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2) 사명을 위한 은사, 성소, 직무(2): 제2부(64~67항)

「최종문서」 제64항은 혼인을 단순한 생활 형태가 아닌 성사적 성소로 조명한다. 여기서 혼인성사의 은총은 가정 내부만이 아니라 교회 건설과 사회적 임무로까지 확장된다. 이것은 가정을 사목의 ‘대상’에서 ‘주체’로 재정의하는 시각의 전환이다. 가정은 자신 안에서 복음을 살아내고 세상에 이를 전달하는 선교 공동체가 된다. 따라서 교회는 이런 가정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관계망을 더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65항은 축성생활이 시노달리타스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다룬다. 축성생활은 오랫동안 공동 식별과 공동체적 삶을 실천해 왔기에 시노드 정신의 살아있는 모델이 될 수 있다. 또 오늘날 많은 수도회가 접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맥락과 구성원들의 다양한 출신지를 고려할 때 풍요로운 상호 문화의 실험실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지역교회의 목자들과 수도회 책임자들이 은사 교환을 통해 공동 사명을 강화하도록 초대받는다는 점에서, 축성생활이 고립된 영역이 아니라 지역교회와 긴밀히 연결돼야 함을 촉구한다. 제66항에서는 은사와 직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드러낸다. 선교 사명은 세례 받은 모든 이의 것이며, 평신도의 첫째 임무는 세상 안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키는 것임을 재확인한다. 그리고 평신도의 은사 가운데 일부를 직무로 제도화하는 문제를 다룬다. 직무 설정의 절차로는 공동체의 필요 확인, 목자와 공동체의 공동 식별, 관할 권위의 결정이라는 시노드적 과정이 제안된다. 공동체의 식별 과정 거쳐 사명과 직무로 열매 맺어 평신도 직무와 관련해서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자의교서 「일부 직무」(1972년)를 통해 평신도에게 독서직과 시종직의 전례 직분을 부여한 바 있는데, 최근 시노드 과정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의교서 「주님의 성령」(2021년)을 통해 이를 여성에게도 확대했다. 또한 「최종문서」는 이동성이 높아진 오늘의 현실에서 특정 지역이나 공동체에 한정된 기존의 직무에 대한 재성찰 역시 요청하고 있다. 제67항은 신학의 봉사적 기능을 다룬다. 신학자들은 하느님 백성이 계시를 깊이 이해하고 현실에 적절히 응답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신학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공동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행위로 자리매김한다. 곧 신학도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신학자끼리, 그리고 신학자와 목자들이 서로 경청하고 대화하며 식별하는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성령께서 세례받은 모든 이에게 부어 주신 은사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동선을 위한 것이며, 혼인·축성생활·평신도·신학의 다양한 성소 안에서 공동체의 식별을 거쳐 사명과 직무로 열매 맺는다. 교회는 여성·어린이·청소년·장애인은 물론 가정과 수도 공동체를 포함한 모든 세례받은 이를 수동적 대상이 아닌 능동적 사명 주체로 인정하고 파견하며 동반함으로써 관계의 진정한 회심을 이룬다. 시노달리타스란 의사결정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성령의 자유에 뿌리를 둔 은사의 다양성이 공동체의 식별과 목자의 권위와 신학의 봉사 안에서 온전히 존중받고 사명으로 수렴되는 복음적 관계의 근본적 재구성이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1) 사명을 위한 은사, 성소, 직무(1): 제2부(57~63항)

「최종문서」 57~67항은 ‘사명을 위한 은사, 성소, 직무’라는 제목 아래 교회 구성원들의 역할과 사명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 안의 여러 신분과 직무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항들은 제2부 ‘관계들의 회심’이 요청하는 교회의 새로운 관계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회심’은 개인의 내적 변화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 자체가 성령 안에서 새롭게 변화돼야 함을 뜻한다. 따라서 이 항들은 바로 이러한 관계의 회심이 실제 교회 안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 부분의 신학적 기초는 「최종문서」 57항에 제시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놓여 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12,4-6)라는 말씀처럼,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은사와 성소와 직무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모두 같은 성령 안에서 공동선을 위해 주어진다. 교회 안의 다양한 성소와 직무는 세례를 통해 받은 사명과 성덕의 부르심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표현들이다. 그러므로 시노달리타스는 단순한 조직 운영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은사가 조화를 이루며 공동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존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58~59항은 평신도 이해의 중요한 전환을 보여 준다. 오랫동안 평신도는 성직자의 활동을 보조하는 존재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종문서」는 평신도를 세상 안에서 복음을 살아가는 고유한 선교적 주체로 강조한다. 