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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3. 최창무 대주교(1)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22-06-28 수정일 2022-06-28 발행일 2022-07-03 제 3301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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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사제의 길… 성령께서 하시는 일의 심부름 했을 뿐
숯과 옹기 굽는 교우촌에서 나고 자라
하느님 덕분에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
소신학교 때부터 고단한 여정이었지만
사제로 익어가는 과정이라 여기며 견뎌

최창무 대주교는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하느님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닮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 박원희 기자

“오 나의 주님, 제 마음과 제 몸과 저의 온 존재를 받아주소서. 저는 기도할 줄도 사랑할 줄도 고통을 이겨낼 줄도 모릅니다. 당신 친히 오시어 제 안에서 모든 것을 완성해 주소서.”

이 기도를 바치며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렇게 사제로 살아온 모든 시간, 그 면면은 어떤 질곡에도 주님을 닮고 그 가르침대로만 살려고 노력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는 사제로서 혼신을 다했던 삶에 대해 ‘그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의 심부름을 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햇수로 60년째 사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후배 사제들을 양성하는데 바친 시간만 25년이었습니다. 이어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특히 사회사목 주교대리로서 세상을 위한 교회를 구현하는데 힘썼습니다. 광주대교구장을 맡아 교구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는데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본당 주임은 한 번도 못 맡았습니다. 아쉽지 않느냐는 신자들의 짓궂은 질문에 ‘저는 전남 광주 본당 신부였는데요’라고 통 크게 대답하는 이, 그 주인공은 전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안드레아·86)입니다.

혈연, 학연, 지연에 연연하는 분이다? 사실입니다. 대주교님께선 “하느님의 자녀라는 혈연, 복음을 배우는 학연, 천국 시민권을 가진 지연으로 엮여있다”라고 하십니다. 모든 신자들과 말이죠.

이어진 구술 기록 시간, 시종일관 ‘부럽다’는 생각이 끼어들었습니다. 한 순간의 흐트러짐 없이, 한 치의 의심 없이 하느님을 믿고 따라온 삶이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말보다 기도를 먼저 배웠다’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도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최경환 성인의 신앙을 이어받은 일가. 수 대(代)를 이어오면서도 그 신앙은 더욱 뜨겁게 이어졌고, 대주교님 또한 태중에서부터 신자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대주교님께서 태어나 자란 곳은 교우촌이었습니다. 숯과 옹기를 구워 팔고 화전을 일구며 생계를 꾸려가던 삶, 그래도 가난을 힘겹다 느낀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매일 매일이 즐거웠던 덕분입니다. 도리어 교우촌과 학교가 있는 바깥세상, 두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주 했던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너희들이 바보야.’ 신자로서의 자긍심 그득한 모습이지요. ‘사주구령’(事主救靈·하느님을 섬기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 ‘위주치명’(爲主致命·하느님을 위하여 순교함)이 소원인 어린아이, 상상이 되시나요?

‘감히’, 신부님이 되겠다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한 해 두어 번 판공성사 때나 뵐 수 있는 신부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분’인줄 알았기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수도회에 입회한 큰 누님을 뵈러 간 자리에서 한 수녀님께서 갑자기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셨습니다. 어린 소년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 수녀님께선 ‘안드레아는 신부님이 되고 싶어 한다’고 가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녀석, 신부될 놈이 그러면 되겠냐’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은 자연스럽게 삶의 기준이 됐습니다. ‘사제의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라고요. 소신학교 때부터 너무나 고단한 길을 견뎌야 했지만 ‘신부가 되기 위해선 당연한 과정인가보다’ 생각했답니다. 그렇게 애써온 시간들에, 옹기그릇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더욱 단단히 익어가는 모습이 겹쳐집니다.

대주교님께선 광주대교구장으로서 순명한지 꼭 10년 만에 교구 출신 사제에게 그 자리를 이임하고, 전남 나주 이슬촌에 자리한 노안성당 옆에 새 둥지를 마련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자들과 함께 소박하게 지내며 미사를 봉헌하고 텃밭도 가꾸며 살아가는 사제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이룬 시간이라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옛 광주가톨릭대 인근 원로사목자 연수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감사기도만이 넘치는 일상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알고 그 품안에서 성장하고 사제로 살게 해주신 모든 것에 감사했던 지난 시간. 이제 다시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몫은 예수님을 닮는 것, 그 하나에 더욱 매진하며 살 수 있어 감사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담고 있어 하느님을 닮도록 노력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느님을 담은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빼버리면 알맹이 없는 모습이 됩니다.”

하느님 이야기만 나오면, 대주교님의 얼굴엔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빛과 더할 나위 없이 환한 미소가 더해집니다. 그 신바람 나는 신앙 이야기가 다음 주부터 이어집니다.

태중에서부터 매일 기도하는 삶, 최창무 대주교는 잠시의 산책 중에도 묵주를 놓지 않는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