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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교토삼굴(狡兎三窟) / 박천조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2-12-28 수정일 2022-12-28 발행일 2023-01-01 제 332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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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새로이 바뀝니다. 작년이 호랑이 해였다면 올해는 검은 토끼 해라고 합니다.

토끼하면 거북이와 달리기 경주를 했던 이솝 우화가 먼저 생각납니다. 거북이에게 한참을 앞서다가 방심해 잠을 자는 바람에 성실한 거북이에게 지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는 성실함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북쪽 아이들의 반응이 우리와는 달라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운영씨가 쓴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있었습니다. 과거 소비에트연방 문화사절단이 북쪽을 방문했는데, 그 일정에 어느 소학교를 시찰하는 시간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의 부탁으로 학생들 앞에서 짤막한 연설을 하게 된 사절단 단장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러고서는 “자, 어린이 여러분, 모두 토끼같이 게으르지 말고 거북이처럼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말을 마쳤는데, 문득 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이렇게 질문을 했다는 겁니다. “왜 거북이 동무는 자고 있는 토끼 동무를 깨워서 같이 가지 않았나요? 그것은 우리가 배우는 사회주의의 협동 정신에 어긋나는 일인데요.”

우리는 개인의 문제로 생각했는데 북쪽 아이들은 깨워서 같이 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었던 것이지요. 평소 우리와는 달랐던 북쪽 아이의 질문에 생각의 차이를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토끼하면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이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사자성어입니다.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 놓는다’는 말입니다. 일을 할 때 여러 개의 대안을 만들어 놓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교활하다는 표현을 했습니다만 사실은 지혜롭다는 말이 맞겠지요.

2023년 우리나라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전망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와 외교안보 분야의 전망은 더 어둡습니다.

각국의 이해관계와 갈등이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공간에서 직접적으로 부딪히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 굴 하나만 파 놓고 있기보다는 교토삼굴의 토끼처럼 두 개, 세 개씩 지혜롭게 준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아울러 개인들도 신앙생활 속에서 교토삼굴의 지혜를 가졌으면 합니다. 특히나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많아진 냉담교우들을 설득하고 화해와 평화라고 하는 신앙적 가치를 함께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방식들을 고민했으면 합니다. 모두가 지혜로운 한 해 되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