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15)대전교구 해미국제성지와 기념관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입력일 2022-07-20 수정일 2022-07-20 발행일 2022-07-24 제 330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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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보며 “예수 마리아” 외쳤다, 믿음 위해선 목숨 바칠 수 있었기에…

여숫골 순교지 ‘국제성지’로 선포
자리개돌·진둠벙 연못 등 남아 있어
순교 당시 참혹함 느낄 수 있는 곳

인언민·김진후·이보현 복자가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모습의 동상. 뒤편으로 진복팔단을 말씀하신 주님을 상징하는 ‘팔각의 탑’과 대성당 지붕이 보인다.

해미(海美)국제성지는 충남 서북부의 내포(內浦) 지역에 있다. 내포란 바다가 육지 안으로 쑥 들어왔다는 뜻으로, 태안과 서산, 당진, 홍성, 보령, 아산 등의 지역을 말한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교회 초기부터 열심한 신자들이 살고 있었으며 박해 시기에는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성 김대건 신부(안드레아, 1821~1846)의 고향도 내포 당진에 있는 솔뫼다.

해미에는 1곳의 유적지와 3곳의 순교지가 있다. 내포 지역의 신자들을 압송했던 한티고개 유적지가 있고, 그들을 가두고 고문하며 처형했던 해미 감옥, 사형장으로 사용했던 서문 밖 성지, 생매장터인 여숫골 순교지(현재 해미국제성지)가 있다.

정사박해(1797년)부터 1872년 초까지 수많은 신자들이 해미천 주변에서 순교했는데, 그 가운데에서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는 132명에 불과하다. 1935년 서산본당에서 사목하던 바로 신부(P. Barraux, 범 베드로, 1903~1946, 파리 외방 전교회)와 신자들이 해미 순교자 유해를 발굴하여 서산 상홍리공소 뒤편으로 이장하였다. 1984년에는 순교자들의 생매장터를 매입하였으며 1985년에 성지 관리를 위해 해미본당을 설립했다. 1995년 9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에 상홍리공소에 있던 유해를 옮겨, 해미국제성지에 무명 순교자의 묘를 만들어 모셨다.

해미에는 조선 시대에 서해안 방어를 위해 만든 해미읍성과 진영(鎭營)이 있었다. 충청도 내포 지방에서 신자들을 체포하여 읍성 감옥에 가두었다가 성 밖과 해미천에서 처형하였다. 이곳의 순교자 가운데 인언민(마르티노, 1737~1800), 김진후(비오, 1739~1814,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이보현(프란치스코, 1773~1800)이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순교자 124위 시복식 다음 날 교황은 해미국제성지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에 참가했으며 해미읍성에서 ‘아시아 청년 폐막 미사’를 주례했다.

2018년 ‘서울 순례길’이 교황청 승인 국제 순례지로 지정된 이후, 교황청에서는 2020년 대림 제1주일에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아 해미순교성지를 국제성지로 선포했다.

대성당 내부.

해미국제성지에는 기념성당과 기념관(유해 참배실), 시복기념비, 신자들을 수장했던 진둠벙 연못과 처형 도구 자리개돌, 무명 순교자의 묘와 순교탑, 복자상과 야외 제대, 십자가의 길, 유해 발굴지 등이 있다.

2003년에 완공된 무명 순교자 기념성당은 영원한 생명과 생매장 구덩이를 상징하는 원형 모습이다. 성당의 제단 벽에 박힌 돌들은 무수한 해미 순교자들을 나타내며 성당 곳곳의 복음을 담은 단순한 유리화(최영심 화가 제작)는 신앙의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준다.

성당 곁에는 새날을 상징하는 팔각형 탑이 있는데 좁은 계단을 통해 오르면 꼭대기에 다다른다. 계단 곳곳에는 십자가의 길 14처와 순교자들의 형상을 담은 부조들이 있으며 탑 꼭대기 층에는 양팔을 펼치고 우리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시는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원형 분묘 형태(지름 15m)의 기념관(유해 참배실)에는 이곳에서 발굴한 순교자들의 유해 일부와 순교 행적을 담은 여러 조형물이 있다. 또한 해미국제성지의 역사를 알려주는 사진과 자료들이 있어서 작은 기념관 역할도 한다.

성지 마당 곳곳에 신앙과 관련된 조형물이 있다. 순례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식탁처럼 넓은 ‘자리개돌’이다. 원래는 해미읍성의 서문 밖 수구 위에 놓였던 돌다리로 병인박해(1866년) 때 신자들을 자리개질(태질)로 처형했던 사형 도구이다. 서문 밖 도로 개설로 인해서 2009년에 해미국제성지로 이전한 것으로 아직도 돌에는 순교자들의 붉은 혈흔이 남아있다.

해미국제성지 외부 전경.

자리개돌 옆 ‘진둠벙’(죄인둠벙)이란 웅덩이에는 많은 순교자가 수장되었다. 그 옆에는 ‘여숫골’이란 표지석이 서 있다. 순교자들이 줄줄이 체포되어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예수 마리아’를 불렀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여수 머리’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후에 이곳을 ‘여숫골’로 부르기 시작했다.

순교자 유해 발굴지 인근에는 무명 순교자의 묘와 16m 높이의 하얀 순교 탑이 있다. 또한 정원에는 해미의 순교자들 가운데서 복자품에 오른 세 분의 복자들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 동상이 있다.

해미국제성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조선 초기에 건축된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이 있고 감옥터 옆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회화나무(호야나무)가 있다. 여기에 신자들을 매달아 형벌을 가했던 것으로 박해 시절의 참혹한 모습을 말없이 증언해 준다.

박해 초기와 중기까지는 신자들을 읍성의 서문 밖으로 이송하여 처형했다. 그러나 체포된 신자들이 늘어나자 해미국제성지가 있는 여숫골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처형하였다. 오늘날 서문 밖에는 ‘순교 현양비’(1989년 건립)와 ‘자리개돌’ 모형이 있다. 또한 읍성에서 해미국제성지로 가는 길 곳곳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어 기도하며 순례할 수 있다.

이름 모를 신앙 선조들의 순교 성지인 해미 곳곳에는 순교자들의 유적과 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해미국제성지의 성당과 유해 참배실에서 순교자들을 기리며 기도하고 진둠벙 연못과 자리개돌 앞에서 묵상하면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손에 닿을 듯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해미국제성지 곁으로 유유히 흐르는 물을 보면 우리가 간직한 신앙이 무수한 순교자들의 희생을 통해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해미국제성지

주소: 충남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전화: 041-688-3183

주일 및 평일 미사: 오전 11시

기념관(유해 참배실): 오전 9시~오후 5시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