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주민·난민 쉼터 ‘착한사마리아인의집’을 가다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2-02-22 수정일 2022-02-23 발행일 2022-02-27 제 328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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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네…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촛불
소외받는 이주민과 난민 위해
지난해 2월 쉼터 열고 축복식
타국에서 힘든 삶 보내는 이들
수녀·봉사자와 함께 초 만들며
따뜻한 희망과 사랑 키워나가
수익금은 ‘소중한 자립 기반’

‘착한사마리아인의집’ 김보현 수녀(맨 왼쪽)가 베트남 출신 로안(왼쪽에서 두 번째)씨, 봉사자들과 함께 초를 만들고 있다.

의정부시 가능동 ‘착한사마리아인의집’. 주소를 받아 들고 좁은 골목길 사이로 들어가 어렵사리 찾았지만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머리를 숙여야 할 만큼 문 높이가 낮았다. 좁은 마당에 들어서자 ‘착한사마리아인의집 인보성체수도회 인보지역사도직’이라고 쓴 손글씨가 보였다.

착한사마리아인의집은 책임자인 김보현(로사) 수녀, 진은희(엘리사벳) 수녀가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자인 이주민, 난민과 어우러져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는 곳이다. 두 수녀는 수도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다. 이들은 왜 수도복을 벗고 이곳으로 왔을까?

‘착한사마리아인의집’이 이주민과 난민을 돕기 위해 만들고 있는 초. 초 제작으로 얻은 수익은 모두 이주민과 난민에게 급여로 지급된다.

■ 우리 시대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위해

김보현 수녀와 진은희 수녀는 이곳에서 사도직 활동을 하며 수도복을 입지 않는다. 이주민과 난민 그리고 이웃 주민들의 삶 속에 들어가 그들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다.

착한사마리아인의집 내부도 두 수녀가 생활하기에는 너무나 비좁아 보였다. 방 한쪽 벽에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를 표현한 성화와 인보성체수도회 설립자 윤을수(라우렌시오) 신부 사진, 날짜별로 빼곡히 업무 일정이 기록된 달력이 나란히 걸려 있다. 그리고 다른 쪽 벽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한 증인이 되어라,’ ‘노동하며 현존하며’라는 글귀가 보였다.

김 수녀는 ‘노동하며 현존하며’ 뒤에 ‘환대하기’가 붙어야 한다며 “환대는 노동과 현존의 열매”라고 말했다. 실제로 두 수녀는 착한사마리아인의집에서 노동하고 현존하며 이주민과 난민을 환대하고 있다. 착한사마리아인의집은 ‘호국로’로 이름 붙여진 골목길에 쉼터 4군데를 운영하고 있다. 갑작스레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쉼터 한 군데도 미리 준비해 놓았다.

쉼터에는 현재 우간다와 베트남, 라이베리아, 수단 출신 이주민과 난민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어린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유방암 3기 환자, 강제출국을 가까스로 면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눈 희귀병 환자다.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과 난민을 가장 낮은 자들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착한사마리아인의집 쉼터에는 그중에서도 더 낮은 자들이 산다. 김 수녀는 “쉼터에서 사는 분들 모두가 사연이 있지만 착한사마리아인의집에 오셔서 한 가족이 됐다”고 설명한다.

■ 진정으로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위해

두 수녀는 지난해 2월 28일 당시 의정부교구 사회사목국장 조병길(이시도로) 신부 주례로 착한사마리아인의집 축복식을 열었다. 의정부교구에서는 훨씬 나은 여건을 갖춘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두 수녀는 이를 마다했다.

김 수녀와 진 수녀는 진정으로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려면 가난하고 약한 자의 삶을 체험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수녀는 필리핀에서 선교한 경험이 있다. ‘정말 가난한 이들을 제대로 이해했는가?’ 하는 한계를 인식했다. 수도자인 자신이 ‘갑’이 되지는 않았는지 성찰도 했다.

착한사마리아인의집을 열기 바로 전까지 경기도 포천 외진 곳에서 생수, 마스크 제조업체, 재활용품 수거·분리 업체 노동자로 일하며 이주민과 난민들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봤다. 진 수녀 역시 봉제공장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한 적이 있다. 진 수녀는 “마지막 한두 시간을 남겨 놓고는 ‘견딜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 분들도 많아 그분들은 얼마나 힘든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두 수녀는 착한사마리아인의집을 연 후에도 노동자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이주민과 난민을 만나고 그들과 생활공동체를 형성하면서 노동자의 삶을 병행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착한사마리아인의집 쉼터에서 생활하는 이주민과 난민들을 도우려면 병원에 갈 때 동반해야 하고, 미혼모 아기를 돌봐야 하는 등 꼭 해야 할 일들이 항상 많아서다.

‘착한사마리아인의집’ 내부에는 ‘노동하며 현존하며’ 글귀가 걸려 있다. ‘노동하며 현존하며’는 ‘환대하기’라는 열매를 맺는다.

■ ‘초’ 만들어 희망의 빛 밝히다

착한사마리아인의집과 쉼터 네 군데 공간은 월세로 얻었다. 이 지역은 2000년 무렵까지 근처에 미군부대가 있었기에 비어 있는 집도 가끔 있는 동네다. 그래도 매월 월세와 공과금, 쉼터 이용자들의 병원비 같은 지출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제가 착한사마리아인의집이 겪는 어려움을 알고 ‘교회와 함께할 수 있는 일’로 초 만들기를 제안했다. 지난해 7월에 초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해 알뜰하게 꾸민 작업실에서 8월부터 초 제작을 시작했다. 본래 빈 집이었던 초 작업실은 의정부교구 사회사목국에서 리모델링을 지원했다. 겨울에도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 전기장판과 스팀 난방기를 들여 놓고 일하는 이곳에서 가슴 따스한 희망과 사랑이 샘솟는다.

매주 화~금요일 오후 2~6시 초 만들기를 한다. 진 수녀가 공장장 역할을 맡고 화요일과 수요일, 금요일에는 봉사자들이 찾아와 작업을 돕고 있다. 초 만들기에는 각별하고도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초 판매로 생기는 수익금은 모두 착한사마리아인의집 쉼터에서 생활하며 초 만들기를 돕는 이주민과 난민에게 급여로 지급돼 그들이 훗날 쉼터를 떠나서도 자립할 수 있는 소중한 기반이 된다.

기자가 찾았던 지난 2월 17일에도 수요일마다 봉사하고 있는 의정부교구 고양 마두동본당 여성 신자 2명이 일손을 도왔다. 두 봉사자는 “성경 속 착한 사마리아인은 자기 집까지 내어 주지는 않았지만 착한사마리아인의집 수녀님들은 이주민과 난민에게 살 곳까지 마련해 주고 있어서 봉사하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 초 만들기에 함께한 베트남 출신 로안(마르타)씨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면서 “유방암 3기로 치료비를 구할 길이 없어 베트남에 돌아가 남은 생을 마칠 생각까지 했을 때, 착한사마리아인의집 수녀님들이 저를 살려 주셨고 일할 기회까지 주셨다”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아직 초 제작 경력이 짧다 보니 원하는 색상이 안 나오거나 표면이 매끄럽지 않게 처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수록 더 정성껏, 고심하고 연구해서 초를 만든다.

김 수녀는 “그동안 만든 초를 의정부교구 동두천·녹양동·주교좌의정부본당과 양주순교성지 등 이주민과 난민의 삶을 잘 아는 곳에서 구입해 주셨다”며 “저희가 만든 초로 신자들의 신앙과 삶에도 도움을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 010-8430-0597, 010-9295-8126, 국민은행 506501-04-479178 인보성체수도회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