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새로운 다짐 / 김장희

김장희 베드로,제2대리구 아미동본당
입력일 2022-10-19 수정일 2022-10-19 발행일 2022-10-23 제 3315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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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자 교육 때의 일이다. 새벽 부르심에 비몽사몽간 불빛을 따라 성당에 앉았다. 교육생들이 하나 둘 성당을 채울 즈음 나는 작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의 초라한 내 모습이 연신 거슬렸고, 동료 교육생과 미사에 함께할 교우들 앞에 선다는 게 너무도 신경 쓰여 분심으로 가득하였다. 세속적 고민에 사로잡혀 교육 전 다짐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는 내 모습과 주님 앞에 민낯으로 살아온 부끄러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주님께서는 더 어여삐 보실 거야!’라는 기도와 짧은 다짐을 한 순간,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고 온전히 미사와 예식에 참례할 수 있었다.

우리는 평소 서로 다른 삶을 살면서도 신앙공동체 안에서 주님만을 바라보는 일치된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고, 맡게 되는 봉사직과 행위에 많은 의식과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내 신앙생활 안에서 범하는 잘못의 대부분은 보이는 행위에 대한 과도한 집착, 잦은 감정변화에 따른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과 시기와 질투, 그리고 기본을 행하지 않는 오류에서 비롯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주일 오후,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바티칸의 역사를 뒤흔든 위대한 이야기, ‘두 교황’. 낯익은 성당에서 나누는 연기자들의 대화 모습은 목전에서 실제 교황님, 신부님, 수녀님들을 뵙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늘 그러했듯이 모든 일과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언가를 얻고자 했던 일상의 내 모습처럼 거대한 무대공간에 우선 시선이 향했고, 눈을 부릅뜨고 귀를 조아리며 세속적 셈법으로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했다.

보수와 진보, 전통과 개방, 취미까지도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오신 두 교황님! 규칙과 양심 사이의 갈등을 서로 인정하고 교회의 미래를 논하는 인간적 모습과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통한 용서와 화해는 성직자로서 예수님의 모범을 실천하고 그분께서 몸소 모두를 안아주신 사랑에서 시작됨도 느낄 수 있었다. 콘클라베의 결정체인 굴뚝의 흰 연기를 보며 환호하는 군중 속에서 남몰래 벅찬 감동의 눈물을 훔치는 내 모습도 그려 보았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일상에서의 불편함을 느꼈을지언정 신앙 안에서의 자유는 한껏 누린 요즘의 시간이었다. 이젠 주님의 자녀로서 세상에서 주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며,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새로운 다짐을 아뢰는 내가 될 수 있기를 주님께 청해본다. 소중한 기회를 허락하신 주님과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온갖 심오한 진리를 전할 수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장 참조)

김장희 베드로,제2대리구 아미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