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7)과학과 신앙 간의 관계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2

김도현 바오로 신부(서강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2-03-29 수정일 2022-03-29 발행일 2022-04-03 제 3288호 1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범신론 “세상 만물이 신” 이신론 “신은 우주의 설계자일 뿐”

저는 지난번 글을 통해서 과학적 무신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범신론·만유신론 및 이신론·자연신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건물에 그려진 범신론을 대표하는 인물들 벽화. 범신론은 세상과 우주, 자연 안의 모든 것과 자연법칙을 신으로 여기는 사상이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범신론·만유신론(pantheism)은 간단히 말씀드리면, 인격신이 세상 밖에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우주, 자연 안의 모든 것과 자연법칙을 신으로 여기는 사상입니다. ‘신과 세상이 하나’ 혹은 ‘세상이 곧 신’이라는 이 이론은 세상 만물 자체를 신으로 본다는 면에서 표면적으로는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무신론과는 달라 보입니다.

이 이론은 근대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인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1632~1675)와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 등이 지지하였던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 범신론은 오늘날에 와서는 사실상 무신론과 구별되지 않는 이론입니다. 단적으로 아인슈타인은 스스로를 스피노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범신론자라고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밝혔었지만, 기존 종교에 관한 견해에 있어서 사실상 무신론자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는 면에서, 결국 범신론은 (과학적) 무신론과 사실상 동일한 이론으로서 간주될 수 있겠습니다. 리처드 도킨스 역시 그의 책 「만들어진 신」을 통해 범신론을 “매력적으로 다듬은 무신론”이라고 평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종교관에 대해 좀 더 살펴볼까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탁월한 이론물리학자 중의 한 명으로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아인슈타인이 양자물리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통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하다 보니 많은 대중들은 아인슈타인을 유신론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나 아인슈타인의 혈통이 유다인이고, 바로 그 유다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을 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아인슈타인을 유다교 신자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이 구트킨트에게 보낸 편지.

아인슈타인이 미국으로 망명한 후 1954년에 유다인 철학자인 에릭 구트킨트(Eric Gutkind·1877~1965)라는 인물과 유다교 신앙에 대해 서신을 통해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인슈타인이 구트킨트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내게 신이라고 하는 단어는 단지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과 산물에 불과하다. 성경은 공경은 할 만하지만, 원시적인 전설들을 모은 것이며 아무리 치밀한 해석을 하더라도 이 점에 대해서는 변할 수 없다. … 나에게 있어서 유다교는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유치한 미신의 화신이다. … 나는 유다인들에 대해서 ‘그들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

또한 아인슈타인 본인이 쓴 글을 모아서 출판된 책인 「생각과 의견」(Ideas and Opinions)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자신의 피조물에게 상도 주고 심판도 하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고, 우리가 우리 안에서 경험하는 종류의 의지를 가진 신도 상상할 수가 없다. 아울러 나는 물리적인 죽음을 겪고도 살아남는 사람을 상상할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 두려움이나 터무니없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진 유약한 영혼들이나 그런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 두라. 나는 삶의 영원성의 신비와 존재하는 세상의 놀라운 구조를 엿볼 수 있음에 만족하며, 또한 비록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자연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이성의 일부를 이해하는 데 전력투구해온 것에 만족한다.”

이 인용문만 보시더라도 아인슈타인의 종교관이 어떠한지 이제 명확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이신론·자연신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죠. 이신론·자연신론에 따르면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하였습니다. 즉 이신론·자연신론은 창조주이신 신을 긍정합니다. 신은 우주의 창조 및 질서의 원리로서 우주와 물질, 생명의 운행원리를 부여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 신은 인격신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우리가 믿는 하느님과는 다릅니다. 이신론·자연신론은 표면적으로는 신 개념을 받아들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은 여타 종교에서 고려하는 ‘인간사에 개입하는 전지전능한 인격신’이 아니라 자연신, 즉 자연과 우주 질서의 창조주이자 설계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만들어진 신」을 통해 이 이론을 “물을 타서 약하게 만든 유신론”이라고 평하였습니다.

이 이론은 계몽주의 시대의 디드로, 볼테르 등 소위 백과전서파 철학자들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인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 등이 지지하였습니다만 현재는 이 이론의 유력한 지지자는 그다지 찾아보기 힘듭니다.

김도현 바오로 신부(서강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