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20) 뿌리내림과 순례(1): 제4부 109~115항

「최종문서」 제4부 ‘풍성한 고기잡이’의 첫 단원(109~119항)은 ‘뿌리내림과 순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두 개념은 대립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접속사 ‘그리고’로 이어져 있다. 이 소단원은 도시화와 이주, 디지털화로 ‘장소’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리는 시대에, 교회가 지역교회(116항), 본당(117항), 축성 생활회와 새로운 공동체 운동(118항),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중간 연합체(119항)라는 기존의 조직 형태를 보존하면서도, 그 형태들이 고정된 영토가 아니라 유동적인 ‘실존적 영토’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그물망에 응답하도록 창의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복음 선포는 사람들의 마음에 신앙을 일깨워 구체적 장소에 뿌리내린 교회를 낳는다.(110항) 교회는 하느님과 만남의 경험이 이뤄지는 구체적 시공간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그렇지만 뿌리내림의 방향은 안쪽이 아니라 밖으로 향한다. 시노드적 회심은 모든 이에게 ‘마음의 터’를 넓히라고 초대하며, 사목은 이미 서로 공감하는 이들 사이의 관계를 돌보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이와의 만남을 증진해야 한다. 뿌리내림은 폐쇄의 이유가 아니라 만남의 출발점이다. 문제는 뿌리가 놓일 땅이 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장소’의 개념은 더 이상 지리적, 공간적 용어로만 이해될 수 없고, 관계의 그물망과 문화적 소속과 관련된다.(111항)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다수 인구가 도시에 살게 됐고, 대도시는 종종 역사도, 정체성도 없는 집합체가 돼 사람들은 마치 섬처럼 살아간다. 본당과 교구의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난민과 이주민의 증가, 디지털 문화의 확산은 공간과 시간의 감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더 연결된 듯하지만 더 외롭고, 조작과 양극화에 노출된 이 환경을 「최종문서」는 피해야 할 곳이 아니라 예언적 선교의 장으로 받아들인다.(113항) 이 모든 변화는 교회가 ‘지역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그 구조적 형태를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114항) 장소는 인간 경험이 형태를 얻는 역사적 실재이며, 교회는 그 관계의 그물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사임을 표현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고유한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교회헌장」 1항) 「최종문서」는 뿌리내림과 순례를 모순으로 보지 않는다. 뿌리내림을 지리적 고정으로 이해하면 이동하는 삶과 충돌하지만, 관계망과 소속으로 이해하면 이동하면서도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 없는 뿌리내림은 닫힌 집, 곧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곳(115항)이 되고, 뿌리 없는 이동은 고립과 정체성의 상실을 낳는다.(111~112항) 115항 ‘집’의 이미지는 이 둘을 잇는다. 닫히지 않은 집은 환대와 포용의 가능성을 열고, 그 안에서 신자는 모두 희망의 순례자로 불린다. 교회는 처음부터 ‘아직’ 시간 속에서 순례하면서 ‘이미’ 천상 교회와 친교를 이루는 하느님 백성이기 때문이다.(17항)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10-18 제3511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9) 시노달리타스와 참여 기구들(103~108항)

이제 시노드적 절차와 과정의 쇄신을 다루는 제3부의 마지막에 이르렀다. 「최종문서」는 교회법이 규정하는 참여 기구들을 통해 앞에서 언급한 의사 결정 과정에 신자들이 참여하고, 책임감 있는 설명과 평가가 이뤄지며, 시노드적 절차와 과정의 쇄신을 위해서는 참여 기구들의 의무화와 실질적 운용이 중요하다고 본다.(103항 참조) 참여 기구의 실질화를 위해서는 은사, 직무, 체험 또는 전문성 등에 따라 다양하고 폭넓게 참여 기구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105항 참조) 특별히 여성, 젊은이 그리고 소외된 사람이 참여해야 하고, 나아가 개신교와 타종교 대표까지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확장하고 있다. 기구 구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교구와 주교회의에서 정할 수 있다.(106항 참조) 이 참여 기구에서는 시노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는 ‘성령 안에서 대화’를 적절히 활용한다. 또 교구와 본당의 사목평의회 위원들에게 의제와 안건을 제안하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더 적극적인 평의회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105항 참조) 또한, 기초 공동체(소공동체), 본당, 지구, 교구에 이르는 사목평의회 네트워크를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교회에서 이뤄지는 자문은 교회 안으로만 제한하지 않는다.