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특별대담] 김수환 추기경 선종 그후…

정리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9-03-03 수정일 2009-03-03 발행일 2009-03-08 제 2638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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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자 - 노길명 교수, 박동균 신부, 변승식 신부
인간 생명 지키려 펼친 노력은 또 하나의 '순교'
교회는 추기경 본받아 늘 약한 이들과 함께 해야
한 종교의 지도자 넘어 '인간 존엄' 몸소 실천
현 교회 모습 돌아보고 사회 봉사 적극 나서야
박동균 신부, 노길명 교수, 변승식 신부(왼쪽부터)가 2월 27일 특별좌담을 갖고 있다.
▨ 좌담자 : 노길명 교수 (고려대 사회학과)

박동균 신부 (서울 반포4동본당 주임)

변승식 신부 (주교회의 사무국장)

▨ 사 회 : 우광호 기획특집팀장

고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사랑’을 드러냈다.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통해,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큰 사랑을 통해 그가 이 땅에서 드러낸 사랑은 특히 그의 선종을 계기로 우리 사회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엮었다. 이러한 가운에 김 추기경이 남긴 업적과 그의 영성을 올바로 연구하고 현양사업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추기경 선종 이후의 우리 사회 전반을 휩쓴 추모물결과 캠페인 움직임 등 일련의 사회현상을 냉철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한국 교회가 실천해나갈 과제 등에 대해 올바로 짚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논제로 2월 27일 교회 각계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 우광호 기획특집팀장(이하 우) : 김수환 추기경님의 마지막 떠나신 길은 언론은 물론 수많은 국민들이 주목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회 분위기를 짚어볼 때, 김 추기경의 선종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 노길명 교수(이하 노) : 김 추기경님은 인간 존엄성과 사회정의의 구현, 민주화 등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지요. 하지만 사회적인 업적만으로 전국적으로 일어난 추모열기를 설명하기엔 부족합니다.

현재 대다수 국민들 요즘같이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고 사회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그러한 사회적인 존경과 권위를 지닌 어른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어지럽고 불안한 세속적 차원과는 다른 성스러움을 향한 갈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 변승식 신부(이하 변) : 단순히 사회적 공헌만으로는 이념과 계층 등을 망라해 범국민적인, 일종의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의 분위기로 마음이 모아질 수는 없을 겁니다. 김 추기경님께서 그동안 해오신 일은 일종의 재료일 뿐이고, 지위도 하나의 참고일 뿐입니다. 국민들은 김 추기경님의 인간적인 모습, 참된 인간으로 사시려고 하신 모습 자체를 알아본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한마디로 김 추기경님의 인간적인 진실된 면모에 끌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박동균 신부(이하 박) : 정부도 김 추기경님의 장례식을 ‘국민장’이라고 공식선언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김구 선생에 이어 가장 최근에는 육영수 여사의 장례식을 예를 들며 김 추기경님 이후에 앞으로 이렇게 국민들의 마음을 모을 ‘국민장’은 없을 것이라는 전했습니다. 국민들은 하나같이 ‘국민장’이라고 의미를 부연합니다.

소위 ‘국민장’을 통해 떠난 분들은 한국 사회가 일제 침략과 한국 전쟁 등을 겪으며 잃어버렸던 가치, 즉 도덕과 민족혼, 삶의 의미들을 보여주신 분들이라고 판단됩니다. 김 추기경님이야말로 현대사에서 국민들이 갈망하는 가치들을 지닌 분이셨기에, 한 종파의 지도자를 넘어서 근대사 안에서 잃어버린 인간성을 몸소 실천한 마지막 인물로 평가되기에, 그분의 장례식을 현대사의 마지막 국민장이라는 표현하는 것도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우 : 김 추기경님의 선종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양한 말씀을 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이렇게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잃어버린 가치’란 과연 무엇일까요.

