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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 신현욱

신현욱 비오,제2대리구 대학동본당
입력일 2022-07-20 수정일 2022-07-20 발행일 2022-07-24 제 330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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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보면 멋진 풍광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도 제일 많이 보게 되는 것이 나무들과 그들의 푸르름입니다.

멋지고 늘씬하게 뻗어있는 나무들보다는 비틀어지고 상처를 가진 나무들을 더 많이 보게 되는데요, 어쩌면 가장 볼품없는 나무가 그 산을 지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 상처받았는지 두껍던 껍질마저 내어주고 벗겨져서 돌 틈 사이에 박혀 뿌리인지 줄기인지 모를 모양으로, 토양 중에서 수액을 남김없이 빨아들여 제 위에 새로 뻗은 줄기들에 생명을 전하려는, 나무 밑동 드러난 오래된 뿌리가 눈에 많이 들어오지요.

새로 난 줄기나 잎들은 계절에 따라 색을 달리하며 저마다 좀 더 밝은 햇살을 맞으려 제각각의 방향으로 싱싱한 모습입니다. 잎맥을 통해 전해 받은 수액 덕분에 윤기가 돌고 꽃도 피우고 어린 가지와 잎을 더 많이 만들어 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척박한 땅 속에 제 껍질을 다 벗고도 땅 속 진기를 빨아들여 저 위의 새로 난 줄기에 전하려 뿌리박혀 있는 나무밑동에서 주님을 느낍니다. 잎맥을 통해 전해지는 수액은 그분의 사랑이며, 그 사랑 덕택으로 새로 난 우리들은 각각의 모양새로 세상 속에서 기쁘게 사는 것일 테지요.

햇살의 빛에서 벗어난 잎은 마르고 시들어 버리다가 가을이 되면 말라서 나무로부터 이탈됩니다. 더러는 썩어서 다시 부엽토가 되어 나무와 동화되지만, 땔감으로 주워져 불 속에 살려버리기도 할 테지요.

각자의 모양대로 살아가고 끝없이 맑은 수액을 갈망하면서 세상을 살지만, 빛을 잃은 이파리에 더 이상의 생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나무가 모여서 숲을 이룹니다. 숲은 더 많은 그늘과 생명을 그 안에 품습니다. 새들이 집을 짓고 알들을 품습니다. 벌레들도 부지런히 일합니다. 나무가 내어놓은 열매들과 꽃들이 그들의 먹거리입니다.

숲이 산일까요? 나무가 산일까요? 그저 존재하며 내어놓는 나무는 그 안의 생명을 가리지도 않고, 못생긴 자기 밑동 벌거벗은 줄기 뿌리를 창피해하지도 않지요. 뿌리와 줄기는 한 몸이요, 어느 하나 못나게 되면 서로 영향을 주듯이 삶 속에서 빛을 바라보지 못하여 시들지 않기를 염려합니다.

저로 인해 아파하실 다른 가지의 동배들과 생명의 뿌리이신 주님께서 함께 아파하지 않으시기를 경계하면서요.

주님께서는 나무 자체이시면서 우리에게 끝없이 사랑을 주시며 우리가 빛의 찬란함 속에서 마음껏 뻗어가기를 바라시나 봅니다.

신현욱 비오,제2대리구 대학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