(107항 참조) 이것은 참여 기구들의 자문과 관심을 단지 해당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교회에서도 촉구하는 것으로 시노달리타스를 통한 사목 방향성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교회적 친교와 참여는 반드시 선교 사명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최종문서」는 특별히 교구 시노드의 활성화를 언급한다. 교구 시노드는 지역 교회의 삶과 사명에 관해 주교가 자신에게 맡겨진 하느님 백성의 한 부분에 ‘정기적으로 자문하는 기관’이며 ‘경청과 기도와 식별의 장소’이다. 아울러 교구 시노드는 책임감 있는 설명과 평가를 수행하는 자리이다. 「최종문서」는 주교가 재정 관리와 재산 외에도 다양한 부문의 사목 활동, 사목 계획 실행, 교회 전체의 시노드 과정 수용, 보호 문제에 관한 계획을 교구 시노드에서 보고할 것을 권하는데 이는 아주 획기적인 것이다. 주교 직무 역시 하느님 백성에 정기적인 보고 임무를 지닌다. 「최종문서」는 각 지역 교회 특성을 더 잘 반영하면서 교구 시노드가 정기적으로 개최되도록 교회법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108항 참조) 제3부 ‘과정들의 회심’이 제시하는 핵심은 참여 기구의 유무가 아니라 그것이 시노드적으로 작동하고 있느냐에 있다. ‘성령 안에서 대화’를 통한 교회적 식별, 의사 결정, 책임감 있는 설명과 평가가 실질적으로 자리 잡을 때 참여 기구는 비로소 시노달리타스를 구현하는 제도적 장치가 된다. 시노달리타스는 특정한 시노드 행사나 기구, 그리고 회의 방법론이 아니라 교회가 함께 살아가고 함께 일하는 방식, 곧 교회의 생활 방식과 활동 방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10-04 제3509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8) 결정 이후: 투명성, 책임 있는 설명, 평가(95~102항)

교회적 식별과 의사 결정으로 모든 결정 과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결정 이후에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실행됐는지 설명하고 평가하며, 나아가 애초의 식별이 옳았는지 다시 묻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특별히 공동체 앞에서 자신의 직무에 대해 책임감 있게 설명하는 것은 사도 시대까지 올라가는 오래된 교회 전통에 속한다.(사도 11장). 「최종문서」에 따르면, 복음에 기초한 투명성(마태 10,16; 2코린 4,2)은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신뢰의 보루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가장 약하고 힘없는 이들이 그 영향을 받게 된다.(97항) 교회가 신뢰받는 곳에서는 투명성, 책임감 있는 설명, 평가의 실천이 교회를 굳건히 하는 데 기여하고, 역으로 교회가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곳에서 이러한 실천들이 중요하다. 「최종문서」는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의 부재가 성직주의의 결과이며 동시에 성직주의를 부추긴다고 설명한다. 성직주의는 교회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나머지 하느님 백성과 단절돼 있거나 하느님 백성 위에 있는 것처럼 자신의 행동과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암묵적 가정에 기초해 있다.(98항) 그리하여 이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은 교회 목자들의 생활 양식, 사목 계획, 복음화 방법, 교회 기관의 노동 여건 등 교회의 모든 차원에서 일상적으로 실천돼야 한다(99항). 특별히 이 일에서는 교회 내 직무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 교회 안에서 권위자들이 책임 있는 보고를 받는 만큼 그 역시 공동체에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 투명성과 책임 있는 설명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런 상호성이 신뢰의 첫걸음이다. 이와 함께 「최종문서」는 교회 내 모든 종류의 직무적 책임에 대한 정기적 평가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공언하고 있다.(100항) 여기서 평가는 개인에 대한 심판과 같은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직무적 책임을 맡은 사람들의 행동에서 긍정적인 측면과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을 강조하고, 교회가 경험을 통해 배우고, 행동 계획을 재조정하고, 성령의 음성에 주의를 기울여 사명과 관련된 결정 사항이 어떻게 수행됐는지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교회법만이 아니라 국가 규범과 사회적 차원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활용해 투명성, 책임감 있는 설명, 평가와 관련한 규정을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마련하는 것은 교구와 주교회의의 몫이다.(101항) 그리고 그 실천 내용은 주교들의 사도좌 정기방문을 통해 보고된다. 이와 관련해서, 「최종문서」가 투명성과 책임감 있는 설명, 평가를 위한 최소한의 보장 사항으로 제안하는 것은 재무 평의회 기능 실질화, 사목과 재정 기획에 하느님 백성 참여, 외부 감사, 재무제표 준비와 공표 등 교회 자산과 재정 자원의 투명성 제고 노력, 교회 내 모든 직무와 직책 수행에 대한 정기적 평가 절차 등이다.(102항)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9-13 제3507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7) 의사 결정 과정의 단계와 역할: 제3부(87~94항)

