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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45)이 시대에 수도자로 산다는 것은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10-19 수정일 2022-10-19 발행일 2022-10-23 제 3315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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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공동체의 기도와 영성의 삶, 기쁨과 행복의 원천 돼야
시대와 세대의 변화에서 어떻게 
살아있는 관계 형성할지가 숙제
수도자 역할과 사도직 수행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합의 이뤄져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 수도자들이 걸어가고 있다. 수도자는 세속을 벗어나 기도와 영성 수련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수도원의 풍경

10월 초 어느 수녀원에서 연피정 강의를 했다. 내 고향 본당 수녀님들의 수도회여서 느낌이 각별했다. 유년 시절과 신학생 시절 본당에 계셨던 두 분이 피정에 참여했다. 피정 중간중간에 본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 시절의 수녀님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누렸다. 50년 전, 30년 전에 인연을 맺었던 수녀님들이다. 뜻밖의 만남이 주는 반가움과 시간의 거리가 만든 아득함이 교차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우리는 이렇게 늙어가고 있다는 대중가요풍의 정서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수도회는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오래된 것들은 낡아간다. 고령화 시대의 풍경이다. 수도회에 강의 갈 때마다 확연히 느낀다. 젊은 수도자를 점점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노 수도자들의 모습은 거룩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청춘의 수도자들이 보여주는 풋풋한 열정의 모습을 수도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게 한다. 이제 더 이상 수도 공동체에서 원숙함과 발랄함이 공존하는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다. 미래를 향한 희망보다 수도 공동체의 우아한 소멸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십자가 죽음의 영성을 말하면서 왜 우리는 수도 공동체의 죽음을 말하면 안 되는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기도와 영성과 서원의 삶에 대한 이상(理想)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공동체를 이루며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에 대한 희망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유한 카리스마 공동체로서 세상을 향한 사도직 수행의 꿈이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도 공동체의 발생학적 기원과 목적과 지향은 교회 안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수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내는 방식과 틀은 변할 것이다. “남녀 축성/봉헌 생활자들은 교회 차원의 식별을 훈련함으로써 조직, 구조, 봉사(diaconia), 양식, 관계, 언어 등의 삶에서 이상과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육화되도록 새로운 변화를 꾀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 수도자의 내적 정체성

기도와 영성과 서원(가난·정결·순명)의 삶은 수도 생활의 핵심이다. 신앙인은 누구나 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고 고백하고 수행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수도자는 세속의 번거로움을 벗어나, 조금 더 기도와 영성 수련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서원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덕(virtue)이며, 동시에 공동체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형식이다. 즉, 서원은 기도와 영성에 집중하는 공동체적 삶을 살기 위해 채택된 행동 방식과 태도다. 수도자는 일상의 일과 속에서 기도와 내면적 수련에 더 초점을 두는 삶을 살아간다. 신앙의 여정에서 기도가 갖는 아름다움과 영적 충실함이 주는 기쁨을 누리며, 그것을 세상에 성사적으로 증거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수도자다.

매일 미사와 성무일도, 성체조배와 성시간, 월피정과 연피정 등 규칙적이고 정기적인 성사와 전례 생활을 통해 수도자는 자신의 영적 힘들을 키워간다. 반복은 변덕스러움을 뚫고 좋은 습성을 몸에 배게 한다. 규칙과 규범은 게으름과 타락을 경계하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자율의 힘을 키우지 못하고, 목적과 지향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습관적 반복만 계속된다면, 그것은 의무의 굴레가 되어 속박하고 구속하는 것으로 변질된다. 수도 공동체 안에서 기도와 영성이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 되지 못하고 의무와 당위로만 수행될 위험이 존재한다. 기도와 영성에 관한 규칙과 규범을 지키고 의무를 다했다는 자기 위안과 만족에 그치거나, 그 규칙과 규범이 타자를 판단하는 도구로 작동될 위험도 많다. 당위와 의무로서가 아니라 기쁨과 행복의 원천으로서 기도와 영성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공동체적 기도와 영성뿐만 아니라 자율적이고 개별적인 의례(ritual)를 어떻게 다양하게 발전시킬 것인지. 이 시대 수도 공동체가 직면한 숙제다.

■ 공동체적 관계

근대 이후 인간은 자신이 주체적 개인임을 깨달았다. 생각하는 주체에서 감정과 정서를 지닌 주체로, 더 나아가 욕망과 취향을 가진 주체로 진화했다. 이제 누구나 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과 취향을 중요시한다. 철저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시대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점점 어렵고 불가능한 시대여서 역설적으로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 더 크다. 수도 공동체는 그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 시대의 성사다.

수도 공동체는 신앙적 가치와 비전을 실현하는 이념 공동체다. 수도 공동체는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하는 생활 공동체다. 수도 공동체는 생각과 생활의 나눔과 공유를 통해 친밀성을 확보하는 정서 공동체다. 수도 공동체는 이념과 생활과 정서를 공유하는 진정한 공동체다. 하지만 오늘날 수도 공동체의 현실은 늘 이상적이지는 않다. 몸으로는 함께하고 있지만, 말을 잘 나누지 못한다. 사람은 몸과 말을 통해 서로 소통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말의 소통이 더 중요해진다. 마음은 몸으로도 전달할 수 있지만, 말로도 전달되어야 한다. 위로하고 살리는 말, 정직한 속내를 나누는 말보다 판단하고 심판하는 말, 형식적이고 내용이 사라진 빈말을 주고받는다면 공동체 관계는 허상이 될 위험이 많다. 말이 통하는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수도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그 헌신의 마음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수도 여정의 목적과 지향을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의 마음 안에 어떻게 살아있게 할 것인지. 생각과 감정과 욕망과 취향의 작동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어갈 것인지. 타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도 세대에 따라 변해간다. 시대와 세대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있는 공동체적 관계를 형성할 것인지. 여전한 숙제다.

■ 수도자의 직무

사도직 수도회는 자신의 직무 수행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사실, 일과의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이 사도직 수행이다. 본당 사도직, 사회복지 사도직, 교육 사도직, 병원 사도직 등 다양한 자리에서 수도자들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오늘날 수도자들의 일터 안에는 의미와 보람보다는 격무에서 오는 고단함과 피폐함이 가득하다. 신앙을 전수하고 교육하는 참된 복음 선포자로, 성직자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위로와 돌봄의 천사로 살지 못하고 있다. 수도자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성직주의가 빚어내는 협량함 때문이다. 수도자의 역할과 사도직 수행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합의가 교회 차원에서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

수도자들이 기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수도자 개인적 차원에서, 수도 공동체 차원에서, 전 교회 차원에서 수도자적 삶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