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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친일’과 화해 / 강주석 신부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2-10-25 수정일 2022-10-25 발행일 2022-10-30 제 331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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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윌리엄스(George Z. Williams)는 해방 후 미군정에서 하지(John R. Hodge) 사령관의 참모를 지낸 인물이다. 윌리엄스의 부친은 조선에서 활동한 감리교 선교사였고, 본인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기에 한국어에도 능통했다. 그리스도교와 6·25전쟁의 관련성을 연구한 하가(Kai Yin Allison Haga)에 따르면, 하지 장군이 윌리엄스에게 부탁한 것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조언해 주는 것, 둘째, 미군정을 위한 한국인 인사를 고용하는 것, 그리고 셋째, 한국 지도자들에게 미군정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하가는 윌리엄스가 개신교 엘리트, 보수주의자, 그리고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선호했고, 좌익을 신뢰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면서 그의 견해가 담긴 보고서가 초기 미군정의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한편, 선교사 집안의 배경을 가진 윌리엄스는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까지 동정했다. 예를 들면, 그는 고발당한 친일 부역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겉으로는 일제에 협력했던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비밀리에 저항하기도 했다”는 이들의 변명을 수용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다른 미국 선교사들처럼 윌리엄스도 친일 문제에 관대했으며, 이러한 ‘용서’는 친일 부역자들이 미군정에서 다시 일하게 된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화해를 어렵게 만드는 ‘역사의 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역사는 쉽사리 벗어던질 수 없는 폭력과 분쟁의 무거운 짐을 안고 있습니다. … 이러한 슬픈 사건들의 원인은 먼 과거 속에 묻혀 버렸어도 그 파괴적인 후유증이 남아 가정, 인종 집단 그리고 모든 사람 사이에 두려움, 의혹, 증오, 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제30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3항) 이어서 담화는 과거의 죄악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기억의 치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역사 안에서 진실과 정의를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권이나 학계에서 아직 ‘친일 논란’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평화에 이르기 위한 진실과 화해의 중요성을 다시 절감한다. 갈라진 이 땅에서 평화의 소명을 가진 교회는 진정한 화해를 위해 간절히 노력해야 한다. 하느님의 정의가 드러나는 평화, 진정한 참회가 이뤄지는 화해를 위해 기도하자.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