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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정당할 수 없는 전쟁 / 강주석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2-07-20 수정일 2022-07-20 발행일 2022-07-24 제 330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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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이나 초기 교부들의 문헌들에서는 ‘세속’의 폭력을 거부하는 ‘평화주의’가 뚜렷이 드러난다.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랐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비폭력 저항인 순교를 선택했다. 하지만 빠르게 성장한 교회는 제국의 국교로 공인됐고, 전쟁과 무력 사용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세상 안’에 속하게 된 교회가 폭력을 포기하는 대신 전쟁을 정당하게 시작하고 정의롭게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이후 성 아우구스티노로부터 유래하는 ‘정당한 전쟁’ 이론은 오랜 세월 전쟁에 관한 교회의 입장을 대변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두 차례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은 교회는 전쟁의 정당성을 더 깊이 성찰해야 했다. 그리고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 핵무기까지 출현하자 전쟁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비오 12세 교황의 「평화를 위한 공적 기도에 관하여」(Summi Maeroris)는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회칙이다. 6·25전쟁 시기인 1950년 7월 19일에 발표된 이 회칙은 성년(聖年)을 맞이하는 교회에게 ‘평화를 위한 기도’를 촉구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새삼 상기시키고 있다.

회칙은 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새로운 무기들이 군인들뿐 아니라 민간인들, 약한 이들을 파괴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중국이나 동유럽 국가들에서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들에 대한 언급도 눈에 띄는데, “무력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는 시도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 교회는 참된 평화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서 “무력 사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통해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공산주의와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고 박해의 소식이 들리는 상황에서도 교황청은 평화를 위한 교회의 사명을 재확인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7월 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난 사실을 공개했다. 또한 “러시아 대통령이 평화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작은 창문을 내어 준다면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에 먼저 갈 수 있다”는 의지도 밝혔다. 평화를 위해 자신을 낮추는 순례자 교황님과 함께 결코 정당할 수 없는 이 악한 전쟁의 중단을 위해 더 간절히 기도하자.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