무 책이나 들여오는 것은 아니다. “새 책방이나 대형 중고서점에 없는 책을 찾습니다.” 부부가 눈여겨보는 것은 정부 간행물이나 오래된 자료집처럼 바코드조차 없는 책들이다. 다른 곳에서는 외면받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책들이다. 사양산업으로 불리는 헌책방이지만 부부는 나름의 생존 전략을 찾았다. 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책을 갖추는 것이다. 김 씨는 “헌책방에 오는 분들은 단순히 싼 책을 찾는 분들이 아니다”며 “정말 오래된 책의 가치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에는 교사와 교수, 연구자들이 자주 찾는다. 오래된 자료 속 단 한 줄의 문장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다. 재래시장에서 오래된 물건과 시간을 찾아 걷듯, 글벗서점 역시 오래된 책과 기록을 찾는 이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오늘도 사랑방 문을 열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책방을 지키다 보니 자연스레 단골손님도 생겼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뒤에도 일부러 책방을 찾는 손님이 적지 않다.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지만 오랜 시간 얼굴을 익혀 온 손님들도 있다. 부부에게 글벗서점은 책을 파는 곳을 넘어,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방이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으로 책방을 한 적은 없어요. 손님들이 원하는 책을 찾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편히 쉬었다 가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김 씨는 연중무휴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도 주일 교중미사는 빠지지 않는다. 매일 아침 주모경을 바치며 하루를 시작하고, 그날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현재는 셋째 딸이 부부를 도와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부부는 딸에게 선뜻 가업을 물려주기가 미안한 마음이다. 갈수록 독립서점과 헌책방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50년 가까이 이어 온 전통과 역사 앞에서도 현실적인 이유로 영원을 장담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럼에도 부부는 오늘도 문을 연다. 누군가에게는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사랑방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부는 자신들이 책방을 지키는 동안만큼은 글벗서점이 ‘대한민국의 사랑방’으로 남기를 바란다. “책을 오래 곁에 두고 살다 보면 겸손해져요. 우리는 모르는 것이 참 많은데 책은 늘 새로운 것을 알려 주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배우고, 낮아지고, 겸손해집니다.” 반세기 동안 헌책과 사람을 품어온 부부의 얼굴에는 오래된 책처럼 깊고 따뜻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 글벗서점 -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210 지층 - 운영시간: 매일 11:00~21:30 - 문의: 02-333-1382

발행일 2026-06-21 제3496호 9면

[가톨릭 쉼터] 대를 이어 나눔 실천하는 ‘크웰브 베이커리’

