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 기자 김수환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09-03-03 수정일 2009-03-03 발행일 2009-03-08 제 263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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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전해진 공의회 소식 독점 보도
통신사 통해 받은 공의회 기사 직접 번역
다양한 건의안 분석·전망 등 내용도 게재
가톨릭시보 1964년 9월 20일자 1면. 14일 열린 2차 바티칸공의회 3회기 소식이 소개된 것은 당시로선 이례적인 일이다.
가톨릭시보 1965년 1월 1일 신년호에 게재된 김수환 추기경의 연두사.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 전 가톨릭신문사에서 일했던 시절을 자주 회고했다.

‘사장, 기자, 영업사원’으로 1인 3역을 지내며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는 김 추기경의 말은 이제 유명하다. 당시 가톨릭시보를 찾아보면 김수환 추기경의 사장 임명 기사가 짧게 보도돼 있다.

‘서정길 대주교는 최근 구라파서 귀국한 스테파노·김(김수환) 신부를 가톨릭시보사 사장으로 임명 발령했다’는 내용이다.

가톨릭신문 ‘기자’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김추기경이 재직했던 당시 가톨릭시보의 지면을 추적해본다.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하다

김수환 추기경이 가톨릭신문사에 재직했던 시기는 1964년 6월부터 1966년 5월까지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한창 열리고 있던 기간(1962~1965년)이었다. 당시 가톨릭시보 1964년 9월 20일자를 보면, 14일 열린 제3회기 공의회의 소식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열악한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14일 열린 제3회기 공의회 소식이 주간신문인 가톨릭시보 20일자에 소개된 것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다. 이토록 빠른 공의회 소식 보도는 사장신부였던 김수환 추기경의 힘이 컸다.

통신사에 많은 돈을 주고 공의회 관련 기사를 직접 번역했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소식은 동화통신을 통해서 받았습니다. 당시 동화통신이 수합한 종교에 관한 소식은 우리가 받지 않으면 대부분 그냥 버리는 것이 되어서 독점하다시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마감시간이 촉박한데 공의회 관련 기사와 사진이 없어 서울에 연락해 기사 전송을 부탁하고, 저는 직접 대구우체국에 가서 관련 사진 전송을 기다리기까지 했습니다. 다행이 전송이 되어 제때에 신문에 게재할 수 있었습니다.”

공의회에 대한 김 추기경의 분석 또한 다양하다. 제3회기 공의회 소식은 당시 가톨릭시보 1면 전면에 걸쳐 소개돼 있는데 보도기사와 함께 ‘공의회 진척 개관’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실려 있다. 개관에는 공의회가 지난 두 회기 간 이룬 성과와 앞으로 남아있는 의안들에 대해 자세히 소개돼 있다.

특히 2면 사설을 통해서 김 추기경은 ‘공의회 성공 기원하는 우리의 정신자세’라는 제목으로 신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김 추기경은 우선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이번 공의회는 이로써 결정적인 단계에 들어섰다”며 “교회일치 또는 교회의 현대세계와의 관계 같은 중요한 상정의안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제3회기 공의회의 의미를 밝혔다.

또 “공의회 성공을 위해 비는 우리의 정신자세는 우리 자신들이 적어도 정신적으로 공의회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지각을 뒷받침한 적극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환 기자의 힘

김 추기경이 공의회에 대한 외신 번역을 시작하며 가톨릭시보는 한국 교회 내 유일하게 독자적으로 시시각각 이뤄지는 공의회 소식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김 추기경의 노력은 신문 부수의 증가로도 이어졌다.

1964년 9월 27일자부터는 ‘공의회 일지’도 게재된다. 천상교회, 성모신심, 종교자유, 평화논의 등 건의되는 다양한 의안들에 대해 일지 형태로 자세하게 분석한 기사다. 10월 25일자 신문에는 ‘회의 진행 급 핏치’라는 제목으로 공의회 진행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김 추기경은 12월 13일자에는 다양한 사진과 함께 교회일치 율령과 ‘유태인을 포함한 비그리스도교인과의 관계에 대한 선언문’의 골자를 앞으로 수정될 것을 밝히면서도 그대로 전하기도 했다.

