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이어령의 메멘토 모리 / 정민 안드레아

정민 안드레아(한국언론진흥재단 경영기획실장),
입력일 2022-11-01 수정일 2022-11-02 발행일 2022-11-06 제 331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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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지성 이어령(李御寧 1933~2022)은 지난 2월 26일 영면했습니다. 「눈물 한 방울」(김영사, 2022)은 2019년 10월부터 2022년 1월까지 고인이 쓴 마지막 글을 모은 책입니다. 암 투병 중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글을 쓴 그의 상태는 이렇습니다.

배가 아프다.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열도 난다. 목이 타고 어지럽다. 이 낙서장을 죽기 전에 찢어 없애야 하는데 그럴 만한 힘도 없다.

(2020.6.27, 114쪽)

그에게 죽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죽음은 길들일 수 없는 야수. 수식어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하나의 명사 하나의 동사만 남는다. 죽음. 그리고 죽다.(2020.7.19, 120쪽)

그의 작별인사입니다. 그는 임종장소로 자신의 서재를 선택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제 떠납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우물을 팠지만 마지막 우물 파기는 힘들었습니다. 내 낙서도 여기에서 끝이 납니다. 맞춤법 스트레스에서 벗어납니다. 안녕. (2021.12.30 아침, 187쪽)

저는 그의 글에서 죽음을 관조합니다. 부사나 수식어가 없는 죽음입니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 그의 ‘부재’만 덩그러니 남습니다. 기껏 헤아린 죽음도 사라집니다. 위령 성월을 시작하면서 그의 책 「눈물 한 방울」을 읽은 까닭입니다. 죽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저만치 밀어 둔 그 ‘죽음’ 말입니다. 그도 이렇게 조언합니다.

MEMENTO MORI.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생이 자라면 죽음도 자란다. 생이 죽으면 죽음도 죽는다. 죽음이란 죽음의 죽음. (2020.1.27, 79쪽)

우리는 삶과 죽음이 ‘등을 대고 있는 쌍둥이’(79쪽)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연중 32주일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 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결국 세상의 언어였습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루카 20,38)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2017년 월트 디즈니·픽사가 제작한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COCO)가 재현한 사후세계의 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이승에서 자기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저렇게 먼지가 되어 사라져” 라는 대사와 함께 소멸되는 ‘잊혀진 영혼’입니다. 하느님에겐 산 자나 죽은 자나 마찬가지랍니다. 자신의 죽음만큼 죽은 이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어령에게 ‘눈물 한 방울’은 동물이나 로봇이 아닌, 인간임을 증명하는 증표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관용의 눈물 한 방울 아닌가. 나와 다른 이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세상”(7쪽)입니다. 다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인간이라면, 타인을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려 본 사람이라면, 나의 죽음을 생각하고 죽은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주말 이태원 사고로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길 기도합니다.

정민 안드레아(한국언론진흥재단 경영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