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8)전주교구 나바위성지와 역사관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입력일 2022-04-13 수정일 2022-04-13 발행일 2022-04-17 제 3290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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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겨울 지나고 봄이 오듯… 박해 멈춘 곳에 신앙이 꽃폈다

1845년 김대건 신부 일행 정박한 곳
나즈막한 화산에 1906년 성당 지어
옛 모습 보존된 성당·망금정 등 ‘눈길’

나바위성당 내부 전경. 신자석 자리를 남녀로 구분했던 옛 모습 그대로 칸막이 기둥이 서 있으며, 목조 세례대·예수상·성모상 등 오래된 성물도 잘 보존돼 있다.

화창한 봄날에 다시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았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날이다. 지난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떠올려주고 그 가지에서 피는 아름다운 꽃은 주님의 부활을 떠올려준다. 이처럼 교회의 가장 큰 축일에 주변의 자연도 생명으로 꿈틀거린다.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성지나 순교 사적지, 순례지는 교회가 겨울처럼 혹독한 박해의 시기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려준다. 여러 성지 가운데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와 관련된 곳이 많다. 그분의 흔적과 발길이 닿은 모든 곳에서 성인의 굳은 삶과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익산 나바위성지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일행이 작은 배를 타고 착지한 곳으로 주요 순교 사적지 가운데 한 곳이다. 김 신부는 중국에서 1845년 8월 사제품을 받은 후, 우리나라의 복음 전파를 위해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11명의 신자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를 떠났다. 거센 풍랑에 표류하다가 제주도를 거쳐서 42일 만인 같은 해 10월 12일 나바위에 가까스로 정박했다.

들판 한가운데 엎어놓은 사발 모양의 아름다운 화산(華山)에 나바위성지가 자리 잡고 있다. 화산의 가장 높은 곳에 너른 바위가 있는데 사람들이 나바위(나암, 羅岩)라 불러서 고유한 성지 이름이 됐다. 오늘날에는 화산 아래가 들판으로 변했지만 1925년 간척하기 전까지는 금강물이 흘러든 뱃길이었다.

나바위성당은 베르모렐 신부(J. Vermorel, 장약실 요셉, 1860~1937, 파리 외방 전교회)가 1897년 초대 주임으로 사목하면서 1906년에 한식 목조 양식으로 지었다. 최초의 성당은 명동대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Poisnel, 1855~1925)가 설계했다. 1916년에는 기존 성당을 좀 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외부 흙벽을 서양 벽돌조로 바꾸었고, 입구에 고딕식 종탑도 새로 설치했다.

한식 기와지붕을 덮은 후에 높은 창문은 부활과 진복팔단을 상징하는 팔각형으로 만들어 빛이 충분히 들어올 수 있게 했다. 나바위성당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목조 건축 기법과 서양식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룬 건축물이다. 이처럼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성당은 국가문화재(사적 제318호)로 지정됐다.

나바위성당 외부 전경.

성당 내부 가운데는 칸막이 기둥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것은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 관습에 따라 신자석 자리를 남녀로 구분한 것이다. 또한 성당에는 중국 남경 성 라자로 수도원에서 제작한 십자가의 길 14처 성화(1906년), 목조 세례대, 예수상, 성모상, 요셉상처럼 오래된 성물이 잘 보존돼 있다.

나바위성당의 유리화(2009년 작)는 유리에 한지를 겹쳐 붙인 후 그림을 그려 제작한 것이다. 송현섭(베드로) 신부가 만든 한지 유리화를 통과한 빛은 은은하게 성당 내부를 물들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같은 작가가 만든 한지유리화는 성지 역사관 창문에도 장식됐다.

성당 옆에는 한옥으로 지은 나바위성지 역사관이 있다. 1917년에 건립돼 사제관으로 사용하다가 2019년 본당의 역사관으로 꾸며졌다. 역사관 안에는 김대건 신부 초상화(영인본)와 어록, 라파엘호의 축소 모형이 전시돼 있다. 또한 본당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과 문서, 제구와 제의류, 성물과 성당 건축 자재 등이 있다. 성당에서 문맹 퇴치를 위해 건립한 계명(啓明)학교(1907년 설립, 1947년 폐교)에 관한 자료들도 살펴볼 수 있다.

화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성모동산과 십자가의 길 14처가 조성되어 있다. 정상에는 김대건 신부의 나바위 도착 110주년, 시복 30주년, 성당 건축 50주년을 맞아 건립한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1955년 건립)이 우뚝 서 있다. 그 옆에는 베르모렐 신부가 1912년부터 매년 봄, 화산에서 피정하던 드망즈 주교(Demange, 대구대교구 초대교구장)를 위해 세운 정자 망금정(望錦亭, 1915년)이 있다. ‘금강을 바라보는 정자’ 혹은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정자’란 뜻이다.

망금정 바로 아래, 화산 언저리는 김대건 신부 일행이 타고 온 배가 정박한 지점으로 알려진 곳이다. 길을 인도하는 대천사 라파엘의 이름을 붙인 배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작은 무동력 목선(길이 13.5m, 폭 4.8m, 높이 2.1m)을 타고 상하이에서 이곳으로 거친 파도와 풍랑을 헤치며 왔다는 것이 놀랍다. 돛이 마치 예수님께서 매달리신 십자가 형상처럼 보인다. 장차 김대건 신부와 선교사들이 극심한 박해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며 겪어야 할 고통과 고난을 미리 보여준 것 같다.

화산에서 다시 성당으로 내려가는 길가에는 작은 무덤이 있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 소세 신부(Hippolytus Soucet, 1877~1921)가 잠들어 있다. 그는 1906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우리나라에 와서 경북 칠곡 가실성당 등에서 사목하다가 1919년 나바위성당 주임 신부로 부임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수술 후유증으로 선종하면서 “나바위성당을 바라보며 눕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소세 신부의 염원에 따라 그의 무덤이 성당을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잡았다.

나바위성지에서 신앙선조들과 무수한 순교자들, 김대건 신부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아울러 고국과 가족 등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달려와 헌신했던 많은 외국 선교사제와 수도자들을 생각한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순교자와 증거자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이 싹트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고 있다. 그분들의 굳은 신앙과 고귀한 증거를 통해 다시 예수님의 부활을 찬미하며 ‘알렐루야’를 노래할 수 있다.

■ 관람 안내

주소: 전북 익산시 양성면 나바위 1길 146(화산리1159-2)

전화: 063-861-8182

성당 미사: 요일별 미사 봉헌 시각 다름

성지 소개: 수·금·토·일요일

역사관: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인근 성지: 전주교구 천호성지

(가톨릭신문 2022년 3월 20일자 참조)

성 김대건 순교 기념탑과 망금정.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