평신도들은 가정과 직장, 사회와 정치, 문화와 디지털 환경 안에서 복음의 정신을 드러내도록 파견된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의 역할이다. 교회 공동체는 단지, 내부 활동을 유지하는 조직이 아니라, 신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고 그들 삶의 자리에서 수행되는 사명을 지지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59항에서 이것을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강조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60항에서는 여성들의 은사와 성소가 교회 안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여기서 성경과 교회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이뤄진 여성의 역할을 확인하고, 여성의 지도력 수행, 여성 부제직 문제 역시 계속 식별돼야 할 과제로 남겨 둔다. 나아가 설교와 교리교육, 공식 문서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이미지까지 성찰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이는 관계들의 회심이 교회의 문화와 표현 방식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변화임을 의미한다. 61~63항은 각각 어린이, 젊은이,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과거에는 이들이 주로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었다면, 「최종문서」는 그들을 교회의 능동적 주체로 바라본다. 이는 모든 이들, 특히 주변화된 이들의 목소리를 교회의 중심에 놓으려는 시노달리타스의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0)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와 교회: 제2부(53~56항)

「최종문서」는 시노드 과정에서 교회가 직면한 복잡한 현실을 ‘맥락(상황)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성찰한다.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실천하는 자리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각 지역 교회는 고유한 문화적 풍요로움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사명 수행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맥락 안에는 복음의 논리에 반대되는 폐쇄적 관계의 논리가 존재한다. 「최종문서」는 이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르침을 따라 ‘죄의 구조’(「사회적 관심」, 36항)라고 칭한다. 곧 구조적 죄는 관계를 폐쇄시킨다. 이러한 구조는 장벽을 세우고 두려움을 조장한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회개뿐만 아니라 구조적 쇄신과 관계들의 회심이 동시에 필요하다. 「최종문서」는 오늘날 인류가 처한 비극적 상황을 관계의 단절과 균열이라는 관점에서 구체화한다. 전쟁과 무력 충돌, 무력에 의한 평화 건설, 이익을 위한 피조물과 인간의 착취 역시 이와 같은 신념에 기인한다. 이러한 세상의 논리는 교회 안에서도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다. 남녀 불평등, 인종 차별, 장애인 차별, 이주민 배척 등의 장벽 역시 폐쇄성의 원리에서 말미암는다. 통합 생태론의 차원에서도 공동의 집인 지구와의 관계 균열이 인류 전체를 위협하고 있으며, 특히 태아부터 노인까지 인간 생명을 경시하고 버리는 가장 비극적인 폐쇄성이 만연해 있다. 시노드 과정에서 세상과 교회의 맥락은 늘 관련돼 있다. 세상의 악은 교회 안에서도 나타난다. 「최종문서」는 그동안 교회 내부에서 자행된 다양한 학대와 권력 남용 희생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성적 학대뿐만 아니라 영적 학대, 경제적 남용, 권력 남용, 양심의 학대 등 성직자와 교회 직분자들이 가한 끔찍한 잘못들을 하나하나 거명한다. 교회가 피해자와 생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치유와 정의, 화해를 향한 것이다. 교회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허히 용서를 구함으로써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직시를 통해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새롭게 정의한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 상처받은 관계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이를 통해 교회는 비로소 하느님과 인류가 일치를 이루는 ‘성사’가 될 수 있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교회는 성령께서 모든 문화와 장소에 뿌려 주신 복음의 씨앗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상호 신뢰와 용서의 함양, 환대의 공동체 형성, 사람들과 지구의 삶을 증진하는 경제 건설, 갈등을 화해로 전환하는 능력 등의 열매를 맺는다. 역사적으로 종교 간에 자행된 적대 행위, 특히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열과 적개심이라는 추문을 극복하려는 시노드 여정의 새로운 경험이 관계적 회심의 중요한 표징으로 제시된다. 시노드 과정에서 우리는 세상과 교회 안에 깊게 뿌리내린 폐쇄적이고 착취적인 관계의 어둠을 직시하고, 배척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성령께서 이끄시는 관계적 회심과 일치의 사명으로 나아간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9) 관계들의 회심, 삶으로 고백하는 신앙: 제2부(49~52항)