“수녀님~, 빵 가지러 오세요.” 경쾌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이계자 수녀(소피아·성바오로딸수도회)가 베이커리 카페 크웰브(Cwellve)를 운영하는 송예원(크리스티나·수원교구 용인본당) 씨에게서 두 달에 한 번꼴로 받는 전화다. 약속한 날, 이 수녀가 경기도 용인의 베이커리에 들어서면 송 씨는 크루아상과 화이트롤, 캄파뉴, 케이크를 차곡차곡 담은 상자를 건넨다. 통창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2층 베이커리 카페에서 수녀원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나눔. 이제는 두 사람 모두에게 익숙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몇 년째 이어지는 이 만남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송 씨의 할머니, 고(故) 배영숙(수산나) 씨가 있다. 할머니의 신앙 2005년 77세로 선종한 배영숙 씨는 생전에 아침 8시면 어김없이 성당에 나갔다. 가족 눈을 피해 화장실 청소를 하기 위해서였다. 말릴까 봐 숨어서 했고, 장례를 치른 뒤에야 그 사실이 자세히 알려졌다. 배 씨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힘든 일을 자처했다. 사실 넉넉한 형편이었음에도 물질로 충분히 돕지 못하는 아쉬움을 몸으로나마 채우고 싶어 했다. 받은 선물은 한 번도 쓰지 않고 새것 그대로 필요한 이들에게 내주었다. ‘좋은 것을 남한테 먼저 주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특히 수도자들에게 각별했다. 어린 손녀의 눈에도 그 모습은 선명했다. 길을 가다 수도자를 만나면 지갑을 다 비워 차비를 드리던 할머니였다. 그 정신은 가족에게도 스며들었다. 송 씨의 어머니 최점숙(루치아) 씨가 무료급식소 설거지와 도시락 배달에 나서는 등 봉사 활동에 열심인 것도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나눔의 한 면이다. 배 씨는 남편으로부터 상속받은 유산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싶다는 뜻과 함께, 본인을 위한 기도를 가르멜 수녀회에 청하고 싶어 했다. 가족들이 유지를 받들어 알아보다가, 경기도 동두천에 신축될 의정부 가르멜 여자 수도원 소식을 접했다. 마침 건립 기금을 모으는 중이었다. 가족들은 기꺼이 후원금을 보탰다. 북방선교를 준비하다가 동두천에 자리잡은 수녀원과 연결된 것은 신비였다. 송 씨는 “이북 출신으로 평생 통일이 소원이었던 할머니의 뜻이 이어진 것 같아 섭리처럼 느껴졌다”고 떠올렸다. 밤새 구운 빵, 그것이 시작이었다 2021년경, 수녀원에서 연락이 왔다. 건물이 완공됐으니 한번 다녀가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로 맺어진 끈이 오랜 세월을 넘어 다시 살아난 순간이었다. 마침 크웰브 개장을 준비하던 시기여서, 방문을 앞두고 제빵 연습실에서 밤을 새워 빵을 구웠다. 수녀가 일곱 명 정도라는 것도 모르고, 마흔 명분은 될 재료로 크루아상 등을 잔뜩 만들었다. 인원보다 푸짐한 빵 선물에 수녀들은 “나눠 먹으면 된다”며 반겼다. 이후 빵을 구우면 보냈고, 수녀들은 “맛있다”며 용기를 북돋워 줬다. 개업 과정에서 힘든 일을 털어놓으면 기도로 응답했다. “어려울 때 기도를 굉장히 많이 해 주셨죠. 