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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코로나19와 북한의 ‘자력갱생’ / 강주석 신부

강주석 베드로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2-05-24 수정일 2022-05-24 발행일 2022-05-29 제 329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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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은 1990년대 중·후반 북한에서 발생했던 식량난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시기 북한에서는 에너지난, 수송난 등으로 산업이 마비됐고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사망자 수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는데, 적게는 수십만 명에서 많게는 2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는 추정이 있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1997년 10월 미국 CBS 뉴스에 방영되며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는데, 당시 북한을 취재한 기자는 북한 인구의 5분의 1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영화 ‘우리 위원장’(1999)은 ‘고난의 행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군(郡) 위원장은 위기에 처한 국가와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 ‘일꾼’이다. ‘영웅적인’ 노력으로 어떻게든 자체의 원료로 공장을 살리려는 주인공과는 달리 부위원장은 원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현실에서 외부와의 무역을 시도한다. 화강암을 해외에 수출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해외수출을 추진하는 부위원장의 행위를 ‘제국주의 세력의 놀음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외국 기업의 제안을 수용하는 것은 ‘소 한 짝을 잃고 꿩 한 마리를 받아온 셈’이며, 이는 단순히 ‘팔고 사는 장사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존엄 문제’라는 주장이다. 부위원장과 대립하면서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주인공은 “자본주의는 소리치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나약해진 마음속에 모기새끼처럼 기어들어 온다”라고 역설한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오직 ‘자력갱생’을 하는 것만이 해결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북한은 처음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공식화했다. 5월 16일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4월말부터 5월 15일 18시 현재까지 발생한 전국적인 유열자 총수는 121만3550여 명이며 그중 64만8630여 명이 완쾌되고 56만4860여 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대재앙을 겪으면서도 자력갱생을 강조했던 북한에 피하기 어려운 위기가 닥친 것이다.

북한 당국이 자력갱생을 넘어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우리와 국제사회의 진심어린 노력이 필요하다.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은 기적과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수많은 약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고난의 행군’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강주석 베드로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