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43)젊은 세대에 대한 하나의 생각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9-21 수정일 2022-09-21 발행일 2022-09-25 제 3311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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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외로움과 각자도생… 청년 현실은 미래사회의 우리 모습
가난에 힘든 대다수 청년 세대
절망적 현실서 좌절·분노 경험
무력함이 혐오로 표출되기도
그들 삶에 대한 이해·접근 필요

공무원 시험 등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몰려있는 지역에 위치한 서울 노량진동성당에서 정순택 대주교가 청년들에게 묵주를 선물하고 있다. 양극화된 세상 속에 힘들게 살아가는 청년 세대를 위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세대 논쟁

신학교 선생으로 살아서인지, 젊은 신부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젊은 동료들과 신앙과 교회와 세상의 삶에 대한 정직한 고민과 성찰들을 편하게 나눌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요즘 사제로 살아가면서 가장 즐거운 대화 상대들은 제자 신부들이다. 그들의 사유와 삶을 듣고 배우면서 내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는다. 물리적 나이와 사회적 세대의 차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제로서 목적과 지향의 공유와 관심 주제들의 공감대가 젊은 신부들과 나를 연결한다.

최근 세대 논쟁, 세대 담론이 유행이다. “사람들을 세대의 틀로 분류하고, 분열시키고, 또 결집하고, 대립시키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난다.”(신진욱 「그런 세대는 없다」) 사실, 세대에 관한 담론은 모든 시대에 존재한다. 새로움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세대 담론에 깔려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에서 세대 논쟁은 변화와 혁신에 관한 세대 담론이라기보다는 불평등을 둘러싼 갈등과 논쟁에서 파생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세대 담론을 주도하기보다는 기성세대가 주도권을 갖고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세대 담론의 두 축은 86세대와 MZ세대다. 지난 시절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충돌이 이념적 측면에서 발생했다면, 86세대(민주화 세대)와 MZ세대의 갈등은 경제적 불평등과 인정투쟁의 문제와 깊이 결부되어 있다. 정직하게 말해, 세대 담론과 논쟁에 대한 사회학자들의 견해들을 평가하고 판단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다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가 세대 문제로 축소 환원되는 현상과 “마치 세대가 단순한 하나의 집합체인 듯이 추상화되고 사물화되는 경향”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사회학자 신진욱 교수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우리는 이렇게 범람하는 세대 담론에 둘러싸여 우리 사회의 중대한 문제들인 계층·젠더·지역 격차와 이념 갈등을 말할 언어를 잃어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날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불평등과 차별은 세대라는 단순한 하나의 요인 때문이 아니다. 물론 “특정 세대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혹은 세대의 기회(운)를 통해 이 위계 구조의 상층을 ‘과잉 점유’하면서 세대와 위계가 얽히게 된”(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측면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세습’에 있다. 세습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구조에 있다.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의 본질은 부모 세대인 50대 중산층이 학력(정확히는 학벌)과 노동시장 지위를 바탕으로 그들의 자녀에게 동일한 학력과 노동시장 지위를 물려주는 데 있다.”(조귀동 「세습 중산층 사회」) 이러한 세습의 역학 때문에 “청년 세대는 생애주기의 이른 단계에서부터 이미 고용, 소득, 사회보장, 부동산 자산 등 많은 면에서 심각하게 양극화되고 있다.”(「그런 세대는 없다」)

■ 가난한 청춘들의 노래

세습도 능력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능력마저 세습된다. 물적 자본뿐만 아니라 문화적, 상징적 자본마저 대물림되고 있다는 의미다. 소수의 젊은 계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젊은 세대는 힘든 현실을 살아내야 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가난한 청춘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인, 오늘의 청년 세대는 절망적 현실 앞에서 좌절과 분노를 경험한다. 희망을 갖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린 세대의 무력함은, 종종 미디어와 사회적 왜곡의 환경 속에서,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혐오의 감정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슬픈 현실이다.

올봄에 발간된 최지인의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는 비정규직 청년 세대의 일과 사랑과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기다리는 사람’) “월세를 못 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세입자는 그 공포 때문에 적은 월급을 받고도 야근하고 부당한 요구에도 침묵하고 집에 돌아오면 드라마를 몰아 보며 캔맥주를 홀짝이다 잠이 드는 생활에 빠진다.”(‘언젠가 우리는 이 원룸을 떠날 테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돈 버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었다 갓 서른을 넘겼을 뿐인데 다 늙어버린 것 같다.”(‘이번 여름의 일’) 시집 도처에서 가난한 청춘 세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절망적이고 슬픈 현실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다짐하고 결심한다. “그 무엇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있다. 일하고 사랑하고 희망할 것이다.”(‘시인의 말’) 이 가난한 젊은 세대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고 있을까.

이용훈의 시집 「근무일지」와 천현우의 노동 에세이 「쇳밥일지」 역시 가난한 젊은 세대의 삶과 현실을 증언한다. “노동자가 머물고 있는 객실은 여전히 구겨지고 흐트러져 있어서 당신들이 떠나는 그날까지 나는 당신들이 묵고 있는 객실의 청소를 마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끝내지 못한 나의 노동은 당신들이 짊어지고 나르는 화강석보다 가볍다 생각들고 당신 수첩에 끄적인 인력사무소 목록 한줄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미안한 노동’) 가난한 젊은 세대의 글쓰기는 작가로서의 꿈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생존을 향한 몸부림이다. “구닥다리 청춘 예찬 늘어놓는 꼰대들이 싫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배배 꼬인 생각은 청춘으로서 누린 혜택이 없기에 나온 억하심정이었다.”(「쇳밥일지」)

■ 세대를 넘어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반알현에서, 삶을 나이와 세대로 구분하고 세대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해롭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세대 간의 동맹을 강조한다. 노인과 어린이, 노인과 젊은이의 동맹과 유대가 인류를 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대를 넘는 동맹은 어떻게 가능할까?

산업화 세대, 베이비붐 세대, 민주화 세대는 이제 지나갔고 지나간다. 머지않아 지금의 청년 세대들이 우리 사회를 짊어지게 될 것이다. 사회적 기회가 많았고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었던 어제의 청년 세대와 공고화된 사회적 체계 속에서 세습적 자본에 의해 많은 것들이 좌우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의 청년 세대는 서로 다르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궂은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왜 미래를 설계하지 않고 현재의 쾌락에만 몰두하느냐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탓이 아니다. 지금의 교육과 성장과 생존의 환경과 문화는 기성세대의 산물이다. “이제는 청년 세대의 삶을 들여다봐야 할 때다. 청년층의 높아지는 우울증과 자살, 저출생, 심화되는 외로움과 각자도생 등은 곧 우리 사회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정지우 문화평론가) 청년 세대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 오늘의 청년 세대 현실이 미래의 우리 사회 모습일 것이다.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