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11) 죽음이 걸어오는 말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입력일 2023-03-14 수정일 2023-03-14 발행일 2023-03-19 제 3335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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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정화 등 자살에 담긴 다양한 의미
자살행위자와 자살유가족을 만나면서 죽음에도 어떤 의미가 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명확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제가 체험한 자살 사망에 담긴 메시지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자신과 타인을 향한 영적(spiritual) 행위’라는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영적이라는 의미는 특정 종교나 신앙이 아니라 궁극적인 무언가를 찾고, 초월과 영원성을 동경한다는 차원입니다. 죽음을 통해 자신이 고통스러워했던 현실과는 다른 죽음 너머의 세계를 갈망하고 현실에서 채울 수 없었던 결핍을 채우는 시공간으로 죽음 너머의 세계를 희망하면서 죽음이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에 제의적(祭儀的)인 측면이 복합되기도 합니다. 일종의 정화(淨化) 의식으로 자기를 죽이는 행위를 통해, 정화되지 못한 삶을 극복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행위자가 왜 그러한 죽음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성찰하도록 요구합니다.

두 번째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메시지입니다. 행위자는 자기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고, 어떻게 해도 자기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체험하면서 자기 삶이 운명대로 정해져 있듯이 지금 시점에서 죽음을 감행하는 것도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 생각하고 죽음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행위자의 관점에서는 더 산다고 자기 삶에 새로운 의미가 생기리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자기 처벌의 의미가 추가되기도 합니다. 운명과 맞서는 과정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 떳떳하지 못한 일이 생기고 이에 따라 자기 모멸감을 느끼고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자신이 직접 자기에게 형벌을 내리는 방식으로 죽음을 앞당깁니다.

세 번째는 ‘원래의 내가 없어짐’이라는 메시지입니다. 행위자에겐 자신과 자신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되는 공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포를 현실의 사건으로 반복 경험하게 되면 생생하게 살아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과 자신 사이의 괴리가 심해지면, 행위자는 타인과의 관계가 불가능해지고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이격(離隔)이 생깁니다. 여기에 종연(終演)의 의미가 추가되기도 합니다. 타인이라는 관객에 맞춰 억지 표정을 지으며 살아온 위선에 지친 자신을 그만 멈추고자 합니다. 외부를 향해 온갖 가면을 써왔던 자기도 무너지고 지금껏 돌보지 않았던 내면의 자기도 자기를 받아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사면초가 상태에서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됩니다.

네 번째는 ‘존재의 발현(發現)’이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잊힌 자기존재를 부각시켜 표현하는 것입니다. 행위자는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을 살피지 않는 사회에 자기 정체성을 표출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자살을 고민합니다. 이는 살아 있을 때는 단절되어 있던 고립된 자아를 죽음으로 사람들과 재연결하려는 시도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복수라는 의미가 추가되기도 합니다. 자신은 소속집단의 성원이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나 소속집단으로부터 인격 훼손이 지속될 때, 그 집단에 자기 존재를 새롭게 각인시키고 그동안 받아 온 고통을 되돌려주는 최후의 방식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대개 이 경우에는 신(神)도 자신의 응징을 허락한다고 믿고 현실이 이미 지옥이었기에 사후 심판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살면서 계속 자신을 짓눌렀던 죽음이라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