「최종문서」 제2부는 시노드 교회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핵심 조건으로서의 ‘관계들의 회심’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향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처음 인용되는 성경의 무대는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제자의 고향인 티베리아스 호수이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경험했지만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베드로와 함께 고기를 잡으러 기꺼이 동행한다. 「최종문서」는 이 장면에서 시노드 여정에 베드로의 후계자와 함께하는 교회 공동체를 본다. 시노드의 길에서 교회가 깨달은 것은 모든 관계의 소중함이다. 참으로 교회를 살아있게 하고 교회 구조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관계’라는 전망이다. 전 세계의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과의 관계와 인간들 사이의 관계, 심지어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어 주는 교회를 열망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시노드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경청 되고 있다는 기쁨을 표현했고, 이것은 혼인 상태, 성적 정체성 등 특정 상황으로 인해 교회 내에서 배제되거나 판단 받는 사람들의 고통에 함께하는 것에 이른다. 「최종문서」는 이러한 관계들을 돌보는 것은 교회의 조직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복음 선포이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 주는 신앙적 증언이라고 본다. 따라서 ‘관계의 회심’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다. 관계들의 회심에서 기준이며 모범이 되는 분은 복음서의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자 했고, 누구도 배제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만났고, 그들의 필요와 믿음에 귀 기울였다. 그들에게 자비로운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 주셨고, 그들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고, 삶을 변화시켜 주셨다. 「최종문서」는 바로 오늘의 교회 역시 현대 사회의 파편화된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진심을 다해 형제자매의 소리를 경청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만나시고 치유하시는 그 구원의 방식에 동참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최종문서」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관계 회심’의 핵심 영역을 가리킨다고 본다.(52항) 성의 다름은 인간 관계성의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성의 다름은 차별이나 불평등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세례성사 안에서 남녀는 완전히 동등한 품위를 지닌다.(갈라 3,28 참조) 교회는 이러한 남녀의 다름을 하느님의 선물로 환영하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를 살아감으로써 복음을 증언해야 한다. 그렇지만, 시노드 과정에서 드러난 많은 여성의 고통과 아픔은 교회가 자주 이 부분에서 실패해 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최종문서」가 언급하고 있는 관계들의 회심은 바로 그 실패와 상처 위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강조한다. “시노드 교회는 관계들의 진정한 회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8) 사회적 예언으로서 시노달리타스: 제1부(47~48항)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달리타스를 공식적으로 제창하면서, 교회의 자기 이해를 교회 내부를 넘어 인류 전체를 향한 보편적 소명으로 확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대의원회의 제정 50주년 연설’에서 “시노드 교회는 민족들 가운데 들어 올려질 깃발과 같다”고 표현하며, 교회가 역사 안에서 인간 존엄과 공동선을 증언하는 예언적 주체임을 강조했다. 이 연설은 시노달리타스를 교회의 구성적 차원으로서만이 아니라 대안적 삶의 양식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최종문서」 제1부의 마지막 두 항(47~48항)은 시노달리타스가 지니는 이러한 사회적, 예언적 차원을 명시적으로 발전시킨다. 47항이 읽어 내는 오늘의 세계는 불평등의 구조적 심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 약화, 권위주의적 통치의 확산, 시장 중심 논리가 인간과 창조 세계의 취약성을 압도하는 현상, 대화 대신 힘에 의존하는 갈등 해결 방식이 횡행한다. 이런 세상에서 시노달리타스는 그 지배적 논리를 비판하는 동시에, 이와 전혀 다른 관계 양식을 교회 안에서 구현하고 이를 통해 세상에 증언하는 삶의 방식이다. 「최종문서」는 이를 포용, 경청, 가난한 이들과 창조 세계에 대한 돌봄, 공동 책임성 등의 요소로 구체화한다.(48항) 이 관계 양식은 개인주의적 고립과 전체주의적 획일성이라는 양극단을 동시에 거부하며, 공동선을 위한 상호 의존성과 상호 돌봄을 지향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경청’의 신학적, 사회적 의미이다. 시노드 교회에서 경청은 단순한 소통 기술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식별 행위이며, 무엇보다 가장 가난하고 주변화된 이들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포함한다. 