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안락사와 존엄사 / 고영초

고영초 가시미로 건국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입력일 2022-04-12 수정일 2022-04-12 발행일 2022-04-17 제 329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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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1960년대 미남 배우의 대명사였던 알랭 들롱(87)의 안락사 결정이 연일 언론에서 주목받고 있다. 2019년 뇌졸중 수술 병력이 있는 들롱이 프랑스에선 불가능한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고 실제 스위스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소위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2008년)으로 촉발된 존엄사 논쟁으로 추진된 ‘연명의료결정법’이 2016년 법제화되어 연명의료 분야는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으로 스위스 조력 자살 기관인 디그니타스(Dignitas)를 통해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도 있고 대기자도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유명인의 안락사 보도가 이런 추세를 부추길까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안락사(euthanasia)는 오랫동안 네덜란드에서 암묵적으로 시행되다가 30년 전 처음으로 합법화되어, 베네룩스 3국과 스위스 그리고 미국 일부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안락사의 원래 의미는 ‘아름다운 죽음’(beautiful death) 혹은 ‘평화로운 죽음’(peaceful death)인데, 많은 경우 의사의 조력 자살(physician assisted suicide)을 일컫는다. 의사의 조력 방법으로는 약물을 주입하는 경우와 환자에게 필요한 처치나 투약을 중단하는 방법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의 남용을 막기 위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시행하는 것으로 법제화가 되었다. 첫째, 치료 불가능한 병이어야 한다는 것, 둘째, 통증을 도저히 치료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 셋째, 환자의 합리적인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45년간의 임상 경험을 통해 과거에는 치료 불가능했다고 여기던 환자들이 수술이나 약물로 완치되는 경험을 근거로 안락사의 첫 번째 조건은 대부분 안락사의 예에서 충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통증 조절도 지난 30여 년 동안 수많은 약물과 통증 시술 개발로 거의 완전하게 조절 가능해졌으므로 둘째 조건도 충족이 어렵다고 본다. 암이나 치매, 루게릭병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심한 우울증을 동반하거나 인지 능력이 부족하여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셋째 조건도 충족하기 어렵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들롱이 어떤 상태에서 안락사 결정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뇌졸중 수술 병력이 있어 신체 일부에 참기 힘든 통증을 비롯한 불편감이 있을 수 있겠다. 또한 한때 결혼 생활을 했던 나탈리가 췌장암을 앓으면서 안락사를 못하고 지난해 세상을 떠난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미 100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존엄한 죽음을 맞을 권리를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작성했는지는 의문이다. 갑작스런 심장 마비의 경우 심폐 소생술로 완치되어 정상 생활이 가능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고, 급성신부전도 투석 치료로 위기를 넘기면 완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환자나 보호자들이 조력 자살이나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로 오인하고 있지는 않은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필자는 부산 소년의집 설립자로 잘 알려진 가경자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1992년)의 죽음이나 김수환 추기경(2009년)의 죽음이 진정한 존엄사라 생각한다.

고영초 가시미로 건국대병원 신경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