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자기표현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입력일 2023-01-17 수정일 2023-01-17 발행일 2023-01-22 제 332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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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통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은 고통 
자살시도자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자살 행동을 분석해 보면, 크게 은폐된 차원과 표면적 차원으로 구분된 형태가 나옵니다. 자살 행동 과정에서 양자는 동시에 서로를 자극하며 활성화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먼저 은폐된 차원은 자살 행동을 실행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이고 심층적인 차원들로,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표면적 차원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로 주로 사회 환경(사회적 조건), 개인 심리, 대처 행동 등의 맥락에서 나타납니다.

은폐된 차원에는 ‘무의식’과 ‘시간성’, 그리고 ‘공격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의식’은 어린 시절부터 가정불화, 폭력, 학대, 버려짐 등을 통해 존재가 생명력을 상실하면서 무의식 안에 자리 잡은 손상된 존재가 언제든 소멸을 지향하는 에너지로 작용하려는 것입니다. ‘시간성’은 너무나 소중한 것을 잃은 트라우마로 인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구분이 없어지고 부정적 과거뿐만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역시 부정적으로 선(先) 체험되면서 과거 이상으로 힘든 미래를 앞서서 차단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격성’은 자신을 표현할 수 없게 억압한 대상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대상을 파괴하고자 하는 동력이면서 동시에 대상에 대한 공격성을 분출할 수 없을 때는 언제든 자기 파괴로 전환되는 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 차원은 자살 행동 과정에서 비교적 쉽게 자각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주로 정신의학, 심리학, 정치경제학, 사회학적 측면에서 유전적인 특성, 우울증, 도피이론, 스트레스 대처 및 취약성, 대인관계 심리이론(좌절된 소속감과 자신을 짐으로 느끼는 상황에서 습득하게 되는 실행 능력), 경제적 소외, 사회통합의 결여 등이 모두 표면적 차원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자살시도자 대부분이 자살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은폐된 차원의 어려움이 임계상황에 이른 상태에서 표면적 차원의 어려움이 추가되어 복합 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표면적 차원으로 자살을 실행하는 것 같지만 실제 내면에서는 표면적 차원은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누적된 은폐된 차원이 문턱을 넘어 죽음의 색깔로 표출된 것이어서, 정작 본인은 단정적으로 무엇 때문이라고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은폐된 차원과 표면적 차원이 서로 교차하면서 활성화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지금까지 살아야 할 이유로 작용했던 것들(가족, 친구, 일, 종교)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강박적 생각만이 자신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어떤 인정과 이해도 받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자기 삶을 죽음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저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

자살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살아서는 받지 못했던 인정을 죽음을 통해 사후 인정의 형태로 받고자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살 행동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자기표현입니다.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