이는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돼 약자의 목소리가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사회적 현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교회를 하나의 ‘대항 문화적 표징’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점에서 시노달리타스는 단순한 참여 확대가 아니라 관계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근본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예언적 사명은 「찬미받으소서」에서 제시된 통합 생태론을 통해 인간과 사회, 창조 세계 사이의 상호 연결성을 강조함으로써 시노달리타스의 관계적 비전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이는 교회의 시노달리타스가 단지 인간 공동체 내부의 문제를 넘어 창조 질서 전체를 향한 책임으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덧붙여, 「최종문서」 79~102항이 강조하는 교회적 식별, 의사결정, 투명성, 책임 있는 설명, 평가의 문화는 권력의 집중과 불투명성이 만연한 현대 사회의 거버넌스(governance, 통치) 구조에 대해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는 ‘실천적 증언’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시노달리타스는 분열과 불평등, 배제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 안에서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사회적 예언이다. 또한 단순한 이상 제시가 아니라, 교회가 실제로 살아내야 할 삶의 형식이며, 그 실천을 통해서만 비로소 설득력이 있는 복음적 증언이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4-19 제3487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7) 시노달리타스 영성: 제1부(43~46항)

시노달리타스 신학의 가장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는 성령론적 차원이다. 「최종 문서」만 해도 ‘성령’이란 단어는 93회나 호명된다. 이것은 성부가 5회, 성자가 6회 호명되는 것과 비교된다. 이미 제16차 정기총회를 시작하면서 교황청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는 ‘주 성령님, 저희가 주님 앞에 있나이다(Adsumus Sancte Spiritus)'를 총회의 공식 기도문으로 배포한 바 있다. 이 기도문은 수 세기 동안 공의회, 시노드 그리고 교회의 주요 의사 결정 모임을 시작할 때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는 전통적인 기도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교부들은 이 기도문을 바치면서 성령의 도움을 청했다. 이 기도문은 성령께서 적극적으로 우리 삶에 개입하시어 우리를 이끌어 주시길 간청한다. 성령의 역할에 대한 이런 강조는 과거 서방교회가 성령의 역할을 간과하거나 그리스도와 달리 부차적인 역할을 하는 분으로 인식하던 것과 크게 대조적이다. 이미 「편람」은 시노드의 경청 과정이 단순히 사람들 상호 간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이 아니라 이를 통해 성령의 목소리를 식별하는 체험이라고 말하였고(1.1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종 문서」에 관한 공지를 통해 제16차 정기총회의 전체 시노드 과정에서 “우리는 성령께서 이 시대의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쇄신 ‘은총의 우선성’알 때만 가능 「최종 문서」는 영성적 차원에서 시노달리타스란 무엇보다 세례자의 일상생활과 교회 사명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 있는 영적 태도(자세)라고 말한 바 있다.(43항) 시노달리타스는 성령의 활동에서 비롯하며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묵상하고, 침묵하고, 마음의 회심을 필요로 한다. 모든 사람과 만물 안에서 들려오는 성령의 목소리를 식별하는 법을 배우고, 성령께서 나눠 주신 다양한 선물들을 감사와 겸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으며 온 교회가 ‘함께’ 동반과 지원을 통해 걸어가야 한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쇄신은 은총의 우선성을 알 때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최종 문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영적 깊이가 부족하면 시노달리타스는 조직 운용 기술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43-44항) 따라서 교회의 거룩한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참여에 열린 기도, 공동 식별, 나눔에서 봉사로 이어지는 전망을 가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성령 안에서 대화’는 나름의 한계가 있지만 시노드 교회를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성령 안에서’ 대화한다는 것은 성령의 분명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복음적 분위기 속에서, 믿음의 빛으로 나눔을 경험하고,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45항) 「최종 문서」는 ‘서문’에서 우리가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성령 안에서 대화’를 삶으로 실천함으로써, 우리 가운데 계시는 그분의 현존을 느꼈다고 했고(1항), 이 길을 걷는 것은 정의의 행위이자 이 세상에서 하느님 백성의 선교 임무이며, 이 길을 계속 걷고자 하는 열망이 시노달리타스 쇄신의 열매라고 했다.(46항) 매번 다시금 물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과연 그렇게 하기를 열망하고 있는가?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4-05 제3485호 24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6) 조화(harmony)로서 일치: 제1부(34~42항)

