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신앙과 신학 (하)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입력일 2023-01-16 수정일 2023-01-17 발행일 2023-01-22 제 332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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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만이 구원의 길” 신앙의 핵심 밝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완전한 답” 결론 바탕
주님 은총 받는 그리스도교 ‘성사적 특성’ 통해 본질에 접근
신앙인 희망의 중심에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있음을 강조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인간은 노동하고, 겸손하며, 고통을 겪고,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CNS 자료사진

2022년 12월 31일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265대 교황이기에 앞서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주제를 늘 주된 관심사로 두었던 탁월한 신학자였다. 가톨릭대 조직신학 교수 조한규(베네딕토) 신부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신앙과 신학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답

창세기 2장은 인간 창조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느님께서 먼저 흙으로 인간 모양으로 빚으신 후, 당신 숨(=영)을 불어 넣으신다. 그 순간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서 하느님 닮은 존재,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영적인 능력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함께 할 수 있다. 또한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유 의지를 주셨다. 자유 의지를 통해 인간은 자기 영혼을 파괴할 수도, 구원할 수도 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인간 삶의 목적과 지향은 자기 영혼 구원이다. 영혼 구원을 위해 인간은 ‘하느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참조 요한 1,14), 즉 하느님의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인간 구원의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완전한 답’이라는 입장은 신약성경 전체의 결론이고 그리스도교의 핵심이다. 또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비롯한 수많은 신학자들이 강조하는 내용이고 라칭거(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신학과 신앙의 출발점이자 본질이자 결론이다. 라칭거에게 신앙이란 “나는 너를, 나자렛 예수를 이 세상과 내 삶의 ‘뜻’(Logos)으로 믿는다”(「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 83쪽)라는 고백이다. 따라서 하느님 말씀이신 그분을 따라 인간은 노동하고, 겸손하게 살고, 고통을 겪고,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고 라칭거는 강조한다.

인간은 한편으로 하느님을 닮은 존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에 빠지기 쉬운 나약한 존재이다. 인간은 자유 의지만으로 악을 이겨낼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은 하느님 말씀을 통해 죄와 유혹을 극복하며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 구원을 지향한다. 인간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을 아는 것에 머문다면 결국 오만을 낳게 되고, 반대로 하느님을 알지 못한 채 인간의 처지만 생각한다면 남는 것은 절망뿐이다. 절망(絕望)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에 대한 믿음만이 인간을 절망에서 구해 낼 수 있다. 예수님은 인간 삶에 대한 모든 답을 알고 계신다. 라칭거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참 모습과 신 개념을 함께 완전히 드러낸 규범적 인간”(「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 238쪽)이다.

라칭거는 그리스도교의 ‘성사적 특성’을 통해, 즉 성사성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접근한다. 성사(聖事, Sacramentum)란 하느님의 은총 자체이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방법이며 결국엔 하느님 자체이다. “하느님의 성사는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또 그 무엇도 아니다.”(「Theologische Prinzipienlehre」 48쪽) 예수 그리스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하느님 자체이고,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해 주는 분이며 동시에 은총 자체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원(原)성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구원을 자신이 먼저 받고, 이후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그리스도의 성사이다.

성사로서의 교회 개념은 초기 교회와 교부들이 자주 강조하던 개념이었다. 하지만 중세시대의 제도적이고 법적인 형태의 교회 개념이 부각되면서 차츰 잊혔는데, 19세기 이후 여러 신학자의 연구를 통해 재발견되었고, 라칭거를 비롯한 많은 신학자에 의해 그리스도교와 교회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이해된다. 성사로서의 교회 개념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긴밀한 관계를 의미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만, 그리스도에게 종속될 때만 진정한 교회이고 성사이다. 교회의 본질이자 사명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지금 여기에 현재화시키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현존을 현재화시키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은 교회가 베푸는 7성사이고, 그중에서도 성체성사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는 교회의 중심이고, 이 성체성사는 신앙과 세례를 통해 구성된 교회에 의해 거행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성체성사 교회론’(Eucharistische Ekklesiologie) 내지 라칭거가 강조하는 ‘친교 교회론’(Communio Ekklesiologie)은 교회의 성사적 특성을 강조한 표현이고, 이는 가톨릭교회 교회론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 받는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받아 모시는 그것으로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다.”(「교회헌장」 26항)

그리스도와 교회를 사랑했던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제 하느님 나라로 떠났다. 그리스도교는 죽음과 관련해 ‘종말론적 희망(希望)’을 이야기한다. 종말론이란 개인의 삶이나 인간 역사의 마지막에 오게 될 죽음, 부활, 심판, 그리스도의 재림, 세상의 파멸과 완성, 천국, 연옥, 지옥 등의 최종적인 사건에 대한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논의와 결론이다. 라칭거는 종말론적 희망의 요체를 “기도의 영성적 긴장과 교회와의 통공에서 신앙이 지닌 공동체적 권위와 성찬례에서 체험할 수 있는 종말의 현재화”(「종말론」 34쪽)와 관련시켜서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이 바랄 수 있는 희망은 항상 그리스도, 교회, 성찬례와 관련된다. 종말론적 희망에 대한 라칭거 주장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라칭거는 “(그리스도교의) 희망은 인격화되었다. 희망의 중심은 시공간에, ‘언제-어디서’라는 질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과 맺는 관계”(같은 책 35쪽)에 있기 때문이라 강조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바로 하느님 나라이다.”(같은 책 63쪽)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는 순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인간 구원에 존재했었던 ‘이미와 아직’ 사이의 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극복되었다. 그리스도교적 희망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넘어 생겨난 것이기에, 우리가 지향하는 구원과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희망과 관련된다.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사도신경’은 부활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끝을 맺는다. 주님의 재림 때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믿음이 ‘신경’ 전체의 결론인 이유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에서 출발하고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리이다”(요한 14,6)라고 하셨던 분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다”(요한 11,25)라고 하셨다.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1테살 5,10) 주님 곁에 있는 것이 영원한 생명의 핵심이다. 라칭거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희망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통해 정향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떠났다.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