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미국으로 망명한 후 1954년에 유다인 철학자인 에릭 구트킨트(Eric Gutkind·1877~1965)라는 인물과 유다교 신앙에 대해 서신을 통해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인슈타인이 구트킨트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내게 신이라고 하는 단어는 단지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과 산물에 불과하다. 성경은 공경은 할 만하지만, 원시적인 전설들을 모은 것이며 아무리 치밀한 해석을 하더라도 이 점에 대해서는 변할 수 없다. … 나에게 있어서 유다교는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유치한 미신의 화신이다. … 나는 유다인들에 대해서 ‘그들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
또한 아인슈타인 본인이 쓴 글을 모아서 출판된 책인 「생각과 의견」(Ideas and Opinions)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자신의 피조물에게 상도 주고 심판도 하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고, 우리가 우리 안에서 경험하는 종류의 의지를 가진 신도 상상할 수가 없다. 아울러 나는 물리적인 죽음을 겪고도 살아남는 사람을 상상할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 두려움이나 터무니없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진 유약한 영혼들이나 그런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 두라. 나는 삶의 영원성의 신비와 존재하는 세상의 놀라운 구조를 엿볼 수 있음에 만족하며, 또한 비록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자연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이성의 일부를 이해하는 데 전력투구해온 것에 만족한다.”
이 인용문만 보시더라도 아인슈타인의 종교관이 어떠한지 이제 명확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이신론·자연신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죠. 이신론·자연신론에 따르면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하였습니다. 즉 이신론·자연신론은 창조주이신 신을 긍정합니다. 신은 우주의 창조 및 질서의 원리로서 우주와 물질, 생명의 운행원리를 부여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 신은 인격신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우리가 믿는 하느님과는 다릅니다. 이신론·자연신론은 표면적으로는 신 개념을 받아들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은 여타 종교에서 고려하는 ‘인간사에 개입하는 전지전능한 인격신’이 아니라 자연신, 즉 자연과 우주 질서의 창조주이자 설계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만들어진 신」을 통해 이 이론을 “물을 타서 약하게 만든 유신론”이라고 평하였습니다.
이 이론은 계몽주의 시대의 디드로, 볼테르 등 소위 백과전서파 철학자들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인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 등이 지지하였습니다만 현재는 이 이론의 유력한 지지자는 그다지 찾아보기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