「최종문서」 제3부 87~94항은 시노드 교회에서 의사 결정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핵심은 의사 결정을 단순한 행정 절차나 권한 행사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공동체가 함께 식별하고 결정하며 실행하고 평가하는 교회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 곧 시노드 교회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모든 하느님 백성이 기도하고, 경청하고, 분석하고, 대화하고, 식별하고, 조언하면서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87항) 시노달리타스는 사명을 위해 ‘식별하고, 합의에 이르며,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식별이 결여된 결정 과정은 시노드적 절차를 형식화할 위험이 있다.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하느님 백성이 함께 참여하는 것은 교부 시대 이래 교회의 오랜 전통에 속한다.(88항) ‘주교’ 없이, 그리고 ‘사제들의 조언과 백성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니힐 시네(nihil sine)’ 논리는 권력 견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친교적 본성에 근거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노드 교회에서는 다양한 은사와 직무에 따른 ‘분화된 공동 책임성’이 강조된다.(89항) 의사 결정 과정은 식별·자문·협력을 통한 준비 단계와 관할 권위의 결정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둘은 경쟁하거나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 열려 있고 상호 신뢰하는 분위기에서 가능한 가장 폭넓은 합의를 추구한다. 또한 의사 결정은 결정으로 끝나지 않고 결정의 실행과 평가까지 포함한다.(90항) 여기서 ‘자문’의 교회적 의미가 드러난다. 권위자는 자문을 진지하게 들어야 하며, 일치된 자문 결과와 다른 결정을 내리려면 우월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권위는 자신의 자의적 의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친교와 진리에 봉사하는 것이다.(91항) 이러한 교회적 결정 과정에서 자문과 결정 권한을 대립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 주교와 주교단, 로마 주교의 결정 권한은 양도될 수 없지만, 올바른 식별에서 나온 자문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곧 교회의 결정은 모두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되, 사목적 권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92항) 그리하여 권위와 자문 참여자는 각각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권위자’는 자문 대상과 결정권자를 분명히 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 ‘자문 참여자’는 양심에 따라 진실하고 명확하게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관할 권위가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뒤 내린 결정에 대해서 ‘공동체’는 자신의 견해와 달라도 이를 존중하고 실행하며 평가에도 참여해야 한다.(93항) 「최종문서」는 이 모든 과정이 실제 변화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인 변화가 없다면 시노드 교회의 전망은 빛을 잃을 것이고, 시노드 여정에서 힘과 희망을 얻은 이들이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94항) 시노드 이행 단계를 맞이한 현재, 그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찾는 책임은 지역 교회에 있다. 한국교회의 시노드 이행 역시 이러한 구조가 본당과 교구 제도와 사목 실천을 얼마나 변화시키는가에 의해 검증될 것이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8-30 제3505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6) 사명을 위한 교회적 식별: 제3부(81~86항)

「최종문서」가 내세우는 교회적 식별의 모범은 예루살렘 사도 공동체의 “성령과 우리는 이렇게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28 참조)라는 말이다. 이 식별이 ‘교회적’이라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사명을 위해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함께 행사하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모든 시대의 신자를 진리 안으로 이끄시며, 사도들에게서 전해진 성전(聖傳)을 오늘도 계속 발전시켜 나가신다. 그리고 교회적 식별은 세례받은 모든 이에게 전해진 ‘신앙 감각’에 뿌리내리고 있다.(81항) 교회적 식별은 조직 관리 기술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영적 실천이며, 내적 자유, 겸손, 기도, 상호 신뢰, 새로움에 대한 개방성, 하느님 뜻에 대한 순명을 요구한다. 개인이나 집단의 견해를 관철시키는 것도, 개별 의견을 단지 합산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 양심에 따라 말하면서도 다른 이가 양심으로 나누는 것에 귀 기울여, 함께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알아내려 한다. 