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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47)교회의 미래를 생각한다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11-15 수정일 2022-11-15 발행일 2022-11-20 제 3319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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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미래를 향한 토론과 대화 활발해져야 한다
현실 진단하고 쇄신하지 않으면
교회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것
전통 재해석과 정확한 시대 읽기로
신앙생활 새 방식·구조 만들어야

청년사목의 미래에 대해 토론을 펼치고 있는 부산교구 청년들. 미래를 향한 변화와 쇄신의 담론이 교회 안에서 활발하게 전개돼야 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미래에 대한 음울한 전망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다. 언제인가부터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한다. 인류는 언제나 자신의 시대를 위기의 시대로 규정하는 속성이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어떤 위기의 상황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의 비관적 전망은 단순한 세기말적 현상이 아니다. 사회 전반의 증상과 징후와 생태와 기후의 변화가 초래하는 현실적 위기에 근거하고 있다.

세상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사라진 시대를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금의 시간을 즐기는 것일까. 막막한 미래를 생각하며 답답해하기보다는 현재의 소박한 행복을 찾아가는 태도가 지혜로운 것일까. 사람들은 미래의 위기와 파국에 대해 어렴풋하게 예감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어떤 준비와 대응을 하지 않는다. 인간은 안다고 늘 그 아는 대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철학자 장 피에르 뒤피는 슬픈 진단을 내리고 있다. “오리라는 예고는 되었지만 정확히 그 날짜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는 파국을 앞둔 시대에는 기이한 특성이 있다.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사건이 곧 일어날 것임을 알고, 그 사건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기정사실이나 준(準)기정사실로 간주하더라도 그들이 파국이 오리라는 앎을 믿음으로 바꾸는 일은 없다. 안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니다.”(「파국이냐 삶이냐」)

■ 교회의 현실과 미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중요하다. 오늘의 교회가 점점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이유에는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상의 흐름은 사람들이 기존 방식의 종교 생활과 신앙생활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있다. 교회 역시 세상 안에서 자신을 매력적인 방식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세상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을 탈 수 있는 건강한 방식의 신앙 수행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과 복음의 가치를 위해 세상의 흐름에 맞서야 할 때도 때때로 있지만 말이다.

사실, 한국 가톨릭교회는 1990년대에 정점을 찍었다. 신자 수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지만, 청소년과 젊은 세대의 부재와 신자의 고령화 추세가 가파르다. 본당의 신앙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비율 역시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 본당은 성사 전례만 거행하는 곳으로 그 역할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 교회 안의 모든 통계지표가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세대가 사라지면 과연 새로운 세대가 교회로 유입될 것일까?

통계지표뿐만 아니라 본당의 현실을 조금만 정직하게 둘러봐도, 교회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분명 위기의 교회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위기의 담론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는 숱한 위기에 직면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복음화 사명을 수행했다. 궁극적으로 교회는 성령께서 돌보시고 이끄신다. 하지만 성령의 활동 안에는 언제나 헌신적인 신자들의 노력과 탁월한 성인들의 선구적 실천과 시대를 읽는 교도권의 혜안이 포함되어 있다. 세상을 정확히 읽지 못하고 자기 쇄신을 위한 노력의 부재는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서울 구의동본당 청년들과 부주임 김민석 신부가 자신의 성령 체험기를 밝히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종교사회학적 전망과 트렌드

종교와 신앙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초월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영적 갈망이 있다. 시대에 따라 종교의 모습과 실천 형식이 변하고, 신앙 수행(표현, 고백, 실천) 방식이 변화될 뿐이다. 사실, 세속화 시대에 역설적으로, 사회 안에서 종교가 가진 역할과 기능이 더 강조되고 요청되고 있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시대에 종교는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다. 종교적 헌신은 공동체적 연대와 연결의 매개가 되고 오늘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작동될 것이다. 파편화된 오늘의 세상에서 교회는 대안적 공동체의 모습과 공동체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 세대(MZ세대와 알파세대)는 자기중심성과 개성이 강한 세대다. 집단과 공동체의 수직적 위계질서와 자기희생의 미덕에는 익숙하지 않다.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정서적 교감보다는 목적과 효용성을 강조한다.(「트렌드 코리아 2023」 참조) 팬데믹은 신앙 행태의 숨겨진 속내를 노정(露呈)하고 변화를 가속화했다. 신앙인들의 유동성은 더 강화되었다. 개체화되고 고립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최소 규모의 공동체적 관계를 요청한다. 촘촘하고 빡빡한 관계보다 느슨한 네트워크적 연대와 친밀성을 추구한다.(「한국 교회 트렌드 2023」 참조)

변화된 환경과 트렌드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사명을 수행할 것인가? 성직자 중심의 수직적 질서 구조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으로 여겨지지 않고 잘 수용되지도 않는다. 신자 개개인들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보장될 수 있는 방식으로 교회 생활의 틀이 혁신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사목의 영역에서 속지주의가 갖는 미덕과 가치는 풍요하지만, 이제는 속인주의 방식도 차용될 필요가 있다. 본당 활성화를 위해 소공동체와 구역·반 모임의 변화가 요청된다는 뜻이다. 교회의 선교와 사목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 공적 담론의 역할

기존의 사목 방식으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 교회 구성원 대부분은 교회가 변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개별적 차원에서는 누구나 다 교회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 위기와 쇄신에 대한 공적 담론이 부재하다. ‘사목적 회심’과 ‘시노달리타스’가 화두로 제안되고 있지만, 교회의 현실 속에서 그 명제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구호처럼 소비될 뿐이다.

교회의 기성세대가 지금의 신앙생활 방식에 만족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일에 소홀하고 게으른 것은 아닐까. 기성세대는 미래 세대를 위해 준비하고 그들이 교회의 주역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권한과 자리를 우리 기성세대가 독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의 세대와 함께 살아갈 젊은 사제들이 교계적 구조 안에서 권한과 역할을 갖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슬픈 현실이다.

미래를 향한 변화와 쇄신의 담론이 교회 안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면 좋겠다. 설혹 구체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더라도 공적 담론의 형성과 토론과 대화를 통해 미래를 향한 노력과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 그 자체가 변화와 쇄신의 징표이며 시작점이다. 이 시대의 교회는 전통의 창조적 재해석과 정확한 시대 읽기를 통해 신앙생활의 새로운 방식과 프레임을 만들어내야 한다. 창조적 재해석과 정확한 읽기를 위한 공부와 노력의 모습을 교회 안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오늘의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절망과 탄식이 아니라 공부와 모색이다.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