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디지털 세상의 평화 / 고계연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입력일 2022-08-30 수정일 2022-08-30 발행일 2022-09-04 제 330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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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는 ‘사람들의 적’이다.” 2016년 대선 때부터 재임 기간 내내 ‘가짜뉴스’를 입에 달고 살았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거리낌 없는 그의 발언은 듣노라면 어처구니없다. 자신에게 불리한 신문 기사나 방송 보도에 대해 늘 가짜뉴스 프레임을 씌워 왔던 그가 아닌가. 가짜뉴스는 사실이 아닌 내용을 퍼뜨리기 위해 언론사의 기사 형식으로 꾸며낸 ‘거짓 정보’다. 특히 정치인들이 상대를 반박하기 위해 즐겨 쓰는 선전의 도구이기도 하다.

정가뿐만 아니라 연예인들도 가짜뉴스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사람들의 흥미와 본능을 자극하는 가짜뉴스는 2010년대 이후 SNS의 바람을 타고 불길처럼 번졌다. ‘낚시 제목’을 버젓이 달고 출몰하는 가짜뉴스는 인터넷 매체나 유튜브가 주요 온상이다. 조회수에 따라 수입이 늘어나는 유튜브의 수익구조가 한몫했다. 가짜뉴스의 횡행은 결국 탈진실(post-truth) 시대의 산물인 셈이다. 현대인들은 진실을 확인하려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과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진실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가짜뉴스 얘기를 길게 한 것은 ‘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의 주제인 ‘디지털 세상의 평화’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이번 세계총회는 지난달 18일 3박4일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서강대 정하상홀 국제회의장에서 스터디 데이즈와 국제언론인 포럼, 국제청년 포럼 등이 성황을 이뤘다. 세션 타이틀에서 보듯 ‘초연결 시대에 고립된 개인’, ‘가짜 뉴스와 신뢰의 위기’, ‘우리 삶의 터전 지구 지키기’를 놓고 발표와 토론이 뜨거웠다.

이번 총회 참가자는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100명에 가까운 외국인과 내국인 등 300여 명. 인도와 남미 등 해외 참가자들은 총회 진행에 놀라워하고 환대에 감탄사를 잊지 않았다. 시그니스는 교황청 공인 단체로 가톨릭 커뮤니케이터들의 국제모임이며 총회는 4년마다 열린다.

총회 유치 후 5년 가까이 빅 이벤트를 준비해온 조직위원회는 큰 부담 속에 여러 변수와 싸워야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확산, 진정, 재확산 탓에 상황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총회는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진행했고, 메타버스 플랫폼까지 도입됐다. 다만 첫 선을 보인 메타버스 운용은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끌기엔 미흡했다. 또한 시그니스에서 신문, 출판 같은 프린트 미디어 종사자들의 좁은 입지와 저조한 참여도 ‘옥에 티’였다. 저널리즘과 커뮤니케이션은 별개가 아니라 함께 달려야 할 ‘2인 3각’이라서 더 그렇다.

“디지털 미디어, 특히 소셜 미디어는 인류 가족 간의 친교와 대화를 촉진하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여러 심각한 윤리적 문제도 제기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총회 메시지를 통해 미디어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주목하고 미디어의 선용을 촉구했다. 즉 미디어가 혐오와 편파적 발언, 가짜뉴스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의 한복판에서 뉴스와 씨름하는 언론인과 커뮤니케이터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가짜뉴스를 걸러내는 팩트체크는 언론인의 어깨를 때리는 죽비 같은 것이어야 한다.

“디지털 세상의 과도한 연결은 사회경제적, 문화적, 영성적, 생태적 단절을 초래했다. 또한 가짜뉴스의 파괴적 영향력을 더 인식하게 됐다. 우리는 이번에 얻은 새로운 통찰력에 힘입어 ‘디지털 격차’ 해소에 앞장서고 디지털 혁명의 결실을 공유하고자 한다.” 총회 폐막 성명에서 보듯 가톨릭 언론인과 커뮤니케이터들의 소명은 분명하다. 우리는 성령의 재충전(renewing) 능력을 통해 디지털 세상에서 평화의 사도가 돼야 하며 또 그렇게 다짐해야 하겠다.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