많이 의지했었고, 기도하고 있다는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됐어요.” 그렇게 나눔은 기도와 함께 익어가며 점차 퍼져나갔다. 성바오로딸수도회와도 손이 닿았고, 지금은 베이커리 인근 몇몇 수녀원과 무료급식소 등 복지시설에 빵을 전달하고 있다. 수도회들은 받은 빵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다시 나누기도 했다. 인연은 인연을 낳고 나눔은 나눔을 낳았다. 나눔의 순환 수도자들이나 기관의 “빵 잘 받았다, 고맙다"는 인사 속에 서로 안부를 묻는 일 자체가 송씨에게는 보람이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빵뿐이라 가끔은 죄송하기도 해요. 그분들의 봉사와 희생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갓 만든 빵을 바로 보내드리면 좋으련만, 냉동 보관했다가 전할 때면 아쉽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수녀님들은 속 크림이 살짝 녹아 아이스크림처럼 됐다고 더 좋아하신다”며 환하게 웃었다. 매장을 직접 찾기 어려운 복지시설 이용자들이 빵을 받아 행복해하는 모습도 뿌듯함을 더한다. 크웰브는 2022년 용인 유림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선정하는 나눔 실천 ‘착한 가게’에 이름을 올렸다. 협의체의 밑반찬 지원 사업에 동참해 매월 다양한 식재료를 기탁해온 덕분이었다. 이 모든 것 뒤에는 베푸는 삶이 결국 선한 것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이 자리한다. 이계자 수녀는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참 많이 닮았다”며 “받은 선물을 기꺼이 이웃과 나누며 기뻐하는 모습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있는 곳에 늘 섬김과 봉사가 함께함을 깨닫는다”고 했다. 송 씨는 “할머니의 정신을 따라가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의 의미를 느낀다”며, “직접 말씀드릴 수는 없어도, 할머니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할머니가 내어주는 삶을 사셨기에 그 복으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봉사의 첫걸음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당부했다. “어렵게 생각하기보다 내가 베풀 수 있는 것에서부터 감사하게 시작하면, 더 큰 가치와 기쁨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크웰브(Cwellve)는 카페(Café)·크루아상(Croissant)의 ‘C’와 웰빙(Well), 열둘(Twelve)을 합친 이름이다. 완전한 숫자 12처럼 언제나 모든 이에게 좋은 공간이 되겠다는 뜻을 담았다. 할머니의 신앙적 헌신에서 비롯된 빵 나눔은 그 이름이 품은 ’완전함‘의 의미를 날마다 채워간다.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다른 이와 나누는 일, 그것이 오늘도 이곳을 조금 더 깊고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11면

