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다 하느님 곁으로 간 최해성 요한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복자 최해성(요한)에 대한 이야기도 상세히 전하고 있다. 충청남도 출신인 최해성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하므로 모든 이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최양업은 설명한다.
최양업은 “최해성 요한은 그런 가난 중에서도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애긍 시사와 자선 사업 등을 궐하지 아니하였다”며 “천주교의 모든 본분을 이행하는 데 뛰어난 열성을 다하고, 신자들을 격려하며 비신자들을 권면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힌다.
작은 교우촌에서 모든 이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착한 표양을 간직한 최해성은 삶에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이다.
1839년 기해박해가 날로 악랄해지자 부모와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최해성 요한. 교회 서적을 가져오기 위해 다시 집으로 가던 그는 포졸들과 만나 관가로 끌려간다.
“네가 천주를 배반하면 나라의 착한 백성이 되겠고 너의 모든 재산을 되돌려줄 것이며 상금까지도 보태줄 것”이라는 관장의 회유에도 최해성은 “온 고을을 다 주신다고 하셔도 하느님을 결단코 배반하지 않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다.
포졸들과 군중들에게 숱한 매질과 행패를 당한 최해성에 대해 최양업은 “요한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뼈가 드러났으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붙은 그의 영혼은 기쁨으로 용약했다”고 전한다. 1839년 9월 29일 결국 최해성은 스물아홉의 나이로 순교한다.
최양업은 서한을 마무리하며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이렇게 청한다. “다른 것보다 하느님 자비가 저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저와 저의 가련한 조선 신자들을 신부님의 사랑이 넘치는 기도에 다시 의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