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비극의 우크라이나… 교황 "평화를 위해 기도와 단식을”

입력일 2022-02-28 수정일 2022-03-02 발행일 2022-03-06 제 3284호 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젤렌스키 대통령에 위로 전화
주교황청 러시아 대사와 회담도

우크라이나 소방관들이 2월 26일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한 건물의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CNS

【외신종합】 교황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며 더 큰 폭력을 막기 위해 당사자들이 협상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황청 러시아대사관을 직접 찾아가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공보실장은 2월 2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날 오전 주교황청 러시아대사관을 찾아가 30여 분 동안 알렉산데르 아브데예프 대사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교황이 외국 대사관을 직접 방문해 회담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교황청은 교황이 러시아대사관을 방문했다는 것 외에 회담 내용을 밝히진 않았다. 아브데예프 대사는 러시아 언론에 “교황은 우크라이나와 돈바스 지역의 상황에 대해 물었고, 돈바스 지역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의 국민들 상황에 우려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또 “교황은 어린이와 병자, 고통받는 이들을 돌봐달라고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2월 25일 영국 런던의 한 거리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CNS

교황은 이튿날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화해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고통으로 ‘가슴 아프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교황에게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전쟁 중단을 위해 기도한 것에 감사를 전했으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교황의 영적 지지를 느낀다”고 답했다.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2월 24일 메시지를 발표, “우크라이나 위기 상황과 관련, 이 지역의 평화를 위해 기도와 단식을 해 달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이 더욱 시의적절하게 다가온다”고 밝혔다.

교황은 지난 2월 21일 일반알현을 주례하며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재의 수요일인 3월 2일 기도와 단식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교황은 또 “평화의 주님께서는 우리가 적이 아닌 형제가 되길 바라신다”면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사람들을 고통으로 이끌고 여러 나라의 공존을 불안하게 하는 행동을 삼가주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2월 24일 우크라이나 북쪽과 동쪽, 남쪽 국경에서 대대적으로 군사공격을 감행한 러시아는 28일 현재 수도 키예프 점령을 위해 진군하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번 군사공격의 목표는 나치화된 우크라이나의 무장해제”라고 밝혔다.

파롤린 추기경은 “모두가 우려했던 이 비극적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면서도 “아직 모두를 위한 선익과 협상을 위한 시간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당파적 이익을 넘어서서 모두를 위한 지혜를 발휘해 전쟁의 공포와 어리석은 판단을 막아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파롤린 추기경은 전 세계 신자들에게 “신자로서 올바른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와 단식을 계속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의 스비아토슬라프 셰브추크 상급 대주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침해했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은 유럽을 공격한 것이며 유럽 대륙의 미래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평화를 원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죽음의 수용소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2월 26일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화염과 연기가 쏟아나고 있다. CNS

이번 침공은 러시아와 서방의 오랜 갈등으로 빚어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대규모 군대를 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동유럽에 배치한 군대 철수 및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예전 소비에트연방 소속 국가들의 NATO 가입 거부를 요구해 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는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페도로비치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하면서 점차 악화됐다.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의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분리주의 반군을 지원해 왔다.

지난 2월 21일 푸틴 대통령이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이에 대항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러시아를 추가 제재하자 전쟁의 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국제카리타스를 비롯한 구호단체들은 우크라이나가 엄청난 인도주의적 재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카리타스 테티아나 스타브니치 의장은 “21세기 유럽의 중심부에서 사람들이 오전 5시에 폭탄 소리와 공습경보로 잠을 깨야 하는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카리타스는 지난해 여름부터 전쟁에 대비해 왔으며, 특히 최근 2개월 동안 직원 교육을 강화했다. 우크라이나 카리타스는 국제카리타스와 협력해 식량과 위생물품 등 인도주의 활동을 위한 자원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에서는 지난 8년 동안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으로 1만4000여 명이 죽고 3만40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또 약 200만 명이 내전을 피해 집을 잃고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