[가톨릭 쉼터] ‘오병이어 밥집’ 문 연 날

도시락 나눔을 통해 노숙인에게 사랑을 전해오던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가 노숙인들이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광주역 인근에 자리한 ‘오병이어 밥집’이다. 이름 그대로, 작은 나눔이 큰 기적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섯 개의 보리빵과 물고기 두 마리만으로 5000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처럼, 이곳 역시 작은 손길들이 모여 우리 시대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하고 있다. 4월 7일, 오병이어 밥집 축복식에서 만난 이들은 이름이 담은 의미를 함께 되새기며, 이곳이 단순한 식사를 넘어 희망과 사랑이 넘치는 공간으로 성장하길 바라고 있었다. “든든한 한 끼 이거 참말로 좋당께요. 예전에는 식은밥, 도시락으로 받으면 너무 딱딱해져 부러서 먹지도 못 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빨도 안 좋아서 먹다가 부러져불고 그라제. 지금은 갓 지은 밥 한 끼로 먹으면 참말로 좋제잉.” 노숙인 장재용(가명·안드레아) 씨가 봉사자들이 갓 만든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이하 사회복지회)는 지난 10여 년간 광주천, 광주역, 충장로 등에서 노숙인들에게 도움을 주며 사랑을 나눠왔다. 2020년부터는 호남동성당 뒤편 비닐하우스에서 도시락을 제공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인해 도시락 전달 방식으로 바꾸게 됐다. 이 과정에서 쓰레기 문제와 이용자 간 갈등 등 여러 어려움도 있었다. 밥집 봉사자 김자혜(소피아) 씨는 “도시락을 받은 후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고, 서로 싸우거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숙인들이 함께 식사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에 이러한 사연을 전한 사회복지회는 2025년 9월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사회복지 시설을 돕는 ‘사랑의 손길’ 사업에 선정돼 현 공간을 임대할 수 있었다. 밥집은 광주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역 주변 쪽방촌 주민들을 배려한 장소다. 사회복지회 채홍우(미카엘) 교육복지과 과장은 “10년 가까이 걸려 마련한 공간인 만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김자혜 씨도 “따뜻한 음식을 바로 드릴 수 있어서 봉사자와 이용자 모두 마음이 편해졌다”고 전했다. 밥집은 후원과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교구 내 본당 빈첸시오회와 레지오 마리애 단원, 나눔을 희망하는 신자 등 100여 명이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봉사자들은 각자의 요일에 맞춰 셰프팀, 배식팀, 설거지팀 등으로 나뉘어 활동한다. 음식을 포장해 몸이 불편하거나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노숙인들을 찾아가는 ‘아웃리치’ 활동도 하고 있다. 셰프팀 이옥순(수산나) 씨는 “퇴직 후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짧은 시간만 나와도 부담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이어 “맛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성의껏 준비하고 있다”며 “최소한 이곳에서는 이용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식사하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마침 이날은 올해 2월 문을 연 밥집의 축복식이 열려 의미를 더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 주례로 열린 행사에는 사회복지회 사제들과 직원, 30여 명의 봉사자와 11명의 노숙인이 함께했다. 축복식에 앞서 고영철(다니엘)신협중앙회장과 신협 광주전남 가톨릭이사장협의회는 옥 대주교와의 간담회 후 밥집에 사랑의 쌀 후원금 800만원을 전달해 기쁨을 더했다. 옥 대주교는 “가진 것을 나누면 5000명이 다 먹고도 남았다는 말씀처럼 못 할 일이 없다”며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이 함께한다면 밥집은 부족하지 않고 풍요로운 기적이 일어나는 나눔의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현재 하루 평균 40여 명의 노숙인이 밥집을 찾는다. 특히 한겨울에는 서울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광주로 내려오는 노숙인들이 많아 다른 계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는다. 사회복지회 회장 김재중(베드로) 신부는 “밥집에 더 많은 분이 와서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리고 이런 곳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이 공존한다”며 “밥집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길 바라면서도 지금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는 언제든 편안하고 따뜻한 쉼터가 되도록 정성을 다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노숙인을 위한 밥집이 만들어져 매우 기쁘다”는 옥 대주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노숙인들. 이곳을 찾는 노숙인들은 서로 어디가 불편한지, 몇 시에 이곳에 방문하는지, 무엇이 고민인지 잘 안다. 오병이어 밥집은 단순히 그들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공간이 되고 있다. ■ 오병이어 밥집 -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독립로 265 - 운영 시간: 월~토 오후 4시 30분~5시 30분 - 이용 대상: 노숙인, 여인숙 등 비주택 거주자 누구나 - 후원 계좌: 농협 301-0209-0858-41 (재)광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 - 후원·자원봉사 문의: 062-716-1236 오병이어 밥집