더 많이 경청할수록 식별은 더 풍요로워지며, 특히 주변부에 있는 이들의 참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82항) 모든 교회적 식별의 출발점이자 기준은 하느님 말씀의 경청이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말씀하신다. 전례(말씀 봉독 시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심), 살아있는 성전과 교도권, 개인·공동체의 성경 묵상과 대중 신심,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과 인류 역사의 사건들, 피조물(창조주의 활동과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현존), 또한 무엇보다 개인 양심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이런 말씀을 제대로 잘 듣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양심 형성과 신앙 감각의 성숙이 필요하다.(83항) 「최종문서」는 교회적 식별의 핵심 요소들을 여섯 단계로 나누어 제시한다. 식별 대상의 명확한 제시와 정보 제공, 기도·말씀 경청·성찰로 준비하는 적절한 준비 시간,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내적 태도와 공동선 추구, 서로에 대한 주의 깊고 존중하는 경청, 가장 폭넓은 합의의 도출 등이다. 마지막 단계에서 합의에 도달한 경우에는 그 합의를 정리해 참가자 전원에게 제시하고, 그에 대한 인정 여부를 표명하도록 한다. 또 이 식별을 바탕으로 결정이 성숙하며,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들을 포함한 모두의 동의를 요구하고, 공동체 안에서 수용 기간과 이후의 검증·평가로 이어진다.(84항) 식별은 언제나 구체적 맥락 안에서 이뤄지므로 그 복잡성과 특수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또 참으로 교회적 식별을 위해서는 적절한 성경 주해, 교부·성전·교도권의 가르침에 대한 지식, 다양한 신학 분과의 기여, 나아가 인문·역사·사회·행정학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85항) 시노드 교회를 위해서는 지역 교회, 특히 소공동체와 본당 차원에서 교회적 식별 문화를 확산·함양하는 양성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식별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동반자·촉진자 양성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86항)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8-16 제3503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5) 과정들의 회심: 제3부(79~80항)

「최종문서」 제2부 ‘관계들의 회심’ 첫 장면이 고기를 잡으러 나서는 제자들을 묘사했다면, 제3부는 밤샘 고기잡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실도 얻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요한 21,5-6) “그물을 던져라”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목으로 삼으면서 제3부는 고기잡이의 실패 속에서 예수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비로소 풍요로운 결실을 얻는 제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79항은 먼저 기존 고기잡이 방식, 곧 지금까지의 사명 실천 방식에서 제자들이 실패했음을 떠올리면서 출발한다. 이어서 부활하신 주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지라고 말씀하신다. 시노드 과정은 바로 이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었고, 이제 참가자들은 ‘교회적 식별’, ‘정성을 기울이는 결정 과정’, ‘책임감 있는 설명’과 ‘내려진 결정의 결과에 대한 평가’라는 실천 사항이 바로 주님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교회가 기존의 사목적 관성에서 빠져나오려면 방향 전환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제도나 과정의 효율성 제고가 목적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주님 목소리에 대한 온전한 경청이며 그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 80항은 제3부에서 다루게 될 세 가지 실천이 왜 분리되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돼야 하는지 설명한다. 곧 결정에 도달하려면 교회적 식별이 전제돼야 하며, 교회적 식별을 위해서는 책임감 있는 설명과 결정의 결과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불가분하게 연결돼 있는 이 세 가지 실천의 토대는 상호 신뢰다. 결정을 내리는 이들은 하느님 백성을 신뢰하고 경청해야 하며, 하느님 백성도 권위를 행사하는 이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목적은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과정들의 회심을 위해 주어진 세 개의 실천은 단지 기술적인 수준에서 훈련과 교육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교회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신학적, 성서적, 영적 차원의 양성이 필요하다. 