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97)교황 자의교서에 담긴 숨은 진실/ 존 알렌 주니어

입력일 2022-02-23 수정일 2022-02-23 발행일 2022-02-27 제 3283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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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9년 안 되는 재임 기간에
건강한 분권 추구한 교황
그 방식이 강한 권력 이용한
자의교서라는 것은 아이러니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월 15일 교회법에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줬다. 몇몇 분야에서 교황청이 보유하고 있던 권한을 각국 주교회의에 넘긴 것이다. 여기에는 교구 신학교 개교와 사제양성지침서 발간, 지역교회 교리서 발간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교회 안의 점진적인 분권’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리고 있는 그림의 일부다. 교황은 2017년 전례서 번역에 관한 권한을 주교회의에 넘긴 바 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면, 교황직 수행 방식 변화를 시작으로 교황청의 권한을 지역 주교에게 더 주는 ‘건강한 분권’을 요청해 왔다. 당시 교황은 이 건강한 분권이 자신이 교회를 다스리는 통치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교회법 개정도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교황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방식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권과 교회의 변하지 않는 진실 사이에서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교황의 교황청 권한 분권 프로그램은 가장 강력한 중심 권력을 통해 실행된다는 것이다.

지난 2월 15일 교황이 교회법을 개정한 수단은 자의교서였다. 자의교서는 말 그대로 교황이 ‘자신의 뜻에 따라’ 법적 구속력을 내린다는 뜻이다. “그 누구도 요청하지 않았고 단지 내가 하고 싶어 이 같은 조치를 한다”는 말이다. 어떤 면에서 자의교서는 가장 순수하게 교황권을 사용하는 것으로, 교회법에 따르면 교황은 “교회에서 최고의 완전하고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직권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331조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권한 실행에 자의교서를 활용하고 있다. 만 9년이 넘지 않는 교황직 수행기간 동안 47개의 자의교서를 발표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6년 동안 30개의 자의교서를 썼다. 연평균으로 따지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자의교서 수는 1년에 5개가 넘으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개 정도다. 2016년에는 9개의 자의교서를 발표했으며, 지난해에도 8개를 썼다.

교황은 지난 2월 둘째 주에만 두 개의 자의교서를 발표했다. 2월 14일에는 신앙교리성 내부 조직을 개편한다는 내용의 자의교서를 냈다. 불쌍한 교회법 출판업자들은 새 교회법을 출판하자마자 개정판을 내야 한다.

교황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얼마 전 교황은 4개의 교서를 통해 교황청의 형사 재판 절차를 수정해 런던 부동산을 둘러싼 교황청 내 재정 비리에 대한 심리를 시작하도록 했다. 교황은 교황청 부서에 유보됐던 대부분의 전통적 권한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의지대로 일하도록 지시해 왔다. 교황은 몇몇 부서 중간간부를 직접 임명하고 해고했으며, 100년 동안 교황청에 생길 변화를 불과 10년도 안 돼 이뤄냈다.

교황의 이러한 시도들이 실제로 더 분권화된 교회를 만들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만일 우리가 좀 더 분권화된 교회를 맞이하게 된다면, 그것은 교회 내 분권 덕분이 아니라 생생한 교황 권한의 실행 덕분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한 아이러니는 차례차례로 가톨릭교회의 변하지 않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때때로 개혁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실행되지만, 또 많은 경우 위에서 아래로, 즉 교황의 교서로 실행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지시받은 사람이 주저하거나 성의 없게 일을 하더라도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표방하는 ‘건강한 분권’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되살리려는 노력 중 하나다. 전 세계 주교들은 4년 동안 모여 교회를 쇄신의 여정에 올렸고, 그 유산 중 하나가 우파와 좌파 가톨릭 신자 사이의 논쟁점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자체도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실행된 것이 아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이 자신의 뜻에 따라 공의회를 소집했다. 그도 측근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공의회를 감행했다. 교황청의 세도가들은 공의회에 대해 냉랭한 태도를 취했지만 ‘착한 교황 요한’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그 덕분에 가톨릭교회의 역사는 다르게 흘러갔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황제적인 교황직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황제와 같은 교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다음 교황이 ‘최고의 완전하고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직권’을 발휘해 마음대로 다시 이를 되돌리기 전까진 말이다.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