발행일 2026-04-19 제3487호 11면

[가톨릭 쉼터] 벚꽃 ‘성지’ 순례해 볼까?

매년 이맘때면 전국의 벚꽃 명소, 흔히 ‘벚꽃 성지’라고 불리는 곳들은 상춘객들로 붐빈다. 꽃만을 바라보며 즐기는 봄나들이도 좋지만, 기왕 벚꽃 ‘성지’라면 신앙선조들의 숨결이 깃든 진짜 성지와 성당에서 봄을 맞이하며 순례를 함께해 보는 것도 뜻깊다. 고풍스러운 성당과 함께하는 벚꽃 흐드러지게 핀 연분홍빛 벚꽃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고풍스러운 건물과 함께라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특히 100년 안팎의 역사를 간직한 고딕양식 성당과 함께하는 벚꽃 풍경은 고즈넉한 정취를 더한다.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곳이 대전교구 아산 공세리성당이다. 공세리성당은 순례자는 물론 비신자들에게도 벚꽃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하느님의 종 박의서(사바)·박원서(마르코)·박익서의 묘소가 있던 자리이며, 1922년 지어진 벽돌조 고딕 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명하다. 사시사철 순례자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는 평소보다 방문객이 10배 이상 늘어난다. 청주교구 음성 감곡성당, 바로 감곡매괴성모순례지도 1904년에 세워진 고즈넉한 성당과 벚꽃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성당으로 들어서는 길목 좌우로 벚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벚꽃 길을 지나 성당을 만나게 된다. 유서 깊은 교우촌에서 이어온 성당에는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총탄을 맞은 성모상도 자리하고 있다. 2006년 ‘매괴 성모 순례지’로 선포돼 성모순례지로 사랑받고 있다. 충남 공주 지역 최초의 성당인 대전교구 공주중동성당은 성당 내에 벚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주의 벚꽃 ‘포토 스팟’으로 유명하다. 고딕식 종탑과 붉은 벽돌의 라틴십자가형 성당이 인상적이다. 성당은 건너편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을 에워싼 벚꽃들과 함께 촬영할 수 있어 분위기 있는 사진을 찍기 좋다. 야간에는 조명 연출도 하고 있어 낮과는 다른 멋을 즐길 수 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부산교구 울산 언양성당도 벚꽃이 아름다운 성당이다. 1936년에 세워진 석조 고딕양식 성당 주변의 큰 벚나무들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언양성당에서는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은신처였던 죽림굴과 살티공소 등을 함께 순례할 수 있다. 김대건 신부와 함께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를 기억하는 여러 성지에서도 봄이면 벚꽃을 만날 수 있다. 대전교구 솔뫼성지 김대건 신부 생가 마당에는 벚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솔뫼는 김대건 신부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곳으로,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한옥으로 복원된 생가와 어우러져 한층 더 고즈넉한 봄 풍경을 만든다. 전주교구 나바위성지에서도 벚꽃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1845년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 내륙에 첫발을 내디딘 것을 기념하는 성지다. 성당에서 이 라파엘호를 재현해 놓은 곳까지 향하는 길목 곳곳에서 벚꽃을 만날 수 있다. 김대건 신부가 세례받은 곳이자 사제로서 사목하던 수원교구 은이성지도 숨은 벚꽃 명소다. 은이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서품을 받은 중국 상하이의 ‘김가항성당’을 복원해 김대건 신부의 유년 시절과 사제서품, 사목활동을 모두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성당 맞은편에 산길을 따라 조성된 십자가의 길 주변에 벚나무가 있어 꽃길을 걸으며 기도를 바칠 수 있다. ■ 왕벚나무와 에밀 타케 신부 벚꽃(벚나무)은 한국교회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흔히 벚꽃은 일본의 꽃이라고 생각하지만, 왕벚나무(천연기념물 제156호)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던 토종 나무다. 이 왕벚나무를 우리나라 식물로 세상에 처음 소개한 인물이 파리외방전교회 에밀 타케(한국명 엄택기, 1873~1952) 신부다. 1898년 입국한 타케 신부는 경상·전라·제주 등지에서 55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했다. 특히 제주에서 사목하는 동안 제주 식물 표본을 만들어 전 세계에 알렸는데, 그 수가 1만여 점에 달한다. 타케 신부는 표본 채집을 통한 수익을 선교 자금으로 활용했다. 그중 대표적인 업적이 1908년 채집한 왕벚나무다. 타케 신부는 한라산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해 표본을 만들고 일본의 포리 신부에게 보내 세계 학계에 알렸다. 이 표본은 현재 에든버러왕립식물원에 보관돼 있다. 포리 신부는 왕벚나무 표본에 대한 답례로 온주 밀감 14그루를 보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제주 감귤 재배의 시작이다. 타케 신부는 오늘날 크리스마스트리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제주 구상나무를 처음 소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대구대교구청에 자리하며 100여 년 동안 꽃을 피워온 벚나무 역시 타케 신부가 심은 제주 왕벚나무다.

