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명예기자 단상] 신앙이 영향을 미쳤니? / 윤선경

윤선경 수산나 명예기자
입력일 2022-09-21 수정일 2022-09-21 발행일 2022-09-25 제 331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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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를 영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는데 옆자리의 교우가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손으로 앞 의자 등받이를 잡은 채 고개를 깊이 어깨에 묻은 모습이 마치 절하는 것 같았다. 무엇을 저리 열심히 기도할까? 청하는 게 뭘까?

40대 주부 K는 육 남매의 맏며느리로 시댁의 일로 지친 상태였다. 남편과 매일 싸움이 계속되었다. 힘들었던 K는 새벽미사를 갔다. 신부님 강론 중 “형제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래, 내려놓아야지. 비워야지. 생각하는 순간 몸을 꽁꽁 옭아맨 철갑이 스르르 풀려 몸이 자유로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 K는 성경을 찾았다. 베드로의 첫째 서간 3장 8절에 말씀이 있었다. “여러분은 모두 생각을 같이하고 서로 동정하고 형제처럼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 성경을 읽고 난 후 전날 밤 치열하게 싸웠던 남편의 얼굴을 봤다. 이상하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K는 아내 몰래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시댁에 갖다 준 남편과 그간 자잘하게 분란을 일으킨 시동생들에 대한 미움이 깨끗이 사라진 걸 느꼈다.

50대 사업가 J는 친구와 동업으로 하던 사업을 분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초기 투자 금액과 현재 가치가 크게 달랐기에 지분을 나누기 어려웠다. 어쩌면 법정에서 소송을 하게 될지 몰랐다. 답답해진 J는 매일 성당에 앉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친한 한 변호사가 떠올랐다. 이 사람에게 부탁하면 어떨까? 친구와 친하니 손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지만 J는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변호사가 제시한 조건을 친구는 거절하지 않았다. 원하는 만큼 이익을 얻지 못했지만 J는 편안해졌다.

봄에 아들이 결혼을 했다. 혼사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 두 집안이 만나는 일이기에 은근히 복잡하고 신경 쓸 일이 많았다. 결혼식이 끝나자 과정을 지켜보던 친구가 내게 물었다. 친구는 가톨릭신자가 아니다. “여러 결정을 하는데 네 신앙이 영향을 미쳤니?” 잠시 생각했던 나는 그런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당에서 기도하는 교우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제 기도할 게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님과 멀어진 걸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기도할 게 무척 많았다. 기도할 게 없다는 건 근심이 없다는 것, 평화로워진 거였다. 곧 이 잠깐의 평화를 주님이 그리 나무라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인간은 각자의 연령에 맞는 근심을 안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나는 기도하는 교우의 어깨에 살며시 내 마음을 얹었다.

윤선경 수산나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