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노래로 희망 전하는 소프라노 임선혜 씨

소프라노 임선혜(아녜스) 씨의 2026년 새해 첫 무대는 콘서트홀이 아니었다. 1월 중순, 전북 시골의 작은 성당과 양로원에서 연 ‘희망나눔콘서트’(이하 희나콘)였다. 희나콘은 그가 ‘음악을 통한 나눔’을 위해 18년째 이어오는 음악회다. 국제 무대 데뷔 28년 차, 미국 뉴욕타임스는 ‘눈부시게 빛나는 소프라노’라 했고, 지휘자 르네 야콥스(René Jacobs)가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연기자 겸 가수 중 하나’라 했던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현장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날 임 씨는 사제관 안에 옹기종기 모여 신자들이 끓여준 라면과 어묵탕으로 몸을 녹이고, 항아리에서 꺼낸 김장김치를 나눠 먹으며 공연했다. 이튿날 양로원 어르신들은 “내가 살아있을 때 이런 걸 언제 또 들을 수 있겠나”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돌아오는 길, 어르신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 먹먹한 마음은 다른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희나콘은 어쩌면 임 씨에게 가장 본질적인 무대다. 큰 무대에서는 얻을 수 없는 초심과 묵상이 절로 일어나는 자리다. 희망을 나누고 받는다 희나콘은 2009년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5월 문화축제에서 시작됐지만, 2013년부터 구조가 전환됐다. 기관이나 본당의 초청으로 ‘희망 공연’을 열고, 그 수익금으로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시골 성당과 복지시설, 병원을 찾아 ‘나눔 공연’을 마련한다. 나눔 공연에서 음악가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재능을 기부한다. 받은 것을 각자의 탈렌트로 다시 나누는 형식 덕분에, 음악가들의 자존감이 지켜지고 기쁨도 크다. 희나콘이 단순한 봉사를 넘어선 ‘문화’로 20년 가까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다. 지난해 여름, 강릉 갈바리의원에서의 경험은 희나콘의 방향을 한층 더 뚜렷하게 만들었다. 1965년 아시아 최초로 호스피스를 시작한 이 병원은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운영한다. 오랫동안 자신의 방에 아무도 들이지 않던 환자 한 분이 방 밖의 음악에 마음을 열었다. 마침내 방에 들어와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이틀 뒤 선종했다. “담당 수녀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 음악이 문을 열었고, 하늘 가실 때 마지막으로 동행한 것이라고요. 그때부터 희나콘은 더 먼 곳, 더 작은 곳으로 가는 게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지난 5월 9일 수원교구 호계동본당에서 희망 공연을 연 희나콘은 올해도 춘천교구 등지에서 여러 차례 나눔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성당에서 온 답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으로 칼스루헤 국립음악대학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친 그는 1999년 23살 때 고음악의 거장 필립 헤레베허에게 발탁돼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르네 야콥스, 만프레드 호네크, 윌리엄 크리스티 등 시대를 대표하는 지휘자들과 작업했고, 독일 베를린과 함부르크, 프랑스 파리의 주요 오페라 무대를 밟았다. 헨델의 〈아그리피나〉로 BBC 뮤직 매거진 어워드와 그래미 노미네이션, 슐호프 가곡 전집으로 독일음반비평가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 긴 시간 내내 그는 하나의 물음을 놓지 못했다. “노래가 세상에 무슨 의미인가.” 데뷔 10년이 지날 무렵, 그 답이 뜻밖의 방식으로 왔다. 성당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위로’와 ‘기쁨’이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자신이 세상에 위로와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 말이 “너 기쁘라고, 너 위로해 주려고”라는 말로 다르게 들렸다. 노래가 먼저 자신에게 기쁨이고 위로라는 것을,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위로받고 기쁜 것이기 때문에, 남들에게도 이 노래가 기쁠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겼다. 공연 후 찾아와 “당신의 음악으로 일주일이 행복할 것 같다”고 하는 관객들의 말이 진심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 깨달음은 희나콘을 이어가는 밑바탕이기도 하다. 동양인이 바흐 수난곡을 노래하기까지 유럽 고음악계에서 바흐 수난곡은 특별한 영역이다. 매년 사순 시기마다 콘서트홀과 교회 어디서나 연주되지만, 그 레코딩의 소프라노 솔리스트 자리에 동양인이 서는 일은 드물다. 2005년쯤 그에게 기회가 왔다. 녹음도 잘 나왔다. 그러나 결국 노래의 자질과는 무관하게 독일인 소프라노로 대체됐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고음악 지휘자 르네 야콥스가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의 소프라노 솔리스트 모두를 그에게 맡겼다. 주일마다 성당을 찾는 임 씨를 오랜 협업 속에서 지켜봐 온 야콥스는 “유럽인들이 이 음악을 만들면서 가졌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것을, 이 동양인이 가지고 있다”고 섭외 배경을 밝혔다 . 임 씨가 공연을 준비할 때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가사다. 외국어 가사를 최소 두 언어로 대조하고 마지막에는 한국어로까지 번역한다. 악보 하나 들고 정자세로 서는 오라토리오(종교 음악) 무대는 그에게 각별하다. 화려한 의상도 무대 세트도 연기도 없이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전달해야 하는 시간이다. “발이 다시 땅에 딱 붙는, 저를 겸손하게 하는 음악”이라고 설명한 임 씨는 “노래할 때마다, 남들에게 빼어나게 보여지는 게 아니라, 내 기도가 되게 해달라고 청한다”고 들려줬다. 신앙의 뿌리 부모님의 신실한 신앙과 봉사 활동 속에서 스며든 ‘하느님’은 그에게 자연스럽다. 유럽에서 식사 전 성호경을 그을 때 처음에는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다음 식사 때는 따라 하는 사람이 생겼고, 성당을 함께 가는 동료도 생겼다. 신앙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 성악가에게 활동 영역을 좁히는 편견이 되지는 않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임 씨는 지휘자 만프레드 호네크(Manfred Honeck)에게서 찾는다. 2018년 그래미 최우수 오케스트라 연주상을 받고 현재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 음악감독인 호네크는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계약할 때부터 미사 시간을 조건으로 넣을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임 씨는 호네크가 “하늘에 올라가면 하느님이 ‘너 뉴욕 필 무대에 서봤어? 베를린 필이랑 작업 해봤어?’ 이렇게 묻지는 않으실 것 같다. ‘나한테 물으실 걸 답하고 살아야겠다’”고 했다며, “그 한마디가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고 말했다. ‘달릴 길을 다 달렸다’ 말하고 싶다 그간 드라마 OST, 뮤지컬 공연 등 클래식의 경계를 넘나들어 온 임 씨의 올해 행보도 다채롭다. 연극배우들과 오페라 가수들이 함께하는 창작극, 피아니스트 임윤찬과의 모차르트 투어, 카운터테너 이동규와 20년 만의 러브 듀엣 리바이벌이 예정돼 있다. 올해 초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프리카대학교(UNISA) 주최 국제음악콩쿠르 심사에서 젊은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젊음의 열정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새삼 느꼈다. 그들에게 더 많은 무대를 열어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떠올렸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달릴 길을 다 달렸다고 후련하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을 맞고 싶다”는 그는 “멋있게 무대를 내려가는 준비를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냐고 물었다. “가사가 잘 전달되는 사람, 모르는 나라의 언어로 노래해도 그 가사가 뜻한 것이 듣는 이의 가슴에 닿는 성악가, 그렇게 기억해 주시면 가장 큰 칭찬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서 “노래할 때 행복해 보이는 사람, 그건 자신 있다”고 덧붙였다. 희나콘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공연은 원하는 본당이나 기관이 먼저 손을 내밀면 된다. “희망 공연을 열어주신 분들이 곧 나눔 공연의 후원자가 되시는 거예요. 기꺼이 찾아가겠습니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2면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한국교회 농인 사제 박민서·김동준 신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는 모국어로 미사를 드리며, 하느님 말씀을 모국어로 듣는다. 하지만 ‘소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듣는 사람들, 농인(청각장애인)에게는 모국어로 미사를 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모국어로 말하는 원어민 사제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년 전 첫 농인 사제 박민서 신부(베네딕토·서울대교구 에파타본당 주임)의 탄생은 신앙에 목마른 농인 신자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그리고 지난해 두 번째 농인 사제 김동준 신부(갈리스토·에파타본당 보좌 겸 애화학교 교목)가 탄생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서울대교구 에파타성당에서 우리나라에 단 둘뿐인 농인 사제들을 만났다. “소리가 없어도 하느님의 사랑은 들린다” 어떤 이들은 ‘미사를 본다’는 말을 두고 미사에 대한 정성이나 마음가짐이 부족한 표현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농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농인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를 ‘봄’으로써 하느님 말씀을 ‘듣기’ 때문이다. 손(手)으로 말씀(語)을 듣는다. 수어의 세상에서는 미사를 ‘보는’ 신자야말로 누구보다도 말씀에 귀 기울이는 신자다. “수어는 농인들에게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와 감정을 담은 ‘모국어’입니다. 수어 미사는 농인들이 통역 없이 하느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들의 인격과 신앙적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박 신부는 “농인은 시각적 언어를 사용하므로, 전례의 모든 요소가 신앙 전달의 핵심”이라며 “시각적 정성을 다해 농인들이 눈으로 복음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신부도 “에파타본당에서는 모든 성사와 전례가 수어를 기반으로 이뤄진다”며 “이는 농인 신자들이 자신의 언어인 수어로 하느님을 만나고 신앙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박 신부님께서는 서울대교구 사제시지만, 사실상 전국 교구의 농인공동체가 교회 안으로 더 깊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농인들이 단순히 참여만 하는 수준을 넘어,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셨기 때문입니다.” 2007년 박 신부가 서품받을 당시만 해도 농인은 ‘사목적 배려의 대상’이었다. 혼자서는 미사 참례도 어려웠고, 공동체와 함께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김 신부의 말처럼 박 신부의 활동으로 서울뿐 아니라 전국의 농인 신앙공동체에 활기가 더해졌다. 농인은 스스로 전례 봉사를 하게 됐고, 본당 사목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사목의 주체’로 우뚝 서게 됐다. 무엇보다 첫 농인 사제의 탄생은 농인 신자들에게 “우리도 사제가 될 수 있고, 우리 언어로 신앙을 증거할 수 있다”는 선교 의지를 심어줬다. 그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성소도 싹텄다. 