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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이 시대의 지옥들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서울 상봉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3-01-03 수정일 2023-01-04 발행일 2023-01-08 제 332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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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종교적인 용어인 ‘지옥’을 스스럼없이 사용한다. ‘헬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회자되어 ‘N포 세대’ 청년들의 가혹한 현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면 이제는 모든 세대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삶의 어려움을 ‘지옥’으로 치환하고 있다. 특히 ‘솔로지옥’, ‘결혼지옥’과 같이 최근 잘나가는 방송 프로그램을 모니터하면서 시대적 상황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어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면이 있지만 비윤리적이고 비복음적 가치관을 노출시키고 있다.

‘솔로지옥’과 ‘결혼지옥’은 둘 다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차이가 있다. ‘솔로지옥’이 커플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면 ‘결혼지옥’은 커플 재탄생을 목적으로 한다. ‘솔로지옥’에서 말하는 지옥이란 단순히 솔로 자체이고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생존하는 곳이지만, ‘결혼지옥’에서 지옥은 그야말로 괴로움, 절망, 고통 등에 빠져나올 구멍이 없는 비참한 상태이다. 그리스도교 교리상으로는, 죄의 결과로 죽어서 구원받지 못하는 끝없이 벌을 받는 곳이 지옥인데, 결혼 생활 자체에서도 그런 체험을 미리한다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지옥이란 말을 사용한다.

‘솔로지옥’은 싱글 남녀가 무인도에 갇혀 지내는데, 커플이 되면 지옥도를 탈출해 둘이 ‘천국도’로 가고, 커플이 되지 못하면 ‘지옥도’에 남아 자급자족해야 한다. 이러한 짝짓기 예능물은 ‘나는 솔로’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나타난 결과인데 글로벌한 인기를 얻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에 짝을 이루지 못한 ‘나 홀로족’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렵고 적합한 배우자를 못 만나서 결혼하지 못하고 있음을 최근 통계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러한 짝짓기 프로그램들은 1인 가구 청년들을 결혼으로 이끄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문제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솔로지옥’이 제시한 규칙에 커플은 바람직한 것, 싱글은 그렇지 못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깔려 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듯, ‘커플 천국, 솔로 지옥’으로 프레이밍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1인 가구가 대세이고 앞으로 더욱 그러할 것이다.

물론 솔로 중 자발적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비자발적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도 꽤 많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혼자 사는 방식은 옳지 않고 잘못되어 있는 것이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받아도 된다는 차별을 은근히 드러낸다. 이 프로그램이 솔로를 커플로 유도하는 장점이 잘 살려지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커플되기에 가까스로 성공하여 천국도로 가서 연애를 잘해 결혼으로 최종 목적을 이룬다 해도 막상 결혼 이후 천국 같았던 환상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결혼지옥’이란 예능 프로그램이 엄청난 시청률을 올리는 이유는 지옥같은 결혼생활에서 탈출시켜 주는 솔루션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결혼지옥’에서 관찰 카메라를 통해 여과 없이 보이는 다양한 부부 갈등에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대리 만족을 이끌어내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러나 시청률에 얽매인 방송 특성상 프로그램 횟수가 거듭되면서 보다 자극적인 내용을 다루다보니 아동 성추행, 가정 폭력 범죄 등의 문제가 제기됨에도 전문 상담가 한 사람에 의존하는 시스템에 한계가 있음을 여러 비평가들이 지적한다.

또한 프로그램 제목 ‘결혼지옥’이란 말 자체가 저출생 시대에 결혼을 지옥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시켜 ‘나 홀로 삶’으로 몰아가고 가파른 인구 절벽에 부딪칠 가능성도 우려된다.

단테 ‘신곡’에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천국, 연옥, 지옥을 여행하는 모습을 그린다. 희망 없는 곳이 곧 지옥이다. 그 말을 되새기면, 희망을 품는 순간 누구나 천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말이다. 홀로 사는 사람이든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든 자신과 상대방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변화의 희망을 받아들일 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서울 상봉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