개인주의가 점점 더 가속화하고 서로의 차이를 차별로 연결시키는 데 익숙해진 오늘의 세계에서 시노달리타스는 상호적 관계 맺음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환기시킨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차이들은 오히려 타인을 진정으로 만날 수 있게 하고 풍요로운 인격적 성숙으로 초대한다. 이에 시노드 교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서로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관계를 꽃피우는 곳이다. 그리고 가정은 경청, 식별, 결정, 권위의 수용과 실천 등의 시노드 정신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특권적 자리가 된다. 제16차 정기총회 과정은 교회 내 다양한 은사와 직무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새롭게 자각하게 했다. 이에 따라 세례받은 모든 이는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고, 그 책임을 공동으로 완수해야 한다. 「최종 문서」는 이 지점에서 오늘의 교회 안에서 성(性), 세대, 문화적 정체성과 사회적 조건 등에 따른 제약들이 하느님 백성의 참여를 어렵게 했음을 고백하고, 가난한 이들과 배척받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36항) 교회 안에서 개인들의 상호 관계는 교회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다양한 지역 교회들은 각각의 민족과 언어, 고유한 예식과 영적 유산을 지니고 다양성 안에서 하나의 교회를 이룬다. 지역 교회들은 만남과 상호 이해, 그리고 각자의 선물들을 나눔으로써 이를 자라나게 한다. 시노달리타스를 통한 교회 쇄신은 하느님의 보편적 부르심이 이뤄지는 장소들과 그 맥락들(상황)을 소중히 여긴다. 그 보편적 부르심의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구원의 메시지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지역 교회들은 서로에게 주어진 이 선물들을 나눔으로써 교회 전체를 풍요롭게 한다. 맥락, 문화, 다양성과 상호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서로의 선물을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인 일치와 종교 간 대화의 영역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다양성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려는 고집을 버리고 다른 관점 역시 수용하라는 초대이다. 여기서 교회 안의 사람들은 누구나 공동의 일을 완수하는 데 특별하고 필요불가결한 기여를 하는 존재라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 교회의 삶과 사명을 실천하는 데서 배제되는 사람은 없다. 「최종문서」는 시노드 교회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42항) 시노드 여정에서 각 지역 교회는 고유한 리듬과 소리를 내는 악기(특수성과 전통)이며, 이 악기들이 서로의 소리를 경청하고, 자신의 소리를 아낌없이 나누며(은사, 경험), 전체 교회가 하나의 조화로운 음악(친교와 사명)을 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노드적 실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종문서」가 말하는 ‘조화’는 시노달리타스 안에서 다양성과 차이를 통합하는 성령의 역동적 작용을 설명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성과 차이는 그것이 놓인 구체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이를 더욱 꽃피울 때, 비로소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이루시는 일치의 풍요로움을 맛보고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3-22 제3483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5) 시노달리타스의 핵심적 의미: 제1부(28~33항)

시노달리타스의 핵심적 의미를 설명하는 이 단락들에서는 먼저 고대의 ‘시노드’ 관행에서 시작된 시노달리타스의 역사적 연원과 오늘의 의미를 말하고(28항),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가는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성모님에게서 발견하며(29항), 삼중적 차원에서 시노달리타스를 다루고 있다.(30항) 더 근본적으로 시노달리타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친교’ 개념의 구체적 실현이며(31항), 복음화 사명에 그 목적이 있음을 상기시킨다.(32항) 실천적 차원에서 시노달리타스는 교계적 권위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이며 온 교회의 회심과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33항)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는 초기부터, 곧 「예비 문서」가 발표된 시기부터 시노달리타스가 무엇인지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갔던 시노드라 할 수 있다. 이 질문은 「최종문서」에도 지속됐는데 그만큼 시노달리타스의 의미가 단순하면서도 복합적이어서 정의하기가 쉽지 않음을 말한다. 그러나 이제 시노드 막바지에서 시노달리타스 의미에 관한 수렴이 무르익었다면서 이를 여러 측면에서 정의했다. 시노달리타스란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온 인류와 더불어 하느님 나라를 향해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이 동행은 교회 생활의 다양한 차원에서 함께 모이는 것, 상호 경청, 대화, 공동체적 식별, 성령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동의(합의) 형성, 그리고 분화된 공동 책임성 안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을 통해 구체화된다. 