김 신부가 사제의 길을 결심했을 때 무작정 찾아간 사람이 박 신부였고, 그 인연이 두 번째 농인 사제 탄생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김 신부는 “박 신부님 덕분에 교회의 변두리에 있던 농인들이 단순히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교회의 중심에 들어와 더 깊이 활동하게 됐다”며 “저도 농인 사목의 선구자인 박 신부님의 길을 이어가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두 번째 농인 사제의 탄생, 희망을 전하다 “‘앞으로 농인 사제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첫 농인 사제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듣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농인 사제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죠. 그래서 김 신부님이 사제가 되신 것이 정말 기쁩니다.” 박 신부의 서품이 농인도 사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김 신부의 서품은 농인 사제는 박 신부만의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또 다시 얼마든지 농인 사제가 탄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첫걸음이었다. 박 신부는 “김 신부님 서품은 ‘농인 사제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교회의 지속적인 일원’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평가했다. 두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지만, 동시에 전국 농인 신자에게도 절실한 농인 사제다. 전국 농인공동체에서, 심지어 해외에서까지 박 신부의 방문을 요청하는 곳이 많았다. 또 청인(聽人,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본당이나 단체를 찾아야 할 일도 많았다. 그러다 보면 정작 본당의 농인 신자들을 돌볼 수 없는 것이 박 신부의 안타까움이었다. 하지만 김 신부가 본당에 오면서 서로 번갈아 가며 본당과 외부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게 됐다. 두 신부의 활동으로 비단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의 농인 선교가 더 활성화될 수 있었다. 후배로 함께하게 된 김 신부도 박 신부를 통해 힘을 얻는다. 김 신부는 “선배 사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힘”이라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고민하고,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순간들 속에서 사목의 깊이도 더해지고, 본당 공동체도 더 안정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농인 사제의 존재는 교회가 모든 민족과 언어, 상태를 초월해 하나임을 보여주는 징표”라며 “사제직이 신체적 완벽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에 달려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더 넓은 포용성을 갖추게 한다”고 전했다. 다름을 넘어 함께하는 공동체로 두 농인 사제의 활약으로 많은 변화를 일궈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김 신부는 한 경청 모임의 모습을 예로 들었다. 교회 안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대부분이 그 당사자들이 자리했던 반면, 농인이 아닌 수어 통역 봉사자가 참석해 농인의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이다. 김 신부는 “장애에 대한 감수성도 높아지고 있고, 장애를 지닌 분들을 더 성숙하게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분위기도 곳곳에서 느껴진다”면서도 “사회에 비해 교회 안에서는 이런 변화가 다소 더디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비장애인 중심의 신학교 교육도 미래의 농인 사목을 위해 넘어야 할 벽이다. 벌써 농인 사제가 둘이나 탄생한 서울대교구조차도 농인을 위한 별도의 교수법이나 평가 기준, 이들을 전문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교수 등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농인 사제가 탄생해, 이다음 세대의 농인 사목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농인 성소자·신학생 양성이 필요하다. 박 신부는 “농인이 필담으로 모든 소통이 가능하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한국어와 한글의 관계와 달리) 수어와 글은 마치 제2외국어처럼 서로 달라서 깊은 영적 대화를 나누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여전히 장애인을 ‘배려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분위기도 벽이다. 농인을 비롯한 장애인을 ‘도움 받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자세는 장애인을 ‘우리와 다른 누군가’로 만든다. 농인도 ‘우리 중의 한 명’으로 자연스럽게 섞이는 교회, 본당의 이름 ‘에파타(열려라)’처럼 활짝 열린 교회가 두 신부의 바람이다. “우리 공동체가 서로의 ‘다름’을 ‘틀림’이 아닌 ‘은총’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서 각기 다른 아름다움으로 빚어내신 소중한 지체들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장벽을 향해 함께 ‘에파타!’라고 외칩시다. 그 문이 열릴 때 우리는 비로소 소리를 넘어선 더 깊은 하느님 사랑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발행일 2026-04-19 제3487호 9면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글 쓰는 의사’ 윤홍균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윤홍균 원장(토마스 아퀴나스·서울대교구 상암동본당)이 2016년 출간한 「자존감 수업」은 140쇄 100만 부를 돌파했다. 대한민국에 ‘자존감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아시아, 유럽, 중동, 북미 30개 국가에서 번역 출판되며 ‘전 세계가 선택한 자존감 교과서’로 불린다. 윤 원장은 이후 「사랑 수업」, 「마음 지구력」 등의 책을 펴내며 꾸준히 사람들의 마음 곁을 지켜왔다. 열등감과 불안, 상처가 쌓여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나를 북돋우고 사랑할 수 있을까. 자존감과 신앙, 마음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조카를 대하듯, 나를 대하라 그가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두게 된 출발점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이었다. ‘마음이 왜 이렇게 힘든지’,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좀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정신과로 이끌었다. 수많은 이론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붙든 핵심어는 ‘자존감’이었다. 내 마음을 달래려고 시작한 공부였는데, 결국 그 답이 전 세계 독자들과 맞닿았다. 자존감이라는 말은 이제 익숙해진 단어지만, 막상 ‘나를 사랑하라’고 하면 당혹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웃을 사랑해라’, ‘부모님을 사랑해라’ 등 ‘사랑하라’는 얘기는 평생 들었습니다. 거기에 목적어로 ‘나를’ 붙이니까, 주어와 서술어는 익숙한데 목적어가 낯선 거죠.”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를 떠올리면 된다. 성적이 떨어져도 미워하지 않는 그 마음, 시험에 떨어진 조카에게 “최선을 다했잖아, 다음 기회가 있어”라고 해주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주면 된다. 윤 원장은 “다들 이미 해본 것이고 받아본 것이어서, 대상만 치환시키면 된다”고 했다. 자존감과 자기애(나르시시즘)의 차이에 대해서도 분명히 했다. “자기애가 나만 사랑스럽고 남은 배제하는 것이라면, 자존감은 나를 돌보는 힘이 세져서 결국 타인을 더 잘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예수님의 빵 나눔을 떠올렸다. “예수님이 빵을 나눠주실 때 굶으시면서 나눠주셨다는 내용은 없어요. 제자들 빵을 뺏어서 준 것도 아니고요. 나를 잘 보살펴서 건강해지면 남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자존감이 이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연대가 느슨해지고 경쟁이 가속화되는 시대다. SNS로 소통은 넘쳐나지만 정작 누구에게도 잘 털어놓지 못하고 각자의 고민 속에 버거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자존감을 ‘정신 건강의 척도’라고 부르는 이유다. 환경이 좋지 않을수록 건강한 마음으로 무장한 자신이 가장 좋은 무기다. 윤 원장은 책에서 “건강한 자존감은 이런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강력한 스펙”이라고 썼다. 사실 윤 원장이 가장 쓰고 싶었던 책은 「자존감 수업」이 아니라 그 뒤에 출간된 「사랑 수업」이었다고 한다. 사랑을 하지 못해서, 사랑받지 못해서 받는 상처가 모든 마음 상처의 시작이자 해결점이어서다. 그 얘기를 하려다 보니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이야기부터 하게 됐고, 그래서 「자존감 수업」 안에 그 씨앗을 미리 심어두었다. 그가 독자들에게 가장 닿기를 바라는 대목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며 사는 것, 누구나 바라지만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그 길을 함께 바라보고 꿈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하느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때 하느님 사랑과 자존감의 관계를 물었다.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M. 스캇 펙이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인생을 ‘지도’에 비유한 것을 예로 들었다. “삶의 롤 모델이 있고, 그 롤 모델처럼 살면 된다고 알려주는 말씀이 있으면 인생이 뚜렷해집니다. 재산, 학력, 명예 등 세속적인 기준 안에서도 신앙인들은 ‘내가 추구하는 것이 이런 모습이다’라는 목표가 있으니까, 외롭지도 지루하지도 않고 방향을 잡기도 쉽죠.” 그는 현실도 솔직하게 짚었다. “하느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 잘 안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출발점이 될 수 있어요. 가끔이라도 ‘하느님이 날 사랑하시는 것 같네’라고 느끼는 순간, 그것이 인생의 정거장 혹은 안전지대가 돼 줄 수 있다고 봅니다.” 글 쓰는 의사 의사이자 작가, 강연자, 방송인 등 여러 역할을 함께 해오고 있지만, 윤 원장은 자신의 정체성을 ‘글 쓰는 의사’로 규정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1년짜리 글쓰기 과제를 계기로 글을 좋아하게 됐고, 동화를 완성해 본 경험도 있다. 이후 소셜 미디어에 꾸준히 글을 써왔고, 지금도 진료 후와 주말 저녁 등을 글쓰기 시간으로 확보한다. 예수님은 그의 글쓰기 스승이다. ‘주님의 기도’를 군더더기 없는 명문이라고 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이 부분은 ‘용서받으려고 했더니 이미 나는 해버렸네.’ 이런 구조잖아요. 작가로서 참으로 탐나는 구절이죠.” 예수님을 의사로서의 스승으로도 여긴다.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떠올리며, “친절한 말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낫게 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100만 부 베스트셀러의 성공과 명성, 신앙 사이에서 그는 ‘부채 의식’을 긍정적으로 품고 산다. “많은 이에게 받은 사랑에 상응하는 나눔과 봉사를 생각한다”며 ‘뭔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밥 살 각오’를 해야 한다는 비유로 설명했다. 본당이나 교회 기관의 강의 요청에 가능한 한 응하는 것도 그런 마음가짐의 일환이다. “가톨릭이 좋고 성당에도 가고 싶지만, 신앙과 교리는 잘 모르겠다는 분들을 위해 ‘신앙 초보자 길잡이’ 같은 책도 언젠가 써보고 싶다”는 그는 “한국 사회에서 비중이 커지고 있는 다문화 가족들을 돕는 방안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마음 건강 비결을 청했다. 단번에 돌아온 답은 ‘잠’이었다. 밤 11시 전후로 잠들고, 오전 9시 이전에 일어나 햇볕을 쬘 것. 신앙인들에게는 한 가지를 더 권했다. “성가를 많이 들으세요.” 윤 원장은 현재 중독과 ‘끊어내기’를 주제로 한 새 책을 집필 중이다. 자존감과 더불어 ‘중독’은 그의 주요 관심 분야다.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11면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전진상 공동체의 ‘유쾌한 언니들’