▶ 노 : 우리 사회는 그동안 산업화를 추구해오는 과정에서 성장과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왔습니다. 인간 생명까지도 도구와 수단으로 삼고 물질적?합리적?조직적?체계적인 것만을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인간이 지닌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진 못했습니다. 최근 ‘삶의 질’에 대해 관심이 높은 것도, 그리고 뉴에이지와 같은 유사영성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반증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해온 물질적이고 합리적이고 현세적인 것에 대한 자성과 회의가 영적이고 초월적인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때를 새로운 영성의 시대, 종교적 부흥의 시기라고까지 표현합니다. 바꿔 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성스러움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의탁할 수 있는 권위의 존재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앞으로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 변 : 외국에서 살다 온 분들이 종종 우리 사회 분위기가 매우 각박해졌다라고 말합니다. 저도 외국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 TV 광고 혹은 드라마 등만 봐도 표현되는 문구가 매우 천박해지고,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 물질적 가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김 추기경님이 생전에 보여주신 것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생명에 대한 존중이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지닌 성성, 즉 인간은 하느님의 시각으로 볼 때 인간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받을 존재이고, 모든 것에 우선해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현대사회가 강조해온 그릇된 가치들과 대조되는 따뜻함을 보여주셨습니다.

▶ 박 : 우리 사회 발전 과정에서 사회 지도층 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더욱 진보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희생을 당연하고 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각종 사회문제를 그냥 덮고 지나치려 했지요. 김 추기경님께서는 그 뒤에서 서서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 주셨습니다.

저는 김 추기경님이 당신이 받은 최고의 권위를 충실한 중계자로서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말로써 무엇을 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서기 보다는 소외된 이들의 곁에 다가가 그들 곁에 머무르고 그들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통해, 국민 모두가 각종 사회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중계자가 되셨습니다. 본인을 드러내지 않고 비워가면서, 추기경이라는 또 교구장이라는 권위는 상실된 가치를 전하고 이웃을 만나는데 쓰신 그 모습이 사회 지도층에게 특히 성직자들에게 큰 귀감이 됩니다.

▶ 우 : 일각에서는 우리가 현재 높이 평가하고 있는 김 추기경님의 모습은 시대가 만든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아니라 김 추기경님 당신께서 당신의 삶을 통해 그 면면을 보여주고 시사하는 바가 컸다고 봅니다.

▶ 노 : 시대적 상황이 추기경님이 그런 행동을 하도록 촉진시킨 부분은 있지만, 단순히 시대가 만든 분이라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특히 김 추기경님 선종 이후 보인 사회 분위기는 ‘권위’의 원천은 신분과 지위, 합리적인 지식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희생과 봉사임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어렵고 힘든 이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보듬어 주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스스로 존경을 표합니다.

김 추기경님은 각종 활동을 통해 교회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몸소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가톨릭교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저하됐다고 평가되는 한국 종교계 전체의 나아갈 방향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최근 우리 사회가 점점 피폐해지고, 경제적 위기를 겪다 보니 자칫 1960~70년대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조차 비칩니다.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시킨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일어나는 것도 그 징조 중 하나입니다. 시대를 회귀할 때 김 추경님께서 그동안 일깨워준 인간의 존엄성, 성스러움에 대한 가치가 또 다시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선종이 그러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대처해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박 : 김 추기경님을 떠올리면 17세기 종교분열 이후 교회가 엄청난 혼란에 휩싸여 있을 때 이탈리아 교회의 구심점이 됐던 성 까롤로 보로메오 추기경(당시 이탈리아 밀라노 교구장)가 생각납니다. 당시 종교분열의 핵심에는 영주, 성직자 등의 세속적인 권력 다툼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돌볼 양떼를 잊고, 권력만을 바라봤습니다. 성인은 그러한 문제를 따끔하게 지적하고 교회가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보여 주셨습니다. 김 추기경님도 경제 발전 등에만 매진하는 우리 사회 안에서 소외된 이들을 같이 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했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한국 교회가 ‘그저 그런 종교’로만 남아있지 않도록 도왔던 분이었습니다.

