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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보고 싶고 그리운 고(故) 허승조 바오로 신부님을 기억하며…

허옥희(데레사·광주대교구 소록도본당)
입력일 2022-04-26 수정일 2022-04-26 발행일 2022-05-01 제 329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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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허승조 바오로 신부 장례미사 현장. 허옥희씨 제공

신부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황망한 일이였다. 제주교구를 위해 많은 일을 해오셨고, 특별히 나는 신부님이 만드신 ‘성 다미안회’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 인연이 이어져 지금 소록도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하다.

성 다미안회 회원들이 소록도에 봉사활동을 올 때마다 허 신부님께서도 변함없이 늘 함께하셨다. 신부님께서 회원들과 함께 지난 17년간 소록도 7개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몸소 사랑을 실천하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회원들은 1998년도부터 소록도 환자들을 초청해 제주 여행을 하도록 돕고 있다. 많은 환자들이 가고 싶어하고, 다녀온 환자들도 또 가고 싶어 한다. 회원들의 따뜻한 환대와 정성담긴 음식 덕분에 평생 사회의 냉대와 차별과 함께 살아 온 환자들에게 그곳은 다시 가고 싶은 곳일 수밖에 없다. 이 또한 허 신부님의 노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소록도 환자들 중에 제주가 고향인 분들이 있다. 회원들 덕분에 소록도에 입원하고 30년 만에 고향에 가신 분도 계시고, 제주에서 딸을 낳고도 자라는 모습도 보지 못한 채 소록도에서 생활하시다가 성 다미안회의 초청으로 20년 만에 딸을 만난 분도 계신다. 그날 이후로는 따님께서 1년에 한 번은 소록도에 오신다. 많은 분들이 가족들과 특별한 교류 없이 살고 있고, 가족과의 왕래는 소록도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30년 만에 고향을 찾은 어르신은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동네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되돌아온 분도 계신다.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동네에서 쫓겨나 마을 뒷산에서 무를 캐 먹으며 살다 소록도로 입원한 분이 계셨는데, 마을 입구에서 ‘조카가 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다 결국 다시 돌아와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 어르신은 아버지 산소에서 간단한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이제 여한이 없다고 하시며 소록도로 돌아오셨고, 몇 년 전에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신부님께서 지병으로 수술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병문안을 간 적이 있다. 늘 안부가 궁금하고, 차도가 있으신지 걱정만 하다 허 신부님께서 쓰러지시기 사흘 전에 통화를 했다. 상태가 악화가 되면서 병원 가까이 이사를 했다고 하셨고, 신부님의 목소리는 힘이 없으셨던 게 또렷하게 기억난다.

제주교구를 위해서 힘쓰셨고 교우들을 사랑하고 특별히 한센병 환자들을 사랑하셨던 신부님은 그야말로 ‘그리스도 향기’였다. 신부님은 우리 곁을 떠나고 안 계시지만 남아 있는 성 다미안회 회원들은 지금까지 그 사랑을 실천하며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운 신부님, 신부님께서 천상행복을 누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소록도에서 신부님을 닮은, 그리스도 향기가 나는 데레사가 될게요. 보고 싶습니다.

허옥희(데레사·광주대교구 소록도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