1970년대 시흥. 지금의 서울 금천구 시흥동·독산동 일대는 판잣집과 무허가 주택이 겹겹이 이어진 도시의 변두리였다. 장마철이면 골목마다 물이 차올랐고, 겨울이면 작은 불씨 하나에 온 동네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 등 가난한 이들과 실향민이 모여들었지만, 국가도, 제도도, 교회도 이들의 삶을 쉽게 품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산동네에, 1975년 2월 1일 사과 궤짝 몇 개와 이불 보따리를 들고 세 명의 젊은 여성이 들어섰다. 책상 대신 궤짝을 놓고, 삶의 현장 한복판에 그대로 몸을 던진 이들. 그들이 걸어 들어간 그 골목 ‘전진상’의 시작이었다. 무작정 산동네에 발을 들인 ‘고운 처자’들은 국제가톨릭형제회(Association Fraternelle Internationale, 이하 아피) 회원인 최소희(데레사) 약사, 유송자(데레사) 사회복지사, 벨기에 출신 배현정(마리 헬렌 브라쇠르) 간호사.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라(Becoming Being)’라는 아피의 가르침과,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라”는 요청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해 6월 7일 전진상 약국이, 10월 25일에는 전진상 복지센터가 문을 열었다. 3년 뒤 김영자(루치아) 간호사가 합류하면서 네 명이 된 이들은 가파른 산동네 골목을 오르내리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병으로 고통받는 이웃을 돌보고 약을 나누고 아이를 업고 뛰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씨앗은 이후 전진상 의원과 복지관,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지역아동센터로 자라났다. 50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8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최소희 약사는 약국 원장, 유송자 사회복지사는 복지관 관장, 김영자 간호사는 의원과 복지관의 재정 담당, 의대에 진학해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배현정 의사는 의원 원장을 맡고 있다. 네 명이 시흥벌에서 펼쳐온 50년은 한국 사회복지 역사의 살아 있는 증언이기도 하다.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라” 1974년 1월 초, 아피 공동체의 새해미사를 집전한 김수환 추기경은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갔으면 한다”며, “특히 평신도인 아피 회원들이 그곳에서 함께 살며 활동해 달라”는 것이었다. 최소희 원장은 그 순간을 떠올리며 “마치 마음에 ‘빛’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그 정신을 삶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던 때였다. 당시 유송자, 배현정 회원 역시 그 말을 듣고 깊은 울림을 느꼈고,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뜻을 모았다. 김 추기경은 “약사, 사회복지사, 간호사가 함께 있으니 약국을 열고 의료·사회복지 활동을 하면 된다”며 독려했고, 빈민촌 후보지 목록을 건네주었다. 하나하나 지역을 직접 돌아보던 이들은 시흥동에 이르러 말을 잇지 못했다. 배현정 원장은 “그 자체로 정말 충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미등록 주민을 포함해 약 4만 명이 산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약국과 동네 의원 한 곳이 전부였어요. 아무리 가난해도 이렇게까지 가난할 수 있을까 싶었죠.” 어떤 이는 물조차 없는 판잣집에 살았고, 어떤 이들은 생선 나무 궤짝을 엮어 만든 공간에서 가족과 버텼다. 세 사람의 마음은 ‘여기에 들어와야 한다’로 자연스럽게 모였다. 김 추기경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지원을 받아 현재 전진상 약국 자리의 2층 집을 구했고, 그곳에서 전진상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진·상의 정신 그대로 살아 낸 50년 전진상의 초창기는 시흥의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낸 시간이었다. 온 가족이 폐결핵에 걸려 도움을 청한 집, 연탄가스에 중독된 가족, 폐에 고름이 가득 차 심장이 오른쪽으로 밀릴 만큼 위급했던 학생, 가마니에 덮여 하수구에 놓여 있던 어린아이의 시신까지…. 기억을 꺼내면 하룻밤을 지새울 만큼 많은 사연이 이어졌다. 젊은 여성들이 빈민가에서 살며 일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알코올중독자의 난동과 칼부림, 심지어 조현병 환자가 약국으로 뛰어드는 일도 있었다. 현금이 있는 약국은 가난한 동네에서 언제나 표적이 될 수 있었다. 김 추기경은 사정을 알고 매우 안타까워했다. ‘고운 처자들이 제복도 보호막도 없이 험난한 생활을 어찌 해 나갈까’ 걱정하면서도, 성직자와 수도자가 하기 힘든 일을 평신도인 아피 회원들이 맡아 준 것에 깊이 감사했다고 한다. 이러저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심란했을 순간이 많을 법도 하다. 접고 싶을 때는 없었을까. “온전한 자아봉헌, 참다운 사랑, 끊임없는 기쁨인, 아피의 전.진.상(全眞常) 영성에 따른 우리의 소명이자 사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최소희 원장의 말에 유송자 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나를 위한 일이 아니었어요. 정말 그리스도의 사업에 동참한다는 마음이었죠. 인간적으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있어도, 근본적으로 일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죠.” 김영자 간호사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서 모든 게 더 어렵게 느껴진 적도 있었지만, 공동체가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웃과 함께 삶을 나눈 것, 그것이 전진상” 전진상 공동체 50년의 의미에 대해 언니들은 한목소리로 “이웃과 함께 살며 아픔과 삶을 나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각자 상처와 어려움이 있지만, 나를 닮은 이웃, 소외되고 병든 이웃과 함께 살며 그 아픔을 함께한 시간이 뜻깊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은 “전진상이라는 이름 아래 누구나 형제였고, 모두가 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살아 왔다”며 “또 이곳에 오는 사람들도 ‘내 집’, ‘내 형제’를 만난 마음으로 거쳐 갈 수 있기를 여전히 희망하고 있다”고 했다. 전진상이 자신들에게 어떤 곳이었는지를 묻자, ‘인생’, ‘영적·정신적으로 성장시켜 주고 큰 가족을 만들어 준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50년을 꾸준히 같은 뜻을 가지고 열심히 살 수 있는 이들을 만났다는 게 감사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전진상을 떠올릴 때 ‘그들은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며 살았다’고 말해주면 좋겠어요.” 이들의 손길이 닿은 전진상 복지관과 산하 5개 기관은 지금도 지역 사회 안에서 전인적인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 저소득층에게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말기 암 환자가 가정에서 편안히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 돌봄도 한다. 의료 상담뿐 아니라 가족 문제에 대한 종합 상담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결손가정 아동과 비행 청소년을 예방하는 데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저소득층 아동에게는 전인 교육과 학습 공간을 제공하고, 장학금 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응원하고 있다. 교사와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며 계층 간의 벽을 허물고 서로 돌보는 공동체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진상의 뜻을 이어갈 사람들 요즘 이들의 마음속에 가장 큰 고민은 전진상의 뜻을 함께 이어갈 사람들이다. 언니들 가운데 막내인 80세의 배현정 원장은 전진상의원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의사를 찾고 있다. “전진상 의원은 일반 병원의 외래 진료보다 훨씬 어려워요. 환자를 전체적으로, 포괄적으로 바라봐야 하거든요. 가정의학과 진료는 물론이고, 40년 넘게 이어져 온 방문 재택 진료도 함께해야 하죠. 최근 기대했던 의사 선생님도 ‘왕진’이 부담스럽다며 결국 오지 않으셨어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인터뷰 현장. 80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네 명의 언니들은 힘차고 밝았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더 젊어지는 것 같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든든한 언니들이다. 이들은 전진상을 아끼고 함께해 준 의료 봉사자와 후원자, 자원봉사자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전진상이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라’는 정신 안에서 앞으로도 따뜻한 사람이 사는 곳, 누구나 편히 머물 수 있는 곳,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공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시흥동에서의 반세기를 넘어선 지금, ‘못 말리는 유쾌한 언니들’이라 불리는 네 사람은 여전히 사람들 곁에서 웃음으로 문을 연다. 그 웃음 안에는 기도와 눈물, 그리고 흔들림 없는 선택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상담 및 문의 02-802-9313 전진상 의원·복지관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12면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네덜란드 주재 교황대사 부임하는 장인남 대주교

유일한 한국인 교황대사인 장인남(바오로) 대주교는 교황청 외교관으로 37년, 교황대사로 20년을 봉직해 왔다. 지난 7월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장 대주교를 네덜란드 주재 교황대사로 임명했다. 네덜란드는 장 대주교의 마지막 임지가 될 전망이다. 장 대주교는 2002년 10월 방글라데시 주재 교황대사가 된 이래 우간다,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교회의 일꾼은 주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 본분’이라는 마음으로 교황대사 직분을 수행해 왔다. 11월 17일 네덜란드에 부임하기 전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장 대주교를 만나 그동안 교황대사로 일해 온 소회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 교황대사로서 바라본 한국교회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대담: 장병일(바오로) 편집국장 ■ 일시: 2022년 10월 27일 ■ 장소: 인천 강화군 강화꽃동네 교황프란치스코센터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귀한 시간 내어 주신 대주교님께 감사드립니다. 1985년 교황청 외교관으로 첫발을 내디딘 후 37년째 임무를 수행하고 계십니다. 교황대사로서는 20주년을 맞이하셨습니다. 외교관으로서, 교황대사로서 가진 소명이 무엇인지, 또 그 소명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또 오랫동안 교황청 외교관으로 봉직해 온 소회도 듣고 싶습니다. ▲장인남 대주교(이하 장 대주교): 교황청 외교관 역할은 지역교회에 대한 봉사입니다. 현지 교구와 교회 상황을 교황청에 알리고, 교황청의 지시사항을 지역교회에 전달합니다. 교구장 공석 시에는 새 교구장 임명에도 참여합니다. 교황청 외교관 직무는 특수사목에 해당합니다.