제4회기가 열리던 1965년 9월 14일도 가톨릭시보는 보도기사와 함께 공의회 전망에 대한 기사를 상, 중, 하로 자세히 싣는다. 이처럼 김 추기경이 재직했던 2년 동안 가톨릭시보에 지속적으로 드러난 공의회 관련 기사들은 그가 공의회의 중요성에 대해 얼마나 강조했는지를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다.

교회 역사의 획을 긋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가장 우선적으로 독자들에게 전했던 것은 외신기자 김수환의 몫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2007년 가톨릭신문 창간 80주년 기념 대담에서도 가톨릭신문에 대해 기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가톨릭신문이 비록 종교 매체이지만 비신자도 읽고 싶은 신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려면 종교 매체도 세상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의 연두사 ‘먼저 우리가 변혁돼야 한다’

“노력·쇄신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김수환 추기경이 가톨릭신문에 자신의 이름으로 쓴 글은 신년호의 ‘연두사’다.

추기경이 사장 신부로 신년호를 제작한 것은 1965년과 1966년 1월 1일자. 이중 65년도의 ‘먼저 우리가 변혁돼야 한다’는 연두사는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가져다준다. 다음은 당시 연두사의 요지.

오늘의 인간사회는 아직도 공의회와 교황의 평화와 형제애를 토대로 한 인류의 단합, 빈곤극복 호소엔 마이동풍 격이다. 각국은 여전히 군비확장에 분망하고 도처에는 가난과 죄악, 세속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가 폭주하고 있다. 새해라고 해서 변화된 것은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났고 해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 한 가지 변할 수 있고 변화돼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생활태도가 변화돼야 한다. 겉으로만이 아니고 속 깊이서부터 혁신돼야 한다.

이 해 아침에 우리가 염원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줄여서 말하면 의식주의 족함, 영육간의 건강일 것이요 더 나아가 복지사회 세계평화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소망해 마지않는 행복일체도 실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너무나 운명적이다. 혹은 요행 같이만 생각하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한 금언은 태초부터 오늘까지 변함없는 진리이다.

“너 없이 너를 창조하신 천주님도 너 없이 너를 구하시지는 않는다”고 성 아오스딩은 말하였다. 빈곤 해결도 세계평화도, 우리의 구령도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생활 쇄신 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물론 모든 것은 천주의 은혜다. 천주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였고 먼저 우리를 구하려 오셨다. 그러나 이 은혜, 이 사랑, 이 구제를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수동태세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핵무기가 그 자체로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성과 도덕성을 잃어가고 있는 인간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쉰의 말과 같이 ‘아시지’의 성 프란치스코 같은 성자의 손에 있는 원자폭탄은 강도의 손아귀에 있는 권총보다도 덜 위험하다. 이같이 문제는 인간이다. 문제의 해결 역시 인간에게 달려있다. 인간이 어떤 인간으로 변화되어 가느냐에 오늘의 세계의 운명이 달려있다.

이 인간이란 누구냐? 나와 너다. 너와 나, 우리 모두가 변화될 때 비로소 이 사회도 이 세계도 변화될 수 있다. 스스로를 끌어올릴 수 있는 자는 세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여기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해야 할 사람들이 그리스도 신자인 우리들임은 물론이다. 왜냐하면 사회와 인류구원의 사명을 지고 있는 것이 교회이고 교회란 다른 무엇도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들, 그리스도 신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부터 참되이 묵은 인간을 벗고 새 인간을 입어야한다. 참되이 그리스도를 살아야한다. 그리스도교는 주의나 이념이 아니다. 생활이다. 우리부터 그리스도의 복음말씀을 따라 살고 우리부터 교황과 공의회가 부르짖는 형제애, 사회정의, 생활쇄신 호소에 호응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요행과도 같은 행복을 빌기 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변혁키 위해 필요한 천주의 성총을 간구하자.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