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09-03-03 수정일 2009-03-03 발행일 2009-03-08 제 2638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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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김수환 추기경처럼" 장기기증 등 사랑 나눔 확산

장례기간 4일간 신자·일반 시민 40만 명 추모
'추기경 각막 기증' 따라 장기기증 신청 급증
주일미사 참례자·성경공부 참가자도 증가
김 추기경의 장례미사를 함께 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명동성당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3월 2일 열린 '성서 못자리' 개강식 모습.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사람들.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이 알려진 2월 16일 오후부터 김 추기경이 입원해 있던 강남성모병원과 서울 명동성당에는 수십 명의 취재진들이 앞다퉈 찾아왔다. 각 언론들은 김 추기경 선종 소식과 그의 삶에 대한 보도로 뉴스와 신문을 장식했다. 선종 당일에는 김수환 추기경 이름으로 1700여 개에 달하는 기사가 일간지 인터넷판과 인터넷신문을 통해 올라왔을 정도로 취재열기가 뜨거웠다.

일반 시민들의 관심도 이에 못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16일 1500명으로 시작된 조문객 수는 17일 9만 6500명, 18일 15만 2500여 명으로 급속도로 늘어났다. 김 추기경에 대한 열풍은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았다.

장례기간 4일 동안 신자를 비롯해 일반시민들까지 약 4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행렬이 이어졌다. 선종한 김 추기경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최소 2시간에서 최대 5시간을 기다렸던 조문객의 모습은 국민 스스로가 만들어 낸 국민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위 성직자로서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몸소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한 그의 생전 모습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분석한다. 특히 마지막까지도 각막을 기증한 이야기는 전사회적으로 신드롬의 불을 지폈다.

장례 기간 동안 장기기증 신청자도 급증했다.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김추기경 선종 이후 일주일간 1520여 명이 장기기증 신청을 희망했다고 밝혔다. 특히 2월 21일과 22일 이틀간 진행된 생명·나눔 캠페인에는 서울 목동본당 신자 720여 명을 비롯해 1300여 명이 동참했다.

이 같은 신드롬의 원인에 대해 박현민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회장)는 “무의식 안에서 의지하고 존경하고 있던 김 추기경님의 선종은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그분의 존재를 다시금 깨우치는 계기가 됐다”며 “사회의 정신적 대상을 상실했다는 슬픔이 이번 추모행렬을 통해서 표출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김 추기경 신드롬은 교회 안으로도 확산됐다. 본당활동과 신앙 교육프로그램 등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2주 동안 주일미사 참례자들이 늘어났으며 또한 3월 2일에 열린 성경 공부 프로그램 ‘성서 못자리’ 개강식에 평소보다 2배가 많은 수강자들이 참석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김 추기경 선종의 영향으로 새롭게 참석했다고 말했다.

노길명 교수(고려대학교 사회학과)도 본지와의 좌담을 통해 “현대인들의 성스러움에 대한 갈증과 정신적 지주를 잃은 아쉬움이 추모물결을 불러오지 않았나 싶다”며 “이번 추모 물결은 권위의 원천이 예전과 같이 신분과 지위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희생과 봉사에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신드롬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선종을 시점으로 각막기증, 사회 각계 나눔 운동 등이 확산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운동도 점차 식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박현민 신부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김 추기경의 생애와 업적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급격하게 관심이 높아진 것도 있다”며 “이는 반대로 급격하게 관심도 떨어질 수도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며 이런 현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종교계에서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드롬은 교회 내 반성과 쇄신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 추기경의 선종이 천주교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됐다는 공감대가 퍼지고는 있지만 교회와 신자들 자신이 각성하지 않는다면 이번 신드롬은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고 말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변승식 신부(주교회의 사무국장)는 이와 관련해 “교회는 신자들을 양으로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향해 같이 참여하고 봉사해야 한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때 신자와 사회가 함께 펼칠 수 있는 나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미경(평화심리상담소 소장)씨도 역시 “중산층화 된 교회가 먼저 욕심을 비우고 가난한 이들, 낮은 이들과 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며 “김 추기경님의 뜻을 잘 새기며 나아갈 때 교회의 미래도 밝다”고 강조했다.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