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본당사목과는 다릅니다. 37년 넘게 교황청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무엇보다 부족하고 나약하고 죄 많은 인간을 성직자로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까지 사제로서, 주교로서 잘 살 수 있게 기도해 주신 형님 장인산(베르나르도) 신부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장 국장: 부임하셨던 각 국가마다 나름의 상황들이 있겠지만, 네덜란드 교황대사로 임명되기 직전에 계셨던 미얀마에 대해선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톨릭신문도 미얀마 관련 도움 호소 기사나 사설 등을 통해 국내 신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 미얀마는 어떤 상황인지요. 또 한국교회가 어떻게 관심을 드러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장 대주교: 미얀마 상황은 극도로 어렵습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서 그동안 나라를 이끌었던 아웅산 수치 정부가 군부에 의해 쫓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거리에 나가 평화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군부의 무차별 사격으로 많은 이들이 사망했습니다. 군부를 반대하는 이들이 사는 지역에 전투기가 와서 포격하는 일이 거의 매일 벌어졌습니다. 제가 미얀마를 떠나기 전까지 사망자가 1700명이 넘었고, 군부에 의해 감옥에 갇힌 정치인은 1만 명을 넘었습니다. 군부의 무차별 폭격을 피해서 농토를 버리고 집을 떠난 국내 이주민도 8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선교하시는 한국 수녀님한테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 수녀님들이 나가 계신 미얀마 로이코교구 수녀원에 군인들이 들어와서 수녀원을 부수고 수색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미얀마 양곤대교구장 찰스 마웅 보 추기경님이 교회를 잘 이끌어 가고 계시고, 사회에 대한 적극적 발언도 자주 하십니다. 무장 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위해 일하자는 선언문도 여러 번 발표하셨고, 국제사회에도 미얀마를 도와 달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우리나라도 군부 독재를 겪다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민주국가가 됐기 때문에 미얀마 상황이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에서 적극적으로 관심 갖고 태국 교황대사관을 통해서 여러 번 도와주셨습니다. 도와주신 한국 주교님들, 서울대교구,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에 감사드립니다.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미얀마 사태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 기도하자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이제까지 태국 교황대사관에서 미얀마교회를 담당해 왔지만, 금년에는 교황님께서 미얀마 주교님들 요청을 받아들이셔서 미얀마 교황대사관에 참사관 신부님이 상주 외교관으로 가게 됐습니다. -장 국장: 한국교회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교회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선교사 파견이나 세계 곳곳의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지원 등 한국교회에 대한 주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교회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장 대주교: 지난 9월 초에 3년마다 교황청에서 열리는 교황대사 회의에 참석해 한 주간 모임을 했습니다. 교황청 재무담당 책임자인 예수회 신부님이 와서 교황청 재무사정에 대해 교황대사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로 교황청 재정이 많이 어렵다고 하는데 미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한국교회가 교황청 재정을 지원하는 5대 교회라고 했고 ‘공헌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기뻤습니다. 제가 1979년 로마로 유학 갈 때 한국교회는 교황청에서 지원받던 교회였습니다. 이제 교황청에 지원하는 나라, 공헌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한국교회는 유일하게 평신도 주도로 신앙이 들어왔고, 독특한 선교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 나라에서 생활하면서 한국 신자들이 교회에 대한 사랑이 크다는 걸 느낍니다. 너그럽게 헌금하고, 성직자와 수도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국교회의 자랑입니다. 유럽교회가 세계교회를 이끌다가 세속화와 물질적, 개인적 생활방식으로 인해 예전의 지도적인 위치를 잃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 한국교회, 아시아교회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50주년 총회에 참석한 아시아 주교님들의 연구 주제 중 하나는 아시아교회가 세계교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였습니다. 아시아인들은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족 간 유대와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큽니다. 한국은 가톨릭 신자 수가 전체 인구의 10%를 넘습니다. 한국교회가 보편교회에 공헌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복음적 가치를 실천하고 주님의 일꾼으로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장 국장: 장 대주교님이 이번에 부임하시는 네덜란드는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 ‘튤립의 나라’, ‘히딩크 등 축구로 유명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덜란드 가톨릭교회 현황 등 네덜란드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 대주교: 네덜란드는 저에게 아직 생소한 나라입니다. 아직 못 가 보았습니다. 네덜란드에는 7개 교구가 있습니다. 여기에 군종교구가 있고, 대교구는 1개 있습니다. 16개 교구에 대교구가 3개 있는 한국교회에 비하면 작은 교회입니다. 네덜란드 1700만 인구 중 신앙인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비율은 49.3%입니다. 다른 말로 50% 넘는 이들이 신앙 없이, 종교 없이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각 종교 분포는 가톨릭이 22%, 개신교가 10%, 이슬람교가 5% 정도 됩니다. 네덜란드는 극도로 세속화된 사회입니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산업과 비즈니스가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나라입니다. ‘돈이 최고다’라는 사고로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다원주의 사회입니다. 신앙인 입장에서 보면 반생명, 반가족 제도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낙태를 허용하는 법이 일찍이 제정된 나라이고, 안락사도 인정합니다. 동성혼도 다른 나라보다 먼저 인정된 곳입니다. 말하자면 반인간적, 반교회적 가치면에서 선두로 나가는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제·수도성소자도 말할 수 없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에 신앙적으로 살 때는 전 세계에 선교사를 보내는 선교사의 고향 같은 나라였지만 지금은 걱정이 많이 됩니다. 네덜란드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장 국장: 황인제 몬시뇰(토마스 아퀴나스·대전교구)에 이어 정다운 신부(요한 바오로·서울대교구)도 교황청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첫 한국인 교황청 외교관이셨던 대주교님께서 이러한 후배 사제들을 보면 감회가 새롭겠습니다. 교황청 외교관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후배 사제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장 대주교: 외교관 생활 30년 후에 후배 신부님들이 탄생해서 기쁩니다. 황인제 몬시뇰은 5년째 교황청 외교관 생활을 하다 벨기에에 발령받았습니다. 정다운 신부는 4년째 외교관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황 몬시뇰은 제가 벨기에 옆 네덜란드로 간다고 하니까 좋아하며 놀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후배 신부들이 외교관 생활에 잘 적응하고 웃어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 기쁩니다. 교황청 외교관들에게도 십자가가 항상 있습니다. 후배 신부들이 직무 중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하고 사제로서 기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장 국장: 앞으로 대주교님의 교황대사로서, 사제로서의 계획, 혹 퇴임 후 계획도 여쭤 보고 싶습니다. 보편교회 안에서 오랜 교황대사 경험을 공유해 주셨으면 합니다. ▲장 대주교: 사제의 삶은 주님의 손에 맡겨진 삶입니다. 미래의 삶에 대한 계획은 없습니다. 제가 2년 후에 정년이 돼서 퇴임하게 되면 출신 교구인 청주교구에 돌아가서 조용히 책 읽으면서 지내려고 합니다. 저의 교황대사 경험이 교회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나눠야 하는데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장 국장: 코로나19, 꼬여만 가는 정치, 침체되고 있는 경제, 가치관의 부재 등으로 한국사회가 혼란스럽고, 세상살이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세상 속의 빛’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에 대해 대주교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장 대주교: 저는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하면 놀랍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만 해도 나라가 어려웠습니다. 점심을 못 싸 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이 세계에서도 경제대국에 속하고, 아시아에서는 모든 이가 경탄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제가 일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우리나라 위상이 올라가니 저도 일하면서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동남아 주민들도 BTS(방탄소년단)는 다 압니다. 제가 그쪽 언어는 못하지만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하면 다들 기뻐하는 모습을 체험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과거보다 잘 사는 생활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살며 주님을 잃고 신앙에서 내리막길을 걷지만, 주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는 그리스도인이 돼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신다’는 정신이 우리 삶의 맥락이 돼야 합니다. 혼란스런 세상, 어려움과 위기가 항상 계속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 정신으로 무장하고 참된 인간적 가치로 사는 것이 우리 삶에 첫 바탕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바탕 안에서 우리 눈을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 우리 이웃인 이주노동자 등과 함께하며 주님을 모시고 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 국장: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교황님 북한 방문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장 대주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최근에도 북한 방문 의향을 공식적으로 말씀하셨고, 항상 북한에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2019년 교황님의 태국 사목방문 때 제가 3박4일 동안 태국 교황대사관에 교황님을 모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제가 한국인이어서인지 그때 교황님께서 “나는 북한에서 오라고만 하면 언제든지 간다”는 말씀을 저한테도 하셨습니다. 교황님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계십니다.

