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중립과 균형 / 박천조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2-09-21 수정일 2022-09-21 발행일 2022-09-25 제 331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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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필연적인 것은 아테네의 부상(浮上)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들었던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표현이 한동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바 있습니다. 국제관계학에서는 오늘날 미중 갈등을 이 표현에 자주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 투키디데스가 쓴 책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입니다.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나타나는 많은 갈등의 모습들이 이미 기원전 431~404년 사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자문해 보게 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는 전쟁에 휘말리기 싫어 ‘중립’을 선언하는 나라들도 나옵니다. 그중 두 가지 사례가 생각납니다. 한 사례는 ‘멜로스 섬’ 사람들로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서 중립을 선언했으나 결국 아테네로부터 전멸을 당합니다. 즉, 힘이 없이 말로만 중립을 이야기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례는 ‘프라타이아이’로서 아테네와의 의리를 지킨다면서 스파르타가 내민 협력제의를 거절합니다. 그러다가 스파르타로부터 응징을 당합니다. 변화된 모습들을 살피지 못하고 과거의 친분만 강조했던 것입니다.

두 사례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말로만 중립을 강조해서도 안 되고, 과거에만 연연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중립을 취하기 위해서는 실제 갖춰야 할 조건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는 강대국 사이에 놓여 있는 현실을 타개해 보고자 여러 논의들을 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을 보면서 전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도는 없을까 여러 논의들을 하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중립화’ 개념입니다. 과거 1960년대 김수영, 신동엽, 최인훈 같은 분들의 문학작품에서도 이런 생각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중립이라는 말은 군사용어입니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할 때, 제3의 나라가 두 나라 어느 곳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개념에서 출발해 전시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어느 곳에도 가담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립을 취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충족돼야 합니다. 힘도 있어야 하고, 국익에 충실해야 하고, 또한 당사국과 주변국의 동의도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자국 내에 있는 외국 군대도 모두 나가야 합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결국 현 시점에서는 ‘중립’보다는 ‘균형’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