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전국 167곳 성지순례를 마치고

김종관(율리아노·수원교구 용인 구성본당)
입력일 2022-09-05 수정일 2022-09-06 발행일 2022-09-11 제 331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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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다. 어떤 표현도 지금의 내 벅찬 감동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듯하다.”

‘경주 관아와 옥 터’ 순교 사적지를 끝으로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개정 증보판에 수록된 성지, 순교 사적지, 순례지 167곳 모두를 돌아본 직후의 소감이다.

어제는 경북 청도군 운문면 소재 ‘구룡공소’를 순례했다. 내가 사는 용인에서 320㎞, 승용차로 4시간가량 걸리는 먼 곳이다. 이제 두 군데만 더 가면 전국 167곳 모두를 순례한다는 사실에 설레는 가슴을 안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하지만 출발 전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금 멀기는 해도 서두르면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지만 전부터 허리가 좋지 않은 편이라 일찌감치 1박2일 일정으로 경주에 숙소도 예약해놓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출발 사흘 전 갑자기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며 꼼짝도 하기 싫은 게 아닌가?

다음 날 아침 새벽미사에 참례, 제1독서 봉독 후 주님께 간절히 매달렸다. ‘주님! 저 이번에 꼭 가야 돼요. 주님! 아시다시피 제 나이는 일흔 일곱이고요, 아내 모데스타와 합하면 백 오십 하나예요. 저희 부부 건강도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니라 이번 기회 놓치면 영영 못 할지도 몰라요. 주님 도와주세요….’ 그리고 제단 위의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맡겨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했다. 이어 병원으로 달려가 필요한 검사와 주사 처방을 받고 하루를 푹 쉬니 언제 그랬냐 싶게 몸이 좋아졌다.

구룡공소. 첩첩산중 오지 중의 오지다. 지금껏 전국을 누볐지만 이렇게 깊은 산골 높은 곳에 위치한 순례지는 처음이다. 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할 좁은 외길이라 곡예하듯 운전하다 맞은편에서 차라도 한 대 오면 둘 중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한참을 후진해서 상대 차를 보내줘야 한다. 이런 험한 곳을 신앙 선조들은 박해의 눈을 피해 몰래 걸어 올라와 공소 예절을 드렸다니 눈물겹다. 우리 부부는 경당에 앉아 그분들의 삶을 묵상하며 오늘의 행복한 신앙생활에 무한 감사를 드렸다.

이튿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경주 관아와 옥 터’ 순교 사적지에 도착하니 책자에 수록된 사진과는 달리 사적지를 관할하는 ‘성건성당’이었다. 본래의 감옥 터 자리에는 현재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그 가운데 한쪽 조그만 공원에 ‘경주읍성 감옥터’라는 비석만이 쓸쓸하게 서 있었다. 우리는 성당에 들어가 감실 앞에서 큰 절을 올린 후 그동안의 순례를 회상해 보았다. 감개무량했다. 구구절절 167곳 순례지마다 순교자 또는 신앙 선조들의 죽음과 애환에 가슴이 저몄고 한편으로는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오로지 시대를 잘못 만나 권력자들의 정치적 야욕에 희생된 예수님 시대와 똑같으니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과연 하느님의 뜻은 어디에 계신가? 묻고 또 물어도 마음은 여전히 답답했다.

2013년 7월 20일 ‘마재 성가정 성지’를 시작으로 2022년 8월 20일 ‘경주 관아와 옥 터’까지 산속으로, 섬으로, 때로는 도심 한복판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장장 9년의 전국 성지순례의 대장정이 끝났다. 매번 가는 곳마다 안전하고 기쁘고 행복하게 함께 동행해 주신 주님의 크신 은총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주님! 감사합니다.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김종관(율리아노·수원교구 용인 구성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