단순한 이론 아닌 실천적 길 복음화 사명 향한 회심 촉구 시노달리타스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실천적인 길이다. 그것은 더 참여적이고 사명 수행에 전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한 길, 더욱더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며 모든 남녀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한 영적 쇄신과 구조 개혁의 길(28항)이다. 나아가 「최종문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조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시노달리타스는 무엇보다 교회의 삶과 사명을 특징짓는 ‘고유한 방식’인데, 이것은 교회의 일상적인 생활 방식과 작용 방식에서 표현된다. 둘째, 시노달리타스는 신학적, 교회법적 의미에서 ‘교회 구조와 교회 절차들’이다. 셋째, 시노달리타스는 관할 권위로 그리고 교회 규율로 정해진 특정 절차에 따라서 교회가 소집되는 ‘시노드적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시노달리타스 개념은 ‘친교’와 ‘복음화 사명’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친교 개념, 곧 삼위일체 하느님과 이루는 결합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이뤄지는 인간들 사이의 일치를 표현하는 친교는 이제 시노달리타스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고, 복음화 사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친교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일부 오해를 불식하고자 시노달리타스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복음화 사명을 지향한다고 확인하게 된다. 이런 시노달리타스의 역동성은 교계 직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교회의 회심을 촉구한다. 교계 직무는 하느님 백성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설하고 교회적 친교를 증진하기 위해 성령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로 제시된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3-08 제3481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4) 하느님 백성의 신학적·영성적 토대: 제1부(13~27항)

「최종 문서」 제1부는 부활 아침의 세 제자 곧 마리아 막달레나,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 그리고 시몬 베드로에게서 시작한다.(요한 20,1-2 참조) 제자들은 혼자서는 온전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없다. 그들은 서로 기대고 협력할 때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할 수 있다. 이 상호 의존을 「최종 문서」는 ‘시노달리타스의 심장’이라고 부른다.(「최종 문서」 13항) 이를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소명과 은사, 직무 사이에서의 상호 존중과 겸손이 필요하다. 시노달리타스는 개인주의적 신앙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적 삶을 본질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구원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의 백성을 이뤄 당신을 섬기도록 하셨기 때문이다.(「교회 헌장」 9항) 하느님 백성은 시노달리타스와 사명의 역사적 주체로서, 함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증언한다. 세상은 사람들을 그의 지위나 역할로 구분하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세례받은 모든 이가 동등한 존엄성을 갖는다. 과거에는 교회를 교황, 주교, 사제, 평신도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로 이해한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에서 흘러나오고(「최종 문서」 15항), 성품 직무와 교계 제도는 그 토대 위에서 이 백성에 봉사하기 위해 세워졌다. 하느님 백성은 성당의 울타리 안에서만 신앙생활을 영위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 안에서 그리고 역사 안에서 모든 민족, 다른 종교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복음을 증언하는 역사적이고 공동체적인 주체들이다.(17항) 그리고 그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단순한 시혜의 대상자가 아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고통받으시는 그리스도의 얼굴과 육신을 만난다.(19항)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하게 되도록 부름받았으며, 그들을 복음화의 주역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구성원 모두 동등한 존엄 지녀 교계 제도는 봉사를 위한 토대 세례 때 받은 성령 덕분에 신자들은 복잡한 신학을 몰라도 하느님의 뜻과 진리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능력, 곧 ‘신앙 감각’을 갖는다.(22항) 하느님 백성 전체가 신앙과 도덕에 대해 동의할 때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확신은 시노달리타스의 중요한 전제다. 이것은 이번 시노드 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교회의 삶에서 가능한 많은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이유가 된다. 