▶ 우 : 김 추기경님이 안 계셨으면 자칫 한국 교회가 더욱 중산층화되고 또 한국 사회 안에서 ‘그저 그런 종교’로 남을 가능성도 있었지요. 그러한 시대의 중심에 서 계셨던 김 추기경님의 삶에서 특히 중요하게 공유할 가치는 순교영성이 아닌가 합니다.

▶ 박 : 한국 교회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면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 신앙선조들의 순교의 피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순교자들이 이 땅에 심은, 그 신앙의 열매를 더 분명하고 확실한 모습으로 우리 시대에 구현한 분이 바로 김 추기경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화와 일제침략기 등을 거치면서 혹시나 끊어질 뻔 했던, 또 무기력하고 나약해질 뻔 했던 교회가 주저앉지 않고 민족 복음화에 나설 수 있도록 그리스도교적인 가치를 아주 분명하고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 모습은 어떠합니까. 이제는 정말 교회 안에서부터 고민할 때입니다. 우리 다음 세대들도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몫입니다.

▶ 노 : 김 추기경님은 순교자 집안의 후손입니다. 순교영성은 그분의 신앙과 활동의 중요한 바탕이자 에너지였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요구하는 바가 있어도, 김 추기경님이 그에 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시대를 이끌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김 추기경님이 드러냈던 대표적인 영성은 바로 ‘순교영성’입니다. 아울러 김 추기경님은 유학생활을 통해 그리스도교 사회학과 노동사회학을 배웠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현대 교회가 이 세상에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몸소 체득하고 사셨습니다. 즉 ‘순교영성’과 ‘사회영성’을 역사·사회적 상황 속에서 또 우리 문화적 전통 속에서 드러내고,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파악해 교회가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이끄신 분입니다. 김 추기경님을 통해 순교영성과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확산, 심화시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 우 : 교회와 세상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세상에 파견돼 있다’라는 말을 김 추기경님도 자주 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주신 말씀과 같은 맥락의 지적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김 추기경님과 관련한 현양사업의 방향에 대해 조언을 주신다면.

▶ 박 : 도대체 순교영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자주 받습니다. 구체적인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매우 현실적이지요. 순교는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선조들은 목숨을 바쳐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권력과 돈과 지식, 성별과 관계없이 사람이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막연한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것을 가르쳐 주신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명예와 재산, 목숨을 모두 바치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목숨과 바꾼 것이 바로 우리 선조들의 순교영성입니다.

김 추기경님은 개인적인 삶을 통해, 교회의 이름을 통해 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조선시대와는 다르지만 물질주의 등으로 인해 희생되는 인간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것을 이 시대에 구현하기 위해 펼치는 노력도 순교의 하나였습니다.

또한 김 추기경님은 유럽에서 공부하시면서 근대 유럽 교회가 어떻게 쇠퇴하고 몰락하는지 경험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국가의 역량 부족으로 교육과 병원 사업 등을 교회가 맡아왔지만 국가 역량이 커지면서 교회는 이 모든 것들을 내놓는 모습을 보고, 그러한 시점에 교회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를 고민하셨습니다.

