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3) 한국은 지금 자살유가족 사회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입력일 2023-01-10 수정일 2023-01-17 발행일 2023-01-15 제 332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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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못한 이별에 울부짖는 사람들

현장에서 상담하면서 저는 줄곧 자살유가족을 만났습니다. 자살유가족이 언급했던 가족의 죽음은 이별에 대한 예고가 없었습니다. 그저 이별을 건너뛴 상실과 감당할 수 없는 충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밤중에 바람 쐬러 나간다던 아내의 익사, 중요한 일들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편안해 보였던 남편의 예상치 못한 질식사, 취업이 늦어지긴 했지만 매일 같이 도서관에 다니던 아들의 음독사, 사업이 어려워도 걱정하지 말라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의사(목맴), 병원 치료를 받으며 우울증에서 호전되던 딸의 추락사, 누구보다 뛰어났고 장래가 촉망됐던 남동생의 의사(목맴), 비즈니스 관계로 외국 출장을 가겠다던 남자친구의 질식사 등 조금 전까지 생생하게 함께 했던 사람의 죽음은 수용할 수 있는 형태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유가족은 고인의 죽음을 자살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타살이며 누군가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당 기간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몰두하지만, 결과는 또 다른 상처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가족 내 책임 공방이 이루어지고 더 큰 자책과 원망이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고인의 약점, 한계, 수치스러운 무언가가 드러날 수 있어 더는 진입할 수 없는 국면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유가족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침묵과 울부짖음 사이에 있게 됩니다. 같은 가족 내에서조차 고인의 죽음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가족은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속이며 살게 되고 나중에는 진짜 자신의 감정을 상실하게 됩니다.

“도대체 왜?”(이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끝없는 질문), “전처럼 평범한 사람으로 정상적인 감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없다”,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무너졌다”, “누군가를 향한 복수” 등과 같은 특정 생각들만이 자신을 지배하게 되고 그 생각들에서 나오려 해도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내면에 똬리를 틀고서 유가족의 삶을 더욱더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고통이 누적되고 심해지면 유가족 또한 그 고통을 무화시킬 수 있는 상황, 근원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동경하게 됩니다. 고인이 그랬던 것처럼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한국은 2003년 처음으로 자살사망자 수가 1만 명을 넘은 이후 2021년 현재까지 18년간 매년 자살사망자 수 1만 명(평균 1만 4천26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살사망자 수와 연결된 자살유가족을 헤아려보면 최소 126만 명에서 최대 25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이별 없는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거대한 상가(喪家)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별도 애도도 제대로 할 수 없었기에 유가족의 일상은 소리를 삼킨 곡(哭)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성을 들여다보면, 누구도 예외 없이 우리는 이미 누군가의 자살유가족입니다. 한국은 지금 자살유가족 사회이니까요.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