곧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본질적 존재 방식(28항)이며, 위의 세 가지 실천은 이미 성경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며(사도 11장; 15장), 그리스도교 공동체 쇄신은 은총의 우선성을 인정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44항) 그리고 이 양성은 증언, 사명, 거룩함(성덕), 봉사를 목표로 한다. 이 네 가지는 시노달리타스의 실천적 열매들이다. 교회적 식별, 의사 결정 과정, 책임 있는 설명과 평가가 체화된 공동체는 세상을 향해 더 분명하게 증언하고, 더 효과적으로 사명을 수행하며, 더 깊이 성화되고, 더 진정성 있게 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하느님 백성의 공동 책임성을 부각시킨다. 양성의 목표는 공동체가 함께 사명을 수행하는 책임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양성은 모든 세례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되 공동체에서 책임 있는 임무를 수행하거나 봉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양성도 요청한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7-26 제3501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4) 사명을 위하여 함께: 제2부(75~78항)

시노드 교회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핵심 조건으로서 ‘관계들의 회심’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향을 다루고 있는 「최종문서」 제2부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제2부에서 관계들의 회심은 현재까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져 왔다. 첫 번째는 개인들 사이의 관계, 곧 남녀, 세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관계의 쇄신이다.(50~56항) 두 번째는 은사, 성소, 직무들 사이의 관계로서 다양한 은사들이 어떻게 사명을 위해 함께 움직이는지 다루고 있다.(57~67항) 세 번째는 성품 직무자들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로서 성품 직무가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조화에 봉사하는 직무라는 점이 강조된다.(68~74항) 이제 네 번째 부분은 관계들의 회심이 단지 태도와 마음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궁극적 목표인 선교 사명을 위해 평신도와 수도자가 성품 직무자들과 어떻게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먼저, 교회 역사 속에서 성품 직무와 구별돼 탄생한 몇몇 직무들의 가치를 상기시킨다.(75항) 이 직무들은 성령께서 주신 은사들이 공동체와 그 책임자들에게 공적으로 인정받고 사명에 봉사하도록 안정화될 때 생겨난다. 곧, 교회 안에서 어떤 특정한 은사들은 직무가 된다. 곧 독서직, 시종직, 교리 교사직과 같은 제정 직무는 준성사를 통해 수여되고 이것은 단순한 임무 부여를 넘어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는 방식을 규정한다. 제정 직무와 달리 일정한 예식 없이 권위 있는 이의 위임으로 수행되는 고정적인 직무들도 있다. 그 예로 작은 교회 공동체를 조정하는 직무, 공동체 기도를 인도하는 직무, 자선 활동을 조직하는 직무, 비정규 성체 분배자 등이 제시된다. 이것은 규정 예식이 없더라도 공동체 앞에서 이뤄지는 위임을 통해 공적으로 임무를 맡길 때 그 직무 수행이 더 효과적이 될 것임을 권고한다. 「최종문서」는 이런 평신도 위임 직무들을 지역의 필요에 따라 더욱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76항) 이 밖에 상호 협력과 분화된 공동 책임의 정신에 따라 평신도와 수도자들에게 더 많은 참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크게 5가지 사항이 제기된다.(77항) 교회의 식별과 의사 결정 과정에 평신도들의 더욱 광범위한 참여 촉구는 제3부 ‘과정들의 회심’ 앞에 배치돼 선도하고 있다. 이어서 교회 안에서 더 책임 있는 직책에 평신도 임명, 수도자들의 삶과 은사를 인정하고 지지하며 교회의 책임 있는 직책에 임명, 교회법 절차에서 판사 역할에 더 많은 평신도들의 참여, 교회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존엄성과 권리 존중 등이 제시된다. 마지막으로는 ‘경청과 동반의 직무’를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 시노드 총회에서 있었던 논의를 소개하며 각 지역 교회에서 더 적절한 방안을 모색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열린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78항) 이것은 시노달리타스 문화가 교회 안에 정착되려면 경청이 바로 그 첫걸음이고, 이어지는 ‘과정들의 회심’ 역시 경청에서 시작됨을 말하고자 한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7-12 제3499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3) ‘조화’에 봉사하는 성품 직무: 제2부(68~74항)