발행일 2022-11-13 제3318호 10면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홍성남 신부

홍성남 신부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사이다가 따로 없다. 꽉 막힌 가슴을 톡 쏘는 영성으로 시원하게 속 풀어주는 말과 글로 교회 안팎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홍성남(마태오) 신부. 최근 유튜브 ‘톡쏘는 영성심리’와 저서 「말해야 산다」로 또다시 주목받고 있는 그를 만났다. ■ 알코올 중독자에서 영성상담가로 “상담이 제 인생을 바꿔줬죠. 저더러 심리전문가라 하는데 저는 학자가 아니고 심리학을 통해서 나를 들여다보는 수행자예요. 공부는 끝이 안 나요.” 75개국 5만여 명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운영자, 교회 안팎에서 찾는 인기 강사인 홍 신부지만, 홍 신부의 주 업무는 상담이다. 그것도 ‘신부’라는 신분 때문에 공공연하게 상담을 받기 어려운 사제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다. 홍 신부는 어떻게 사제가, 그리고 사제를 위한 상담가가 됐을까? “강남에 있는 술집은 다 다녔고,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바닥에 내려갔었어요. 그런데 만약 바닥까지 안 내려갔으면 (영성심리) 공부를 안 했을 것 같아요.” 강렬한 체험으로 성소의 길에 올랐고 사제로서 보람도 느꼈다. 그러나 사제 10년차에 위기가 왔다. 강론을 해도 신자들은 물론 자신도 변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고, 미사 자체가 일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다. 매일 술에서만 재미를 찾았고, 급기야 미사 중 성작을 잡은 손이 떨려왔다. 알코올 중독이었다. 사제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높은 다리에서 뛰어내리려고도 했다. 그때 상담을 만났다. 상담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삶의 의미를 찾고 상담을 공부하려 대학원까지 갔다. 홍 신부는 “대학원에 가서 내가 날 미워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나를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홍 신부는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바닥에 내려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은총”이라면서 “그때 바닥에 내팽개쳐져서 바닥을 치고 여기까지 올라온 것 같다”고 말했다. ■ 사이비가 판을 치는 세상 “우리는 자기 인생에 궁금한 것에 답을 얻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답을 빨리 얻고 싶은데, 답을 빨리 주는 사람이 점쟁이나 법사, 도사들이에요. 생각하는 것도, 고민도 싫으니까 빨리 답을 얻고 싶은 거죠.” 영성심리로 우리 사회와 종교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홍 신부는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늘었다”고 우려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현상으로 “사이비, 도사, 법사 같은 사람들이 판을 치는 것”을 들었다. 생각하지 않는, 사유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이비나 독재자들에게 선동되기 쉽다는 것이다. 홍 신부는 대표적인 사례로 히틀러 추종자들을 짚었다. 홍 신부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언급하면서 “히틀러 추종자 중에 평범한 소시민이 많았다”며 “평범한 사람도 사유하지 않으면 악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 신부는 “사회적인 집단 선동이나 사이비 종교가 판치는 것 막으려면, 생각하고 읽고 물음을 던지는 작업을 해야 한다”면서 “신앙도 물음을 던지지 않으면 맹목적 믿음이 되고, 바로 변질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하느님 뜻’이라고 이야기하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홍 신부는 “‘하느님 뜻’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사람은 신자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면서 “‘십일조가 믿음의 정도다’, ‘헌금 내는 시간이 기쁜 시간이다’, ‘그게 하느님 뜻이다’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하느님 뜻’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 ‘하느님 뜻’에 눈치 보는 신앙 “우리도 너무 ‘하느님 뜻’에 눈치 보는 신앙생활을 해요. 하루종일 하느님만 보고 하느님 눈치 보는 게 ‘하느님 뜻’이라고 가르치니, 성당에 가서도 십자가 보면서 ‘내가 저 양반 죽인 죄인이지’ 하고 눈치 보니까 무슨 기도를 할 수 있겠어요.” 홍 신부는 사이비만이 아니라 우리도 ‘하느님 뜻’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느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느님 뜻’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알려줬다. 바로 부모의 모습이다. “애들이 놀 때는 엄마아빠 생각 안 해요. 그런다고 부모가 삐지겠어요? 놀다 말고 자꾸만 엄마아빠 쳐다보면 ‘아이가 문제 있는 거 아니야?’라고 오히려 불안하죠. 엄마아빠는 아이들끼리 재밌고 행복하게 놀길 바라요. 하느님 뜻도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성당을 ‘애들이 밖에서 놀다가 엄마아빠 만나러 오는 집’이라고 비유했다. 눈치 보고 주눅 드는 곳이 아니라 편하고 따듯한 곳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해성사를 강조했다. 고해성사는 성사로서 효력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으로는 ‘털어놓기’로 치유가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꺼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홍 신부는 “대부분 고해성사 시간이 너무 짧아 심리적 상처가 아물기 힘들다”며 “1명에 최소 1시간은 신부가 정성껏 들어줘야 치유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고해소를 재판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신부님이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야단치는 계부 노릇을 하는 신부님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가 끝나고 신자 감소를 걱정하죠. 일부는 일리 있는데 다 맞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신자들이 성당에 왔을 때 마음의 치유를 느끼게 해줘야 해요. 사이비 종교는 한 명한테 몇 사람이 붙어서 케어해 주는데, 누가 듣기 싫은 야단 들으면서 주일 낭비하고 싶겠어요. 인간적으로도 난센스지요. 교회는 슈퍼컴퓨터인데, 쓰는 사람이 286컴퓨터처럼 쓰고 있어요.” ■ ‘내’가 행복하기 홍 신부가 늘 강조하는 것은 ‘행복’이다. 그것도 ‘내 행복’이다. 성경 말씀처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려면 일단 ‘내’ 몸을 사랑해야 하고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홍 신부는 코로나19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그저 ‘윤리적 당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초기에 코로나가 확산된 지역들이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코로나가 돌고 돌아 전 세계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내’가 생존하려면 ‘내 몸’을 살리듯이 ‘이웃’도 살려야 한다는 깨우침이었다. 홍 신부는 “예수님은 뜬구름 잡는 말을 하신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현실적인 분이셨다”며 “이걸 깨닫고 성경을 봤더니 성경 모든 말씀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법, 룰(Rule)이었고 성경이 ‘인류생존법’이었다”고 전했다. “신자분들이 그만 자학하고, 그만 자기 비하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셨으면 해요. 다른 사람 행복이 우선이고 나를 미워하는 건 자학이지 신심이 아니에요.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자식의 행복이에요.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행복한 거예요.”