더욱이 김 추기경님께서는 이러한 역할들을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고, 실천을 통해 쉽게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끄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근간으로 추모와 현양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 변 : 남에게 보이기 위한 학구적인 영성이 아니라 그야말로 삶과 신앙을 통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모든 문제를 깊이 고뇌하고, 매순간 결단을 내리면서 쌓아온 모습 그 자체가 바로 김 추기경님의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영성을 생각할 때 믿음과 인품은 가장 중요한 화두일 것입니다. 김 추기경님이 지닌 따뜻한 성품과 복음이 만나 ‘사랑’으로, 소박한 성품과 복음이 만나 ‘겸손’으로, 성실한 인품과 복음이 만나 ‘헌신’, 즉 내어주는 모습으로 드러났습니다. 사랑과 겸손과 헌신은 그분의 인품과 신앙에서 나왔고, 이러한 모습이 사회 현실과 만났을 때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과 인권에 대한 존중, 올바른 가치와 정의를 찾는 사회적 운동, 용서와 화해로 드러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김 추기경님의 영성은 상식적이고 평범한 편안한 영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고, 그 삶 자체가 영성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김 추기경님을 닮을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해야 합니다. 복음적 영성을 삶으로 보여준 그 방법론을 우리가 찾아내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김 추기경님은 복음을 가장 잘 살아내신 신앙인의 모범이었습니다.

▶ 노 : 김 추기경님에 대한 애도의 분위기는 사회적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모범을 따라 이미 각막기증과 사회 지도자층의 봉급 삭감 등의 운동이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김 추기경님에 대한 기억도 흐려지고, 그분의 선종을 계기로 일어나는 나눔 운동도 식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보이는 추기경님 선종에 대한 애도 분위기나 가톨릭에 대한 친근감은 우리 교회에 득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폭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러한 기대를 적절히 충족시켜주지 못하다면, 교회에 대한 기대는 반발이나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이 하신 일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신 것이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질적 도움도 주셨지만,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그들의 처지를 공유하고, 같이 아파하고, 위로해준 것이 더 큰 감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신부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김 추기경님은 수많은 이들이 하소연하고 해결을 요청할 때 어렵게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 곁에 서서, 그들과 같이 울어주셨습니다.

한국 교회가 그러한 김 추기경님의 모습을 이어서 보여줄 수 있을 때 지금 교회를 향해 있는 관심과 기대가 크게 훼손되진 않을 것입니다. 교회는 거창하게 우리 사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사는 아닙니다. 같이 고민하고 아파하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입니다.

▶ 우 : 지금이야말로 한국 교회가 반성과 쇄신을 향해 박차를 가해갈 새로운 기회입니다. 김 추기경의 선종 이후 우리가 사회 곳곳에서 구현해야 할 역할과 과제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 노 : 우리 신자들이 김 추기경님의 모범을 하나의 훈장을 다는 것으로 인식해서는 도리어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김 추경님 같은 분이 계셨다고 자랑만 하고 자신들도 가톨릭신자라는 것을 사회도덕적인 보증수표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이러한 부작용들이 벌써 일부 정치인들과 경제인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에 대한 존경과 애도의 분위기를 그렇게 악용해선 안 될 것입니다.

▶ 박 : 압축 성장 과정에서 신자들조차 스스로 신자임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자신이 세운 아무런 바탕없이 또 자신은 노력하거나 변화하는 것 없이 신앙을 이용한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제2, 제3의 김 추기경님과 같은 신앙인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변 : 신자로서의 자부심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에 부끄럽지 않게 끊임없이 노력하며 사는 모습입니다. 특히 교회는 김 추기경님이 보여주신 밖으로의 봉사와 헌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회와 함께 펼칠 수 있는 운동 등으로는 나눔을 우선적인 가치로 꼽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가 바로 나눔이 필요한 때입니다.

최근 우리 교회는 가난하고 약한 이들과 얼마나 함께 했는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 성장에만 치우쳐 대 사회적인 봉사를 간과한 면도 많이 있었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끝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계셨기에 그분이 떠나면 마치 어떤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온 국민들의 관심을 보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교회는 양을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를 향해 같이 참여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김 추기경님도 당신 혼자 하신 것이 나이라 중계자로 나서 우리 모두가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도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입니다. 언론의 역할도 필수적이겠지요. 김 추기경님도 세상일에 초대를 하셨지, 떠밀거나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나섰습니다. 구호만이 아니라 열려있는 장, 언제나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나눔의 장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정리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