「최종문서」 68~74항은 시노드 교회 안에서 성품 직무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최종문서」에서 ‘조화(harmony)'가 성령의 본질적 속성(42항, 154항)임을 감안하면, 이 ‘조화에 봉사하는 성품 직무’라는 소제목은 성품 직무가 어떻게 성령의 활동에 봉사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곧 주교, 사제, 부제는 모두가 복음 선포와 공동체 건설에 봉사하며, 성령께서 이미 교회 안에 부어 주고 계신 조화가 깨지지 않도록, 그것이 더 잘 드러나도록 섬기는 직무이다.(68항) 주교는 성령께서 개인과 공동체에 주시는 선물들을 인식하고 식별하며 일치 안에서 모으는 임무를 수행한다.(69항) 주교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것을 알아보아야 하고, 거기에서 무엇이 공동체 전체의 조화에 기여하는지 식별해야 하며, 각자의 은사들이 그 고유함을 유지하면서도 조화를 이뤄 일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임무를 주교는 혼자만의 특권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사제와 부제들과 함께 수행한다. 「최종문서」는 주교 직무를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와 함께, 공동체를 위한 직무라고 명시한다.(70항) 그렇기에 주교 선출에서도 하느님 백성이 더 큰 목소리를 갖기 바라고, 주교 서품과 관련한 예식들을 통해 교구 공동체와의 관련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된다. 「최종문서」는 하느님 백성이 주교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과 이상화가 아니라 교회의 사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주교 직무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다.(71항) 신부들이 “은사들을 식별하고 지역 교회를 동반하며 이끄는 데에서 주교에게 협력한다”(72항)는 표현은, 신부들도 조화의 식별과 수렴에 참여하는 존재임을 말한다. 주교 혼자 모든 은사를 알아볼 수 없으며, 신부들은 주교가 닿지 못하는 공동체의 구석구석에서 조화의 요소들을 알아보고 주교와 나누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한 사제단의 다양성은 ‘차이들의 조화’(1항)를 실천하는 것이다. 부제직과 관련해서는, 이 직무가 사제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봉사 직무를 위한 것이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재확인한다.(73항, 「교회헌장」 29항) 그리하여 부제는 온갖 사회적 상황 안에서 ‘선포된 복음과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삶 사이의 관계’(「최종문서」 73항)를 드러내 보인다. 이것은 부제 직무가 교회 내부의 조화와 세상 사이를 연결하는 존재임을 뜻한다. 부제는 온 교회 안에서 모든 이,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을 향한 인식과 봉사의 방식을 증진한다. 「최종문서」는 성직주의를 “자기 이익을 위하여 권력을 사용하고 하느님 백성을 섬기기 위해 부여된 교회 권위를 왜곡하는 것”(74항)으로 정의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조화 자체이시고(42항), 성직주의는 그 조화를 깨트리기 때문이다. 이에 성품 직무자들 사이의 공동 책임,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다른 지체들과의 협력을 강조한다. 임무와 책임의 명확한 분담, 다른 이에게 위임할 수 있는 것을 용기 있게 식별하는 것 등이 바로 성직주의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권고한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6-28 제3497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2) 사명을 위한 은사, 성소, 직무(2): 제2부(64~67항)

「최종문서」 제64항은 혼인을 단순한 생활 형태가 아닌 성사적 성소로 조명한다. 여기서 혼인성사의 은총은 가정 내부만이 아니라 교회 건설과 사회적 임무로까지 확장된다. 이것은 가정을 사목의 ‘대상’에서 ‘주체’로 재정의하는 시각의 전환이다. 가정은 자신 안에서 복음을 살아내고 세상에 이를 전달하는 선교 공동체가 된다. 따라서 교회는 이런 가정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관계망을 더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65항은 축성생활이 시노달리타스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다룬다. 축성생활은 오랫동안 공동 식별과 공동체적 삶을 실천해 왔기에 시노드 정신의 살아있는 모델이 될 수 있다. 또 오늘날 많은 수도회가 접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맥락과 구성원들의 다양한 출신지를 고려할 때 풍요로운 상호 문화의 실험실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지역교회의 목자들과 수도회 책임자들이 은사 교환을 통해 공동 사명을 강화하도록 초대받는다는 점에서, 축성생활이 고립된 영역이 아니라 지역교회와 긴밀히 연결돼야 함을 촉구한다. 제66항에서는 은사와 직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드러낸다. 선교 사명은 세례 받은 모든 이의 것이며, 평신도의 첫째 임무는 세상 안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키는 것임을 재확인한다. 그리고 평신도의 은사 가운데 일부를 직무로 제도화하는 문제를 다룬다. 직무 설정의 절차로는 공동체의 필요 확인, 목자와 공동체의 공동 식별, 관할 권위의 결정이라는 시노드적 과정이 제안된다. 공동체의 식별 과정 거쳐 사명과 직무로 열매 맺어 평신도 직무와 관련해서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자의교서 「일부 직무」(1972년)를 통해 평신도에게 독서직과 시종직의 전례 직분을 부여한 바 있는데, 최근 시노드 과정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의교서 「주님의 성령」(2021년)을 통해 이를 여성에게도 확대했다. 또한 「최종문서」는 이동성이 높아진 오늘의 현실에서 특정 지역이나 공동체에 한정된 기존의 직무에 대한 재성찰 역시 요청하고 있다. 