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107)때늦은 도착을 기다리는 예수님께 가는 길/ 윌리엄 그림 신부

입력일 2022-07-26 수정일 2022-07-26 발행일 2022-07-31 제 3305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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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주교부 여성 위원 임명
가톨릭교회 역사상 이례적 일
모든 성별에 평등했던 예수님
따르는 데 오랜 시간 걸려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성 3명을 교황청 주교부 위원으로 임명했다. 주교부는 교황에게 주교 후보를 추천하는 등 전 세계 주교 임명과 주교 관련 업무 일체를 관할한다. 여성이 공식적으로 이처럼 가톨릭교회의 중요하고 권위있는 지위에 임명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물론, 교회 운영에서 여성들에게 의미있고 중요한 일을 맡기고자 하는 교황의 의중에 따라 이 여성들이 주교부 업무에 참여해 실제로 큰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장식용 선물’이 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과연 이번 주교부 여성 위원 임명이 현재 몇몇 교구와 본당에서 진행 중인 중앙행정의 여성 참여를 확대하는 시발점이 될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작부터 이 점을 노렸을지도 모르지만, 교황들은 죽게 마련이고 교황청 조직은 사실상 계속 살아남으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번 조치가 너무 늦긴 했지만 다수인 여성을 소외시켰던 교회의 역사를 되돌리는 전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 백성들은 예수님의 생각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의 2000년을 기다려 왔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타를 방문하신 이야기(루카 10,38-42)에서 마리아의 태도는 이번 조치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이들에 관한 중요한 증표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루카 복음사가에 따르면,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루카 10,39)

마르타와 마리아가 보여준 태도의 차이는 ‘활동적인’ 신앙생활과 조용한 묵상의 신앙생활을 대조하는 데 많이 이용됐다. 특히 여성의 신앙생활에서 말이다. 여성 신자들에게는 마리아에게서 보인 수동적인 참여가 더 적합해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시고 계셨는지 알기 위해 우리는 저녁 준비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마리아의 태도에 집중해야 한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 살고 가르치셨던 세상에서, 이러한 태도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장면을 목격하거나 루카복음서를 읽은 사람들은 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이러한 태도의 의미를 이해하고는 놀라거나 충격받았을 것이다. 분명 마르타는 짜증이 났을 테지만 말이다.

스승의 발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스승의 제자들이다. 우리는 여전히 스승의 발치에 앉아 있는 제자들을 이야기한다. 마리아는 베드로나 야고보, 요한과 같은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발치에 앉을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여성들은 부엌에서 일을 했다. 마르타처럼 말이다. 한 여성에게 제자로서의 지위가 부여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살았던 사회에서는 급진적인 도전이었다.

마리아는 남성과 같은 동등한 지위를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셨을 뿐만 아니라 마르타에게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2)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마리아를 따랐던 여성들이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오로 사도의 이름으로 그의 죽음 뒤에 쓰인 서한이 아닌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쓴 서한에서는 다양한 공동체에서 지도자 역할을 했던 여성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을 남성과 평등하게 봤던 예수님과 초기교회의 급진적 견해는 오래가지 못했다. 여성을 향한 관습적 태도는 너무나 강했고, 이는 여성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교회의 오랜 역사 안에서도 강하게 남아있다. 예외로 들자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강력한 지도자의 역할을 했던 14세기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와 가톨릭교회 안에서 강한 자부심으로 남아있는 가난한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여성 수도자들의 봉사 정도가 있을 것이다.

오늘날 여성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을 뒤집었던 우리의 태도가 많은 곳에서 바뀌고 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소위 ‘정상적인’ 사회와 교회의 질서를 뒤집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평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무 근거 없이 ‘급진적인 여성주의자’로 공격받고 있다. 하지만 사실, 교회사 최초의 급진적 여성주의자는 예수님 자신이었다.

남성과 여성 신자 모두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개인과 교회 공동체로서 온전한 제자직에 부름 받은 여성을 배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예수님께서 신자들에게 바라시는 중요한 면모를 되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교회 안에 여성을 권위있는 지위에 놓는 것이 시작이다. 하지만 남녀 신자 모두가 태도를 바꾸고 동반하지 않으면 이는 그저 겉치레가 될 수 있다. 우리 교회의 남성들이 여성들을 동등한 존재로 혹은 어떤 맥락에서 상급자로 보지 않는 한, 우리는 그저 우리의 때늦은 도착을 기다리는 예수님께 가는 길의 시작점에 서 있을 뿐이다.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