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다윗의 춤 (2사무 6,14) / 전용혜

전용혜 로사,제2대리구 서판교본당
입력일 2022-06-15 수정일 2022-06-15 발행일 2022-06-19 제 3299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창세기 첫 목차 ‘천지창조’부터 요한 묵시록의 ‘오소서, 주 예수여!’ 마지막 목차까지(해설판 공동번역) 정리한 「성경 속 작은 목차집」(2002년)은 본당 성물방 굿즈(goods)가 되었다. 성경 공부를 위한 교재는 많았지만, 성경 목차(73권)처럼 성경 각 권의 목차를 정리한 책은 없어 내가 우물을 팠다. 그렇게 정리한 작은 목차들은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 특히 성경 사도직 봉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바람으로 책이 되었다.

내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성경에 무엇이 쓰였나 궁금하여 새벽까지 성경 읽기를 했었으니 우선 성경 전체를 스캔하여 내용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했다. 지금까지도 요긴하게 사용하는 성경 속 작은 목차들은 나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는 코드가 되었다. 바벨탑을 쌓고 있는지 광야를 헤매는지를 알게 한다. 불평할 때 분명 그렇다. 요셉의 너그러운 처사만이 답이다.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창세 50,20)

작은 일의 실천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도 좋은 나눔이고, 어떤 ‘증언’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셈을 알았으니 탈렌트의 비유에서처럼 ‘착하고 성실한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가장 좋은 몫을 택해 예수님 발치에 앉았다. 신학원 졸업 후 몇몇이 교구 성경 여정 봉사자 모임에 합류했고 꼴을 갖추지 못한 터였지만 더 받아 넉넉해지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성경 봉사자 파견 자격은 「여정」 성경 신·구약 과정 6년 수료였다. 가까운 본당과 서울에 있는 여정 봉사자 교육관을 다니며 오전은 구약, 오후엔 신약 강의를 들었다. 2년여 만에 과정을 마쳤고, 봉사를 시작하고서도 6년을 재수강했다. 두 번의 성경 여정 수료였다. 그리고 개근했다. 복음화국장 신부님께서 “6년 동안 아무 일 없도록 지켜주신 것에 감사하자”고 하셨다. 정말 그랬다. 말씀으로 봉헌된 시간은 내내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첫 봉헌물은 나 자신이었다. 밤을 새우며 교안을 준비했다. 말씀에 붙잡혀 한 줄의 교안도 쓰지 못한 날도 있었다. 정화수를 끼얹어 정결해진 새 기운의 아침은 창조 첫 주간의 날들처럼 혼돈에서 질서로 옮아가 있었다. ‘포도주가 된 물’(요한 2,9)처럼 카나의 여인이 된 시간의 역사다. 스스로 내놓는 것, 다시 얻을 권한도 있음이다. 샬롬(shalom)! 새 이스라엘이 되었다.

성경 봉사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심을 목격한 또 다른 사건이었다. 말씀이 세상에 계시며 세상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알아본 이미 준비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봉사했다. 주님 앞에서 춤추며 주님의 궤를 모시는 다윗처럼 옷을 걸치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았다. 때로는 믿음이 아무 상관없이 너울거릴 때도 하느님처럼 완전하게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우리를 잇는 우정의 의무이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2디모 3,16) 아멘.

전용혜 로사,제2대리구 서판교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