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가난한 이 위협하는 온난화, 서울 돈의동 쪽방촌을 가다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7-26 수정일 2022-07-26 발행일 2022-07-31 제 3305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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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에 요금 부담… 냉방기 지원 ‘무용지물’
합판으로 지은 한 평 남짓 방
에어컨 켜도 냉기 금세 사라져

돈의동 쪽방촌 주민 박경화씨의 집. 1평 남짓한 방에 최소한의 살림살이를 넣고 나면 선풍기 한대를 겨우 놓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환경과 사회의 훼손은 특히 이 세상의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물고기 개체 수 감소는 생계 수단이 마땅치 않은 영세 어민들에게, 수질 오염은 생수를 살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회칙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온난화로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는 한반도의 여름도 모두에게 평등한 환경을 제공하지 않았다. 에어컨이 옵션으로 달려 있는 서울 강남지역 원룸 평균 월세는 55만 원, 돈의동 쪽방촌에서 가장 싼 방은 24만 원이다. 31만 원 차이만큼 누군가는 더욱 열악하고 뜨겁게 여름을 보내야 했다.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밥그릇에 숟가락이 닿는 소리까지. 서울시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는 집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어려울 만큼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지어진 500여 개의 방들은 그 밀집도 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돈의동 쪽방촌을 찾은 7월 22일은 장마의 끝 무렵이라 아직 폭염이 찾아오지 않았지만, 집안 온도는 이미 무더위가 찾아온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합판으로 지어진 집은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차단하지 못했고, 한창 뜨거운 오후 시간에는 마치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것처럼 숨 막히는 더위를 견뎌야 했다. 3.3㎡(1평)에서 5.0㎡(1.5평) 남짓한 방 안에 냉장고와 이불, 생활용품과 주방용품까지 채워 넣고 나면 선풍기 한 대를 겨우 놓을 수 있을 정도다.

돈의동 쪽방촌의 샤워실은 대부분 공용이거나 외부에 노출돼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 주민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마음놓고 씻는 것 조차 어렵다.

대다수 집들이 노후화된 탓에 에어컨을 설치할 여건이 안 됐고, 어렵게 설치한다 해도 단열이 되지 않는 구조 탓에 냉기가 금세 사라져 버린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에어컨 사용으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은 월세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대다수의 쪽방촌 주민들은 에어컨 없는 여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 주민들이 여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작은 선풍기 한 대와 집보다 시원한 밖에서 잠을 청하는 것뿐이다.

돈의동 쪽방촌 주민 김선희(75)씨는 “매년 여름이면 시나 구에서 선풍기나 에어컨을 지원해 주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크게 반가워하지 않는다”라며 “방이 좁아서 선풍기를 더 둘 곳도 없을 뿐 아니라 방 하나하나에 에어컨을 설치할 수도 없으니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돈의동 쪽방촌 주민의 연령층은 50~70대가 주를 이룬다. 대부분 고령이기에 무더위가 찾아오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일도 많다. 돈의동주민협동회 최봉명 간사는 “매년 여름이면 열사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올해도 6~7월 사이에 벌써 세 분이나 더위에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실려 갔고, 그중 두 분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운영 결과」에 따르면, 여름철 폭염일수는 2011년 6.5일에서 지난해 11.8일로 5.3일 증가했다. 2018년에는 폭염이 무려 31일이나 이어졌다. 지난해 집에 있다가 온열질환이 발생한 사람들은 110명에 달한다. 건물, 작업장, 비닐하우스 등이 포함된 실내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280명)의 40%에 달하는 수치다.

낡고 좁아 더위를 이겨내기 어려운 집은 재난이 찾아왔을 때 그곳에 사는 사람이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된다.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한 재난의 화살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이들이 아닌, 가난한 이들을 향하고 있다.

쪽방촌 안에서도 더위를 피하는데 불평등이 존재했다. 이곳의 남성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집 밖에서 잠을 청하거나 문을 열어놓을 수 있지만, 여성들은 성폭행 등에 노출될 우려가 있어 열대야에 창문도 열지 못하고 더위를 견뎌내야 한다. 게다가 샤워실도 공동으로 사용하거나 외부에 노출된 곳이 있어 남자들이 없을 때 겨우 씻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주민 박경화(61)씨는 “창문은 화장실과 연결돼 있어 냄새가 들어와 열어놓을 수 없고, 험한 일을 당할까 두려워 방문을 열어놓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몇 해 전에 문을 열어놓고 자던 할머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들어서 그런지 아무리 더워도 문을 열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더위가 찾아오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은 많지 않았다. 경제적인 격차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조건에도 차이를 만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환경문제로 야기된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의 집’에 살고 있기에 누군가의 부르짖음이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골목에 나와 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