발행일 2026-04-05 제3485호 14면

[가톨릭 쉼터] 교회사 속 ‘커피’ 이야기

한국인은 한 해 평균 416잔의 커피를 마신다. 이는 세계 평균 150잔의 약 2.8배에 달하는 수치다(2024년 유로모니터 기준). 이처럼 커피는 한국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이 커피에도 교회와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교회사 속 커피 이야기를 만나 보자. ‘악마의 음료’, 축복을 받다? 커피라고 하면 이탈리아, 프랑스처럼 그리스도교 문화가 깊이 자리 잡은 나라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커피가 유럽에 전해진 16세기 무렵, 유럽의 신자들 사이에서 커피는 ‘악마의 음료’로 불릴 만큼 거부감을 주는 음료였다. 당시 커피를 즐기던 이들은 중동의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이었다. 오스만제국은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유럽과 지중해로 진출해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빈까지 침공하는 등 잦은 전쟁을 벌였다. 유럽인들에게 커피는 이교도이자 적국의 음료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 ‘악마의 음료’가 그리스도교 문화권으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 바로 클레멘스 8세 교황(1535~1605)이다. 당시 신자들은 교황에게 커피를 금지해 달라고 청원했고, 교황은 커피가 유해한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마셔보았다. 그는 커피를 맛본 뒤 금지는커녕 오히려 그 풍미를 극찬하며, 커피에 축복을 내렸다고 한다. 그렇게 커피는 교황의 손을 거쳐 악마의 음료가 아닌 축복받은 음료가 되었다. 교회와 커피에 관한 이야기에서 카푸친 작은형제회 복자 마르코 아비아노(Marco d’Aviano, 1631~1699)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북부 아비아노 출신인 그는 오히려 오스트리아 빈에서 더 크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1693년 오스만제국이 두 달 동안 빈을 포위했을 때, 빈을 지켜낸 결정적인 역할을 그가 해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 각국의 군주들은 내분과 경쟁으로 연합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복자는 설득과 설교로 그들을 하나로 모아 ‘신성 연맹’을 결성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설교와 기도는 연합군의 사기를 높였고, 결국 오스만제국군을 물리치며 빈을 지켜낼 수 있었다. 당시 전장에서 오스만군이 남기고 간 진한 커피에 복자가 따뜻한 우유와 꿀을 섞어 마셨고, 이것이 오늘날 ‘카푸치노’의 기원이 됐다고 전해진다. 카푸치노라는 이름은 그가 속한 수도회 카푸친에서 비롯됐다. 물론 이는 역사라기보다는 전승이나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다. 그러나 중동에서 유입된 커피에 처음엔 거부감을 가졌던 교회가 점차 커피와 가까워지게 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일화들이기도 하다. ‘복음은 커피를 타고’ 커피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그리스도교 문화권으로 전해졌을 뿐 아니라, 이후 그리스도교 복음 선포의 여정에도 함께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오늘날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콜롬비아 커피다. 콜롬비아 커피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18세기 예수회 소속 호세 구미야 신부가 남긴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선교지의 자연환경과 주민들의 생계를 고려하며 커피 재배를 시험했고, 이 작물이 현지에서 잘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본격적인 커피 재배도 교회의 복음화와 함께 확산되었다. 특히 19세기, 살라사르 데 라스 팔마스본당에서 사목하던 로메로 신부는 ‘커피나무 심기’를 고해성사 보속으로 줄 정도로 재배를 적극 권장했다. 이후 커피는 곧 신자들의 생계를 돕는 중요한 작물이 되었고, 이 지역은 콜롬비아 커피 재배의 요람이 됐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전래된 가장 이른 기록 또한 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1860년 3월 6일, 성 베르뇌 주교는 리브와 신부에게 선교에 필요한 물품 목록을 요청하며 그중 하나로 커피 40리브르(약 18.14kg)를 포함시켰다. 이듬해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를 통해 커피를 전달받은 그는, 편지를 통해 “커피 덕분에 여름을 예전보다 훨씬 잘 보낼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베르뇌 주교는 이후에도 1861년, 1863년, 1865년에 걸쳐 커피를 지속적으로 청했고, 누적량은 약 130kg에 달한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데 약 4g을 사용했다는 기록을 감안하면, 총 3만2500잔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커피의 희소성으로 인해 두세 번씩 우려 마셨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결코 혼자 마시기는 어려운 양이었다. 이러한 점을 보면, 베르뇌 주교가 커피를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선교의 일환으로 활용했을 가능성도 짐작해볼 수 있다. 신자들과 둘러앉아 커피향을 음미하는 목자의 모습도 결코 허황된 상상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고종 황제가 커피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약 30년 뒤다. 조선교회 신자들은 이미 그 이전에 베르뇌 주교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보다 전,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교육을 받은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 역시 커피를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 혹독한 박해 속에서 복음을 전하던 그 선교 현장에도, 은은한 커피 향이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12면

[가톨릭 쉼터] 청장년과 한 끼 나누는 특별한 식당 ‘같이 한끼’

