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나는 알파와 오메가 (묵시 21,6) / 전용혜

입력일 2022-06-22 수정일 2022-06-22 발행일 2022-06-26 제 330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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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도직 봉사는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 하느님께 성별(聖別)된 시간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로니모 성인 선종 1600주년 기념 교황 교서 「성경에 대한 애정」(Scripturae Sacrae Affectus, 2020)에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꾸준히 묵상함으로써 그는 자기 마음을 그리스도의 도서관이 되게 하였습니다”라고 성인의 모범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성인이 사랑했던 것을 사랑하기에’ 나도 그렇게 시간을 누렸다.

남편이 안식년을 맞아 호주 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성당을 찾았지만, 성당 분위기와 교민들 태도는 아주 달랐다.

한국에서 봉사로 적립된 ‘세이빙 어카운트’(Saving Account)는 없었다. 하늘나라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크바르 강가의 에제키엘 예언자처럼 주님의 손이 필요했다. 자신했던 믿음에 금이 갔다.

자연이 연출하는 풍경은 위로가 되었다. 천둥과 번개, 비 온 후 뜨는 하늘 무지개, 십자(十字) 모양의 남십자성은 경이로웠다. 종일 하늘만 봐도 좋았다. 구름도 바람도 손에 잡혔다. 햇빛은 찬란하고 모든 색은 선명했다. 시내에서 트램을 타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하는 바다가 온전히 내 소유였다. 비 오는 바다에서 만난 강아지와 뛰어다녔다.

골프 코스트에서는 샌드위치를 새들과 함께 먹고 홀 위에 떡하니 자리 잡은 캥거루 때문에 홀을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창조주 하느님을 만난 시간이었다.

호주에서의 6년여 동안 작은 아이 돌봄은 잃어버린 신혼과 서툴던 큰아이와의 시간을 만회하듯 정성을 다한 시간이었다.

귀국 후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한 사진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사진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다녔고 ‘교회 자료를 아카이브(Archive)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3년 수원교구 설정 50주년에 교회의 시간을 주제로 공소를, 2021년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은이성지 유물관의 유물을 촬영했다. 무엇을 하든 먼저 하느님 자리가 우선이었다. 또 끝에 대한 체험이기도 했다.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정지됐다. 2년이 넘어선 지금도 변화된 일상이 믿기지 않는다. 미사도 봉헌되지 않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본당에서 제작한 회보는 교우들 안부를 묻는 소식지가 되었다. 매주 교회 소식과 교리, 주일복음, 본당소식(사진)으로 구성된 회보 편집을 맡고 있던 터라 가능했다.

우리는 나자렛 예수님도 만나고 그리스도 예수님도 만나면서 둘 다의 믿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파견된 하느님 백성으로 어떤 혼란 속에 굳이 가담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라, 내가 곧 간다.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묵시 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