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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우크라이나의 비극, 남의 얘기인가 / 고계연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입력일 2022-03-07 수정일 2022-03-08 발행일 2022-03-13 제 328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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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로 변한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절규하는 여인, 밤새 공습에 놀란 아이를 껴안고 잠 못 이루는 엄마, 험한 피난길을 떠나는 아내와 딸과 생이별의 눈물을 흘리는 아빠… 동유럽의 약소국가 우크라이나가 지난달부터 전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불과 보름 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특별 군사작전 개시 명령이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알렸다. 이 나라 국경 주변에 포진하고 있던 러시아군이 공습과 함께 장갑차를 앞세워 들이닥쳤다. 밀과 옥수수의 곡창 지대인 평화롭던 우크라이나가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한 것은 물론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웃 국가 폴란드 등지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봇물을 이룬다. 안타까운 장면이 연일 TV 화면을 채우며 전쟁의 참상을 일깨운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가나 주요 시설이 부서지고 목숨을 잃고 다치는 애꿎은 민간인들은 또 얼마인가. 마치 70여 년 전 6·25전쟁의 트라우마가 뇌리를 스치는 것은 필자만 그러할까.

다른 한쪽에선 풍전등화 같은 조국을 지키려 총을 잡는 이들도 늘고 있다.

만만찮은 저항에 당황한 푸틴이 ‘핵무기 카드’까지 들먹거리는 지경이다. 애초 전쟁 탓을 우크라이나의 코미디언 출신 젤렌스키 대통령에 돌리는 경향이 강했다. 정치 초보자의 경거망동이라느니, 약육강식의 논리를 외면한 순진한 지도력 때문이라느니… 그러나 이 나라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가 아닐까. “우리 모두는 여기 우리나라와 독립을 지키고 있다. 조국에 영광을!” 우크라이나 전·현직 대통령들이 뛰어난 모범을 보여주었다. 저만 살자고 국외로 도망치는 대신 목숨을 내건 채 무기를 들고 침입자에 맞서고 있다.

신냉전의 시동을 건 이번 전쟁은 자유와 경제번영을 찾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합류하려는 우크라이나, 이에 맞서 인접 국가를 자기 세력권으로 묶어두려는 러시아가 맞부딪친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차치하고 한 국가가 다른 주권국가를 무력침공한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다. ‘전쟁광’ 푸틴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쟁과 폭력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잔인하고 더러울 뿐이다. 하늘 아래 정의롭고 위대한 전쟁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말이 뼈를 때린다.

이에 호응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반전·반푸틴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긴급 구호와 지원활동도 줄을 잇는다. 인류애, 평화 희구, 사랑 실천에는 국경이 따로 없음을 웅변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각국이 러시아에 고강도 제재를 가하고, 체육계 등에서도 러시아 비토 움직임까지 강화되면서 조속한 종전을 염원하게 한다. 무엇보다 큰 슬픔과 고통 중에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이 형제적 연대감 속에서 위로와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자’며 백방으로 애쓰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가 절절하다. “모든 전쟁은 그 이전보다 훨씬 나쁜 세상을 남겨놓습니다. 전쟁은 정치와 인류의 실패, 치욕스러운 항복, 악의 세력에 대한 항복입니다.”(「모든 형제들」 261항) 평화의 사도 교황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주님께 닿기를 소망한다.

치열했던 20대 대선 선거운동도 끝나고 대통령 당선자를 맞았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떠오른다. 분단국가로 강대국 사이에 낀 우리로서는 동족 간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가 늘 ‘발등의 불’이 아닌가. 무엇보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국방과 전쟁 억지력 확보가 급선무다.

팽팽한 풍선은 톡 건드리면 터지는 법이다. 세심한 위기관리와 남북 교류 확대가 새 대통령의 우선순위 책무가 됐다. 기나긴 엄동설한을 뚫고 만끽하는 3월,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왔다. 이젠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쭉 펴고 참 평화를 지키기 위해 달려가 보자.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