성령께서 그들을 통해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세례에서 시작해 견진과 성체성사로 이어지는 ‘그리스도교 입문’의 여정은 시노달리타스를 배우는 첫 번째 학교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교회의 지체들은 함께 걷는 법을 익히게 된다. 특히, 주일 성찬례는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이라는 사실을 통해 교회가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는 법을 가르친다. 「최종 문서」는 ‘성찬의 모임’과 ‘시노드 모임’이 깊이 연결돼 있다고 본다.(27항) 전례가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행위이듯, 시노드 역시 말씀을 경청하고 식별해 실천하는 행위다. 따라서 우리 본당 전례가 시노달리타스를 더 잘 표현하려면 어떠해야 하는지 사목자와 신자 공동체는 함께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18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3) 시노드 여정은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 서문(1~2항)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최종문서」는 교회 생활의 모든 새로운 발걸음은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으로 돌아가는 것, 곧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천명하고(1항), 복음서의 부활 이야기들을 문서 전체의 전개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파스카의 새벽에서처럼 어둠과 두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식별하며 나아갈 때,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고 길을 보여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최종문서」의 ‘서문’(1~12항)은 시노드 여정의 영적 토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의 관계, 그리고 「최종문서」의 목적과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시노드를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교회는 세상의 고통과 상처를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고, 참회와 회심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는 자비로운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시노드 총회의 대의원들은 시노드가 세상과 단절된 골방에서 벌어지지 않고 있음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주님의 상처를 통해 지금 세상에서 몰아치고 있는 전쟁과 폭력, 빈곤, 불의를 더 잘 직시한다.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세상의 고통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교회 스스로도 세상의 죄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체들이 저지른 죄로 인해 상처 입었음을 인정하고 참회와 회심의 길로 나서야 한다.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 공의회 가르침 실현하는 길 시노달리타스가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한 새로운 신학적 유행 아닌가 하는 우려를 의식한 듯, 서문은 이번 시노드 여정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과정임을 분명히 한다. 시노드 여정은 공의회가 가르친 ‘신비로서의 교회’,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실현하는 것이며, 이는 공의회를 더욱 진지하게 수용하는 행위이다. 오늘의 교회는 공의회가 뿌린 그 씨앗을 세상과 교회 안에서 싹틔우고 성장시켜야 할 책임을 갖는다. 서문은 시노드 여정의 핵심 부르심이 세례성사에서 비롯됨을 강조한다. 이 부르심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세례받은 모든 이에게 주어진 것으로, 세례로 받은 공통된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다. 이에 따라 하느님 백성 전체는 복음 선포의 주체이다. 세례받은 모든 이는 선교의 주역이 되도록 부름받은 ‘선교하는 제자들’이다. 시노드 여정은 결국 우리 모두가 선교하는 제자임을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입증하는 것일 터이다. 시노드 거행을 마무리하면서 서문은 지난 3년의 여정을 돌아보며, 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은총을 고백한다. 지역 교회, 국가, 대륙 그리고 총회로 이어진 과정에서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에 귀 기울였으며, 이를 통해 교회가 주님을 따르고 사명에 봉사하는 기쁨을 얻고 쇄신을 이루라는 부르심을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피로감, 변화에 대한 저항, 자기 생각을 앞세우려는 유혹도 있었으나, 참회와 회심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길에서 「최종문서」는 시노드의 결론을 알려주는 문서가 아니라 ‘이행 단계’를 위한 열쇠이다. 이제 각 지역 교회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시노달리타스를 위한 가시적인 회심(전환)이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을 요청받는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2-01 제347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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