인천광역시 구월동의 한 영화관 식당가. 북적이는 음식점 사이, 아담한 식당 하나가 시선을 끈다. 다른 가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입구에 적힌 문구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호텔 요리사 출신 임영준 신부(베드로·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가 35세에서 50세 사이 청장년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온기를 전하는 작은 밥집 ‘같이 한끼’다. 식당가 가장 아늑한 공간… “당신만을 위한 한 끼” “자~ 오늘의 요리, 스키야키 나왔습니다!” 임 신부의 오늘 메뉴는 일본식 샤브샤브인 스키야키와 본즈 소스를 곁들인 스파이시 치킨샐러드. 정성스럽게 손질한 대파, 표고버섯, 곤약, 두부, 고기를 냄비에 올리고 간장 베이스 육수를 더하면, 짭짤하면서도 깊은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날씨가 추운 1월에 어울리는, 따뜻하게 먹을 만하면서도 간단한 음식”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채소 등 재료들은 대형 마트에서 구하기도 하지만, 주로 수도회 피정의 집에서 직접 일손을 돕고 얻어온다. 작년에는 ‘오픈 이벤트’로 손님들에게 소고기 스테이크 코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2주에 한 번씩 메뉴를 바꿔요.” 메뉴 구상도 요리도, 임 신부 혼자서 묵묵히 해낸다. 좁은 줄로만 알았던 조리대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임 신부가 가지런히 정리한 조미료들과 요리 도구들이 곳곳에 보인다. 다른 식당과 차별점이 있다면 손님들과 대화를 위해 외부에서 잘 안 보이도록 설치한 커튼이다. 커튼을 내리면 주변 소음이 줄어들며 오직 ‘같이 한끼’를 찾아온 손님만을 위한 아늑한 식사 공간이 만들어진다. 임 신부를 포함해 두 명, 많으면 세 명까지 앉을 수 있다. 작은 테이블에는 방문객들의 글귀가 담긴 방명록도 놓여 있다. ‘같이 한끼’는 예약제로 운영된다. 인천 부평동 한국 순교 복자 수녀원에서 상주 사제로 지내는 임 신부는 예약이 있는 날마다 이곳을 찾아 요리하고 손님을 맞는다. “음식은 대화를 이끌어주는 매개체” “직장을 구하고 있는 취준생, 타지에서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주변에 지인이 없는 외로운 청년 등 정말 다양한 손님들이 와요. 누군가가 차려준 밥상이 너무 오랜만이라는 말도 들었어요.” 그가 이 식당을 열게 된 데는 인천이라는 지역의 특수성도 작용했다. “이 동네는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지내는 청장년들이 많아요. 일은 해도, 퇴근하면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내죠.” 그 고독한 저녁을 따뜻한 식사 한 끼가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음식을 나누다 보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는 “사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하기가 쉽지 않은데, 음식은 누구나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 주는 좋은 재료”라고 말했다. 2025년 11월 8일 문을 연 후 두 달여. 40명의 손님이 다녀갔다. 짧은 대화 한 줄이, 조용한 공감이 임 신부의 마음속에도 깊은 자취를 남긴다. “밥을 차려주자, 누군가에게 밥을 받아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며 음식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고 말하더군요.” 식당의 ‘밥값’은 돈이 아니다. 테이블에는 작은 안내문이 놓여 있다. ‘나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기’, ‘가족에게 안부 문자 보내기’, ‘누군가에게 응원의 메시지 보내기’ ….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한 10가지 선행이다. 임 신부는 말한다. “작은 행동이, 다시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어둠을 지나…요리사에서 신부로 ‘같이 한끼’의 시작에는 임 신부 자신의 삶의 전환점도 있다. 수도회 입회 전, 그는 10년 넘게 양식과 일식 요리사로 일했다. 그러나 해외 유학 중 건강 문제로 인해 요리사의 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귀국 후 몇 년간 깊은 좌절 속에 있었다. “동굴 같은 어둠이었어요. 그러다 문득 학생 시절 잠시 품었던 성소를 다시 떠올리게 됐고 수도회에 입회했습니다.” 그렇게 들어선 수도자의 길. 요리를 통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지금의 활동은, 그의 삶이 걸어온 길과도 꼭 맞닿아 있다. 수도회도 이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받아들였고, ‘같이 한끼’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같이 한끼’는 현재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등 SNS와 이메일 등으로 한 끼를 풍족히 나눌 이들의 예약을 받고 있다. 임 신부는 “비록 음식값을 받지 않는 비영리 시설이지만 다른 예약 플랫폼도 활용할 계획”이라며 “식당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많은 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같이 한끼’는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 하는 청장년들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에요.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삶에 기쁨이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 같이 한끼 - 주소: 인천시 남동구 예술로 198 SEE&SEE 빌딩 2층 - 카카오톡 아이디: meal4u - 인스타그램: @meal4u.bmc - 이메일: meal4u.kakao.com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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