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나의 세례명 / 한경옥

한경옥 마르가리타(시인)
입력일 2022-10-12 수정일 2022-10-12 발행일 2022-10-16 제 331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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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세례명 ‘말가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영세를 했기 때문에 본명을 어떻게 정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자 상담해주시던 수녀님께서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내 생일 달의 성녀님이라고 ‘말가리다’를 추천해주셨다. 당시에는 영세를 받겠다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어 그저 민망하고 부끄럽기만 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우리말의 어감 상 예쁘지 않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마음에 안 들기는커녕 말가리다 성녀께서는 굉장한 미인이셨는데 나도 미인이라 잘 어울린다는 수녀님 말씀에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내 세례명을 들은 언니들이 “너는 하는 짓도 조신하지 못한데 세례명까지 말괄량이 같다”고 깔깔 웃으면서 놀려댔다. 남편은 한 술 더 떠 교우들이 전화로 나를 찾으면 일부러 큰 소리로 “말 같잖은 자매 전화 받으세요”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친구들은 얼마나 말을 가려서 하려고 그런 이름을 지었느냐며 웃었다. 엘리사벳, 비비안나, 프란체스카, 이사벨라, 체칠리아 등 여성스럽고 예쁜 이름이 얼마나 많은가. 그 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말가리다라니. 매사에 신중하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그 이름을 추천해주신 수녀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만물은 이름값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자식을 낳으면 유명한 철학관에 가서 비싼 작명비를 내면서까지 이름을 지어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만이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나 화초도 좋은 이름으로 불러줘야 잘 자란다고 한다. 예전에 시부모님께서 키우시던 강아지 이름이 ‘떼보’였다. 말티즈 종으로 하얀 털에 유난히 까만 눈동자가 예쁜 강아지다. 그런데 고 작은 녀석이 뭔가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찌나 앙칼지게 짖어대며 덤비는지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매일 떼보라고 불러대니 저렇게 떼를 쓰는 거’라고 시부모님께 개명을 해주시라고까지 했었다.

나는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경옥’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춘기 시절에는 세련된 이름으로 바꿔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아버지께서 경옥(慶玉)은 보석인 내가 태어난 것이 집안의 경사라 ‘경사스러운 보석’이라는 뜻이라며 나를 달래주셨다. 그런데 내가 직접 고른 세례명까지 마음에 들지 않아 여간 속상한 게 아니었다. 누가 본명을 물을 때마다 대답하기가 싫을 정도였다. 어떤 수녀님께 세례명을 바꿀 수 있는지 여쭤보니 견진성사를 받을 때 바꿀 수 있단다. 아뿔싸! 이번 생은 틀렸다. 이미 ‘말가리다’라는 이름으로 견진성사를 받았으니….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세례명 ‘말가리다’의 뜻을 들리는 대로 ‘말을 잘 가려서’라는 의미로 해석하니 꽤 괜찮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재학 중에 과 MT에 교수님과 함께 가면서 서로 가톨릭 교우인 것을 알았다. 내가 젊을 때는 세례명이 마음에 안 들어 속상했었다고 하자 교수님께서 ‘말가리다’가 아니라 ‘마르가리타’라고 알려주셨다.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말가리다, 말가릿다, 마가렛, 마르가리타로 여러 개가 나와 있다.

지난 4월 가톨릭신문사 기자와 인터뷰 끝에 그 중 어떤 게 맞는지 물었다. ‘마르가리타’가 맞는 것이란다. 정확도를 제일 중시하는 신문사 기자가 가르쳐준 것이니 내 세례명은 ‘말괄량이’도 ‘말같잖은’도 연상이 안 되고 발음도 억세지 않은 ‘마르가리타’로 내 맘에 쏙 든다.

한경옥 마르가리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