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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11)한글 서적 보급에 매진한 최양업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3-15 수정일 2022-03-15 발행일 2022-03-20 제 3286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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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몰라 교리 배우지 못하는 이들이 없도록

병오박해 후 급격히 늘어난 양인 신자
한문 교리서 이해하는 데 어려움 따라
서한 통해 한글에 대한 애정 드러내며
교리서와 기도서 한글 번역에 매진

「천주성교공과」 목판본. 1969년 「가톨릭기도서」가 나오기 전까지 사용된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기도서다. 양업교회사연구소 제공

1846년 병오박해 이후 조선 천주교회 신자 구성에서 양반층은 감소하고 상민(양인)층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는 교리 교육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교리 교육에 있어서 한문으로 된 기도서나 교리서를 지양하고 한글 서적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당시 조선대목구장이었던 베르뇌 주교는 “예비신자들이 교리와 기도를 한자가 아니라 조선말로 배우도록 해야 한다”며 선교사들에게 사전 편찬 작업이나 교육 교재 집필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이에 당시 조선에서 유일한 한국인 사제였던 최양업도 한글 서적 보급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 신자들 위한 최양업의 한글 번역 노력

선교와 교리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열악했던 조선의 사목 환경. 하지만 최양업은 여덟 번째 서한에서 조선에서 사목을 하는 데 유리한 두 가지가 있음을 언급했다. 서양 선교사들이 얼굴을 가리고 전교하기에 유용했던 상복의 풍속과 한글이다.

특히 한글에 대한 최양업의 애정과 자부심은 서한에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나라 알파벳은 열 개의 모음과 열네 개의 자음으로 구성돼 있는데, 아주 쉽게 배울 수 있어서 열 살 이전의 어린이라도 글을 깨칠 수 있습니다. 이 한글이 사목자들과 신부님들의 부족을 메우고 강론과 가르침을 보충해 줍니다. 쉬운 한글 덕분으로 세련되지 못한 산골에서도 신자들이 빨리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구원을 위한 훈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낸 「19세기 중반 한국 천주교사 연구」에 따르면 1866년부터 1873년까지 천주교 신자들의 신분별 구성비는 상민(양인)이 3188명으로, 전체(3475명)의 91.7%를 차지한다. 반면 병인박해(1866년) 이전 21.32%였던 양반층은 7.89%로 급감했다.

베르뇌 주교는 “사본문답(영세·고해·성체·견진문답)을 완전히 배우지 못한 신자에게는 세례성사를 주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한문으로 쓰여진 이 책을 양반층이 아닌 신자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따랐다. 최양업은 1858년 10월 3일자 서한에서 “사본문답을 전부 배우자면 몇 해가 걸려야 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며 심지어는 죽을 때까지 교리 공부를 해도 사본문답을 다 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밝힌다.

한글 교리서와 기도서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필수적이었고, 최양업은 신자들을 위해 한글 번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최양업이 교리서와 기도서인 「성교요리문답」과 「천주성교공과」의 한글 번역 작업에 매진했다는 것은 다블뤼 주교의 서한에도 언급된다. “(경신)박해 덕분에 5권의 교리서가 막 교우들에게 배포된 상태이며 아직 작업 중인 남은 2권도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 있습니다… 게다가 그 서적들은 거의 전적으로 조선인 사제 토마스 신부의 작업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다블뤼 주교가 부모에게 보낸 1861년 1월 24일자 서한)

「성교요리문답」 한글 목판본.

■ 신앙의 길잡이 돼준 기도서와 교리서

「천주성교공과」는 1969년 「가톨릭기도서」가 간행되기까지 한국교회의 공식기도서로 사용되던 책이다. 1837년 무렵, 조선 신자들은 한문본을 음독한 기도서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오탈자가 많고 내용도 어려웠다. 이에 당시 조선대목구장었던 앵베르 주교는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기도서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모예 신부가 저술한 「천주경과」와 롱고바르디 신부가 저술한 「천주성교일과」를 참고해 조선에 맞는 기도서 번역 및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 「천주성교공과」 1권에는 성수를 찍을 때 하는 기도, 성호경, 삼종기도, 아침·저녁·식사 전후 기도, 영광송, 미사 참례하는 차례, 성체를 공경하는 기도,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 고해 전후송, 영성체 전후송 등이 수록돼 있다. 2권에는 첨례하는 순서, 모든 주일과 파공 축일에 하는 기도 등이, 3권에는 성모의 모든 축일에 하는 기도 및 성인들의 축일에 하는 기도가, 4권에는 각종 기도가 수록돼 있다. 1839년 기해박해로 앵베르 주교가 순교하면서 최양업 신부, 다블뤼 주교, 베르뇌 주교 등이 보완하고 정리해 이 책은 1862년부터 목판으로 인쇄되기 시작했다.

「성교요리문답」은 한국 천주교회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공식 교리서다. 세례성사, 고해성사, 성체성사, 견진성사 등 네 가지 근본 교리를 154조목으로 나눠 문답식으로 설명하고 있어 ‘사본요리’라고 한다. 1864년 베르뇌 주교에 의해 서울의 목판 인쇄소에서 단권초판이 간행됐다.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영세 문답에서는 70항에 걸쳐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교회의 근본 교리를 제시하면서 천주 존재, 강생 구속, 원죄와 본죄, 수난과 부활, 영혼 불멸, 상선 벌악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당시 세례를 앞둔 신자들은 기도문과 「성교요리문답」의 교리문답을 공부했으며,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비롯해 천주경, 성모경, 십계, 삼덕송(신덕·망덕·애덕송) 등을 암송했다고 최양업은 전한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