발행일 2022-10-30 제3316호 11면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이태석재단 구수환 이사장

‘울지마 톤즈’로 고(故) 이태석(요한) 신부를 온 나라에 알린 사람. 자신은 불교 신자이면서도, 그리스도를 따른 이 신부의 정신을 퍼뜨리려 애쓰는 사람. 최근 「우리는 이태석입니다」(344쪽/1만6000원/북루덴스)를 출간해 이 신부로 말미암아 변화한, 그리고 변화할 세상을 알리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태석재단 구수환 이사장을 만났다. 종군·고발 전문 프로듀서, 이태석 신부를 만나다 “이태석 신부님은 제가 저널리스트로서 살아오면서 꿈꿨던 그런 세상을 실질적으로 사신 분이에요. 이 신부님의 삶은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 종교가, 정치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를 다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이 신부님의 삶을 놓을 수가 없는 거죠.” 구 이사장은 KBS 프로듀서로 ‘일요스페셜’, ‘추적 60분’, ‘세계는 지금’ 등을 제작하며 30여 년간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을, 그리고 사회의 어두운 현장을 찾아다녔다. 세상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무엇보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변화시키고 싶다는 신념에서였다. 하지만 공영방송의 유명 프로그램을 통해 불의를 고발했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뜻을 이루지도 못했고, 구 이사장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 자리를 떠나야했다. 그러던 중 만난 것이 이태석 신부였다. “사람이라면 두려울 텐데 왜 전쟁터인 수단에 갔을까?” 그 질문 하나가 구 이사장을 ‘이태석’이란 사람에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겨본 구 이사장은 전쟁터가 어떤 곳인지, 그 생생한 두려움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동기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도, 그리고 그 현장에 남겨진 사람들의 심정도 알았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이 신부의 활동과 톤즈의 현장을 담아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울지마 톤즈’였다. 구 이사장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놓고 전쟁터에 가는 종군기자의 마음과 이 신부님의 마음이 같았으리라 생각했다”며 “이 신부님을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톤즈에서의 생활을 빠르게 해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태석 신부로 변화한 세상 “30여 년 저널리스트로 꿈꿨던 세상을 공영방송에서 그 어마어마한 프로그램 가지고 한번 해보려했는데 안됐어요. 그런데 이 신부님의 삶을 담은 영화 한 편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고 10년이 지나서보니까 그 변화가 구체화되고 있어요.” 이 신부는 성무를 수행하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식량을 나눠주는 등 바쁜 일과 중에도 홀로 진료소를 운영했다. 톤즈의 유일한 진료소였다.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난 뒤, 병원 하나 없던 마을 톤즈에 의대생만 57명이 탄생했다. 의대에 합격한 이 신부의 제자들은 이 신부가 그랬듯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의료 봉사에 뛰어들었다. 이 기적과도 같은 결과에 구 이사장은 “기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단언했다. 구 이사장은 “이 신부님이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하셨고, 10년 후인 지금, 아이들이 신부님과 같은 길을 걷겠다고 나서고 있는데 이건 기적이 아니다”라면서 “이 신부님처럼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면 받아들이는 사람의 삶에 좋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삶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삶이었다”고 말했다. 변화는 이 신부의 제자들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 신부의 삶에 감동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신부의 뜻을 잇기 위해 이태석재단에 정성을 보탰다. 재단은 그 정성을 바탕으로 이 신부가 돌보던 제자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남수단에 ‘이태석’이란 이름이 담긴 초등학교를 세우고, 이 신부의 제자들이 톤즈 지역 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의료기기를 후원하고 있다. 덕분에 이 신부가 하던 일이 1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더 큰 결실을 맺어 가고 있다. “전에는 ‘이 신부님이 대단한 분이셨습니다’라고만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 신부님처럼 사세요’라고 이야기해도 믿기 시작해요. 이 신부님의 삶이 그저 영화에만 있는 감동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이제 느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태석 신부의 ‘섬김 리더십’ 지금은 이처럼 자신 있게 이 신부의 삶이 가져온 변화를 말하는 구 이사장이지만, 사실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려고 누구보다 노력한 사람도 구 이사장이었다. ‘울지마 톤즈’가 흥행한 후, 구 이사장은 오히려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과하게 이 신부를 ‘영웅’으로 이상화시킨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스스로 검증하고, 또 검증했다. 그러다 이 신부를 다시 만난 것은 뜻밖에도 북유럽이었다. 행복 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들의 정치를 취재하면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이 신부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구 이사장은 특히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23년간 스웨덴 총리를 지낸 타게 엘란데르 전 총리의 예를 들었다. 엘란데르 전 총리는 국민의 세금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옷 한 벌, 구두 한 켤레까지도 아끼며 국민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북유럽 정치인들의 정치 이유는 국민들의 행복에 있었어요.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의 삶이, 이 신부님의 삶과 꼭 닮아있었어요. 이 신부님과 닮은 삶의 모습으로 구현된 사회의 모습을 보고, 이 신부님의 길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구 이사장은 이렇게 이 신부와 닮은 삶의 모습을 “섬김 리더십”이라 불렀다. 구 이사장은 섬김 리더십을 구체적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경청, 진심을 다해 대하는 자세, 자기 것을 다 내려놓는 무욕,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리고 “이 5가지가 국경, 이념, 종교를 떠나 이 신부님의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제 구 이사장은 이 신부의 섬김 리더십을 더욱 널리 퍼뜨리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종교나 단체를 불문하고 다양한 곳을 찾아 강의하고 있다. 또 청소년을 위한 저널리즘스쿨을 운영하면서 저널리스트의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이 신부의 모습 중 ‘공감’을 전하고 있다. 또한 올해 안에 ‘이태석 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태석 학교’는 이 신부의 자취를 순례하고, 이 신부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이 신부의 삶과 정신을 서로 나누는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구 이사장은 이사장직을 맡고 있지만, 재단에서 인건비를 비롯한 일체의 활동비용을 받고 있지 않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웃을 위해 헌신했던 이 신부처럼 살고자 하는 실천의 일환이다. ‘이사장’이라는 이름의 봉사를 하고 있는 구 이사장은 이를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이 신부처럼 살면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다. 구 이사장은 “제가 이 신부님처럼 살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 신부님의 이야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 신부님처럼 살면 행복해지는가’, ‘사랑의 힘은 대단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 지금도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님 식으로 살다 보니까 진짜 개인적으로 얻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삶이 행복하다는 거죠. 행복하지 않으면 이렇게 할 수 없어요.”

발행일 2022-07-03 제3301호 11면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물리학자 김도현(바오로) 신부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과학자이며 사제인 신부님을 뵐 준비를 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카이스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이론물리학연구센터에 재직 중이던 ‘뛰어난 물리학자가 사제의 길을 택했다. 왜 그랬을까? ’입니다. 사제의 길을 택하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김도현 신부(이하 김 신부) : 제 생애 약 50년 중 30여 년간은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묻고 그분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나머지는 그분을 실제로 만나서 같이 사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지난 1976년 아버지께서 갑자기 뇌종양 수술을 받으시고 기적적으로 살아나신 것을 계기로 부모님과 제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학창 시절, 성적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의 내면에선 인간은 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죽음 이후 세상은 어떠한지 등의 질문이 밀려들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던 중 가르멜회 수녀님으로부터 예수회 입회를 권고 받았지만 갈등도 했었고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카이스트 동기 중 가장 천재라고 평가받던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울며 기도하던 중 한 성경구절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마르 8,35) 순간 세상에서 무엇을 가진다한들 결국 하느님 품에서 제대로 죽는 게 가장 좋은 삶이고, 다른 이들 또한 그렇게 잘 죽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주님, 이제 저는 그냥 무조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장 국장 : 우주대폭발 이론을 발표한 조지 르메트로 신부,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신부 등 가톨릭 사제들 중에도 과학 분야에서 의미있는 연구업적을 남긴 분들이 많습니다. 신부님께서도 2015년 사제품을 받으시면서 이른바 ‘과학을 연구하는 사제의 길’로 접어드셨는데요. 한국에서 전문 과학자(이론물리학자)이자 가톨릭 사제인 분은 김 신부님이 유일하신데요. 어깨가 많이 무거울 듯합니다. ▲김 신부 : 입회 후 수도자로서 수련도 받고 교회법에 정해진 대로 6년간 신학·철학을 공부하는 과정만 10여 년입니다. 10년이란 자연과학이나 공학 등의 분야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이뤄지는 시간이죠. 다시 그 분야에 뛰어들어 그 흐름을 따라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잠을 줄여 더욱 힘껏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방법밖엔 없었죠. 그런데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논문이 좋은 평가를 계속 받는 것을 경험하면서 ‘아, 주님께서는 내가 과학자 신부가 되는 걸 원하시는구나’라고 확신했습니다. 현대 들어서 과학과 신학 모두 너무 전문화되다 보니, 양쪽을 다 다룰 수 있는 분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제 연구 활동의 가장 큰 목표는 ‘과학과 종교 간의 대화’입니다. 이러한 활동을 위해선 양쪽 분야를 다 잘 알아야 하기에,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장 국장 : 역사적으로 교회와 과학 분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일례로 교황청 천문대가 100여 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고, 종교에 관계없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의 대화와 소통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교황청 과학원의 활동도 상당히 활발했었는데요.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과학원 회원이었고요. 비오 12세 교황께선 “과학이 발전할수록 하느님을 더 발견하게 되기에, 우주의 창조와 진화를 설명하는 현대과학은 종교와 모순되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하셨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선 갈릴레이를 복권하셨습니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진화론과 빅뱅이론이 창조론과 모순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과학을 배척한다거나, 과학자들을 억눌렀다거나 하는 오해와 편견이 있었고, 또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건 매우 안타깝습니다. ▲김 신부 :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달력, 보통 그레고리오력이라고 부르죠? 그걸 만드는 분들이 바로 예수회 신부님들입니다.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활동할 무렵에만 해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과학자들이 있는 집단이 바로 가톨릭 사제단이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 어떤 종교보다 더 과학을 선도했으며 과학을 향해 열려 있고, 그 전통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 안에서 교회는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갈릴레오 재판은 이른바 교회와 과학자 집단 간 갈등의 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죠. 저는 긴 시간에 걸려 이 재판 관련 내용을 공부하고 논문으로 쓴 적이 있는데요. 