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동참합시다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2-03-29 수정일 2022-03-30 발행일 2022-04-03 제 3288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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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보호해 주세요”… 차가운 눈총 속에 ‘태아’ 된 것 같았다
지하철역 부근에서 팻말 들고
낙태 없는 세상을 위해 기도
‘살아 있어요’ 소리 없이 외쳐

40일 기도 한국 본부 공동대표 서윤화 목사가 3월 17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대로변에서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이소영 기자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이하 40일 기도)가 전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40일 기도는 태아 생명 살리기를 위한 국제 협력 운동으로, 매년 봄·가을 40일씩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릴레이 기도 봉헌과 단식, 봉사 활동 등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가을 처음 열린 데에 이어 올봄에도 서울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기자도 직접 기도에 동참하며 현장 분위기를 전해본다. 봉사자들의 참여 소감도 함께 담는다.

■ 40일 기도 참여

3월 17일 오전 10시, 기자도 40일 기도에 동참하기 위해 서울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찾았다. 출구를 나와 뒤쪽 대로변으로 가니 이미 서너 명이 서서 기도하고 있었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에 봉사자들은 손에 장갑을 끼고 있었고, 손에는 저마다 태아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는 판이 들려 있었다. ‘생명을 보호해 주세요’, ‘인간이 아닌 것이, 시간 지나면 인간이 되나요?’, ‘처음부터 인간입니다. 태아를 지켜 주세요’, ‘낙태 없는 세상을 위해 기도합니다’….

40일 기도 한국 본부 공동대표 서윤화 목사(낙태 예방 비영리 단체 ‘아름다운피켓’ 대표)의 안내에 따라 비치된 책자를 읽었다. 책자에는 낙태 실태를 알리는 글과 그림이 실려 있었고, 태아 사진과 태아가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지적도 담겨 있었다.

이어 기도문과 판을 집어 들었다. 기도문 종이에는 그날그날 참여자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기도 지향과 묵상 글이 나와 있는데, 이날 내용은 임신 지원 센터를 이용하는 아기 엄마들을 위한 기도였다. 판에 적힌 문구는 ‘Pray to END ABORTION, 낙태 없는 세상을 위해 기도합니다’였다.

배성미씨가 3월 17일 서울 홍대입구역 3번 출구 뒤쪽 대로변에서 열린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에 참여해 태아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참여자들이 3월 17일 서울 홍대입구역 3번 출구 뒤쪽 대로변에서 푯말을 들고 태아 생명 살리기를 위해 묵상하고 있다.

■ 태아 입장 경험하는 시간

1시간 동안 기도할 자리에 기도문과 판을 들고 섰다. 코로나19 확진자 수 급상승에도 홍대는 홍대, 젊음의 거리였다. 사람도 많고 차도 즐비했다. 그럼에도 평화롭고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기도이기 때문일까. 기도 장소 주변은 예상외로 고요했다. 눈을 감으면 이야기 소리나 경적 소리는 금세 작고 멀어졌다. 사람들 속에 있지만, 사람들은 봉사자들이 있는 듯 없는 듯 지나쳤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참여자 배성미(체칠리아·53·서울 신수동본당)씨는 이 같은 상황에 “태아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거리 한복판에서 아무 말 없이 기도하며,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밖으로 말할 순 없지만, 뱃속 태아가 된 기분이라는 뜻이었다. 배씨는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기만 하는 것 같아도 태아 대신 ‘살아 있어요’라고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며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1시간이 후딱 간다”고 밝혔다.

■ 차가운 눈총 있지만, 태아 생각하면 기도 멈출 수 없어

40일 기도는 시위도, 집회도 아니다. 참가자들은 다만 조용히 기도한다. 낙태 위기에 놓인 태아들이 살 수 있기를, 갈등하는 여성들이 생명을 살리는 길로 나아가기를, 사회가 생명을 소중히 대하는 방향으로 향하기를 희망하면서다.

그럼에도 생명 경시 풍조를 반영하듯 기도 중에는 이따금 차가운 눈길도 있었다. 기도 시작 후 20분쯤 지났을 때였다.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눈을 뜨자, 한 여성이 판에 쓰인 문구를 보고 있었다. 그 여성은 눈이 마주치자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얼굴을 휙 돌렸다. 말하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낙태 반대 입장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었다.

이날 기도 3일째인 이예정(글로리아·31·서울 고척동본당)씨는 그러한 눈총에도 기도를 멈출 수 없다고 했다. 타락한 성 문화, 성관계를 생명 잉태 행위보다 오락이나 놀이로 여기기도 하는 사회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알리는 기도는 필수라는 의미였다. 영화 ‘언플랜드’를 보고 태아에 관심 갖게 됐다고 설명한 이씨는 “외국에서만 이 기도가 이뤄지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하고 있어 놀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씨는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이미 기도하고 있는 분들이 있어 고마웠고, 관심 놓지 않고 기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소영 기자가 ‘낙태 없는 세상을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40일 기도에 함께하고 있다.

이소영 기자가 ‘낙태 없는 세상을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40일 기도에 함께하고 있다.

■ 생명의 소중함 인식 계기

40일 기도는 미국 텍사스주에서 2004년 시작됐다. 생명 수호 봉사자 4명은 낙태를 고민하는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성경 속 ‘40일’을 기준으로 24시간 기도와 단식을 진행했다. 이는 동참자 1000여 명과 낙태율 감소 결과를 낳았고, 2007년 처음 미국 각지에서 동시에 전개됐다. 지금은 64개국 100만여 명이 함께하고 있다. 이 기도로 3월 28일 기준 현재까지 어린 생명 2만786명이 살았고, 229명이 낙태 관련업을 관뒀다. 40일 기도 국제 본부는 이 사실을 홈페이지를 통해 밝히며 낙태 시설 114곳도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국내에선 아직 통계가 없지만, 참여자들과 이를 보는 사람들은 기도가 생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 기도에 동참한 권지연(22)씨는 “평소 깊게 고민하지 않았는데, 주님 역할을 사람이 대신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고 전했다. 지나가던 김지현(25)씨는 “개방적으로 변한 성 문화에 많은 생각이 들고, 책임감을 지니고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31세 한 남성은 이렇게 밝혔다. “‘몇 주차, 몇 주차’해도 남자들은 어느 정도인지 잘 몰라요. 그런데 시각적으로 보여 주면 저 정도 아이를 죽인다는 것에 경각심을 갖죠. 책임감도 강해지고요.”

■ 함께하기에 더 큰 기도의 힘

40일 기도는 함께하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종교를 떠나 생명 수호자들이 모여 기도에 힘을 싣기 때문이다. 성·생명·사랑 문화를 보다 긍정적으로 이끌고, 태아를 살리기 위한 기도에는 생명을 존중하는 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기도에 참여한 오륜교회 이화목 목사는 “작은 행위일 수 있지만, 종교를 초월해 연합할 수 있는 기도에 함께하는 것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40일 기도 한국 본부 공동대표 박정우 신부는 “기도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낙태 찬성자들, 낙태하려는 여성들 마음을 변화시켜 한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신부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고, 법이 어떻든 양심법에 따라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신성함, 하느님 영역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무엇보다 박 신부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도 봉헌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2022년 봄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일정: 3월 2일~4월 10일

※참가신청: 40daysforlife.com 40일 기도 국제 본부 홈페이지,

또는 forms.gle/yRKYArvrNJExrwdQA 구글 폼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