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피아노 조율사 정재봉씨 "연주자가 원하는 소리의 빛깔까지 맞추는 게 제 일이죠”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2-03-22 수정일 2022-03-23 발행일 2022-03-27 제 3287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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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피아노 조율 ‘선구자’
여러 연주홀 전속 조율사로 활동
하느님의 섭리 덕분에 찾게 된 길
탈렌트 주신 하느님께 늘 감사

국내 피아노 조율사로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는 ‘갤러리피아노’ 정재봉 대표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습실 피아노를 조율하고 있다. 그는 “천직을 만난 것 같다”며 “피아노 조율을 시작한 지가 40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재밌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며 화려한 박수갈채를 받는 피아노 연주자들. 그 뒤에는 숨은 조력자, 피아노 조율사가 있다.

‘갤러리피아노’ 정재봉(그레고리오)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로 독일 국가공인 피아노 제작자 자격증인 ‘클라비어바우어’를 취득하고 국내에 기술을 전파한 피아노 조율사다.

정 대표는 어려서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해 공대 진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때 바이올린을 접하면서, 음악 교사가 되고자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 광주시립 교향악단에도 들어갔지만,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진로를 고민했던 정 대표는 교향악단에서 3년 활동 후 피아노 조율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 당시 피아노 조율사는 연주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습니다. 모두가 말렸죠. 하지만 잘 해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클래식 정통의 소리와 기술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1985년 세계 최고의 피아노를 만드는 독일로 건너갔다. 쾰른 국립음대 담당 피아노 조율사를 찾아가 1년간 무보수로 일을 하겠다고 설득해 기술을 배웠다. 그의 성실함과 실력은 이내 인정받았고, 그는 6개월 뒤 교직원으로 정식 채용됐다. 이후 11년간 쾰른 음대에서 조율을 담당했다. 클라비어바우어까지 취득하며 독일 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1996년 한국으로 돌아온 정 대표는 예술의전당과 금호아트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대표적인 국내 연주홀의 전속 피아노 조율사로 활동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피아노 구조 및 관리’를 강의하며 자신의 기술을 후배들과 나눴다. 이는 정 대표에 의해 국내에 처음 도입된 과목으로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이화여대, 경희대 등에도 강의가 개설되기 시작했다. 이 과목을 21년간 강의한 정 대표는 “이제는 조율에만 집중하기 위해 하나씩 손을 떼고 있다”고 말했다.

“저에게 참 잘 맞는 직업을 찾은 것 같습니다. 피아노 조율을 시작한 지가 40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재밌어요. 대부분 힘들면 술을 찾지만, 저는 그럴 때도 피아노를 찾습니다. 피아노 소리를 듣고 조율을 하다 보면 생각이 단순해지거든요.”

그렇다고 누구나 이 직업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율은 단순하지만, 음색을 찾아가는 ‘정음’의 단계에서는 연주자와 공감이 없으면 힘들다”고 밝혔다.

“지금 내 피아노 소리 음색은 백색인데 황금빛이 나오게 해달라고 요청한 연주자가 있었습니다. 연주자가 말하는 음색의 빛깔을 알 수 있을 정도의 공감대가 필요한 것이죠. 탈렌트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 길을 찾은 것도 하느님의 섭리 같아요. 매 순간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주모경부터 주요 기도문을 끝까지 읽었던 부모님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는 정 대표는 늘 성당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성당을 계속 기웃거리다가 세례는 군대에서 받았습니다. 잠들기 전 들었던 부모님의 기도 소리가 저를 이끌었던 것 같아요. 기도의 힘을 참 많이 느낍니다. 아내가 8년째 투병 중인데 신자분들의 기도가 없었으면 아마 힘들었을 겁니다. 예전에는 최고의 조율사가 되려는 열망이 있었지만, 이제는 오늘 하루 조율을 할 수 있다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 안에서 뚜벅뚜벅 걸어가려 합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