재판에서 교회 권력이 평신도의 연구 발표 내용을 강압적으로 막은 부분은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교회는 갈릴레오가 주장하는 지동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학설이 완벽하게 확립됐다는 증거가 없으니 발표를 미루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회 또한 과학 분야에 있어서 뛰어난 수준을 갖추고 있었기에 교회가 뭘 잘 몰라서 강압적으로 막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런데 프랑스 시민혁명을 기점으로 1800년대 들어서면서 계몽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무신론적인 성향들이 교회를 공격하는 상황이 심각해졌는데요. 교회는 그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그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다보니 비뚤어진 인식들을 개선할 기회를 놓친 면이 있습니다. -장 국장 : 그렇다면 과학과 종교, 보다 구체적으로 과학과 신학은 대립과 충돌이 아니라 조화와 상생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할 텐데요. 하지만 각각은 너무나 다른 분야 아닙니까? 흔히 과학 만능주의자들은 우리 삶에서 종교는, 신앙은 필요없다고도 주장하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과학이 신앙에 도움이 됩니까? ▲김 신부 :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이 한 가지 수식만으로 우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한 법칙 하나로 많은 것을 명료하게 설명하는 물리학에 저도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물리학만으로는 만유인력이 왜 그 정도의 크기인지, 왜 작동하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을 밝혀주지만 대체 왜 3차원이어야 하는 지는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시간이 왜 1차원이어야 하는 지도 알 수 없죠.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 질량 등등의 기본적인 것들이 주어져 있다는 전제 하에 각종 현상들을 잘 설명해주지만, 그 시간이나 공간 등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주지 못하는 거죠. 이런 부분에 답하기 위해선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론, 형이상학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즉 신앙에 관련된 질문이 됩니다. 과학에도 신앙의 영역이 있고, 신앙도 과학 영역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과학은 신앙을 심화하고 하느님을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신경을 통해 창조주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창조주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하신 분이실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선 과학이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제가 가톨릭 신부이면서 동시에 과학자로 살아가는 것은, 과학이 답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교회가 답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장 국장 : 이 질문도 아주 많이 받으셨을 듯 한데요. 인간은 창조됐습니까? 진화됐습니까? 또한 과학은 하느님을 증명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김 신부 : 사실 가톨릭교회는 창조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개신교회가 주장하는 것이지요. 가톨릭교회는 진화라는 과정을 거쳐서도 하느님께서 세상만물을 창조하실 수 있다는 열린 시각을 갖추고 있습니다. 진화법칙도 하느님께서 주신 거라면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교회는 21세기의 과학적 언어와 과학이 만들어낸 법칙 등을 수용하면서 얼마든지 우리의 신앙을 단단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완성된 이론이 아닌, 계속적으로 그 증거를 수집해서 발전하려 애쓰는 과학의 한 분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진화론의 입장이 100% 맞다는 전제로 질문을 해봅시다. 진화 단계 중 언제부터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인가요? 언제부터 영혼이 개입되나요? 교회는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받은 유일한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하느님께서는 순수하게 영적인 존재이시기에 자연과학의 범주 안에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요, 하느님께서 자신의 본성과 무관한 창조물을 만드셨을까요? 어느 물질들 어느 생명체들이든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하느님의 속성을 약간이라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장 국장 : 일반인들은 자주 기적이라는 초자연적이고도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과학적인 개념과 언어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이라며 믿지 못하겠다고도 합니다. ▲김 신부 : 기적은 존재합니다. 그런 기적이, 과학이 설명하는 자연 세계를 넘어선 초자연적인 영역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바로 하느님께서 계신다는, 그분이 원하실 때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자연법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뭔가가 있다는 겁니다. 교회가 존립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죠. 그런데 역사 안에서 그런 기적이 그릇되게 활용되는 경우가 생겨나다 보니, 특히 한국교회는 의도적으로 기적을 널리 알리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온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좀 더 강조해도 된다고 봅니다.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이니까요. 김도현 신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물리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 이론물리학연구센터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예수회 입회 후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필리핀 로욜라신학대학에서 교회신학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 교수 및 가톨릭대 신학대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엔 저서 「신학, 과학을 만나다 – 현대 과학의 과점에서 본 그리스도교 신학의 새로운 해석」을 펴냈다.

발행일 2021-12-25 제3275호 8면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유덕현 아빠스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우리 사회, 생명윤리는 무시당한 채 ‘책임 없는 자유’만을 추구하는 세태 속에 태아들이 죽어가고 있다.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한 가운데, 인간의 손으로 인간을 단죄하는 사형제도 또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일삼으면서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세속주의, 개인주의 확산 등의 영향으로 교회도 ‘성소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해법은 없는 것일까. 유덕현 아빠스(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 대수도원장)를 만나 생명문화 수호와 기후위기 대응, 그리고 성소의 위기 등 교회 안팎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들어봤다. 대담: 장병일 편집국장 일시: 2021년 11월 26일 장소: 고성수도원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되셨습니다. 소감과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유덕현 아빠스(이하 유 아빠스): 프란치스코 성인을 먼저 떠올려봅니다. 성인은 아주 작고 겸손하게 사시면서 이웃과 모든 피조물을 형제로 여기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노달리타스 정신은, 모든 이와 모든 것을 함께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장상들 역시 서로 위로하고 지지받고 관심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각 수도회가 보유하고 있는 휴가지, 요양시설, 각종 수행 프로그램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제안할 생각입니다. 덧붙이자면, 저희 수도원과 가톨릭신문이 함께 펼쳤던 ‘수도원 스테이’가 아주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되면 각 수도회가 공동으로 ‘수도원 스테이’를 진행하는 것도 매우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 국장: 프로라이프 운동 등 생명문화 가치 실현을 위한 교회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생명문화와 관련한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 아빠스: 1973년 모자보건법이 제정됐습니다. 낙태를 할 수 있는 5가지 예외조항이 있었습니다만 이를 악용해 매년 150만 명, 하루 평균 4100명의 태아가 살해됐습니다. 지금까지 7200만 명의, 전혀 자기 방어권이 없는 태아들을 학살한 것입니다. 경악을 금치 못할 일입니다. 낙태는 태아에 대한 사형선고이자 집행입니다. 경제적ㆍ사회적인 문제로 낙태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저희 역시 각 수도원에 작은 경당을 만들어 낙태 당한 아기들의 영혼을 위한 분향소에서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사제와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성교육과 실제 사례 전파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독려하겠습니다. -장 국장: 그렇다면 생명문화의 가치를 세상에 널리 전파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 아빠스: 극단적인 자유주의, 유물론적인 사고, 우생학적인 사고, 쾌락주의와 소비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네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첫째로 기도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정치적이고, 세속적이며, 악마적인 것들과 싸울 수 없습니다. 둘째로 교육입니다. 성행위에는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것, 인간 생명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생명문화 전문가를 양성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홍보입니다. 언론 매체가 적극 나서야 할 것이며, 특히 생명문화와 관련된 실화를 영화화하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입니다. 교회 고위 성직자들이 입법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장 국장: 생명문화와 관련해 사형제도 폐지 이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관련 특별법안이 국회에 9번째로 발의돼 있습니다. 특별법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겠습니까. ▲유 아빠스: 사형을 받을만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생명도 하느님의 것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사형보다는 장기간의 징역형으로 전환하고, 죽기 전에 반드시 처절하게 반성하고 피해 입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속죄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범죄자 본인도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교회가 왜 사형제도를 반대하는지에 대해 각종 교육과 홍보 매체를 통해 국민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낙태, 생명수호, 사형제도 폐지와 같은 큰 명제들은 다른 종교와도 연계해야 더욱 효과적일 것입니다. -장 국장: 생명 수호의 힘은 결국 ‘신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유 아빠스: 신앙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시도달리타스의 정신처럼 ‘함께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교회의 신앙입니다. 성직자와 수도자, 각 교구와 수도회가 ‘신앙 공동체’로서 더욱 긴밀한 협조로 일치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이 신앙의 열매로 승화되고, 그 열매가 신자들을 포함한 세상 모든 이에게 생명의 가치를 인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외로운 사람들을 내버려 두지 않고, 모두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생명을 파괴시키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인식을 개선시킴으로써 우리 모두 함께, 자연스럽게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장 국장: 주제를 환경문제로 돌려보겠습니다. 생명문화와 함께 교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기후위기 대응’ 문제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떤 대처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유 아빠스: 기후위기 역시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노달리타스 정신으로 돌아갑시다. 모든 인간과 피조물을 형제로 여겨야 하며, 미래에 태어날 우리의 후손들과 현재의 우리 모두가 긴밀하게 연결돼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기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나만 잘 되고’, ‘우리나라만 잘 살면 된다’는 잘못된 의식에서 벗어납시다.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살리기 위해 작고 겸손한 삶을 추구해나갑시다. 작은 노력으로부터 시작되는 환경수호 정신을 키워나가는 것이 그 어떤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도 급선무라고 봅니다. -장 국장: 아울러 성소의 위기 문제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수도성소는 물론이고 교회 전반적으로 성소가 감소하는 현실입니다. 어떤 대책이 필요하겠습니까. ▲유 아빠스: 성소의 위기와 관련한 요인은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외부적인 요인은 출산율 감소와 쾌락주의입니다. 그러나 외부 요인보다는 내부적인 요인이 더 심각합니다. 수도자들의 모습이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와야 할 강렬한 기쁨의 기운, 경청의 자세, 사랑하려는 열정, 기도와 말씀에 대한 갈증이 기성 수도자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면 젊은이들은 성소를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작고 겸손하게, 온 인류와 피조물을 형제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각 공동체의 카리스마와 정체성을 살리는 길이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현대의 성인이라 할 것입니다. 성인 한 명이 나면, 성소자는 1000명, 1만 명으로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입니다.