제67항은 신학의 봉사적 기능을 다룬다. 신학자들은 하느님 백성이 계시를 깊이 이해하고 현실에 적절히 응답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신학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공동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행위로 자리매김한다. 곧 신학도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신학자끼리, 그리고 신학자와 목자들이 서로 경청하고 대화하며 식별하는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성령께서 세례받은 모든 이에게 부어 주신 은사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동선을 위한 것이며, 혼인·축성생활·평신도·신학의 다양한 성소 안에서 공동체의 식별을 거쳐 사명과 직무로 열매 맺는다. 교회는 여성·어린이·청소년·장애인은 물론 가정과 수도 공동체를 포함한 모든 세례받은 이를 수동적 대상이 아닌 능동적 사명 주체로 인정하고 파견하며 동반함으로써 관계의 진정한 회심을 이룬다. 시노달리타스란 의사결정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성령의 자유에 뿌리를 둔 은사의 다양성이 공동체의 식별과 목자의 권위와 신학의 봉사 안에서 온전히 존중받고 사명으로 수렴되는 복음적 관계의 근본적 재구성이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20면

[함께 읽는 시노드 최종문서] (11) 사명을 위한 은사, 성소, 직무(1): 제2부(57~63항)

「최종문서」 57~67항은 ‘사명을 위한 은사, 성소, 직무’라는 제목 아래 교회 구성원들의 역할과 사명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 안의 여러 신분과 직무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항들은 제2부 ‘관계들의 회심’이 요청하는 교회의 새로운 관계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회심’은 개인의 내적 변화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 자체가 성령 안에서 새롭게 변화돼야 함을 뜻한다. 따라서 이 항들은 바로 이러한 관계의 회심이 실제 교회 안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 부분의 신학적 기초는 「최종문서」 57항에 제시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놓여 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12,4-6)라는 말씀처럼,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은사와 성소와 직무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모두 같은 성령 안에서 공동선을 위해 주어진다. 교회 안의 다양한 성소와 직무는 세례를 통해 받은 사명과 성덕의 부르심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표현들이다. 그러므로 시노달리타스는 단순한 조직 운영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은사가 조화를 이루며 공동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존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58~59항은 평신도 이해의 중요한 전환을 보여 준다. 오랫동안 평신도는 성직자의 활동을 보조하는 존재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종문서」는 평신도를 세상 안에서 복음을 살아가는 고유한 선교적 주체로 강조한다. 평신도들은 가정과 직장, 사회와 정치, 문화와 디지털 환경 안에서 복음의 정신을 드러내도록 파견된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의 역할이다. 교회 공동체는 단지, 내부 활동을 유지하는 조직이 아니라, 신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고 그들 삶의 자리에서 수행되는 사명을 지지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59항에서 이것을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강조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60항에서는 여성들의 은사와 성소가 교회 안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여기서 성경과 교회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이뤄진 여성의 역할을 확인하고, 여성의 지도력 수행, 여성 부제직 문제 역시 계속 식별돼야 할 과제로 남겨 둔다. 나아가 설교와 교리교육, 공식 문서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이미지까지 성찰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이는 관계들의 회심이 교회의 문화와 표현 방식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변화임을 의미한다. 61~63항은 각각 어린이, 젊은이,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과거에는 이들이 주로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었다면, 「최종문서」는 그들을 교회의 능동적 주체로 바라본다. 이는 모든 이들, 특히 주변화된 이들의 목소리를 교회의 중심에 놓으려는 시노달리타스의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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