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내가 죽으면 묘지를 쓰지 말고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어라” / 정호철

정호철 대건 안드레아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입력일 2022-06-07 수정일 2022-06-08 발행일 2022-06-12 제 329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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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지인의 장례를 위해 서울근교 교회 공동 묘원을 방문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묘원, 나무 한 그루 없이 빽빽한 묘지들이 나를 압도했다. 산 중턱에 아슬아슬하게 새로 지어진 납골당은 거대한 요새처럼 느껴졌다. 즐비한 무덤을 바라보자니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곳이 내심 부끄러워졌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뜻의 라틴어 경구 ‘Hodie Mihi Cras Tibi’처럼 우리는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이고 오늘 먼저 가신 님들이 계시기에 어쩔 수 없이 내일은 나의 차례임에 틀림이 없다.

살고 간 나의 흔적을 최소화하고 생태환경에 보탬이 되는 방법은 없을까? 이렇게 대규모의 묘지를 만들고 관리하는 일들이 과연 온당한지, 꼭 이러한 방법뿐인지 의문이 들었다.

충남 태안의 천리포 수목원을 만든 고(故) 민병갈 박사(미국명 칼 밀러)는 죽기 전에 “묘지를 만들지 말고 그 땅에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미국인 최초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그는 사재를 털어 매입한 천리포 해안토지에 1만6000종의 다양한 식물을 심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대한민국 최고의 수목원을 일구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10년 후인 2012년 4월 8일 그가 만든 수목원 목련 나무 아래 그의 분골은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된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살다간 법정 스님은 생전에 17년간 머물던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인근 당신이 손수 심어 키운 후박나무 아래 수목장 형식으로 안장됐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전국의 장례식장은 초만원이고 5일장은 예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게다가 수도권의 화장장들은 몰려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지방의 화장시설로 원정을 가야 하는 형편이라고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산림청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묘지는 약 1435만기로 산림의 훼손지는 전국토의 0.9%에 이른다. 특별히 묘지 부지는 수목과 식물이 제거되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조성돼 토양의 침식과 붕괴, 생태계 파괴, 자연훼손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야기된다. 큰 비에 무너져 내린 묘지가 수도 없고 늘 되풀이된다고 한다. 이에 더해 묘역의 관리 부재로 인한 황폐화는 집단 묘원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를 불러오기 충분하다.

그나마 납골 묘역 건립으로 무덤을 최소화하고 화장을 장려하는 국가시책에 교회가 협력하는 모습은 다행이다. 하지만 납골당, 납골 묘역 역시 자연 친화적인 방식은 결코 아니다.

교회부터 만장된 묘지들을 개장해 그 땅에 나무와 꽃을 심고 화장한 분골을 나무 아래 안장하는 수목장의 형태로 교회묘지를 바꿔 나가면 어떨까? 거대한 무덤 터를 숲으로 바꾸고 꽃과 나무를 심어 사람들이 찾아와서 힐링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면 어떨까?

흙으로 돌아갈 우리 육신을 너무 오랫동안 넓은 땅속에 매장해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교란해 온 것은 아닐까? 환경을 이야기하고 생태계를 걱정하면서 정작 묘지는 무신경하게 변두리의 사안으로 내팽개치고 있지는 않은가? 묘원에 대한 관리를 행정적이고 사무적인 업무로 방치하지 않았는지도 생각해 볼 때가 됐다. 나를 불살라 그 분골을 나무 밑에 묻어 달라는 신앙인들이 많이 나와 주기를 기도한다.

성직자 묘원에 나를 묻지 말고 화장해 신자들 묘원에 안장해 달라는 주교, 신부들이 나와 주면 좋겠다. 그래야 죽음 앞에 누구나 평등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평신도들도 성직자 옆에 나란히 묻힐 호사를 누릴 수 있기에.

정호철 대건 안드레아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