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15)다중 우주론은 과연 과학적인 이론인가?

김도현 바오로 신부(서강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2-07-19 수정일 2022-07-20 발행일 2022-07-24 제 3304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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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과 풀이로만 설명 가능한 이론… 관찰과 검증 사실상 불가능
다중 우주론 옹호하는 이유는
극단적 우연과 ‘신’ 도입 없이도
인류 원리 설명 가능해서일 듯
물리학적·실재적 근거 없는 이론
과연 설득력 얻을 수 있을까

다중 우주론을 상상해 표현한 그림. ‘무한히 많은 우주들 중에서 우연히 인류 원리를 만족시키는 우리의 우주가 생겨났다’는 주장으로 우주 탄생의 필연성을 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지만, 과학적 설득력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김도현 신부 제공

지난 글에서 저는 요즘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우주론인 ‘다중 우주론’(Multiverse Theory)에 관해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말고도 상당히 많은 다양한 우주가 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만일 우주가 우리의 우주 하나만 존재한다면 우주의 필연적 창조주 혹은 설계자라는 개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았던 당시의 몇몇 이론물리학자들은 우주들이 무한히 많다고 상정함으로써 ‘무한히 많은 우주들 중에서 우연히 인류 원리를 만족시키는 우리의 우주가 생겨났다’고 주장하여 우주 탄생의 필연성을 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 것이죠.

그런데 다중 우주론은 사실상 ‘과학적인 이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중 우주의 존재는 실험/관측을 통한 물리적 검증이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다중 우주론이 주장하는 개별 우주들은 사실 서로 상호작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우주에서 다른 우주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자연과학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과학은 반드시 관찰/관측/측정을 통한 확인 작업이 가능한 대상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래서 확인 작업이 불가능한 다른 우주의 존재에 관해 말하는 것은 수학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이 이론을 과학적인 이론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활동 중인 여러 물리학자들이 다중 우주론에 대해 비판을 하는 분위기입니다. 단적으로, 양자색소동력학(Quantum Chromodynamics)에 관한 업적으로 2004년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데이빗 그로스(David Gross·1941~)는 다중 우주 개념을 맹비난하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또한 프린스턴대학교의 세계적인 우주론자인 폴 스타인하르트(Paul Steinhardt·1952~)는 다중 우주론에 대해 “근본적으로 검증 불가능하며, 따라서 과학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사실 다중 우주론을 옹호하는 학자들도 다중 우주론이 가지고 있는 바로 이 ‘다른 우주의 실재성과 검증 가능성’ 문제에 대해 이미 잘 인식하고 있으며, 바로 이 문제로 인해 최근까지 학문적으로 다양한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래서 다중 우주론의 강력한 옹호론자인 미국 MIT의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1967~)는 “어떤 이론이 과학적이기 위해 우리가 그 예측을 모두 관찰하고 검증할 필요는 없으며, 단지 적어도 하나면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다중 우주론이 그 관찰과 검증 중에 “적어도 하나”라도 과연 만족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중 우주의 존재는 물리적 관찰도, 물리적 검증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오직 머릿속의 개념과 종이 위의 수학적 해를 통해서만 설명 가능한 가상적 우주를 과연 우리가 존재하는 실재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현재 다수의 ‘과학만능주의적 과학자들’은 다중 우주론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그 주장의 기저에는 신/창조주라는 개념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이 거부감을 드러내놓고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책을 통해서 다중 우주론에 투영된 자신의 무신론적인 관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력은 공간과 시간의 모양을 결정하므로 시공이 국소적으로는 안정적이 되고 광역적으로는 불안정적이 되는 것을 허용한다. 우주 전체의 규모에서 양의 물질 에너지는 음의 중력 에너지와 균형을 이룰 수 있고, 따라서 우주 전체의 창조에 제약이 없다. 중력과 같은 법칙이 있기 때문에, 우주는 제6장에서 기술한 방식으로 무로부터 자기 자신을 창조할 수 있고 창조할 것이다. 자발적 창조야말로 무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는 이유,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우주의 운행을 시작하기 위해서 신에게 호소할 필요는 없다.”(스티븐 호킹 & 레오나르도 몰로디노프 「위대한 설계」 227-228)

또한 철학자이면서 다중 우주론의 강력한 옹호자인 존 레슬리(John Leslie)는 ‘창조주 개념의 도입보다는 다중 우주론의 도입이 논리적으로 더 낫다’는 주장을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이 부재하는 경우 우리의 탄생은 어마어마한 운 덕분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자. 예를 들어, 우리 우주의 대칭성이 아주 약간 다르게 깨어졌다면 생명체는 우리 우주에서 결코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뭐? 다중 세계 가설은 몇몇 존재가 탄생하기 위한 엄청난 운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을지를 보여준다. 그것들이 극단적으로 운이 좋을 수는 있지만, 그 운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은 아니다.”

마틴 리스에 따르면 현재까지의 우주론 연구 중 인류 원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설득력있는 설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뿐입니다:

1. ‘우연히’ 인류 원리를 충족시키는 우주가 탄생했음을 받아들이는 것.

2. ‘신/창조자/설계자에 의해’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미세 조율을 통해 조성된 인류 원리를 만족하는 하나의 우주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

3. 엄청난 수의 다중 우주들 중에서 인류 원리를 만족하는 ‘하나의 우주가 우연히’ 발생했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설명이 과학적으로 가장 설득력이 있을까요? 다중 우주론 지지자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이론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우연과 ‘신’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 없이 우리 우주의 인류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다중 우주론 옹호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다중 우주론이 머릿속의 개념과 수학적인 접근에만 기반을 둔 나머지 물리학적인/실재적인 근거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입니다. 오히려 ‘신/창조자/설계자에 의해’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미세 조율을 통해 조성된 인류 원리를 만족하는 하나의 우주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중 우주론보다 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김도현 바오로 신부(서강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