발행일 2021-12-05 제3272호 12면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두산 경영 연구원 박용만(실바노) 회장

“회장님?” 뒷모습을 먼저 봤다면 못 알아볼 뻔했다. 그의 소탈한 모습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쪽으로 시크하게 툭 걸친 손때 묻은 검정 백팩, 거기에 함박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며 신문사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모습…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을 지낸 기업가라고 하기엔 너무 친근한 모습 아닌가 하는 선입견이 발동했다. 이번 호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들’에서 박용만(실바노·66) 두산 경영 연구원 회장은 외적 소탈함과 유쾌함 이상으로 기업가로서 또 신앙인으로서 긍정적인 가치관과 올곧은 의식, 지혜로운 안목과 뚝심을 보여줬다. “제가 신앙을 기준으로 경영을 했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입니다. 하지만 경영을 하면서 올바른 기업 경영 방식과 신앙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달았죠.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는 말씀을 평소 많이 생각합니다. 최근 봉사 횟수가 많이 늘었는데, 성당에 자주 못가는 죄책감을 이걸로 좀 씻고 있다고나 할까요…. 하하!!” 대담: 장병일 편집국장 일시: 2021년 8월 25일 장소: 가톨릭신문사 서울본사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코로나19로 SNS가 더욱 활성화됐습니다. 특히 페이스북에서 회장님은 솔직하게 또 이른바 ‘옆집 회장님’처럼 친근하게 소통하시는데요. 그 진솔한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솔직함에 대해 “SNS도 책도 솔직하지 않으면 쓸 이유가 없다. 내 생각을 밝히라는 강요도, 내 생활을 보이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죠. 여기에 회장님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용만 두산 경영 연구원 회장(이하 박 회장) : 사람을 편하게 대하는 편이고 어떤 관습에 얽매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다울 때 제일 편안해지거든요. 자꾸 포장을 하기 시작하면 남의 눈을 의식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남의 눈에 맞춰 그 포장을 유지하고 살아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그래도 어른이니까 보통 사회에서 말하는 규범의 범위 안에서 살려고 노력하되, 포장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게 가장 옳게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 국장 : 최근 펴낸 에세이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에서도 일관적으로 사람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큰 호응을 받고 있는 이 책을 발간하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박 회장 :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술도 한잔해가면서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그냥 글로 한번 옮겨보면 어떨까 했어요. 소수의 친구들한테만 하던 이야기가 책을 통해 더 많은 분들께 전달되면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공통적인 평가가 “재미있다. 예상과 다르게”(웃음)였고요 “술술 읽힌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원래 의도가 그거였거든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친구의 이야기’ 같은 책을 쓰고 싶었어요. -장 국장 : 올바른 ‘리더’에 관한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저서에서도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가면, 그 직책에 걸맞은 사람이 될 때까지 저지르는 시행착오를 조직의 구성원들은 무수하게 겪어내야만 한다. 또 그 자리에 가기 위해 준비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준비 안 된 사람 때문에 낙오한 것인지도 돌아봐야 한다”고 하신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회장님께선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어떤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박 회장 : 소위 말해 삼각형 피라미드형에서 맨 아래 있는 구성원들은 자기 일만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리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해 여러 사람과 같이 일하도록 이끄는 사람이라는 의미죠.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하는 일, 그 사람이 내리는 결정, 그 사람의 언행은 여러 사람한테 영향을 줍니다. 리더로 올라갈수록 권한과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그에 맞는 엄정한 평가가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문제점 중 하나가 리더로 올라갈수록 평가를 안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서만 비난을 하시죠. 저 사람은 왜 저 자리에 갔는지 의문도 가지시고요. 리더가 평가를 받고 그 평가를 통해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더 분명히 해나가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엄정한 평가가 있으면 그 자리에 앉지 않아야 될 사람들은 앉지 못하게 되기 시작할 테니까요. 하지만 평가 없이 비난만 하면 발전적 변화가 없습니다. -장 국장 : 회장님께서 사랑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우리의 스승이라며 그들 곁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전히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나 가진 자들의 도덕적 해이 등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업가=사장=부자’라는 공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요. ▲박 회장 : ‘기업가=부자’라는 등식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기업가는 한 기업의 성과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책임이 크거든요. 그 책임만큼 보상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수 없고요. 선진국으로 갈수록 법 이전에 규범이 바로 서야 될 것 같습니다. 규범이 존재하지 않으면 법의 테두리에 가깝게만 살게 되거든요. 규범에는 어긋나도 합법인 경우, 사회적으로 처벌은 받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법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법을 어기게 되거든요. 그래서 규범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버스 정류장에서 줄 서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줄 서는 문화가 없었거든요. 버스가 오면 그냥 벌떼처럼 몰려들었어요.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줄 서는 게 쉽지 않습니까. 규범을 지키는 거죠. 그 다음으로는 탐욕에 대한 절제인데요, 건강하지 않은 욕심은 반드시 건강하지 않은 수단을 불러옵니다. 건강하지 않은 수단이 경영에 들어가면 그건 결국 일탈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 만큼의 정당한 보상이 어느 정도 수준인가에 대한 생각을 자꾸 해야 될 것 같아요. -장 국장 : 그렇다면 경제인들, 특히 신자 경제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박 회장 : 구성원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어야 됩니다. 고용이 지금보다 훨씬 더 없었고 사회가 굉장히 가난했던 시절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람이 베푸는 그런 개념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약속에 의한 관계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기업의 리더인 제가 구성원에 대해 ‘내가 당신들한테 일자리를 주고 당신들의 일자리는 내게 달려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착각이죠. 오히려 반대죠. 시각의 변화가 좀 필요합니다. 기업가는 직원들하고 맺은 약속으로 경영의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에 따라 그분들은 공헌을 하고 또 공헌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고 시너지가 나오며 기업에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신자들은 도덕적 규범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런 면에서 신자 경제인들은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죠. 제 경험에 의하면 하느님 말씀이 경영에 방해된 적이 없거든요. -장 국장 : 회장님께서 이렇게 많은 봉사를 하고 계시고 또 기부도 많이 하시잖아요. 요즘은 몰타기사단 한국지부 회원들과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영상을 통해 보니 주방에서 칼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요. 봉사를 시작한 계기와 회장님의 삶에서 봉사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박 회장 : 처음엔 부모 잃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봉사를 다녔어요.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니까 이 아이들을 돕는 게 더 보람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사회사목하는 신부님께 조언을 구해 서울역 인근 쪽방촌에서 봉사를 했어요. 알코올 중독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처음에 든 생각은 그분들은 자신들이 그 삶을 선택했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선택과 상관없이 그늘에 있기에 아이들을 돕는 게 맞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쪽방촌을 서너 번 방문했을 때인가, 이 생각이 굉장히 교만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모두 하느님 자식인데, 어떤 자식을 바라볼 때 하느님이 가장 아프실까 생각을 해보니, 희망을 찾지 못하고 옆에서 돕는 이들도 많지 않은 알코올 중독자들을 도와야 하겠더라고요. 요즘에는 후원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동네에 주방을 만들어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곳 쪽방에 계시는 분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갖다 드리면서 이분들의 삶을 자세히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의 주거 문제, 지원 문제 등에 대한 대화도 하게 되고요. -장 국장 : 앞으로도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일을 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구체적인 계획이 있을까요? ▲박 회장 : 가난한 분들이 계신 곳에서 일을 하고 싶고요. 또 앞날을 생각하면 막막한 젊은이들을 돕는 일도 좀 많이 하고 싶습니다. 66세면 이제 여행도 많이 다니며 좋아하는 거 하라고 말해주는 이들도 있긴 한데요, 팔자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웃음) 저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꾸 앞으로 뭐 할 거냐는 질문을 하네요. -장 국장 :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가톨릭신문 독자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 회장 : 저도 처음에는 일상이 불편하고 답답하고 그래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인데 왜 이렇게 불편하고 많은 이들이 고통받아야 할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안에서도 할 일이 있고 생각할 거리가 있더라고요. 사람을 잘 만나지 못해도, 한 2년 만에 전화해서 얘기하면 만나지 못해도 전화라도 하니까 좋다는 생각이 드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또 원래 책도 보고 신문도 보지만,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들으면서 세상일을 알잖아요. 그런데 사람을 잘 못 만나니까, 이럴 때 가톨릭신문을 보면 참 많이 도움 되죠. 신앙에 대한 지식도 얻고 교회 안팎에서 무슨 일 일어나는지도 알 수 있잖아요. ※박용만 회장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대학교 경영학 석사를 거쳐 한국외환은행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두산그룹에 입사해 식품, 출판, 광고, 건설, 중공업 등 여러 사업 부문을 거쳐 그룹 회장을 지냈다. 최근까지 두산 인프라코어 회장직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겸하는 등 국내외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펼쳐온 기업가다. 현재는 두산 경영 연구원 회장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가톨릭 신자 기업가로서 국제적 구호 봉사단체 ‘몰타기사단’ 한국 지부를 이끌며,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프로급 칼솜씨를 지닌 아마추어 요리사로 봉사에 매진하고 있다.

발행일 2021-09-05 제326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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