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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단상] 21세기에 신을 믿는다는 건

김미현 에스텔 명예기자
입력일 2022-03-22 수정일 2022-03-22 발행일 2022-03-27 제 3287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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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미사에 참례하는 사람보다 관광객이 그 수를 압도했다. 빙 둘러서 구경하던 관광객 중 한 명이 한마디 던졌다.

“21세기에 신을 믿는다는 게 좀 촌스럽지 않나?”

그분의 화두 덕분에 ‘21세기, 신, 촌스럽다’ 3개의 단어와 그 조합을 생각해봤다. 21세기에 신을 믿는다는 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맬빈은 병적으로 깔끔하고, 자신만의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면 불안해한다. 캐롤과 데이트하는 날도 그의 예민함과 불평이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온다. 도저히 참지 못한 캐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다 멜빈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 바로 칭찬 한마디만 해보라는 것. 불평불만이 일상이었던 맬빈은 곰곰이 생각하다 말한다.

“당신을 만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나도 그렇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세례를 받으면서 에스텔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그 이름은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한다.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살펴보게 하는 기준점, 등대, 주춧돌, 북극성이다. 그것이 꼭 종교여야 하는지 묻는 이들도 있다. 누구에게는 진리, 도덕이라는 이름이지 않냐고.

이탈리아로 유학 갔던 파스칼 신부님은 성탄에 옆집 친구들을 초대했다.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의 친구들이었다. 한 친구가 신부님께 물었다.

“파스칼, 네가 믿는 하느님은 그 전에 여기 살던 친구랑 다른 하느님인가 봐.”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전에 여기 살던 친구는 내가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사탄이라고 하면서 함께 밥 먹기는커녕, 매일 자기네 교회 오라고 귀찮게 했거든. 너는 선교 같은 건 안 하나?”

신부님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네가 네 종교를 잘 믿고, 너 자신과 이웃, 신을 사랑해서 이 세상을 더 평화롭고 아름답게 만들길 바라. 그게 내가 하는 선교야.”

요즘은 촌스럽다는 표현을 에둘러 ‘오거닉, 유기농’이라고 말하곤 한다. 유기농은 나 자신과 이웃, 이 세상에 좋다. 21세기에 신을 믿는다는 게 좀 촌스럽긴 해도 말이다.

김미현 에스텔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